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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李著作)의 묘명(墓銘) -미수기언(眉?記言) 허목(許穆 -

천하한량 2007. 6. 15. 00:30

이 저작(李著作)의 묘명(墓銘)

 

 

공은 휘는 적(), 자는 대유(大有), 성은 이씨(李氏)이다. 선조는 본래 한산인(韓山人)으로 선정(先正) 문정공(文靖公)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관찰사(觀察使) 이청(李淸) 4대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공로(公潞)인데 충좌위 사과(忠佐衛司果)를 지냈고, 조부의 휘는 홍제(弘濟)인데 용양위 부장(?衛部將)을 지내고 좌참찬에 추증되었고, 아버지의 휘는 정직(廷稷)인데 장악원 첨정을 지내고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이씨(李氏), 옛날 중흥(中興)한 승상 문충공(文忠公) 이원익(李元翼)의 딸이다. 만력 28(1600, 선조33) 7월 임인일에 공이 태어났는데, 낳은 지 6세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남달리 일찍 성취하였다. 초서(草書)와 예서(隸書)를 잘 썼으며 외모가 사람을 감동케 하였으므로, 목장흠(睦長欽 자는 우경(禹卿) 호는 고석(孤石)) 공이 선비를 시험 보일 적에, 많은 선비 중에서 공을 알아보고 사위를 삼았다. 나이 14, 5세에 상사(上舍)에 올랐으며, 인조 원년에 정엽(鄭曄) 공이 국자감을 맡아 가르칠 때에 재주 있고 배움이 많은 사방의 선비가 서울에 많이 모였지만, 모두가 공을 으뜸으로 추대하였다. 갑자년(1624, 인조2)에 알성시(謁聖詩)에 응시,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처음에 승문원에 뽑혔으니, 한림원에 천거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문충공이 수상(首相)을 지낼 때라 제공(諸公)이 이를 혐의스럽게 여겨 감히 추천하지 못했다. 여러 번 승정원 주서를 겸직하였다.

이때에 상이 큰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랑캐와 화친을 끊으려고, 날마다 문무 대신으로 하여금 각기 방변책(防邊策), 장기(長技), 군량[兵食], 액색(?塞 통로가 막힌 곳), 요해처(要害處)의 출입 등에 대해 해가 저물도록 상의하게 하였는데, 공이 기록하는 데 뛰어났으므로 장단점을 모두 열거하여, 훌륭한 역사가의 재주를 지녔다는 칭찬을 받았다. 수년 동안 권지정자(權知正字)를 지내고 규례에 따라 승진하여 저작랑(著作郞)이 되었는데,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인하여 상()이 강도(江都)로 파천했을 때에는 공이 마침 병이 들어서 선대부(先大夫 돌아간 남의 부친을 존칭하는 말)가 지키던 임단(臨湍 지금의 단천)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갔다가, 그해 2 26일 연상(漣上)에서 세상을 떠나니, 향년이 28세였다. 공이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꿈에 강가에 나아갔는데, 내 앞에 ‘승문저작이공지구(承文著作李公之柩)’라 씌어 있는 명정을 보았으니, 나는 높은 벼슬을 못하고 저작랑으로 끝맺는 것이 운명이다.

하였는데, 이제 그 말대로 되었다. 공은 인자하고 아량이 있어서 효도와 우애에 독실하였고, 의리 지키기를 좋아하여 미치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 장래에 드러날 분이었는데,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도다.

3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이희년(李喜年)은 기묘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성랑(省郞)을 거쳐 여러 고을에 전직되었다가, 지금은 원주 목사(原州牧使)로 있다. 이분의 초취(初娶)는 지평(持平) 김주우(金柱宇)의 딸로서, 딸만 둘을 낳았는데, 큰딸은 사인(士人) 이윤협(李允協)에게 출가하여 1 7녀를 낳고, 둘째 딸은 사인 권성중(權聖中)에게 출가하였다. 후취(後娶)는 사인 성시필(成時弼)의 딸로서 5 2녀를 낳았는데, 이경홍(李景鴻)은 판서 오시수(吳始壽)의 딸에게 장가들고, 이상홍(李尙鴻)은 현감 박상욱(朴尙郁)의 딸에게 장가들고, 이영홍(李永鴻)은 승지 우창적(禹昌績)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나머지는 어리다.

차남 이연년(李延年)은 을유년에 진사(進士)에 합격, 경인년에 문과(文科)에 올라 벼슬이 예조 참판이고,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딸에게 장가들어서 딸만 하나를 낳았는데, 현감 한후상(韓後相)에게 출가하여, 3 4녀를 낳았다.

다음 이현년(李玄年)은 지금 은율 현감(殷栗縣監)인데, 관찰사 이여황(李如璜)의 딸에게 장가들어서 2 3녀를 낳았는데, 이세홍(李世鴻)은 찰방(察訪) 나두삼(羅斗三)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둘째 아들은 이의홍(李儀鴻)이다. 큰딸은 진사 윤지경(尹趾慶)에게 출가하여 2 1녀를 낳았고, 다음은 사인 심득태(沈得泰)에게 출가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으며, 나머지는 어리다.

사위 이태징(李泰徵) 또한 이름 있는 가문의 아들로서 그 자손이 장차 왕성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명한다.

 

저 푸른 하늘에 정수가 있고 / 蒼蒼者有定

아득한 곳에 신이 있나니 / 漢漢者有神

어질고도 그 보답 받지 못하였으니 / 賢而不食其報

그 후손은 넉넉하리라 / 以裕其後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