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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nadu ..♪.. Olivia Newton John & E.L.O

천하한량 2007. 7. 20. 18:52
Xanadu
 
재너두
 
  - Sung by Olivia Newton John & E. L. O
 
A place where nobody dared to go,
the love that we came to know
They call it Xanadu

And now, open your eyes and see,
what we have made is real
We are in Xanadu
 
**
A million lights are dancing
and there you are, a shooting star
An everlasting world
and you're here with me,
eternally
Xanadu, Xanadu,
(now we are here) in Xanadu
Xanadu, Xanadu,
(now we are here) in Xanadu
 
Xanadu, your neon lights
will shine for you, Xanadu

The love, the echoes of long ago,
you needed the world to know
They are in Xanadu

The dream
that came through a million years
That lived on through all the tears,
it came to Xanadu

** Repeat

Now that I'm here,
now that you're near in Xanadu
Now that I'm here,
now that you're near in Xanadu, Xanadu ~ ~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가보지 못했던 곳
우리가 알 게 되었던 사랑이 있었던 곳
사람들은 그 곳을 재너두라고 부르죠
 
자 이제 눈을 뜨고 바라봐요
우리가 이루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을요
우린 지금 재너두에 와있는거예요
 
**
수백만개의 별빛들이 춤을 추고 있어요
그 곳에 당신이 있지요, 하나의 유성처럼요
영원한 세계인 이 곳에서
당신은 나와 함께 여기 있는거예요
영원토록 말이죠
재너두, 재너두
(이젠 우리 이 곳에 있어요) 재너두에요
재너두, 재너두
(이젠 우리 이 곳에 있어요) 재너두에요
 
재너두, 당신의 네온 불빛은
당신을 위해 비출꺼에요, 재너두
 
아주 오래 전부터 들려오던 사랑의 메아리
당신이 알고 싶어했던 세계가 있었지요
그 모든 것들이 재너두에 있어요
 
수백만년동안 꿈꿔왔고
수많은 눈물로 지새워왔던
그 꿈
그 꿈이 재너두에서 이루어진거에요
 
** 반복
 
이제 내가 여기에 있으니
이제 당신도 재너두에 가까이 있으니...
이제 내가 여기에 있으니
이제 당신도 재너두에 가까이 있으니...
재너두에 ~ ~
 
 
 NOTES... 
 
 
 
::::  Xanadu  ::::
 
   1980년에 제작된 공상과학 음악(뮤지컬) 영화 『Xanadu』의 타이틀 곡으로, 영화에서 음악을 맡은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의 리더 제프 린(Jeff Lynne)이 작사·작곡하여,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올리비아 뉴튼 존이 직접 부른 곡이다. 록 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와 함께 한, 영화의 동명 타이틀 곡 [Xanadu]는 같은 해 싱글 차트 8위를 차지했다. 또한 위 영화에서 올리비아가 또 하나의 주제곡으로 노래한 [Magic]은 1980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2000년 여름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  재너두(Xanadu)란?  ::
 
   '재너두'(Xanadu)는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할아버지 뜻을 이어 몽고제국을 완성시키고자 대륙 정벌에 나섰다가 발견한 땅이다. 쿠빌라이 칸은 이곳이 신선들이나 살 것 같은 무릉도원이라면서 108개의 사원과 몽고황제의 여름거처로 삼을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이후 재너두라는 말은 도원경(향)(桃源鄕)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  1970년대 팝의 요정 / Olivia Newton John  ::::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48년 9월 26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독일의 저명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막스 본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케임브리지 및 웨일즈 대학의 독일어교수를 지낸 것으로 보아 올리비아는 학구적인 가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는 5세때 부모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는데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학창시절 Sol Four 라는 그룹을 조직해서 활동했고 오빠와 함께 빠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올리비아는 1965년 호주의 탤런트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우승, 부상으로 영국여행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영국에 도착한 그녀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레코드 취입(single : Till you say you'll be mine/For ever)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그 후 같은 호주 출신 친구인 Pat carrol 과 'Pat and Olivia'라는 여성 듀오를 결성하여 활동을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1968년 그룹 'Shadows' 의 Bruce Welch 에게 발탁되어 한때 그와 약혼하기도 했었다. 1969년 팻의 비자가 만료되어 호주로 돌아가버리자 혼자 남은 올리비아는 'Tomorrow'라는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고 동명의 영화에도 출연했으나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올리비아의 노래가 처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밥딜런의 오리지널을 브루스 웨일즈가 편곡한 'If not for you'였다. 이 곡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제법 인기를 얻게 된다.
그후 1972년 클리프 리챠드의 TV 쇼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그녀는 런던의 라이브 가수로 명성을 굳혀갔다. Shadows 의 다른 멤버였던 존 파라가 작곡한 Let me be there 는 공전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존 파라와 올리비아의 파트너쉽이 25년 이상 계속되고 있고 그후 존 파라는 올리비아의 초기 듀엣파트너 팻 캐롤과 결혼하게 된다.
   올리비아는 1974년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유능한 사업가인 Lee kramer를 만나는데 그는 이후 수년간 올리비아의 연인이자 매니저를 맡게 되었고 올리비아는 그의 도움으로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영국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74년은 그룹 ABBA가 유럽을 휩쓴 해였는데 ABBA의 노래 Waterloo 가 1위를 차지하고 올리비아의 Long live love 는 4위에 그쳤다.    한편 If not for you 의 성공 이후로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I honestly love you, Have you never been mellow, Please Mr.please 등의 연속적인 히트곡을 내면서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올리비아는 1970년대 초,중반 미국의 그래미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매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당대의 최고 여가수로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ABC 방송국에 그녀 자신의 쇼도 가지게 되기에 이르렀다.
   가수로서의 성공은 스크린으로도 이어졌다. 올리비아는 1978년 뮤지컬을 영화화한 '그리스'에서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아 존 트라볼타와 함께 멋진 노래와 춤을 선보였는데 영화와 사운드 트랙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지난 1998년 그리스 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되었는데 역시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뮤지컬 영화 사상 가장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Summer night 장면은 최근 국내에서 고소영과 정우성이 등장하는 청바지 CF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다.
   영화 속의 샌디가 청순한 소녀에서 끼가 넘치는 여인으로 변신하듯 올리비아의 음악도 이 무렵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컨츄리, 발라드 계열의 노래를 즐겨불렀던 그녀는 비트가 강한 록이 가미된 음악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제 2의 전성기를 예고하게 된다.
   1980년 올리비아는 그리스 성공의 여세를 몰아 또다른 뮤지컬 Xanadu 에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영화는 비평과 흥행 모두 참패를 거두었다. 다만 ELO와 같이 만든 사운드 트랙만은 그리스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재너두에서 그녀는 11살 연하의 무명 댄서 배우 매트 래턴지를 만나며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어 훗날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1981년에는 올리비아의 최대 히트곡인 physical 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올리비아 열풍으로 물들였는데 이 노래는 빌보드 지에서 10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80년대 미국 최대의 히트곡 중 하나로 남게 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불어닥친 에어로빅 붐과 맞물려 Physical의 뮤직비디오 또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무렵 올리비아는 사업에도 눈을 돌려 패션체인점 '코알라 블루'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존 트라볼타와 다시 짝을 이루어 영화 Two of a kind를 찍는데 영화자체는 기대이하였지만 데이비드 포스터가 제작한 사운드 트랙만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4년 겨울 마침내 올리비아는 그간 동거해오던 매트 래턴지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그녀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 Soul kiss 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전같은 큰 인기는 누리지 못했고 1986년에 딸 클로에를 분만한다. 이후 올리비아는 딸의 양육과 사업 '코알라블루'에만 신경을 쓰며 음악적으로는 수년간 공백기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업가로서의 올리비아는 성공하지 못했다. 코알라블루는 90년대 초반 파산신고를 내기에 이르렀으며 올리비아는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공백기간에도 음악을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는데 1988년 엘튼죤이 써준 곡 The Rumour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고 호주독립 200주년 기념식의 노래도 불렀으며 1989년 딸 클로에를 위해 자장가와 뮤지컬 넘버들을 리메이크한 Warm and Tender album을 발매하기도 했다. Warm and tender 이후로 올리비아는 MCA와 결별하고 데이비드 게펜 사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사업의 실패 후 다시 올리비아는 노래에 전념하기로 하는 듯 싶었다. 1992년 Back to basic 이라는 그동안의 히트곡을 모은 곡에 신곡들을 섞은 앨범을 발매하고 각종 투어를 계획하는 등 재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연이은 불행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곧이어 그녀 자신도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그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유방암 수술과 화학요법 및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거친다.
   이 투병기간은 그녀의 음악과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녀는 전곡을 손수 만든 Gaia-one woman's journey 라는 앨범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투병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방암 조기 발견 및 환자의 재활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95년 올리비아는 남편 매트 래턴지와 별거를 시작했고 이듬해 결국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이혼 후 그녀는 호주에서 환경보호 TV 프로에 출연(올리비아 뉴튼 존의 자연과 인생이라는 시리즈로 국내 교육방송에서도 방영)하거나 여성건강관리 및 미용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녀는 A Pig tale 이라는 동화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며 호주의 Woman's day에 Looking great with onJ 라는 제목의 고정 칼럼을 최근까지 맡았었다.
   올리비아는 열렬한 환경보호론자이자 아동보호 운동가이다. 최근에 발표하는 자작곡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짙어지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1990년부터 유엔의 환경친선대사를 맡았고 Childrens' Health Environmental Coalition 이라는 아동건강보호 단체에서 자선활동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사회적인 활동은 1999년 Red CrossHumanitarian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및 Women's Guild of Cedar-Sinai Woman of the 21st Century Award (for environmental & breast cancer charity work) 등의 수상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올리비아의 음악적 컴백은 1998년 팝-컨츄리 앨범 Back with a heart 로 본격적인 출발을 고했다. 이 앨범은 전성기 때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혹적인 모습과 건강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켜 그녀의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후 그녀는 클리프 리챠드와의 듀엣 공연, 호주에서의 Main Event tour 에 이어 99년에는 미국 순회 공연까지 성황리에 치루어내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1999년 연극을 영화화한 델 쇼어의 독립영화 Sordid lives에서 그녀는 시골 술집의 터프한 여가수로 출연하고 오리지날 송도 불렀는데 2001년 개봉예정인 이 영화는 현재 여러 독립영화제 및 퀴어영화제 등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2000년에도 그녀는 콘서트를 통해 계속 팬들과 만나는 한편 컨트리 가수 Vince gill 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만들었고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메인 아티스트와 성화봉송주자로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30년가까이 국내 팬들이 고대해왔던 한국 공연을 8월 22일 마침내 성사시켰다. 콘서트 장에서 그녀는 다음에 꼭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한국의 팬들은 한번 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 하다. [ From Myhome.netsgo.com/chingus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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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oting star : 유성, 별똥별, 운석
   - Make a wish when you see a shooting star.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소원을 빌어요.
   - I'm like a shooting star I've come so far. 나는 유성과 같이 먼 곳에서 왔어요
   - Did you see that? I think it was a shooting star!
      방금 보셨어요? 유성이었던 것 같은 데!
*Now ( that ) : … 이니까, …이므로.
   - Now that you are retired, you can travel more.
      이제 퇴직했으니까, 여행을 더 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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