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서적은 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 |
많은 사람이 많은 책을 썼으므로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읽히고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이씨조선조 4대 세종대왕 때 왕명을 받은 허조(許稠1369∼1439) 등의 고금(古今)의 예서(禮書)와 홍무예제(洪武禮制)를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본따서 편찬에 착수했고, 7대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 1424∼1483) 등이 이어서 길·가·빈·군·흉례(吉·嘉·賓·軍·凶禮) 등 五례 중에서 실행해야 할 것을 택해 도식(圖式)을 편찬 탈고한 것 1474 년 성종 때에 신숙주·정척(申叔舟·鄭陟) 등이 왕명을 받아 완성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왕가(王家)의 제례의식인 길례(吉禮), 혼례의식인 가례(嘉禮), 연회·접빈(宴會·接賓) 의식인 빈례(賓禮), 군사 의식인 군례(軍禮), 상중(喪中) 의식인 흉례(凶禮) 등으로 되어 있으며, 일반 사대부(士大夫)의 관혼상제와 음주례(飮酒禮) 등을 간략하게 첨가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참 고하기가 어려운 왕가의례(王家儀禮) 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⑵ 가례집람(家禮楫覽) :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선생이 1599 년 52세때인 이조 선조 32년 9월에 중국 송대(宋代)의 학자 주자 (朱子)의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가정의례(家庭儀禮) 전반에 걸쳐 그때까지의 여러 학설과 풍속 및 자기의 의견 등을 곁들 여 우리나라의 예설(禮說)을 집대성한 예의 이론서로서 모두 11권 6책으로 되었으며, 특히 제1권에 의례전반에 대한 도설 (圖說·도해)을 실어 이용에 편리합니다. 내용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제도와 성년의식인 관례(冠禮), 결혼의식인 혼례(婚禮), 초상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의식인 제례(祭禮) 등 일반 가정의 의식절차에 대해 자상하게 밝히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 와 여러 가지 학설등을 비교 수록했고,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습속(習俗) 등도 곁들였습니다. 따라서 가정의례에 대해 이론적인 연구나 원류(原流)를 아는데 필수적인 책입니다. ⑶. 상례비요(喪禮備要) : 위 가례즙람을 저술한 사계 김장생선생이 36세때인 선조16년에 완성한 1권으로 된 간편한 책입니다. 내용은 주로 초상(初喪)부터 치장(治莊)까지의 절차를 상세히 서술하고, 상중제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습니다. 현재도 상례에 있어서는 이 '상례비요'가 지역이나 가문에 관계없이 널 리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⑷ 사례편람(四禮便覽) : 가정의 관·혼·상·제 대하여 이씨 조선 조 숙종때에 이재(李縡1680∼1746)가 편찬한 것을 1844년에 그 증손 이광정(李光正)이 간행했고, 1900년에 황필수·지송욱(黃泌 秀·池松旭)등이 이것을 증보하여 '증보사례편람'이라 했습니다. 가례집람의 이론을 따라 행하기에 편리하게 찬술한 것이 특색으로 모두 8권 4책으로 되었습니다 | |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학자(禮學者)로 사계 김장생(沙溪 金 長生) 선생을 이르는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 |
사계선생은 1548년 이조 명종 3년에 출생하여 1631년 인조 9년에 84세를 일기로 졸했습니다. 13세때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 선생에게 사사(師事)해 사서·근사록(四書·近思錄)을 배웠고, 20세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 선생에게 사사해 수제자가 되었으며, 평생을 경서(經書)와 예문(禮文)을 탐구해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학문하는 태도가 간절하고 정밀·겸허해서 의심나는 점을 적출해 해석하는데 힘썼으므로 저서의 제목에도 경서변의(經書辨疑),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儀禮問解) 등과 같이 "疑"와 "問" 등의 문자를 쓰고, "辨" "釋" "答" "解" 등과 같이 궁금증을 풀어 해석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즙람(家禮즙覽)"등 예서(禮書)를 저술해 우리나라 가정의례에 바탕을 세웠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힘써 그 문하에서 金椎, 安時烈, 安浚吉, 張維, 崔鳴吉, 安國澤, 金 등 거유가 나고 모두 285명의 후학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성균관과 지방, 향교 등 문묘(文廟)에 모셔진 우리나라 유현(儒賢) 18인중 沙溪, 愼獨齊, 尤庵, 同春 등 본인과 문하에서 4인이 종사됐다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1717년 이조 숙종 43년에 문묘에서 종사하는 교지(敎旨)에 선생을 일러, "-깊고 오묘한 禮文과 어렵고 의심나는 學問은 또한 자세하게 해석하였고, 吉한 일과 凶한 일의 禮節은 모든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지 않음이 없어 크고 작 거나 높고 낮거나 한 모든 이가 다 같이 혜택을 입으니 그 높고 큰 모습이 온 세상에 泰山고 北斗같이 높았고, 해와 달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같도다-." 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근대의 석학인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선생이 지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도 선생을 일러 "朝鮮禮學의 宗" 이라 했으니 우리나라 예학에서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으뜸이라 하겠습니다. |
딸의 혼인(婚姻) 날짜를 정한 후에 부모의 제사가 돌아와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괜찮은지요? 특히 딸애도 같이 참례(參禮)시키려고 합니다. 누구는 혼사를 앞두고 제사를 안지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 |
혼인 예식의 절차에 보면 신랑의 사주를 주고받을 때, 그리고 신부 댁에서 택일을 하여 주고 받을 때, 혼인하는 날의 아침 등에 신랑집이나 신부집이 모두 조상에게 고하는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절차는 명절 차례 지내듯이 조상에게 고하는 것인데 혼인 날짜를 정했다고 조상의 기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정성들여 조상을 받드는 기제사나 차례를 지내야 합니다. | |
납폐시(納幣時) 혼서지(婚書紙)에, ‘후인(后人)’이라 되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요? | |
‘后人’이란 후세의 사람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본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경주 이씨면 ‘慶州 后人 李○○’라고 쓰면 됩니다. | |
폐백을 드릴 때 신부만이 절을 하는지요? 그리고 형제 항렬이면서 손위의 경우는 상석(上席)(남향)에 앉게 하고 절하는지요? | |
현구고례(폐백례)에서는 원칙적으로 며느리가 시부모를 뵈며 폐백을 올리는 禮이기 때문에 신부만 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가 신랑의 형과 형수에게 절을 할 때는 형과 형수가 동쪽에서 서향하고, 신부는 서쪽에서 동향해 서서 평절로 정중히 맞절을 하는데 신부가 먼저 시작해 늦게 끝나고 형과 형수는 늦게 시작해 먼저 끝냅니다. 전화질의 | |
혼서지 쓸 때 ‘后人’이란 무슨 뜻인지요? | |
조상에 대한 후손이란 뜻으로 본관을 앞에 넣고 쓰는데, 예로서 전주 이씨면 ‘전주 후인’이라 씁니다. | |
전통혼례 때 신랑이 신부 댁에 가서는 손님이 되니 서쪽에 서야 맞지 않는지요? | |
대례에 임해서는 신랑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서동부서(壻東婦西) 원칙에 따라 동쪽에 서야 합니다. | |
자식을 장가들이는데 납폐(納幣)의 예제를 알고 싶습니다. | |
예물 물목을 쓰고 함에다 예물별로 포장해서 넣은 뒤 그 위에 물목을 얹어 함을 싸서 전하며, 혼서 편지를 같이 보냅니다. | |
전통혼례 초례상에 꿩을 사용하였다는데 무슨 연유가 있는지요? | |
꿩을 사용했다는 말은 있으나 지금은 닭을 많이 쓰는데 닭이나 꿩이 사람과 가까이 있는 동물로 친근함을 표시하고, 자웅은 남녀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
약혼한 여자가 남자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릴 때 갖추어야 할 예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
단정한 차람에 화장을 옅게 하고 약혼 남자와 함께 집에 도착한 후 약혼 남자의 안내로 그 아버지께 먼저 한 번, 그 어머니께 한 번 절을 한 후(부모에게 한꺼번에 한 번만 할 수도 있음) 다시 무릎을 꿇은 채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드린 후 ‘편히 앉아라’라시면 편히 앉은 채 어른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음 안내대로 따르면 됩니다. | |
자녀 혼사 택일을 받으면 조부모의 기제를 지낼 수 없는지요? | |
집안에 혼사 날이 잡혔으면 일부러라도 먼저 조상님께 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됩니다. | |
폐백(현구고례) 드릴 때 신랑도 같이 절을 하는지요? | |
폐백은 새로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에게 인사드리는 것으로 신랑은 신부를 인도한 후 옆에 물러나 있는 것이나, 요즘은 부모 품을 떠나 직장생활 등으로 친면(親面)할 기회가 적은 점으로 보아 같이 절을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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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순, 칠순, 팔순 잔치를 할 때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그리고 회갑 때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 |||||||||||||||||||||||||||||||||||||||||||||||||||||||||||||||||||||||||||||||||||||||||||||||||||||||||||||||||||||||||||||||||||||
육순, 칠순, 팔순의 나이는 세는 나이로 계산됩니다. 즉 육순은 세는 나이로 60이고, 칠순은 세는 나이로 70, 팔순은 세는 나이로 80입니다. 그리고 회갑은 자기가 태어나 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 만으로 60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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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때나 제사 때 절은 몇 번 해야 되는 지요? 회갑 때 보니까 3번 절을 하는데 맞는지요? | |||||||||||||||||||||||||||||||||||||||||||||||||||||||||||||||||||||||||||||||||||||||||||||||||||||||||||||||||||||||||||||||||||||
회갑 때나 제사 때 공히 남자는 再拜(재배), 여자는 四拜(사배)를 합니다. 즉 이 절은 횟수는 음양의 이치에 의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양이기 때문에 최소 양수인 한번, 여자는 음이기 때문에 최소 음수인 두 번이 기본 회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집안의 큰 의식행사인 관혼상제례 때, 수연례 때는 기본 횟수의 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갑 때나 제사 때 남자는 再拜(재배), 여자는 四拜(사배)를 하는 것입니다. | |||||||||||||||||||||||||||||||||||||||||||||||||||||||||||||||||||||||||||||||||||||||||||||||||||||||||||||||||||||||||||||||||||||
환갑 때 아들, 며느리가 절을 하는데 남, 녀 공히 두루마기를 입고 절을 해야 되는지요? | |||||||||||||||||||||||||||||||||||||||||||||||||||||||||||||||||||||||||||||||||||||||||||||||||||||||||||||||||||||||||||||||||||||
남자의 경우에는 예복이 두루마기까지 입는 것으로 당연히 두루마기를 입고 절을 하는 것이고, 여자의 경우 두루마기를 입고 절을 하는 것이고, 여자의 경우 두루마기는 방한복이지 예복이 아니기 때문에 두루마기를 벗고 절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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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을 맞이하였는데 회갑 당사자의 父母가 살아 계십니다. 회갑 당사자가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되는지요? | |||||||||||||||||||||||||||||||||||||||||||||||||||||||||||||||||||||||||||||||||||||||||||||||||||||||||||||||||||||||||||||||||||||
먼저 회갑 당사자가 부모님께 술을 한잔 올리고 절을 한 다음 자손들의 헌수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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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이 환갑 다음 해입니까? 아니면 전 해입니까? | |||||||||||||||||||||||||||||||||||||||||||||||||||||||||||||||||||||||||||||||||||||||||||||||||||||||||||||||||||||||||||||||||||||
진갑은 다시 60갑자가 펼쳐져 진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환갑 다음 해의 62세 때의 생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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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80세, 90세, 91세는 무엇이라 합니까? | |||||||||||||||||||||||||||||||||||||||||||||||||||||||||||||||||||||||||||||||||||||||||||||||||||||||||||||||||||||||||||||||||||||
70세는 古稀(고희)라 하며, 80세는 八旬(팔순), 90세는 九旬(구순), 91세는 望白(망백)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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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의 연치와 칠순의 연치는 얼마인가요? | |||||||||||||||||||||||||||||||||||||||||||||||||||||||||||||||||||||||||||||||||||||||||||||||||||||||||||||||||||||||||||||||||||||
환갑은 61세(만60세) 되는 해 생일이고, 칠순은 70세 되는 해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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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은 몇 살이며 무슨 자를 쓰는지요? | |||||||||||||||||||||||||||||||||||||||||||||||||||||||||||||||||||||||||||||||||||||||||||||||||||||||||||||||||||||||||||||||||||||
진갑은 62세이며 ‘나아갈 진’과 ‘첫째천간 갑’ 자를 써서 ‘진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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