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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y To Remember ..♪.. (9) Brothers Four

천하한량 2007. 7. 21. 19:12
Try To Remember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려봐요
 
   - Sung by Brothers Four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you were
a tender and callow fe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although you know
the snow will f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the fire of September
that made us mellow
 
Deep in December
our hearts should remember
and follow, follow, follow
 
 
구월과 같은 가을날들을
떠올려 보려고 해봐요
세월의 흐름이 여유로웠고
모든게 너무 풍요로웠던 그때를요.
 
구월과 같은 가을날들을
떠올려 보려고 해봐요
초원은 푸르르고
곡식이 황금빛으로 익어가던 때를요
 
구월과 같은 날들을
기억해보려 해봐요.
그 때의 당신은
부드럽고 풋내나는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기억해 보려 해보세요.
그리고 추억이 생각나면
그 추억을 따라가봐요, 그 추억을요.
 
추억을 떠올리려 해보세요
산다는게 너무도 행복했던 시절이어서
가을바람에 소리없이 흔들리는
버들가지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그 시절을요..
 
삶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 때를 떠올려 보세요.
사랑은 이제 막 타오르려하는
불꽃같은 여운이었죠.
 
기억해 보려 해보세요.
그리고 추억이 생각나면
그 추억을 따라가봐요, 그 추억을요.
 
12월이 깊어가면
비록 눈이 내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억을 떠올리기는 참 좋은 계절이예요.
 
12월이 깊어가면
우리의 사랑을 익어가게 했던
9월의 따스했던 우리의 사랑을
떠올리기에 참 좋은 계절이예요.
 
12월이 깊어가면
우리는 마음 속으로 추억을 떠올려야 해요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 가는거예요, 추억을요
 
 
 NOTES... 
 
 
 
::::  Try to Remember  ::::
 
    국내에서 젊은 팬들에게 많이 친숙한 가수 겸 영화배우 '여명'이 Brothers four 의 "Try to Remember"를 Revival 하여 여명이 주연하고 주제곡까지 부른 영화 <유리의 성(Boli zhi cheng)>에 삽입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노래지만 이미 Patti Page, Nana Mouskouri, Tom Jones, Andy Williams 등 수 많은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졌던 올드팝으로서 원래는 탐 존스 작사, 헤베이 슈미트작곡, 1959년 버나드 컬리지에서 상연된 뒤 60년 5월 3일 뉴욕의 설리번 스트리트에 있는 플레이하우스에서 개막한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The Fantasticks>의 히트넘버로 줄리오백이 불렀던 곡으로 아름다운 발라드이며, 65년 초에 에드 에임스의 레코드가 히트하였고, 이어 같은해 가을에 'Brothers Four' 가 히트시켜 국내의 Oldpop 팬들에게는 'Brothers Four' 의 곡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불려졌던 Oldpop 의 명곡 중의 하나이다
    이 곡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잇는 것은 영시에서 많이 사용하는 각운(Rhyme)을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각운(Rhyme)이란 뒤에 오는 단어가 비슷한 형태로 끝나서 리듬감을 살리는 것인데, 이 곡에 쓰인 Rhyme 부분을 보자면 "slow, mellow, yellow, follow, fellow, willow, pillow, billow, hollow 등등 가사 한줄 한줄이 대부분 --ow 로 끝나게 함으로써 리듬감을 살렸고 아울러 들을 때 뿐만 아니라 따라 부르기에도 쉽게 되어있다.
 
 
::::  The Brothers Four  ::::
 
   세계일주 컨서트, 수백만장의 레코드 판매, TV방송국 출연, 백악관에서의 공연... -- 이러한 모든 것들은 1950년대 후반 4명의 워싱턴 대학 동창생들의 야망찬 꿈의 실현이었고 그 후 짧은 시간 안에 "The Brothers Four" 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이 주는 기쁨을 들려준 내용을 기록한 책자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60년 이후 "The Brothers Four"는 수천개교의 대학에서 연주하였고, 미국의 역대 4명의 대통령을 위해서 백악관에서 공연하였으며, 또한 수없이 많은 커뮤너티 컨서트에 출연하였고, 여러 교향악단과 재즈 스타들과도 협연하였으며 세계를 향한 미국의 음악대사 자격으로서의 수십개 나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The Brothers Four"의 음악은 미국의 음악이다"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는 거대한 미국의 전통적인 포크 뮤직 유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그룹은 '포크송의 부흥(Folk Revival)' 으로 알려진 음악 운동에 있어서 개척자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그룹들 중 몇 개의 그룹들은 오늘날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The Brothers Four"는 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가장 인기있었던 그룹들 중 하나였다. 그들의 모든 어쿠스틱 음악 연주는 기타, 반조, 만돌린 그리고 직립형 베이스 등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물론 그들 4명의 목소리의 환상적인 조화는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들의 음악이 애팔라치안 포크 발라드 음악을 충실히 적용한 음악이었든지 아니면 오늘날 싱어송라이터들의 오리지널 작품이었든지간에 그들의 음악은 항상 부드럽고 전문적이고 그리고 즉석에서 부를 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The Brothers Four" 는 시대를 초월한 미국의 음악이었고 지금도 전세계로 수출이 되어오고 있다.
   두왑(연주에 맞추어 코러스가 뒤얽히는 음악)과 비틀즈 음악 사이의 변화의 기간에 새로운 음악의 시대가 조용히 미국의 음악계에 나타났다. 1950년대 후반,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던 포크 음악 시대의 재도래가 화려한 홍보 없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음악의 운동은 좌익 방랑시인들 또는 저항가수들의 음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청중들에게 오직 한가지 즉, '즐거움'만을 제공해주려 하는 활기차고 말쑥한 대학생들 그룹의 음악이었다.
   이 음악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이 바로 "The Brothers Four" 였다. 이 파이감마델타 우애회(Fraternity: 보통 2자 이상의 그리스어의 알파벳을 그 회의 이름으로 하는 남자 대학생의 단체) 그룹이 대학축제 및 대학가요제 등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들은 나중에 40년이라는 세월동안 50장 이상의 앨범을 발표하며 건장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줄은 몰랐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력은 아주 순수하게 시작이 된다. Bob Flick (acoustic bass), John Paine (guitar), Mike Kirkland (guitar & banjo) 그리고 Dick Foley (guitar) 등 이 네 사람은 1956년 와싱턴 대학에서 만난다. 그들이 소유한 풍부한 음악 지식과 뛰어난 현악기의 합주 실력으로 "The Brothers Four" 는 다양한 캠퍼스 행사에 자주 초청이 되었다. 그러던 1958년 어느날, 당시 시애틀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라이브 뮤직 클럽인 'Colony Club' 으로부터 부름을 받는데 그 클럽은 이들에게 와서 오디션을 받아 보라고 요구한다. 네 명의 애띤 얼굴의 청년들은 악기를 손에 들고 일찍 장소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은 곧 이 부름이 다른 경쟁 우애회에 의한 장난이었음을 알 게 된다. "물론, 그 클럽의 리더는 우리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지요," 라고 Flick 은 회상한다, "그러나, 마치 영화에서처럼, 그는 '너희들이 여기에 왔으니까 노래 두 곡을 불러봐'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고 놀랍게도 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고용이 되었다.
   1958년 한 해동안 내내 'The Brothers Four' 는 'Colony Club'에서 일했고 그들의 쇼는 히트를 쳤는데 특히 그 당시의 "Contrived" 레코드에 식상해 있어서 그들의 어쿠스틱하고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사운드와 소박한 하모니를 환영했던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인기기 있었다.
   1959년 "The Brothers Four" 는 San Francisco 로 향하는데 그곳은 정말로 우연하게 연주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인기를 뒷받침해주는 자신들의 우애 관계가 십분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시선을 샌프란시스코 최고 클럽인 'the Hungry i'와 'the Purple onion' 등에 둔다. 그들은 곧바로 'the Hungry i'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그리고 이어서 바로 'Columbia Records'사와 계약을 이루게 된다. 그 다음 해에 이들은 그들 최초의 앨범 <The Brothers Four>를 녹음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뉴욕으로 날아가게 된다. 1960년 "The Brothers Four"는 싱글 "Greenfields" 를 녹음하게 되는데 이 곡은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 The Brothers Four
 - Mark Pearson, John Paine, Bob Flick, Terry Lauber
 
   나중에, "The Brothers Four" 가 녹음과 세계 순회공연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동안, 콜롬비아 레코드 제작자들은 그들의 큰 자산인 이 정력적인 그룹을 더욱 히트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John Wayne'의 영화 'The Alamo'가 나왔을 때 콜롬비아는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이 때 'The Green Leaves of Summer'를 녹음해보라고 제안했다," 라고 Flick 은 말한다. 이렇게 해서 이 곡은 이 그룹의 최대 히트곡들 중 하나가 된다.
   비록 이후 20년 동안의 음악의 흐름이 완전히 변화하게 되지만, 'The Brothers Four'는 한 두 개인 멤버의 변동은 있었지만 결코 침체의 시기는 겪지 않았다. 1969년 후반, 'Kirkland'가 그룹을 떠나고 대신 'Mark Pearson'이 그룹에 들어오게 된다. (마크 자신은 잠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 자신의 솔로 활동을 위하여 그룹을 떠나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나중에 Kingston Trio 멤버로 유명한 'Bob Haworth'로 대체된다.)
   지난 4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The Brothers Four'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충실한 팬들을 확보해 왔다. 특히, 그들은 일본에서는 최고 인기그룹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매년 순회공연을 한다. 그리고 1996년에는 중국에서의 순회공연을 대성황리에 마무리하였다. 현재 1990년 그룹을 떠난 'Foley'를 대신해 들어온 'Terry Lauber'를 포함한 이 그룹은 지금도 전 세계 여러나라에서의 공연이 예약되어 있다.
 
                             ** 2000년 워싱턴에서의 공연 실황 **
 
::::  The Brothers Four 한국공연  ::::
 
   1960년대 '포크송의 부흥(Folk revival)'에 앞장선 그룹으로 1,000여회에 이르는 콘서트 횟수와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을 위한 백악관 콘서트, 수백만장의 음반판매량 등을 자랑하는 남성 4인조 포크밴드인 이들은 국내에서도 1970년대 ‘Greenfields’ ‘Try to Remember’ ‘Seven Daffodils’ ‘Green Leaves of Summer’ ‘Yellow Bird’ 등의 대표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인기 포크가수 양희은이 ‘Seven Daffodils’를 번안한 ‘일곱송이 수선화’를 불러 더욱 널리 알려졌다. 데뷔한 지 48년(2003년 현재)이 되는 이들은 1969년도 첫 번째 내한공연에 이어 1984년도에도 한국을 다녀간적이 있고 2004년 1월 3~4일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어쿠스틱 악기 연주를 바탕으로 듣기 편한 감미로운 하모니를 연주하여 중년층 팬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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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d of September : 지금과 비슷했던 옛날 그때의 9월
*mellow : [과실 따위가] 익은, 익어서 보드라운(연한). RIPE 類語
  
- a mellow apple   익은 사과.
*callow : 미숙한(immature), 아직 깃털이 나지 않은, 경험이 없는(inexperienced).
   - a callow youth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이. 애송이
*willow : 버드나무, 버드나무 제품; 솜 틀; 솜틀로 틀다
*wept except the willow
          :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즉, 잔잔한 가을 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리는 버들가지를 묘사함.
*ember : 빨갛게 타다 남은 것(장작). (∼s) 타다 남은 불, 잔화(殘火), 여신(餘燼).
                (비 유) 여운.(감정추억 등의) 미련, 앙금, 자 국.
   - an ember of excitement  채 가시지 않 은 흥분
   - the embers of an old love 옛사랑의 지울 수 없는 불 씨
*(be) about to : 막 ~ 하려고 하다. ~ 하려는 찰나이다.
*billow : 큰 파도, 놀, 詩 바다. 놀처럼 파도치다, 소용돌이치다, 밀려 오다(su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