▒ 관혼상제집 ▒

상례,기타에 관한 질의 응답

천하한량 2007. 7. 27. 20:13
상례, 기타  

 고례의 상례 복례(喪禮 服禮)에 상장(喪杖)을 왜 짚으며, 대나무, 오동나무 또는 버드나무로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 대개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 입는 참최복(斬최服)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 입는 자최복에는 오동(桐)이나 버들(柳)로 된 지팡이를 짚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지극한 슬픔으로 음식을 전폐하고 오로지 호천 망극할 따름입니다. 때문에 건강을 상하고 몸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또한 지극한 효자는 병을 얻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몸을 의지해 장례절차를 마치려면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그만큼 슬픔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상에 대나무(柳) 지팡이를 짚는 것은 ⑴ 아버지는 아들의 하늘이고, 하늘은 둥근데 대나무는 안팎이 둥글어 하늘을 상징하고, ⑵ 대나무 안팎으로 마디가 있는바 슬픔 또한 안팎이 찢어지듯이 아프며, ⑶ 대나무는 사계절 푸른 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함이 춥고 더움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며, ⑷ 밑동이 아래로 가게 짚는 까닭은 나무의 서있는 이치를 따름이니 부모의 죽음이 자식에게 큰 슬픔이 되는 것도 이치입니다. 어머니의 상에 오동나무(桐) 지팡이를 짚는 것은 ⑴ 桐은 같다는 뜻의 同자와 음이 같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버지의 죽음과 같다는 뜻이고, ⑵ 오동나무는 겉에 마디가 없는바 한 가정에는 어른이 둘일 수 없고 어머니는 아버지 다음이므로 마디없는 나무를 쓰며, ⑶ 밑동을 四각으로 깎는 까닭은 어머니는 땅이고, 땅은 각(角 天圓地方)졌다는 상징입니다.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柳)로 대신 쓰는 까닭은 한가지라는 뜻의 類자와 같은 음 이므로 오동나무의 경우와 같은 뜻입니다.

 여자의 절에는 큰절과 평절이 있는데, 남자에게도 큰절과 평절이 따로 있습니까?

  • 禮書에 보면 여자의 절을 숙배(肅拜)라고만 했지 큰절, 평 절의 구분이 없고, 숙배는 큰절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남자의 절에 계수배(稽首拜·큰절), 돈수배(頓首拜·평절), 공수배(空首拜·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절에 큰절과 평절이 행해지는 까닭은 생활 습속으로 지방에 따라 행해지던 여러 가지 절의 모습에 따라 보다 정중하고 깊은 절을 큰절로, 간편한 절을 평절로 구분해, 절을 받는 어른이 절을 하는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 주려고 간편한 동작의 절을 허용한 것이 평절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1599년에 저술된 우리나라의 禮書인 가례즙람(家禮輯覽)에 보면 우리나라의 절로 숙배(큰절)가 소개됐고, 평절로는 주자(朱子·중국 宋대의 학자)의 말씀으로 평절과 닮은 절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미루어, 큰절은 우리나라의 원 절이고, 평절은 고대 중국식의 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이가 여자가 공수(拱手) 할 때에 왼손이 위로 간다면, 그 이유를 여자는 일을 하는 오른손은 거칠고 왼손은 고우므로 고운 왼손으로 거친 오른손을 덮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까?

  •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생활예절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남좌여우(男左女右), 또는 남동여서(男東女西)라고 해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맞잡는 것이 우리의 유구한 생활문화를 통해 정착된 것이며, 또한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남향(南向)하는 것이 생명보존을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는 방향)이고, 그렇게 하면 뒤가 북(北)이고, 앞이 남(南)이며 좌측이 동(東)이고 우측이 서(西)가 됩니다. 동쪽은 해가 뜨고 밝음이 오니 양(陽)이고 서쪽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드니 음(陰)이며,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입니다. 양인 동쪽이 좌측이므로 양인 남자는 좌측을 숭상해 왼손을 앞세우는 것이고, 음인 서쪽이 우측이므로 음인 여자는 우측을 숭상해 오른손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저는 어른에게 "수고하십시요"라고 인사했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까?

  • "수고하십시요"는 일을 하라는 말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의 일을 해드리지는 못할 망정 일을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상사 보다 먼저 퇴근하면서 "수고하십시오" 하면 "저희는 먼저 나가면서 나보고만 일을 하란다"고 언짢아 할 것입니다. "전 먼저 나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등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에게 일이 끝난 뒤에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수고를 위로하는 인사라 괜찮습니다. 같은 '수고'라는 말도 미리 말하면 하라는 뜻이고 뒤에 말하면 위로의 뜻이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아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부고, 축 문, 등에 주상(主喪)을 죽은 사람의 큰아들로 합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합니까?

  •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아들이 큰아들이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더라도 주상(主喪)은 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부고도000의 長子 000가 사망했다.'고 쓰고, 지방이나 축문에도 '亡子秀才 000라고 씁니다. 죽은 아들이 큰 아들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主喪이 되고, 미혼이면 아버지가 主喪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에 차이를 두는 까닭은 큰아들은 아버지의 家統을 이어갈 아들이기 때문이고, 작은 아들은 分家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 주상이 되는 것입니다.

시집가는 신부가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에 밤, 대추, 닭, 술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일반적으로 시아버지에게는 밤과 대추를 올리고, 시어머니에게는 닭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禮書에 보면 시아버지에게는 대추, 밤, 육포(肉包)를 올리고 시어머니에게는 옷을 지어 올리거나 비단을 드린다고 했습니다(曲禮) 육포대신 꿩을 쓰기도 했고 근래에는 꿩 대신 닭으로 쓰는 것이 관례로 되었으며, 밤과 대추는 시아버지, 닭은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대추와 밤을 폐백으로 쓰는 이유는 대추는 부지런하겠다는 뜻이고 밤은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겠다는 뜻(家禮輯覽·按春秋云)이므로 시부모에 대한 며느리의 서약이라 하겠습니다. 술은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아니고, 폐백을 받은 시부모가 며느리를 맞는(소님 맞이) 禮로서 술을 내리는 것입니다(舅姑禮之).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일은 잘못된 일입니다.

근래 혼인 전날에 신랑측에서 채단이든 함을 신부측에 보내는데, 그것을 "함을 사라" 외치며 실랑이가 심합니다. 전통예절에도 그런 법이 있습니까?

  • 채단이란 신랑이 아내를 맞기 위해 신부댁에 드리는 폐백입니다. 정결한 아낙은 禮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正潔之女 非禮則不行)고 했습니다. 신랑이 신부측에 드리는 함이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엄격한 의미에서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신랑이 함을 판다면 신부도 폐백을 팔아야 할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예물인 함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참말로 근절해야 할 천박한 폐단입니다.

혼인의례에도 四禮, 家禮도 四禮라고 말하는데 四禮라고 하면 혼례입니까, 아니면 가정의례입니까?

  • 혼인에서의 四禮란 원래의 六禮인 周六禮가 번잡하다고 朱子가 四禮로 조정한 데서 연유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四禮라고 말할 때는 婚禮가 아닌 가정의례를 말합니다. 가정의례는 줄여서 家禮라고 말하며 성년의식인 冠禮, 결혼절차인 婚禮, 초상을 치르는 喪禮, 죽은 이를 기리는 祭禮 등 크게 四禮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家禮에도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祠堂禮(사당례), 일상생활의 구준예절인 居家雜儀(거가잡의)가 있어 六禮(육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家禮(가례)에서는 祠堂禮(사당례)는 祭禮(제례)의 일 부분으로 이해하고, 居家雜儀(거가잡의)는 부록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택시나 자가용 등 승용차를 탈 때 문제가 있습니다. 어른이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게 인도(人道)쪽으로 모시려면 아랫사람이 먼저 타야 하니 실례이고, 어른을 먼저 타시게 하면 내릴 때는 아랫사람이 먼저 내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승용차는 운전기사의 옆자리인 앞에 한 사람, 뒤에 세 사람, 모두 네 사람이 탑니다. 그런데 어디가 上席인가는 택시와 고용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으로 같고, 자가운전하는 자가용은 다릅니다. 자가 운전하는 자가용의 경우는 운전석의 옆자리인 앞에 제일 上席인 1번이고, 뒷좌석의 인도쪽인 우측이 2번이고, 차도쪽인 좌측, 즉 안 쪽이 3번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4번 좌석입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탈 때 제일 아랫사람이 여자일 경우는 여자를 3번 좌석에 앉히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 이유는 차의 구조가 가운데는 높은 축이 있어 발을 벌리고 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운전이 아닌 자가용이나 택시의 경우는 뒷좌석의 우측인 인도쪽이 제일 上席인 1번 좌석이고, 좌측이고 안쪽인 차도쪽이 2번 좌석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3번좌석이며, 앞자리인 운전기사의 옆자리가 4번 좌석입니다. 역시 차례대로 앉을 때 여자가 뒷좌석의 가운데에 앉게 될 때는 앞 자리나 차도쪽 자리와 바꾸는 것이 예의입니다. 만일 승용차가 '짚' 차라면 자가운전이 아니라도 운전기사의 옆 자리인 앞이 上席인 1번 좌석이 됩니다. 그러니까 '짚'차의 경우는 자가운전하는 승용차와 같이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데 노인을 어떻게 불려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할아버지, 어르신네, 노인장, 노인어른, 어느 것이 맞습니까?

  • 근래 바깥노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고는 하나 썩 좋은 호칭은 아닙니다. '할아버지'란 손자나 손자뻘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아버지 뻘되는 친족간의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을 할아버지가 부릅니까? 질문하신 경우와 같이 禮스러운 호칭을 사용하려면 '노인장(老人丈)'이 좋습니다만 '장'은 어른이란 말이므로 순수 우리말로 '노인어른'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르신네'는 일반적으로 부모의 친구를 부를 때에 쓰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결혼식때 한 친구가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 와서 창피해 혼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살을 찌푸려 잔치분위기를 망쳤습니다. 그 친구가 잘못입니까? 저의 생각이 잘못입니까?

  • 기쁜 행사에 참석할 때는 화사한 옷을 입고 슬픈 행사에 참석할 때는 역시 슬픔을 나타내는 의복을 입는 것이 손님의 예절입니다. 그러나 그만한 준비가 없다고 해서 인사를 안가는 것은 더욱 좋지 못한 일입니다. 색깔은 걸맞지 않더라도 떨어진 곳은 꿰매고 더러운 옷은 빨아서 정결하게 했더라면 귀하가 창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상집에 울긋 불긋한 원색의 옷차림으로 가는 것도 실례이고, 잔칫집에 어두운 복장으로 참석하는 것도 실례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름에는 거의 항렬자를 쓰는데, 요새 번지고 있는 한글이름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또 한문 이름이라도 항렬자를 꼭 써야 합니까?

  • 어려운 질문입니다. 전래되는 항렬자는 제도는 한문식의 이름일 때 사용했습니다. 한문글씨의 모양에 甲乙丙丁이나 一二三, 또는 金水木火土 등의 순서를 따졌습니다. 그래서 이름자만 봐도 그 성씨에서 몇 세대째 자손인가를 분간할 수 있었고, 일가끼리 만나면 항렬만 보고도 아저씨 뻘인지 할아버지가 되는지 그 세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이름일 경우는 아직 그런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서 곤란할 것입니다. 여하간 항렬을 넣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위에 말한대로 더 편리한 건 사실입니다.

초상집의 문전에 상을 펴고 짚신, 밥, 나물, 더러는 돈까지 차려놓은 집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 그것을 사자(使者)밥이라고 해서 죽은 이의 영혼을 데리고 갈 저승의 사자에게 후히 대접해야 조상이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부모를 잡아가는 저승의 사자가 그렇게 고마워서 후히 대접한단 말입니까? 따라서 사자 밥을 차리는 것을 보고 "제 부모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린 사람들"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하간 예서(禮書)에는 사자 밥을 차려놓는 의식이 없습니다. 공중도덕, 환경 문제등도 그렇고 조상을 잡아가는 사자를 대접하는 일도 우스운 일이니 안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새 버스나 전차 속에서 여자가 발을 괴고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러는 어떤 행사장의 단상의 점잖으신 분이 발을 괴고 앉습니다. 단하의 참석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기가 싫은데, 그게 맞습니까?

  • 남녀간에 다리를 괴고 앉는 자세는 禮스러운 앉음새가 아닙니다. 친구간이나 아랫사람과 좌석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면 편한 자세가 좋을 수도 있지만 대중의 앞이나 의식행사 같은 정식의 정중해야 할 좌석에서 다리를 괴고 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리를 괸 자세는 건방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한 무례로 비춰집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성인과 같은 복장에 머리도 길렀지 만 분명히 미성년입니다. 그런데 존댓말로 말을 합니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 몇시입니까?", 자리를 양보하면 "고맙습니다."등등입니다. 더러는 한참 대화할 때도 있는데 계속 경어를 쓰십니다.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 미성년은 미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고, 성년은 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제 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년인지 미성년인지 분간할 수 없어서 어른들이 성년대접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미성년인데도 아무말없이 성년대접을 계속 받으면 아이들이 분수없이 어른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르신네, 저는 미성년입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라고 자기가 미성년임을 밝히는 것이 떳떳한 禮스러움입니다.

3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현재 어머니께서 노환이 위중하십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아버지 산소에 합장하려 하는 데 어머니를 어느 쪽에 모셔야 합니까?

  • 좋은 질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매장시의 남녀위치가 혼동되어 장래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입니다. 산 사람은 남자가 동쪽이고 여자가 서쪽입니다만 죽은 사람은 남자가 서쪽이고 여자가 동쪽입니다. 東은 상좌(上座)의 左측이고 西는 右측을 말하므로 여자는 남자의 좌측에 위치해야 합니다. 묘지의 비석에 보면 여자를 표기한 밑에 0 左'라고 새기고 있는데 그것은 남자의 '左측에 붙였다'는 뜻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려니까 상가에 인사갈 일이 많습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에게 물어봐도 인사법을 잘 모르고 상가에서 보아도 우물쭈물하고 맙니다. 어떻게 인사해야 맞습니까?

  • 문상을 간 사람이 부모상을 당한 상주에게 인사하는 말은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상사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라고 하고, 상주는 "망극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조부모나 백숙부모, 형제상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하려면 "복제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 "얼마나 슬프십니까?"라고 인사하고, 상을 당한 사람은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사때나 상가의 빈소에서 절을 할 때 두 번 반이라고 합니다. 반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 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한 경우 정중하게 하지 않고 간략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번은 없습니다. 생각컨대 남자의 배례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부인들이 절을 한 다음에 공경하고 사양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이 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간략한 禮의 표시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혼동 없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조상의 산소 옆으로 옮기려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머니께서 어른께서 살으시는 근처로 이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어른께 인사를 여쭐 것입니다. 산소를 옮길 때도 그냥 옮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지금 산소를 팔 때와 새로 산소를 뫼신 뒤에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도리 대로하는 것이 바로 예절입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건전한 상식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오랜 생활관습에 의해 정립한 것들입니다. 조상의 산소 옆에 다른 산소를 쓸려면 간략하게 제수를 차리고 '동강조선묘고사(同岡祖先墓告사)'를 하고, 새로 모신 곳에서도 간략한 제수를 차려 '일우축문(一虞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전통예절은 이렇게 일치합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격식이 중요시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는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이 그렇게 중요시됩니까?

  • 당연합니다. 인간이 하는 표정, 언어, 행동이 모두 격식에 의해서 이뤄져야 상대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이란 그 사회에서 공통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하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밥먹고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한다면 祭禮절차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수월하게 행합니다. 그 이유는 격식이랄 수 있는 절차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를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격식을 알아서 그대로 행합니다.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 국, 수저, 간장, 김치 찌개등을 놓는 자리가 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먹을때도 스푼 나이프 포크를 쥐고 쓰는 법등 격식을 따라서 행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을 위하는 제상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의식 절차를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격식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이고,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은 정성이 모자라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좌석배치에도 원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左右란 左右로 위치를 잡아야 할 자신들의 左右입니까? 예를 들어 신랑·신부가 설 때나, 회갑에서 부모가 앉을 때 자기 들의 左右인가, 아니면 손님이 볼 때의 左右인가 말입니다.

  • 실제로 누구의 左右인가 혼동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左가 보는 이의 右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左右란 당사자의 左右도 아니고 보는 이의 左右도 아닙니다. 禮節에 있어서 '누구의' '어디의'라고 기준을 정해서 左右를 말할 때는 당연히 그 특정기준의 左右이기 때문에 혼동이 없지만, 특정기준이 없이 左右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특정 기준이 없을 때의 일반적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반적 기준은 '上座'입니다. 左右에서의 左는 東이고 右는 西를 의미하며 上座는 北쪽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입니다. 上座가 北이라는 것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西禮에서 공통된 것이고, 그 상좌의 左가 東이며 男子이고, 상좌의 右가 西이며 女子입니다. 따라서 回甲잔치에서는 헌수를 받는 당사자가 앉는 자리가 上座이기 때문에 父母가 상좌에 앉으면 左측인 東에 父가 앉고 右측인 西에 母가 앉게 됩니다. 혼인예식에서는 병풍을 친곳, 즉 주례석이 上座이기 때문에 주례의 左측인 東에 신랑이, 주례의 右측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의 자리는 東쪽이고 신부의 자리는 西쪽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이때의 東西는 上座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가 되는 것입니다. 제례에서는 神位를 뫼신 곳이 上座이기 때문에 신위의 左가 東이고 右가 西입니다. 따라서 男子자손은 신위의 左 측인 東쪽에서 北향해 서고, 女子자손은 신위의 右측인 西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입니다.

상주가 자기를 말할 때 고자, 애자, 고애자(孤子, 哀子, 孤哀子) 등을 쓰는데 그 세가지가 어떻게 다릅니까?

  • 어머니는 계시고, 아버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孤子'이고, 아버지는 살아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哀子'이며, 누가 먼저이든 두 분이다 돌아가시면 '孤哀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주가 자기를 자칭(自稱)하는 것만 보아도 누구의 상(喪)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哀子'는 공식적으론 상가(喪家)를 대표해서 쓸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셨을 때 '哀子'인데 그런 경우의 상가의 주인(主喪)은 아버지인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고나 장사지낸 후의 인사장 등에 '哀子'라면서 아들의 명의로 하면 주상인 아버지를 제쳐놓는 일이며 심하게는 능멸하는 것이 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사신(私信)등에 '哀子'를 씁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각종 모 임에서 上下석의 좌석 구분을 없애고 있어 각 단체나 사회적 모임에서도 좌석배치에 논란이 많습니다. 上下석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없애야 합니까?

  • 시기에 적절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좌석배 치에 있어서의 上下석의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비록 같은 모양의 의자를 둥글게 놓았다 하더라도 같이 앉아야 할 사람 중 가장 상급자가 앉는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고, 그 상석을 기준으로 차례가 지어집니다. 그래서 의자가 같다든가 둥글게 좌석 마련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좌석준비를 해 놓으면 하급자들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더욱 혼란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또한 원탁이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계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 같다"는 인식을 갖는 배치인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원탁에 앉았다고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상하급이 이런 식으로 해서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사회는 혼란과 無禮의 늪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회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머니의 회갑을 당해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도 같이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살아 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겸한다면 얼른 보면 극히 효성스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로는 불효라 할 것입니다. 生死가 다른 두 분을 함께 뫼시고 잔을 드리는 헌수(獻수)를 한다는 말인데 산 어머니 옆에 죽은 아버지의 위패(신주)를 뫼셔야 할테니 살아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원래 돌아가신 부모의 생신에는 이제를 지낼 수 있으므로 죽은 아버지의 회갑에는 이제를 성대히 지내고 손님을 청해 아버지의 유덕을 기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는 어머니에게만 헌수하고 잔치도 어머니의 회갑잔치만 해야 합니다.

父母님의 회갑에 헌수를 할 때 자손이 향해서 왼쪽에 아버지, 오른쪽에 어머니를 앉으시게 하는가 본데 맞는지요?

  • 회갑잔치의 좌석배치는 병풍치고 병풍 앞에 당사자가 앉고 그 앞에 상을 차린 다음 자손들이 당사자를 향해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禮節의 東西南北은 병풍친 것이 北쪽이고 자손들은 南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위로 보아 귀하가 말씀하신 父母님의 위치는 아버지가 西쪽이 되고 어머니가 東쪽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남자가 西쪽 여자가 東쪽에 위치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제사때 지방을 쓸려면 향해서 왼쪽인 西에 남자, 향해서 오른쪽인 東에 여자의 신위를 쓰고, 묘지에 시체를 매장 할 때도 신주와 같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가 묻힙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父母님을 죽은 사람의 위치에 뫼신다면 그런 불효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자기들의 왼쪽인 東쪽, 어머니를 자가들의 오른쪽인 西쪽에 뫼셔야 합니다. 古禮에 보면 시부모가 새 며느리의 폐백을 받을 때 구동고서(舅東姑西), 즉 시아버지는 東쪽 시어머니는 西쪽에 앉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禮節에서의 東西南北은 상좌(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해 상좌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쪽이 되는 것이며, 生者는 東쪽을 上으로 해 남자가 東쪽으로 가고, 死者는 西쪽을 上으로 해(以西爲上) 남자가 西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택시기사입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은 성별 직업 연령 등이 다양한데 손님에 대한 호칭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좋은 호칭이 있습니까?

  • 그렇겠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고 해서 '얘' '너' 할 수 도 없고, 남녀 연령등 천태만상의 고객을 그때마다 격에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찌 택시뿐이겠습니까? 음식점, 접객업소, 기업체, 은행, 병원, 상점등 자기나 자기의 사업을 이용하는 고객을 맞는 업소에서는 모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님'이 제일 좋습니다. '손(客)'은 고객이란 뜻이고 '님'은 그 '손'을 높이는 말이니까 '고객(顧客)님'을 우리말로 '손님'이라 하면 적격입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신분이야 어떻든 '손님' 이라 불리워서 기분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男左女右란 男子는 왼쪽 女子는 오른쪽이란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혼인 예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주례를 향해 섰을 때와 하객에게로 돌아서서 인사할 때는 서로 위치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저희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이 '男左 女右'에 관한 것이니까요. 첫째, '男左女右'에 左右는 어떤 의식장소에 참석한 사람들 각자의 좌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上座의 좌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禮書에도 "좌우란 존장(上座)의 좌우"라 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혼인예식장의 상좌는 주례석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예식장 안에서의 좌우는 주례의 왼쪽이 左이고 주례의 오른쪽이 右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주례를 향할 때나 하객을 향할 때나 모두 신랑은 주례의 왼쪽, 신부는 주례 오른쪽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左右란 東西라는 뜻입니다. 예절에서는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北쪽이 제일 높고(北極星이 있으니까), 北쪽에서 南향해야 햇볕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北쪽에서 南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소의 형편상 어른이 자연의 北쪽에 위치할 수 없을 때는 편리한 대로 아무쪽에나 위치하더라도 어른이 계신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上座의 左측은 東쪽이 되고 右측은 西쪽이 됩니다. 그러므로 男左女右란 男東女西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인데 "초상(初喪)났다"고 '처음'이란 뜻의 '初'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왜 죽음에 '初'를 쓰느냐 는 것이군요. 禮書에 보면 君子의 삶은 道를 행하는 것이므로 君子의 죽음은 바로 道를 마침(終)이 시작된다고 해서 '初終'이라고 하고, 小人의 삶은 肉身이 살아 있는 것이므로 小人의 죽음은 바로 肉身이 죽어 썩음을 의미해 '死'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小人의 죽음은 '初死'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喪은 道가 끝나는 '終'도 아니며 육신이 썩는 '死'도 아닌 중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를 君子냐 小人이냐를 구분하지 않고 중간 의미인 '없어짐이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初喪'이라고 합니다.

요사이 신문에 나는 부고를 보면 남편이 죽었을 때는 아들보다도 앞에 '未亡人'이라 쓰고 부인의 이름을 쓰는데, 부인이 죽었을 때는 아무데도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경향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의 남편의 이름은 어디에 쓰는 것이 옳습니까?

  • 남편이 죽었을 때는 부인은 일단은 '主婦'가 되지만 그 주부의 자격도 큰며느리에게 물리게 되었습니다. 禮書에 의하면 부고에 이름을 쓰는 사람은 '主喪'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는 부고 자체가 죽은 이의 친척과 친지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상주들의 친지에게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주의 이름을 모두 쓰는 것이 상식화되었습니다. 만일 미망인을 제일 먼저 쓸려면 부고의 서식도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하지말고 "아무개의 남편 누가..."써야 합니다. 그런데 부고는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쓰면서 미망인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당연히 主喪이 큰아들이나 큰손자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미망인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는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남편이 主喪입니다. 그래서 부고도 "아무개의 부인 누가..."라고 시작되고 이름을 쓸 때도 제일 먼저 "主喪 夫000"라고 쓰고 그 다음에 아들이 이름을 써야 옳습니다.

상가(喪家)에 인사를 가서 보면 옛날과 달라 성복(成服)을 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복(成服)전후를 알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옛날과 같이 상복을 챙겨 입는 것도 아니고 혼백을 접거나 명정을 거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成服여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좌(靈座)에 망인의 사진을 뫼시니까 그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쳤는가 아닌 가로 구분하게 하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입니다. 즉, 염습을 해 입관을 하기 전에는 망인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치지 않고, 입관을 한 다음에 검은 리본을 ∧자로 걸치는 것입니다. 조문하는 손님이 망인의 사진을 보면 성복 여부를 금방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喪家에서 상주들은 거적자리를 깔고 짚벼개를 옆에 놓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상주는 왜 거적자리에 앉고 짚벼개를 베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흉내만 낸다면 진정한 예절이랄 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짚벼개가 아니라 흙벼개를 베게 되었습니다. 거적자리는 풀밭을 의미하고 흙덩어리의 벼개는 맨땅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자식들은 큰 죄인이며 차마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땅 풀밭에서 흙덩어리를 벤다. 즉 草土에 몸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갸륵한 孝道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근래 방석까지 깔고 있는 상주들이 있음은 생각할 일입니다.

얼마전에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한 친구가 아버님의 상을 당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른이 저의 아버지와 친구분이라 저는 아버지를 뫼시고 조상을 갔었습니다. 부의금은 아버지의 명의로 내고,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조상만 하고 바로 왔습니다. 다음에 상주인 제 친구가 "나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인사도 안왔다"고 서운해 했습니다. 부의록에도 저의 이름은 없으니 참으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 맞습니다. 그래서 상가에 부의록만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의록이야 부의금을 기록하는 장부니까 부의금을 내지 않는 조상객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상가에는 반드시 적객록(吊客錄)이나 적위록(吊慰錄)이 부의록 외에 따로 있어야 부의금에 관계없이 모든 조문객을 기록해야 합니다. 적객록(吊客錄)은 男子가 죽었을 때 적상객(吊喪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이고, 적위록(吊慰錄)은 망인이 女子일 때 적문객(吊門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입니다. 귀하가 질문한 경우 吊客錄이 있었더라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