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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여덟 준마의 그림을 읊은 부[八駿圖賦]~)

천하한량 2007. 6. 12. 19:09

동문선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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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준마의 그림을 읊은 부[八駿圖賦]

 

 

 

()이 듣잡건대, 아조(我朝)가 기업을 북방에서 비롯한 뒤 세 성인(聖人 목조(穆祖)ㆍ익조(翼祖)ㆍ도조(度祖))이 서로 이어 충효(忠孝)로 가문(家門)을 전하고 위엄과 덕이 날로 성()하였나이다. 그때가 고려(高麗)의 말기(末期)라 쇠란(衰亂)이 이미 극도에 달했사온데, 하늘이 동방을 돌보시와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을 내시니, 대왕께서 조상의 업()을 이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건지시려고 마음을 두사 분연(奮然)히 몸을 돌아보지 않으셨나이다. 그리하여 지정(至正) 22년 임인(壬寅) 봄에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하시고, 그해 가을에 나하추[納合出]룰 동쪽으로 몰아내고, 홍무(洪武) 3년 경술에는 북쪽으로 원() 나라의 남은 무리를 동녕(東寧)서 평정하시고, 10년 정사(丁巳) 여름에는 남쪽에서 왜구(倭寇)를 지리산(智異山)서 이겼사옵고, 그해 가을에 동정(東亭)에서 싸우시고, 13년 경신(庚申)에 인월역(引月驛)에서 싸우셨으며, 18년 을축(乙丑)에 토동(兎洞)에서 싸우시고, 21년 무진(戊辰)에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는 의거(義擧)를 하였사오니, 무릇 27년간에 전후 몇백 번의 싸움이었나이다. 그리하여 만사일생(萬死一生)으로 위난(危難)을 무릅써 마침내 도적을 평정하고 백성을 도탄(塗炭)에서 건지시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임금에게 돌아와 마침내 큰 업을 세우시고 덕택을 후세에 길이 끼쳤사옵니다. 그런데 적을 무찔러 함락시키고 나라를 깨끗이 맑힌 공적은 실로 말 위[馬上]에서 얻었사오니, 말의 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음이 마땅하오이다. 그 중의 가장 준마(駿馬)로서 공이 있은 말이 여덟이 있었사온데, 이제 우리 전하(殿下 세종)께서 명하여 그림을 그리고 찬()을 붙여 오래 전하게 하라 하옵시니, 그 선대(先代)의 공적을 추모하고 편안 중에서도 위험했던 일을 잊지 않으시와, 후손(後孫)을 위하여 교훈을 끼쳐 주시는 뜻이 참으로 간절하시옵니다. 성자(聖子)ㆍ신손(神孫)이 이로써 전조(前朝)의 나라 얻기는 어렵고, 나라 잃기는 쉬운 것을 거울삼고, 조종(祖宗)께서 그것을 어렵게 얻었음을 생각하시와, 그리하여 여덟 준마의 공을 잊지 않으시면 이는 곧 동방 억만세에 끝없는 다행이겠나이다. ()이 외람되게 시종(侍從)의 반열에 있어서 이 성사(盛事)를 보았사오니, 노래하여 기림[]이 제 구실이라, 삼가 절하옵고 머리를 조아려 부()를 드리옵나이다

성인이 자리에 계셔 / 聖人在位

삼가고 애쓰심이 / 祗懼勵精

무릇 30년에 / 凡三十年

정치와 교화가 훌륭하고 밝으사 / 治敎休明

사방에 염려가 없고 / 四境無虞

조야가 태평했다 / 朝野晏?

이에 수성하기 어려움을 알고 / 於是知守成之不易

안락의 해독을 생각하여 / 念燕安之?

창업의 어려움을 추모하고 / 追惟?業之艱難

성조의 크신 공적을 선양할 제 / 敷揚聖祖之義烈

여덟 준마의 미미한 것까지 / 乃至八駿之微

포장하여 높이는 축에 있게 하였다 / 亦在褒崇之列

대저 준마의 태어남이 / 夫駿之生也

신비롭고 기특하다 / 神矣奇矣

방성이 정기를 받아 / 房星委精

용들이 새끼 낳으니 / ???

힘차게 굼실굼실 / 扶輿磅?

끊임없이 움직이며 / ???

그 기세 왕성하고 / 氣化淋?

명암이 뒤섞였고 / 晦明雜遝

풍우처럼 멋대로 변화하고 / 風雨恣其變化

음양이 그 굽히고 폄을 좇아서 / 陰陽從其闢闔

온갖 미를 교묘히 합성하여 / 集衆美以妙合

이 탁월한 천조물을 이루었으니 / 成此天機之卓?

의젓하고 조용하며 / 旣佶旣閑

윤택하고 큼직하다 / 孔阜孔碩

귀 늘리면 대를 쪼개논 듯 / ?批竹

굽으로 차면 우박을 흩으며 / 蹄蹴散雹

모난 걸음 구에 맞고 / 方者中矩

둥근 걸음 규에 맞네 / 圓者中規

생긴 체격 현란하다 / 姿格絢練

누운 갈기, 일어선 갈기 / ????

껑충껑충, 술렁술렁 / ????

휙휙, 저벅저벅 / 翼翼??

뛰는 모습 번개인 듯 / 電影回合

털빛도 찬란해라 / 神光陸離

머리를 내두르면 서늘바람 불어오고 / ??而凉?

몸을 굼틀거리면 봄구름이 일어나네 / ??而春雲起

한 번 울매 서역 사막이 와스스하고 / 一鳴兮胡沙浙瀝

두 번 울면 기북(冀北 말의 명산지)이 휩쓸어지나니 / 再鳴兮翼北風靡

이런 말은 천백 중에 하나, / 如是者顧千百而一二

기린과 봉황과 미를 견준다 / 將與麒麟鳳凰而??

준마의 쓰임이 / 若夫駿之用也

지극하고 크다 / 至矣大矣

나서부터 땅에 쓰여져 / 生爲地用

천재일우의 좋은 만남 / 千載際會

놀랜 듯 나는 듯 / 若恤若失

등등하게 날뛴다 / 驕騰沛艾

싱싱하게 혼자 걷고 / ??獨步

굼실 높이 서며 / ??卓立

빠른 걸음 바람 치듯 / ??

펄쩍펄쩍, 저벅저벅 / ????

항산ㆍ화산을 흙덩이인 양 지나가고 / 塊歷恒華

강과 시내를 잔으로 마시는 듯하며 / 杯飮河瀆

갈기는 가는 구름을 솔질하고 / ?刷行雲

꼬리는 유성을 갈기며 / ?流星

먼지가 발굽에 묻지 않고 / 塵不識蹄

그림자가 몸을 못 따른다 / 影不及形

진중에 힘 바치고 / 輸勞行陣

굴레에 복종한다 / 服力銜勒

수레 끌어 중한 소임으로 멀리 가건만 / 任重致遠

오히려 힘보다 덕을 일컬은다 / 猶不稱力

사람과 일심되어 / 與人一心

기특한 공적을 끝내 이루어 / 卒成奇蹟

명성을 드날리고 / 馳聲策名

단청으로 전한다 / 功歸丹靑

희어서 길이 후세에 썩지 않고 / 垂永世而不朽

천추에 향기를 끼치나니 / 終萬古而揖餘馨

이런 말은 백대에도 만나기 어려운 것 / 如是者曠百代而難遇

기린각ㆍ능연각과 명성을 같이 하리로다 / 將與麟臺煙閣而同聲矣

어허, 준마의 태어남이 / ?駿之生也

기특하다, 신비하다 / 奇矣神矣

말로 다하지 못하겠고 / 不可陳矣

어허, 준마의 쓰임이 / ?駿之用也

크다, 지극하다 / 大矣至矣

글로 적지 못하리니 / 不可紀矣

하늘이 이런 신물을 낳은 것은 / 此天之所以産

천백년 대의 이적을 나타내어 / 此神物顯異於世一千百

우리 조선의 천명받는 상등 상서를 짓고자 함이었네 / 曠百代而爲我朝鮮受命之上瑞者也

생각건대, 금계(金鷄 신라)가 죽고 병록(丙鹿 여()의 파자(破字), 고려)이 잃어지매 / 想夫金?滅丙鹿失

큰 운이 가고 나라의 맥이 끊겨 / 大運去國脈?

하늘의 벼리가 끊어지고 / 天網斷維

동녘 땅이 함몰하여 / 東土汨沒

간신들이 안에서 뽐내고 / 奸回內?

도적이 사면에서 날뛰고 / 寇賊四?

북풍이 모래를 휘몰아치고 / 朔風吹沙

흑수가 물결을 날려 들리느니 / 黑水揚波

땅땅 북소리 / ???

도처에 칭칭 징라 소리 / ???

서로 깨물고 물어뜯고 아지직 / ??叩吻

박박 이를 갈아 / 鑿齒磨牙

피가 흘러 개울처럼 / 殷血??

백골이 쌓여 산 같으며 / 白骨嵯?

집은 모두 타서 잿더미되고 / 居室化爲?

마을이 변하여 싸움터되어 / 邑井變爲戰場

변방 땅은 폐허되고 / ?丘墟

도성은 황지되었네 / 神州榛荒

이에 이르러 세도의 어지러움과 / 至是而世道之亂

민생의 화가 극했으니 / 生民之禍極矣

성인이 아니면 / 不有聖人

누가 이를 건져낼꼬 / 孰濟?

그때에 우리 태조 / 時維我祖

천재일우의 운을 타고 나사 / 運値千一

세상에 드문 신자와 / 神姿?

하늘이 주신 용지로 / 勇智天錫

만성의 무고를 불쌍히 여기시고 / 愍萬姓之無辜

사세의 유업을 분연히 일으켜 / 奮四世之遺業

북두를 응하고 천관을 나르며 / 順斗極而運天關

건곤의 추축을 휘둘리어 / 旅乾樞而轉坤軸

위무를 떨치고 / 伸威奮武

풍뢰를 질타하여 / 叱風咤雷

창끝이 가리키는 곳 / 天戈攸指

썩은 가지 꺾어지듯 / 若朽斯?

홍건적이 달려들어 / 紅寇豕突

성읍을 쳐부수고 / 殘城破邑

뽐내고 으르릉대어 / 憑陵咆?

멋대로 살륙하여 / 恣其燔炙

종사가 불바다 되고 / 宗社焚蕩

군왕은 파천했었다 / 乘輿播越

그때 우리 성조께서 / 維我聖祖

용맹을 뽐내어 깃발을 휘두르고 / 賈勇振節

활을 들고 앞장 서서 / ?弧而先登

친병을 휘몰아 적을 치니 / 麾親兵而餌敵

흉도들이 서로 짓밟아서 / 兇徒自蹈

수급이 십만이라 / 十萬其級

손의 칼로 마구 찍고 / 手劒縱?

말이 뛰어 성을 넘어 / 躍馬踰城

도망하는 놈들을 뒤쫓으니 / 追奔逐北

도적이 이에 평정되었다 / 賊遂以平

납씨가 교활하여 / 納氏老猾

사나움을 막 부리고 / 逞其猩獰

변방의 간민들과 결탁하여 / ?我邊奸

백성들을 못 살게 굴며 / 虐我邊氓

막 죽이고 싹 베면서 / ?劉芟刈

홍원까지 이르러서 / 至于洪原

그 세가 치열하여 / 厥勢孔熾

깨물어 삼킬 뜻이었다 / 志在??

그때에 우리 성조는 / 維我聖祖

지혜를 내고 기회를 타 / 運智應機

단기로 내쳐 나아가서 / 單騎?

장수를 베고 기를 뺏으며 / 斬將?

입을 쏘고 겨드랑이를 쏘아 / 射口射腋

마른 가지 꺾듯 수염 뽑듯 / 拉槁摘?

적이 여러 번 패전에 움츠러져 / 累敗窮縮

도망가 숨만 붙어 / ?竄假息

교활한 놈 넋을 잃고 / 老猾?

종신토록 심복했다 / 終身心服

머나먼 저 동녕은 / 漠彼東寧

망한 원 나라 잔당이다 / 亡元之蘖

초황령(草黃嶺 함흥에 있다)ㆍ설한령(薛罕嶺 강계에 있다) / 草黃?

높이 솟아 험하였고 / 與天盤折

출렁거리는 압록강이 / 鴨江澎?

남북으로 경계했었다 / 限彼南北

고려 왕(王 우왕)이 태조께 명하여 / 王命我祖

먼 땅을 회복하라커늘 / 圖恢遠略

원수로서 출정할 제 / 元戎啓行

위령이 떨쳤었네 / 威靈震疊

하늘에 뻗친 자색 기운이 / 漫空紫氣

점사에도 나타났고 / 占辭攸屬

말똥구리가 바퀴를 막은 듯이 / 螳臂拒轍

기를 바라보자 적이 갑옷을 벗고 항복했네 / 望旗釋甲

완악한 추장이 잘못을 고집하면서 / 頑酋執迷

오히려 올라성을 보호하려 하였네 / 猶保兀刺

저 올라성은 / 維彼兀刺

천생 험준한 곳 / ?天設

만장 절벽에 / ?壁屹屹

성무 한 번 번쩍이매 / 聖武赫赫

성중이 저희끼리 궤멸되고 / 孤城中潰

사면으로 나와 항복하여 / 降附四集

와글와글 부산함이 / ?繹紛泊

불나방이 촛불에 날아들 듯 / 宵蛾赴燭

덕과 위엄이 멀리 퍼져 / 仁威遠暢

북방을 완전히 토평했다 / 克淸朔漠

머나먼 저 동해는 / ?彼東溟

섬 오랑캐 소굴 / 島夷之窟

배 타기에 나고 자라 / 生長舟揖

사납고 영리하며 날쌔고 빨라 / ??飄疾

죽음에 나아가기를 집에 돌아가듯 / 視死如歸

이만 쫓아 다니는 터 / 維利是逐

쥐 도적질ㆍ개 도적질 / 鼠竊狗盜

우리 해변의 틈서리로 쳐들어와 / 投我邊隙

돛대가 바다를 덮고 / 帆竿蔽海

배들이 마치 베를 짜는 듯 / ??如織

왕이 태조께 명하여 / 王命我祖

성화같이 달려가 치게 하니 / 星馳往擊

적의 무리 구름처럼 / 賦徒雲屯

지리산 옆에 진쳤겠다 / 智異之側

우리 무용 드날릴 제 / 我武惟揚

한 살[]에 적이 기가 질려 / 一箭氣奪

낭패하여 도망쳐 / 敗覆狼狽

험한 곳에 몰려 지켜 / 就險自固

깎은 듯한 절벽에 / 峻崖??

검과 창이 섞여 쏟아지거늘 / ?交注

흰 칼을 빼어들고 말을 채찍질하니 / 白刃鞭馬

붉은 번갯불이 해에 번쩍 / 紫電干日

준마 한 번 솟구쳐 오르니 / 駿騰一躍

천 척 절벽이 평지인 듯 / 險失千尺

칼을 맞고 떨어지는 적이 / 迎刃崩墜

골짜기를 채우고 메워 / 塡坑滿谷

태산에 눌린 알과 같이 / 若山壓卵

씨도 없이 다 죽었네 / 靡有遺孑

섬 오랑캐 회개치 못하고 / 島夷罔悛

또 관서에 입구(入寇)하여 / 又寇關西

신천ㆍ문화ㆍ안악ㆍ봉산이 / 信文安鳳

모두 다 어육되고 / 毒慘鯨?

여러 장수들 달아나서 / 諸將奔潰

적의 칼을 못 막았네 / 鋒莫敢?

성조(태조)께서 명을 받아 / 聖祖受命

동정에서 싸우실 제 / 戰于東亭

싸움이 한창일 때 / 方事之殷

진흙에 빠졌으나 / 阻于泥?

준마 한 번 치뛰니 / 龍駒?

대번에 솟구쳐 나와 / 一奮而?

활시위 소리 나자 떨어지는 열일곱 놈 / 應弦十七

모두 왼눈 맞았었네 / 皆左其目

적이 놀라 흩어지며 / 賊駭而散

저희들끼리 짓밟는 꼴 / 爭相?

성조께서 말에서 내려 / 聖祖下馬

술마시며 풍악을 치니 / 命酒張樂

남은 적들 험한 데 가서 몰려 의지했다가 / 遺燼投險

세가 궁하여 충돌하매 / 勢窮衝突

쏘는 살이 자리 앞에 무수히 떨어져도 / 矢集坐前

의기가 태연자약 / 意氣自若

천천히 휘하에 명하시와 / 徐命麾下

남은 적을 섬멸했다 / 遂殲餘賊

섬 오랑캐 회개치 못하고 / 島夷岡悛

또 남도에 침범했네 / 又寇南道

험함도 지킬 틈 없고 / ??

성도 보전할 겨를이 없어 / 城不?

무인지경같이 치고 함락하여 / 攻陷若空

풀처럼 베며 깎으며 / ?如草

여러 고을을 무찌르고 불사르며 / 屠燒州郡

운봉까지 이르렀네 / 至于雲峯

성조께서 명을 받아 / 聖祖受命

흉적을 쓸기 맹세하니 / 誓掃頑凶

정성이 해를 꿰어 / 精誠貫日

흰 무지개 뻗었었네 / 有白其虹

천 리가 폐허되고 / 千里索漠

강시만이 쌓였거늘 / ?屍相積

성조께서 측은하사 / 聖祖惻然

침식을 폐하셨네 / 爲廢寢食

이에 여러 장수를 독촉하여 / 乃督群帥

인월역에서 싸우실 제 / 戰于引月

위무를 드날려서 / 振威耀武

사졸의 앞장 서서 / 身先士卒

적진을 함락하고 포위를 무너뜨려 / 陷陣潰圍

날랜 장수(왜장 아지발도(我只拔都))를 쏘아 죽이니 / ?彼驍將

적군이 칼날이 꺾여져서 / ?刃折

감히 못 대항했네 / 莫我敢抗

온 나라가 기뻐하여 / 擧國欣歡

개선가로 맞이했었던 것이다 / 迎我凱唱

섬 오랑캐 또 개전치 않고 / 島夷罔悛

또 함흥과 홍원에 침범해서 / 又寇咸洪

고래처럼 날뛰고 미친개처럼 충돌하니 / 鯨奔?

여러 군이 소문만 듣고 달아나서 / 諸軍望風

싸움도 한 번 못해보고 / 不敢交綏

양이 범에게 물리는 듯 / 若虎驅羊

왕이 명하여 평정하게 하니 / 王命于襄

성조께서 나가셨다 / 聖祖是將

일곱 살[]로 승리를 점치니 / 七箭卜勝

군중이 환호했다 / 軍中歡呼

지세를 보아 복병을 두고 / 因地設伏

고삐를 늦추어 천천히 나가다가 / ?徐移

취라로 적을 놀래니 / 螺聲?

적이 간담이 떨어져서 / 破膽裂腑

고기가 솥에서 노닐 듯이 / 魚游於鼎

여기저기서 모여들거늘 / 東西相聚

성조께서 여유를 보이고자 / 聖祖示閑

안장을 끌러놓고 / 從容解鞍

오라고 유인하여 / 誘致其來

냅다 싸워 진퇴할 제 / 轉戰盤桓

사면의 복병이 일어나니 / 四伏?

적군이 모두 그물 안에 떨어져서 / ?于羅

뛰어 무너지고 서로 짓밟아 / 奔崩蹂?

송장이 너저분 / 籍籍他他

그리하여 동해변이 내 산 되고 내 언덕 되었네 / 我岡我陵東海之阿

대명이 장차 바뀌려 하니 / 大命將革

하늘이 우왕의 넋을 빼앗아서 / 天奪其衷

저 앙큼스러운 애(우왕)가 자량치 못하고 / 彼狡不量

숫제 큰 나라를 공격코자 / 大邦是攻

6월에 군사를 일으켜 / 六月稱兵

요동을 지향하니 / 指遼之東

뭇 신하들 위태로이 여기고 / 群寮??

인심이 흉흉한데 / 萬姓洶洶

간절히 충고하나 / 告之雖切

이 귀먹어 못 들은 체 / 聽我若聾

외로운 섬에 군사를 주둔하니 / 屯兵孤島

마침 큰 장마 져서 / ???

진퇴가 난처하고 / 進退維谷

온 군사가 다 불평했다 / 大小悉?

성조께서 의를 드시니 / 聖祖擧義

흰 깃살에 붉은 활 / 白羽?

만 사람이 경하하여 / 萬口相慶

서로 도모하지 않으나 한마음이었으며 / 不謀而同

멀리 야인(野人 여진)까지 / 爰至野人

천 리 길에 따라왔으며 / 千里影從

늙은이ㆍ어린이 손을 잡고 / 老幼相携

미음 그릇 들고 맞았으며 / 壺漿以迎

사특한 것들 숙청할 제 / 蕩滌邪穢

시정도 안 놀랬네 / ?肆不驚

난을 헤치고 반정하여 / 拔亂反正

병기를 다 거두니 / ?武韜兵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했네 / 國以之定民以之寧

무릇 이 몇몇 일은 / 凡是數者

다 우리 태조의 크고 높으신 공적이 / 寔皆我太祖?功峻烈

탁월히 성취된 것 / 卓卓有成者也

깊고 두터운 은택이 / 深恩厚澤

생령들에게 젖어든 것 / 浹于生靈者也

경을 쌓고 덕을 심어 / 積慶樹德

뿌리가 깊고 근원이 멀어 / 根深源遠

후세 자손들이 천만억 년간 의지할 바 / 而爲後世子孫千萬億載之所憑者也

그러나 이것들은 다만 그 대략일 뿐 / 然此亦特其大略耳

예컨대 저 달천의 이김과 / ?川之勝

철관의 승전 / 鐵關之捷

해풍의 싸움과 / ?之戰

요양을 함락시켰음 등 / 遼陽之拔

크고 작은 여러 싸움에 / 大小百戰

가는 곳마다 이겼으니 / 所向輒克

이것이 비록 신성한 무략에서 / 此雖出於聖武神略

어찌 사람의 힘으로 미칠 것인가 / 亦豈人力之所能及哉

그때에 / 于斯時也

용맹 있는 무사들과 / 材勇之士

지략 있는 사람으로서 / 智謀之彦

일기와 일능이 있으면 / 苟有一技一能

각기 재주를 바치며 경쟁하여 / 各爭??

용의 비늘을 잡고 봉의 날개에 붙어 / 攀鱗附翼

앞뒤에 분주하며 / 奔走後先

많이 모여 있고 / 叢叢林林

이리저리 움직이며 / ??紛紛

좌우로 잡고 손을 끌어 / 左右提?

함께 대훈을 협찬하였으니 / 共贊大勳

대개 하늘이 성인을 내어 어려운 시국을 구하려면 / 蓋天之生聖人以救時艱也

반드시 영웅ㆍ호걸들을 내어 그를 좇게 하고 / 必生英雄豪傑以爲之從

또한 반드시 좋은 상서ㆍ신령한 물건을 내어 그로 하여금 쓰게 함이다 / 亦必生休祥神物以濟其用

이로 보면 여덟 준마가 났음은 / 此八駿之生

곧 하늘의 뜻이요 / 乃天意也

모두 우리 태조께서 일어나실 것을 도움이었다 / 而無非所以佑我太祖之興者也

막상 두 진이 교전하려 / 方其兩陣交綏

북소리 쾅쾅 울리고 / ?鼓雷轟

살기가 하늘을 찌르며 / 殺氣干天

풍운이 첩첩할 때 / 陣雲屛屛

기특한 꾀와 임시의 변통으로 / 出奇制變

기회를 다투고 형세를 노려 / 爭機?

장사와 용사들이 / 壯士猛夫

곰같이 잡고 범처럼 할퀴며 / ?虎攫

서릿발 같은 칼과 창에 / 白刃霜磨

빗발처럼 떨어지는 화살들 / 飛鏃雨落

수선거리기는 들끓어서 / ?沸渭

구름이 뭉치고 벼락이 터지는 듯 / 雲合霆發

천만 군병이 와아 와아 소리치고 / ???

가로 세로 뒤섞여 맞붙어 / 縱橫膠?

성패가 잠깐 사이에 달리고 / 成敗懸於俄頃

생사가 순식간에 결정될 때 / 生死決於呼吸

늠름하신 성조께서 / 桓桓聖祖

매처럼 날치시어 / 奮我鷹揚

이리 치고 저리 치면 / 馳堅突衆

그 앞에 당할 자 없네 / 所指無疆

벼락과 번개가 / 霹歷列缺

불을 토하듯 채찍을 갈겨 / 吐火施鞭

만 사람이 모두 뒷걸음치매 / 萬人?

혹은 마음대로 출입하네 / 肆意周旋

민첩하고 재빠르게 / ????

안개가 흩어지고 연기가 사라지는 듯 / 霧散煙銷

찬 서리를 날려 나뭇잎을 지게 하고 / 飛嚴霜而脫葉

맹렬한 불에다가 털을 태우는 듯 / 擧烈火以燎毛

거기 맞닥치는 자 어느 강함이 안 꺾이며 / 當之者何剛不折

거기 부딪치면 어느 굳음이 안 부숴지리 / 觸之者何堅不碎

파죽지세로도 그 형세를 비유치 못할 것이요 / 破竹不足以諭其勢

돌을 굴림으로도 그 쾌함을 논하지 못할지니 / 轉石不足以論其快

대개 세상에 없는 큰 자질을 가진 분은 / 蓋有不世之資者

마땅히 비상한 천명을 받는 법이요 / 當受非常之命

세상에 없는 큰 공을 세우는 이는 / 建不世之功者

마땅히 비상한 경사를 누리게 마련이다 / 當享非常之慶

우리 태조께서 쇠란의 때를 만나 / 我太祖値衰亂之季

하늘이 주신 성으로써 / 以天縱之聖

애쓰심이 지극하셨고 / 勤勞旣至

공업이 다툼이 없어 / 勳業無?

위엄이 임금을 떨게 하고 / 威挾震主

공이 상을 초월했으니 / 功戴不賞

천명이 돌아가는 곳 / 惟天命之

인심이 모두 우러러서 / 所歸亦人心之所仰

드디어 천명에 응하고 인심에 순하여 / 遂應天而順人

끝내 집을 변화하여 나라를 이룩하고 / 終化家而爲國

당세의 남은 덕택을 펴시어 / 演當世之餘澤

길이 만세토록 흘리셨으나 / 流萬葉而不渴

맨발로 뜀은 원래 무를 연습하는 것이요 / 然跣躍所以習武

벽돌을 나름은 수고를 단련하는 것이므로 / ?所以肄勞

한가하신 때 사냥을 납시니 / 因閑圍獵

거저 놀이가 아니었다 / 匪以遊?

때로 벌판을 달리고 / 時聘廣漠

다음 언덕을 지나 / 乃歷林皐

혹은 벌과 산이 일[]락 엎드락한 데로 / ?起伏

혹은 언덕이 구불구불 이은 데로 / 丘陵牽聯

혹은 진펄이 울툭불툭 / 罷池陂?

밑에는 깊은 소 / 下屬于淵

혹은 깎아지른 듯한 석벽 / 石壁神截

하늘에 달린 듯한 뵈는 산은 끝으로 / 脩崖天懸

혹은 격한 여울이 못을 이루어 / 激湍成澤

늠실늠실 / 浩汗??

서미도 주검을 못 남기고 / 胥靡不能以遺死

열자도 발을 디디지 못할 곳으로 / 御寇不能以展足

혹 큰 못에 다다르면 / 或臨大澤

갈대가 우거지고 / ???

얼음이 갓 얼었는데 / ?初合

가벼운 비단을 엷게 편 듯 / 輕羅布薄

맹수가 안 보이는 데 엎드렸다가 / 猛獸蔽伏

변이 재갈에 나기도 하고 / 變生銜?

혹 얼음판이 기울고 미끄러운데 / 或當?坂傾側險滑

혹은 태산 준령이 / 或當峻嶺

드높고 가로질려 / ???

새 짐승이나 살 곳 / 飛走之所栖托

인적이 못 미칠 데를 / 人迹之所不及

우리 성조께서는 / 維我聖祖

고삐를 놓고 왕복하사 / ?往復

‘앞으로 가라’ 하면 나아가고 / 曰前而前

‘물러가라’ 하면 물러나서 / 曰却而却

도에 맞는 일거일동이 / 周旋合度

좌로 우로 척척 맞아 / 左右中節

별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이르며 / 星流?

공처럼 구르고 번개같이 번뜩여 / ?轉電?

화살을 헛되이 놓는 법이 없고 / 矢不虛散

맞추면 꼭 눈알을 뚫어 / 中必決?

길짐승은 언덕에 머리 두고 화살을 받고 / 走獸首丘而斂羽

나는 새는 공중에 돌다가 피를 뿌리니 / 飛禽盤空而?

왕량(王良 명기사)ㆍ조보(造父 명기사)의 무리와 / 王良造父之徒

분ㆍ육ㆍ오획(烏獲 이름난 장사들)의 무리들도 / 賁育烏獲之屬

손을 여미고 숨을 헐떡이며 / 斂手喘息

앞에 와서 굴복하리니 / ??

이는 비록 성인의 신무이나 / 是雖聖人之神武

또한 준마의 위대한 공적이다 / 抑亦神駿之偉績

저 깎아지른 절벽, 둘러 빠지는 진흙구렁 속에서 / 當其懸崖峻???

위험이 경각 창졸 간에 닥쳤을 때 / 危在頃刻倉卒之際

제 아무리 모사와 맹장으로도 / 縱有謀臣猛將

제 재주를 부릴 틈이 없겠으니 / 亦無所措其技矣

이로 보면 준마가 성체를 붙들고 보우함이 / 是則神駿之扶佑聖躬

혹 사람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 或有非人之所可企者也

이런 까닭에 우리 전하께서 여덟 준마를 그림에 거두어서 / 此我殿下之所以收八駿於繪事

썩은 뼈에게도 신공을 생각하심이니 / 錄神功於腐骨者也

이는 대개 효자는 어버이가 사랑하시던 개와 말을 잊지 않음이요 / ?蓋孝不遺於犬馬

교훈은 후손을 편안하게 하려고 남겨 / 謨乃恢於燕翼

명과 함께 궤석에 붙여 놓고 / ?嚴銘於?

간절한 경계를 썩은 밧줄에 두심이다 / 存切戒於朽索

이제 보건대, 새 그림이 하늘에서 내려 펼친 듯 / 觀夫新圖天闢

끼친 빛이 번쩍하니 / 遺光??

바람과 서리가 비단에 일고 / 風霜起練

조화가 붓에 생겨 / 造化生筆

이미 죽어서 흙 속에 파묻힌 모습을 일으켜 / 起塵土之幽姿

일세의 위관을 솟구쳤네 / 聳當世之觀?

형모는 아스름하나 / 形貌??

기상은 늠름 / 氣象鬱勃

구름을 가로 지르고 바람을 쫓는 듯 / 橫雲追風

번개가 치고 서리가 엉긴 듯 / 發電凝霜

기린이 놀고 용이 뛰어오르며 / 麟游龍騰

표범은 검고 사자는 누른 듯 / 豹玄獅黃

놀이 겹치고 비단을 쌓은 듯 / 重霞累錦

빛나는 비단에 함께 그려 보물들이 나란히 / 沓璧連璋

공이 같은 다른 놈들이 / 同功異體

서기를 모으고 상서를 드날리며 / 集瑞騰祥

위풍이 늠름하고 / 威風??

기염이 당당한데 / 峻焰煌煌

백전에 상한 흔적 / 百戰瘢耆

아직 살촉이 박혀 있고 / 尙帶遺鏃

드날리며 날치던 자태 / ?攘之態

어제런 듯 여실하매 / 視之如昨

장한 기운에 보는 사람 기가 질려 / 壯氣?

간담이 서늘, 머리가 쭈뼛 / 膽寒髮立

놀라 달아난 혼과 넋이 / 魂驚魄?

며칠 만에야 진정될 듯 / 彌日而定

이는 다만 여덟 준마의 재강일 뿐으로 / 此特八駿之糟粕

오히려 사람의 시청을 움직이거늘 / 尙能動人之視聽

당시의 기상을 상상하면 / 想當時之氣像

천년 뒤에도 경의를 일으키리 / 隔千齡而起敬

이는 신령한 물건의 극치이나 / 是神物之極致

사람에 있어서도 쉽지 않다 / 在夫人而亦不易

하필 몸에 날개가 돋치고 그림자가 열이어야 / 又何必肉?十影

기이타 할 것인가 / 然後始爲之異哉

아아 / 嗚呼

물건이 각기 만남이 있고 / 物各有遇

만남이 각기 때가 있나니 / 遇各有時

나서 만나지 못하면 / 生不得遇

소금 수레에 곤욕을 당하고 / 則鹽車自足相困

만남의 때를 못 얻으면 / 遇不得時

북 수레에 매어지기 족할 뿐이요 / 則鼓車徒足見?

혹 의장에 참예해 섰더라도 / 雖或參於立仗

한갓 콩이나 조나 먹고 배부를 뿐 / 亦空飽於豆粟

한 번 크게 울려 해도 / 苟欲一鳴

끝내 맘대로 안 되는 것 / 終不可得

이제 이 여덟 준마는 / 今夫八駿

그 출생이 마침 성조께서 용처럼 일어나실 때였고 / 其生也當聖祖之龍興

그 죽은 뒤에도 성주(聖主 세종)의 추념을 의탁하여 / 其死也托聖主之追念

때를 만나고 의탁할 곳을 얻었으니 / 得時遇而得托

마땅히 영세토록 유감이 없을지로다 / 宜永世而無憾

부를 마치고 또 노래하여 이르되 / 賦已復爲之?

 

어허, 용인 듯 준마의 새끼 / 若有龍兮驥之子

하늘이 주셔서 내려왔도다 / 其之來兮天所?

풍운을 일으키고 뇌우 달릴 제 / 風雲??兮雷雨走

어허, 준마여, 용의 벗일세 / 若有駿兮龍之友

살아서 신이 있고 죽어서 이름이 있다 / 生有神兮死有名

어허, 준마로고, 용의 정일세 / 若有駿兮龍之精

이름이 만고에 변치 않으니 / 名萬古兮不?

어허, 준마여, 용의 무릴세 / 若有駿兮龍之徒

 

 

[D-001]땅에 쓰여져 : “하늘에 쓰이는 데는 용()이 제일이고, 땅에 쓰이는 데는 말[]이 제일이다[天用莫如龍 地用莫如馬].” 하였다. 《사기》

[D-002]기린각(麒麟閣)ㆍ능연각(凌烟閣) : 기린각에는 한 선제(漢宣帝)가 공신 곽광(?)?장안세(張安世) 14명의 화상을 그려두었고, 능연각에는 당 태종(唐太宗)이 공신 장손무기(長孫無忌)?두여회(杜如晦)?위징(魏徵) 12명의 화상을 그려 두었다.

[D-003]말똥구리가 …… 듯이 : 자기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강적을 대항함이 마치 말똥구리가 성난 팔로 수레바퀴를 막음과 같다는 말이다.

[D-004]사특한 것들 :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폐한 우왕(禑王) 및 죽인 최영(崔瑩) 등을 뜻한다.

[D-005]용의 …… 붙어 : 처음 창업(創業)하는 제왕(帝王)에게 붙어서 부귀(富貴)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D-006]벽돌을 나름 : 도간(陶侃)이 광주자사(廣州刺史)로 있으면서 일이 없을 때 아침마다 벽돌 백 개를 서재 밖으로 나르고 저녁에는 날라 들여오곤 했는데,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바야흐로 힘을 중원(中原)에 쓰는데, 너무 편안하여 일을 감당치 못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D-007]()이 재갈에 나기도 : 말이 달리다가 엎어지는 것을 보고 재갈[?]의 변이라 한다.

[D-008]길짐승은 …… 두고 : “새는 날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토끼는 뛰어 굴로 돌아가며, 여우는 죽을 때 언덕으로 머리 둔다[狐死首丘].” 《회남자(淮南子)》 설림(說林) 본래 고향을 지향하는 뜻이나, 여기서는 그저 ‘죽다’의 뜻이다.

[D-009]썩은 밧줄 : 《서경》에 “내가 만백성에 임함에 송구함이 썩은 밧줄로 여섯 말[]을 제어함 같다[予臨非民 ?乎若朽索之馭六馬].” 하였다.

[D-010]소금 수레에 …… 당하고 : 높은 재주, 큰 인물이 때를 만나지 못하여 천한 역()에 종사한다는 말이다.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吊屈原賦)〉에 “천리마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수레를 끌도다[驥垂兩耳兮服鹽車].”라 하였다.

[D-011]의장(儀仗)에 …… 섰더라도 : 의장에 늘어선 말은 종일 소리 없이 있으면 콩 곡식을 배불리 먹되, 한 번 소리 내어 울면 쫓겨난다.

동문선 제17   

 

 

 칠언율시(七言律詩)

 

 

차 안동 영호루 운(次安東映湖樓韻)

 

 

최수(崔修)

 

강다락에 봄이 가득, 경치가 하 많으니 / 春滿江樓景氣多

시인의 맑은 흥이 더하여지네 / 詩人淸興向來加

온 성 중의 복사ㆍ오얏은 반안인의 골이런가 / 一城桃李潘安縣

두 기슭의 동산과 못은 습씨의 집인 듯 / 兩岸園池習氏家

목은 이색의 글은 교주가 달을 울리고 / 牧隱新文珠泣月

양촌(권근의 영호루 시제)의 고운 귀는 봄에 꽃이 피었네 / 陽村麗句筆生花

남순했던 지난 일 물어서 무엇하리 / 南巡往事何須問

늙은 나무이 물에 잠겨 떼가 되었구나 / 老樹潮侵臥作査

 

 

[D-001]반안인(潘安仁) : () 나라 시인 반악(潘岳). 그의 자가 안인(安仁)이다. 하양현(河陽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다 도리(桃李)를 심었다.

[D-002]습씨(習氏) : () 나라 습욱(習郁). 그의 저택과 정원이 화려했고 특히 양어지(養魚池)가 있어 습가지(習家池), 일명 고양지(高陽池)로 유명했다.

[D-003]목은 이색 : 영호루의 유대와 공민왕(恭愍王)의 글씨. 영호루 평악을 찬양한 목은 이색(李穡)의 찬()과 서().

[D-004]교주(鮫珠) : 바다에 교인(鮫人), 즉 인어(人魚)가 있는데 울면 눈물이 구슬이 된다.

동문선 제22   

 

 

 칠언절구(七言絶句)

 

 

곡 이밀직 종덕(哭李密直種德) 

 

 

정몽주(鄭夢周)

 

한산 문벌에는 적선한 나머지라 / 自是韓山積善餘

아들이 일찍 죽음 마침내 어쩐 일인고 / 賢郞欠壽竟何如

옛부터 이 이치는 진실로 알아내기 어려워 / 古來此理誠難詰

공자 같은 성인도 일찍 백어(伯魚) 를 곡하였네 / 孔聖猶曾哭伯魚

 

 

[C-001]곡이밀직종덕(哭李密直種德) : 이 시는 이색(李穡)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었다.

[D-001]백어(伯魚) : 공자의 아들인데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동문선 제22   

 

 

 칠언절구(七言絶句)

 

 

조 시중이 좌주를 청하여 잔치하는데 축하하다[賀趙侍中邀座主開?] 

 

 

성석린(成石?)

 

선비를 잘 뽑았으니 비로소 좌주의 현명함을 알겠구나 / 得士方知座主賢

시중이 시중 앞에서 수 빌어 올리나니 / 侍中稱壽侍中前

하늘도 좋은 비를 내려 아름다운 손을 머무르게 하는데 / 天敎好雨留佳客

바람은 나는 꽃을 보내어 춤추는 자리에 떨어진다 / 風送飛花落舞筵

 

 

[C-001]조 시중이 좌주를 청하여 잔치하는데 축하하다[賀趙侍中邀座主開?] : 조 시중(趙侍中)은 조준(趙浚)인데, 이색(李穡)의 밑에서 과거에 합격하였다. 자기를 과거에 합격시킨 시관(試官)을 좌주(座主)라 하며, 이 시는 조준이 이색을 초청한 연회에서 지은 것이다.

동문선 제23   

 

 

 교서(敎書)

 

 

교 특진보국 숭정대부 한산군 이색(敎特進輔國崇政大夫韓山君李穡)

 

 

왕은 말하노라. 임금의 도는 반드시 노성한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의 정은 옛친구보다 더 친한 것이 없다. 이것은 고금에 같은 것이니, 어찌 시종(始終)을 혹시라도 변할 것인가.

경은 기품이 청명하고 경술이 넓은 바, 진신(搢紳)의 스승이요, 국가의 모범이다. 내가 전날에 동렬에 참여하여, 종유한 지가 오래여서 성의가 서로 미더웠고, 강마하는 도움으로 은의가 더욱 두터웠다. 그러므로 좋은 일 궂은 일을 같이하면서 평탄하고 험함에 따라 변하지 않기를 기약하였다. 중간에 많은 사고를 만나서 서로 나뉘게 되었다. 만나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생각하는 회포는 항상 간절하였다. 내가 개국함에 미쳐서, 정치를 같이하려고 생각하였다. 이미 작읍(爵邑)을 봉하여 조정 반열에 어른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옛날의 정의가 있어서였을 뿐 아니라, 노성한 이의 덕을 의지하려 함이었다. 앉아서 풍속을 진압하고 또 아름다운 꾀를 들으려 함이었다. 이달 초하룻날에 와서 여강(驪江)으로 가기를 청하였다. 내가 마침 정사에 임하여 친히 보지 못하였다. 잠시 서로 작별하였으나 머지않아 다시 올 것을 청하였다. 그러니 어찌 부음이 홀연히 들려올 줄을 생각했으랴.

지난날을 돌이켜보매 내 마음이 더욱 슬퍼진다. 하늘이 남겨 주지 않으니 나를 돕지 않는도다. 국가가 초췌하여진 슬픔을 어찌 다 말하리오. 영령(英靈)이 만일 있다면 어찌 다 알지 못하리오. 이제 내신(內臣) 아무를 명하여 빈소에 가서 전()을 올리게 하노라. 슬프다, 길고 짧은 기한은 원래 천명을 의심하지 않으나, 슬픔과 영광에 대한 예는 마땅히 국가 법전대로 갖추어 거행하라. 운운.

 

동문선 제30   

 

 

 비답(批答) 이첨

 

 

이색 걸퇴 불윤 비답(李穡乞退不允批答)

 

 

무명씨(無名氏)

 

올린 글을 보고서 시골로 은퇴하겠다고 청한 뜻은 잘 알았다. 무릇 대신의 출처(出處)는 치도(治道)의 경중에 곧바로 관계되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은 이때, 경의 나이 아직도 치사(致仕)에 이르지 않아 장차 기대함이 크거늘, 은퇴하기를 청함이 어인 말인가.

대개 문장은 나라를 경륜하는 것이요, 도덕은 풍속을 후하게 하는 바이니, 역량이 있는 자라야 중한 소임을 맡길 수 있고 견식이 있는 자라야 큰 의심을 해결할 수 있다.

경은 학문의 연원(淵源)은 중원(中原) 사우(師友)의 바른 계통을 얻었고,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은 옛날 성현의 마음을 가졌다. 강직함은 우뚝히 서서 무엇으로도 돌릴 수 없고, 밝음은 어느 어둑한 구석도 환히 비치지 않음이 없다. 그러니 이른바 나라를 경륜하고 풍속을 후하게 하며, 무거운 소임을 맡기고 큰 의심을 해결할 자는 오직 경 한 사람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선고(先考)께서는 경을 어질다 여기시어 재상으로 삼아 자문(咨問)에 응하게 하고, 사부(師傅)로 뽑아 어린 나를 돕게 하였다. 대국(大國)을 섬기는 문자가 모두 경의 토론에서 나왔고,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행실이 다 경의 거동을 규범으로 삼았다. 조정이 존엄함은 경과 같은 기구(耆舊)의 인망(人望) 덕택이요, 묘당(廟堂)의 논의 역시 경과 같이 과단성 있는 정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의 힘인지라, 하루라도 경이 없어선 안 될 것이거늘 어찌 지금이 경의 물러갈 때이랴.

, 재상 자리에 유자(儒者)가 없을 수 없나니, 노공(盧公)이 그로써 다시 임용되었고, 어린 왕은 위()에 오르지 않음과 같으므로 소공(召公)이 그 때문에 오래 머물렀다. 물러가려는 마음을 고집하지 말고 나의 이 명을 공경히 받으라. 청한 바는 윤허하지 않음이 마땅하겠기에 많이 말하지 않는다.

 

 

[D-001]경은 학문의 …… 얻었고 : 이색은 원() 나라에 가서 구양현(歐陽玄)이 맡은 과거에 급제하였다.

동문선 제30   

 

 

 비답(批答)

 

 

이색 사면 판문하 불윤 비답(李穡辭免判門下不允批答)

 

 

그대가 올린 전(?)을 보고 사직을 청하는 뜻은 다 알았다. 내가 동궁(東宮)에 있을 때로부터 경이 선조(先朝)의 부탁을 받아, 사부(師傅)로써 총재(?)가 되어 태자에게 덕의(德義)를 가르치며 경륜을 맡아 왔었다. 그 뒤 황제의 뜰에 친히 조회하여 본국의 아름다움을 선양함에 미쳐서는, 천자께서 강후(康侯)로 접견하는 영광을 내리셨고, 사대부들이 계자(季子)의 사행(使行) 임을 칭탄하였다. 이는 뭇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니 경인들 어찌 스스로 만족하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대신은 인심이 술렁일 때는 진정하여 안정하게 하고, 국운이 어려울 때에는 부지런히 수고하면서 이를 처리하였다. 물러가 쉼이 편안함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도 매양 거취를 중하게 여기는 것은, 한 몸의 관계가 매우 크고 뭇 사람의 의지함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경이 진정(陳情)한 바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나의 바라는 바를 경도 또한 알아줘야 할 것이다. 굳이 사양을 하지 말고 가서 그 직책을 행하라. 이에 명을 내리는 바이니, 다시 상소하지 말라.

 

 

[D-001]천자께서 …… 영광 : 강후(康侯)는 주() 나라 무왕(武王)의 동생인 희봉(姬封)을 가리킨다. 처음에 강()에 봉해졌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주역》에, “강후(康侯)에게 하루 세 번씩이나 접견하는 우대를 한다.” 하였다.

[D-002]계자(季子)의 사행(使行) : () 나라 계자(季子: 季札)가 중국의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거쳤는데, 그는 현인으로 간 곳마다 음악을 평론하고 명사들과 사귀었다.

동문선 제30   

 

 

 비답(批答)

 

 

이색 사면 좌대언 불윤 비답(李穡辭免左代言不允批答)

 

 

전녹생(田祿生)

 

내가 생각하건대, 만기(萬機)가 지극히 번잡하여 혼자 지혜로 다스리기 어렵다. 승선(承宣)이란 직임이 있는데, 실로 왕의 말을 출납(出納)하는 요직이다. 그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않으므로 적임자를 구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경은 성품이 명민하고 글재주가 탁월하여 일찍이 아버지의 풍()을 이어받아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리었고, 현재 여러 유자(儒者)들의 여망을 얻어 동국에 표준이 되었으니, 학문이 이미 해박하고 계책 또한 임금을 계도할 만하다.

이에 내가 특별히 그대를 갸륵히 여겨 낮은 직위에서 발탁하여 큰 벼슬에 올리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내 좌우에서 대언(代言)을 담당하여 원근에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하고는, 문사(文詞)에 관한 것을 모두 너에게 위임코자 하였다. 그랬는데 뜻밖에 사면의 뜻을 표하니 그 진의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 어찌 나의 애중히 여기는 뜻이 미더움을 주지 못하고 그대의 진언(進言)을 채납(採納)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숨기는 바가 없는 것이니, 정이 어찌 통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그리고 신하가 숫제 제 몸만 편안케 하려는 것이 어찌 대의(大義)에 맞는 것이겠는가. 하물며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저버렸관대 그대가 나에게 의심을 두는가. 마땅히 나의 심사를 잘 체득하여 그대의 직책에 충실하라.

 

동문선 제30   

 

 

 비답(批答)

 

 

권근이 본직을 사면하고 《예경》을 고증(考證)하는 일을 마치는 데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비답[權近請辭免本職終考禮經節次不允批答]

 

 

유사눌(柳思訥)

 

올린 전()을 보고서 사직에 관한 것은 잘 알았다. 고전(古典)을 상고해 보건대, 당우 삼대(唐虞三代)의 임금은 모두 도학을 밝혀 정치를 하였고, 그 신하들도 모두 도학을 밝혀 정치를 도왔다. 후세의 임금과 신하가 도학을 밝히려면 육경(六經)을 버리고 무엇으로 할 것인가. 나는 즉위한 뒤로부터 명유(名儒)를 얻어 좌우에 둔 다음, 경학(經學)을 강론하여 정치를 내는 근원을 밝히려고 하였다.

경은 천품이 순수하고 지식이 깊었다. 학문에 있어서는 육경(六經)을 모조리 꿰뚫어 전성(前聖)의 오묘한 이치를 발명하고 후진의 사표가 되었으며,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ㆍ입학도설(入學圖說) 등의 저술은 학자들의 지남(指南)이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재보(宰輔)에 임명하고 겸하여 경연(經延)을 맡게 하고, 또 사관(四館)과 성균관의 장을 겸임하게 하였으니, 이는 성리(性理)의 학을 듣고자 함이었다. 그 학문을 의논하는 훌륭함은 어찌 이윤(伊尹)이나 부열(傅說)에 합할 뿐이겠는가. 필삭(筆削)의 법이 이미 춘추(春秋)를 엿보고, 박약(博約)의 가르침이 그윽히 아성(亞聖)을 사모하였다. 그러니 마땅히 공경치 않음이 없는 학()과 생각이 사특함이 없는 가르침으로 아침저녁 아뢰어서 나의 마음을 열어서 대도(大道)의 요령을 듣게 함이 경의 직책이거늘, 어찌 갑자기 병()으로 핑계를 삼는가. 대개 하늘이 이미 경에게 이 도()의 책임을 주셨으니 반드시 경의 장수(長壽)의 복을 끊지 않을 것인바, 복서(卜筮)의 말을 어찌 괘념하겠는가. 선유(先儒) 주희(朱熹)가 《서경》의 집전(集傳)을 짓는 것을 채침(蔡沈)에게 명하여 드디어 전서(全書)를 이루었는데, 이제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이 또한 《예기(禮記)》를 경에게 부탁하여 절차(節次)를 고정(考定)하게 하였다. 비록 주희의 때와 지금이 시대가 같지 않고 세상이 다를지언정, 사제지간에 전수(傳授)하는 법은 마치 부절(符節)처럼 부합되는바,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또 예서(禮書)가 원래 불탄 나머지에서 주워 엮은 것이라 서차(序次)가 문란해졌으니, 진실로 바르게 고증하여 후세에 전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경의 박학(博學)과 능문(能文)으로는 정치를 협찬하는 여가에도 넉넉히 편차(編次)할 수 있으리니, 어찌 한가한 자리에 두어야만 할 수 있다 하겠는가. 옛날에 송 나라 신종(神宗)이 사마광(司馬光)에게 명하여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함에 범조우(范祖禹)와 유서(劉恕)를 보좌관으로 삼아 각각 분장(分掌)하게 하고 사마광이 이를 정밀하게 절충하여 함께 일대(一代)의 사적(史籍)을 이루어 지금까지 흠모한다. 내가 경에 대하여도 또한 그와 같으니, 경은 부디 속에 품은 지식을 다 드러내고 상세하게 고증하여 그 책을 완성하라. 그리한다면 스승의 부탁과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또 나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 동시에, 당세에 보탬이 있을 뿐 아니라 아마도 이 글을 영원토록 후세에 전하게 될 것이니, 이 아니 위대한 일이겠는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나의 다스림을 도우라. 청한 바는 윤허하지 않음이 마땅하겠기에 전교하노니, 마땅히 잘 알라.

 

 

[D-001]필삭(筆削)의 …… 엿보고 :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에 붓질할 데는 붓질하고 삭제할 것은 삭제하는데 그의 제자 자유와 자하의 무리는 한 마디도 거들지 못하였다.

[D-002]박약(博約)의 …… 사모하였다 : 아성(亞聖)은 안자(顔子)를 말하는데, 그의 말에, “부자(夫子)는 나에게 문()으로써 박()하게 하여 주고, ()로써 약()하게 하여 주셨다.” 하였다.

[D-003]공경치 …… 학() : 정자(程子)는 “《예기》는 그 중에 있는 ‘무불경(毋不敬 : 공경하지 않음이 없음)’ 세 글자가 중심이다.” 하였다.

[D-004]생각이 …… 가르침 : 공자는, “《시경》 3백편을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으니, 그 중에 있는 ‘사무사(思無邪 : 생각이 사특함이 없음)’라는 한 마디면 그만이다.” 하였다.

[D-005]예서(禮書)가 …… 엮은 것 : 진시황(秦始皇)이 경전(經傳)을 모두 불살라 버렸는데 한() 나라 때에 와서 불탄 나머지의 책을 수집하였다.

동문선 제41   

 

 

 표전(表箋)

 

 

본직을 사면하고 예경 절차의 상고를 끝맺게 하여 주기를 청하다[請辭免本職終考禮經節次箋]

 

 

권근(權近)

 

예전에 신의 좌주(座主 선생과 같은 말임) 한산(韓山) 이색(李穡)이 일찍이 신더러 이르기를, “육경(六經)이 모두 진()나라 세상에 불탔는데 그 중 예기(禮記)가 가장 많이 산일(散逸)되어, ()나라 선비들이 불에 타다 남은 조각을 주워 모아 책을 엮으면서 얻은 것의 선후에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글이 착란(錯亂)하여 차서가 없고, 정자(程子)ㆍ주자(朱子)는 「대학」한 편을 표해 내어 서차(序次)를 고정(考定)하였을 뿐이며, 그 나머지는 미처 손을 대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부문(部門)을 나누어 종류대로 모아 따로 한 책을 만들려고 하나 아직 성취를 못하였으니, 너는 아무쪼록 힘써 하라.” 하셨습니다. 신은 그 지시를 받아 매양 절차를 편성하려 하였사오나 벼슬 직무에 매어 또한 능히 이루지 못하였사옵고, 전조 때에 죄를 얻어 귀양살이를 하다가 다행히 태상왕(太上王) 전하의 불쌍히 여기시는 인덕을 입사와 성명을 보존하여 향리에 편안히 있게 되오니, 신미년 봄으로부터 임신년 가을까지 수백 개월 사이에 비로소 이 경을 연구하게 되어, 편목에 따라 종류를 서열하여 원고를 작성하였사오나, 본경의 문자가 너무도 호번하여 다 기록하기에는 애로가 많으므로 오직 구절마다 머리와 끝의 두어 자를 들어서, “아무 구절로부터 아무 구절에 그친다. 아무 것은 아무 구절 아래 있었는데, 지금 마땅히 아무 데에 있어야 한다.” 하였고, 이따금 또 억견(臆見)의 설을 들어 그 아래에 부주(附注)하였을 따름입니다. 장차 본경의 정문(正文)을 다 쓰고 다음으로 진()씨의 집설(輯設)을 쓴 연후에 억견의 설을 붙여 써서 한 책을 이루려고 하옵는데, 이 어찌 수 개월 동안에 한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므로 당시에 탈고를 못하고 남은 세월을 기다려서 완성하기를 바랐던 것이 었습니다. 개국(開國) 초기에 불러 쓰심을 입었사옵고, 전하께오서 대통을 계승하시매 또 아무런 공이 없는 저 같은 것을 훈신(勳臣)의 반열에 참예하게 하시와, 지위가 재상에 이르고 두 번째 동맹(同盟)의 영광을 주시니, 감사함이 하늘까지 사무치며 몸이 분가루가 되어도 보답하기 어렵사옵니다. 오직 생각하옵건대, 신 근()은 체질이 본래 병이 많사와 왕왕이 발작하였는데, 지금은 그 징조가 더욱 심하와, 사지가 나른하고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하여 잘 잊어버리고 귀가 먹어 들리지 아니하여 직무를 받들기 어려우며, 술자(術者)가 또 말하기를, “을유년으로부터 정해, 무자 수년 간은 다 액운(厄運)이니 거의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 하옵니다. 그 말이 비록 족히 믿을 것은 못 되오나, 신의 병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보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은 역시 짐작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신이 이 책을 비로소 편집함으로부터 지금 10년이 넘었사오나 아직 완성을 못하였으니, 신이 하루아침에 병이 더하여 서산에 지는 해와 같이 갑자기 성대(盛大)를 여의게 되오면, 신은 스승의 부탁을 지하에서 길이 저버리게 될 것이오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오리까. 더구나 신은 천박한 지식으로 오랫동안 조정에 있었으나 조금도 보익됨이 없었사오니 만약 신의 직()이 해임되고 아울러 세무(世務)가 제거되어 전심전력으로 이 책을 완성한다면, 비록 광망(狂妄)하고 참람(僭濫)한 죄는 벗어날 수 없사오나 후학에게는 반드시 보익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전하는 신의 쇠한 병을 가련히 여기시고 신의 지원(志願)을 양찰하시와 직무를 면하고, 한가한 곳에서 복약(服藥)하면서 틈틈이 다시 정력을 가하여 그 공을 마치게 하여 주시고, 특히 유사(攸司)에게 명하여 종이와 글씨 쓸 사람을 마련하여 전질(全帙)을 늑성(()하여 인쇄 발간하게 하여 주시오면 신의 저술은 비록 족히 보잘것 없사오나 후진의 선비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흥기하여, 경적(經籍)을 정돈[發揮]하여서 성조(盛朝)의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정책을 빛내게 할 것이옵니다. 신은 구구(區區)의 뜻을 이기지 못하오며 황공히 머리를 조아리옵니다.

 

동문선 제53   

 

 

 주의(奏議)

 

 

논 이색 소(論李穡疏)

 

 

오사충(吳思忠)

 

판문하(判門下) 이색(李穡)은 우리 현릉(玄陵)을 섬겨서 유종(儒宗)으로써 그 지위가 보상(輔相)에 이르렀더니, 현릉께서 돌아가시자 사속(嗣續)이 없으니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이 스스로 권세를 독차지하려 하여 어린 임금을 세울 제 이색이 그 의논에 방조하여 우()를 세웠더니, 모든 장수가 군사를 돌리어 왕씨(王氏)를 세우자는 의논을 하는 즈음에, 대장(大將) 조민수(曺敏修)가 이인임의 인친(姻親)으로써 그의 아들 창()을 세워서 그 사사로운 꾀를 계속하려 하여 이색에 꾀를 물었더니 이색 역시 창으로 세울 것을 마음에 정하여 드디어 의논해서 세웠고, 그의 아들 종학(鍾學)은 외척(外戚)에게 선언하기를, “여러 신하가 종실(宗室)을 세울 것을 의논했으나, 마침내는 세자(世子)를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은 우리 아버지의 힘이다.” 하였습니다. 이색이 서울로부터 돌아올 때에 이숭인(李崇仁)ㆍ김사안(金士安) 등과 약속하여 우를 여흥(驪興)에서 뵈었는데 이색은 앞서서 홀로 만나보았으니, 그 홀로 만나볼 즈음에 그의 말한 것이 공사였던가, 또 사사였던가는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천자(天子)가 명하기를, “비록 왕씨로 거짓하고 다른 성으로 임금을 삼은 것은 삼한(三韓)의 대대로 지키는 아름다운 꾀가 아니다.” 하였으므로, 충신과 의사(義士)들이 다시 왕씨를 세울 것을 의논하여, 천자의 명령에 따르려 할 제 적신(賊臣) 변안렬(邊安烈)은 기이한 공훈을 세워서 부귀를 도둑하려 하여, 이색과 신우의 외숙 이림(李琳)과 김저(金佇)ㆍ정득후(鄭得厚) 등과 더불어 신우를 맞이하기로 꾀하여 다시 왕씨를 세울 의논을 저해하였으니, 만일 이르기를, 15년동안을 몸을 맡겨 신하가 되었으니 다시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없다.” 한다면, 어찌 5백 년의 왕씨를 저버리고 15년의 신씨에게 충성하여야 하겠습니까. 이색은 대대로 왕씨에게 벼슬을 하여 공민왕의 망극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임에게 붙어 신우를 세워서 왕씨를 끊어버리고, 모든 장수들이 왕씨를 세우려 하였을 제는 민수에게 붙어서 신우를 쫓아내고는 신창(辛昌)을 세웠으며, 충신 의사가 왕씨의 자리를 회복하려고 하였을 제는 안렬에게 붙어서 창을 쫓아내고는 우를 맞이하였으니, 그는 우와 창에게도 역시 반측(反側)하는 신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족히 논할 것 없이, 대대로 왕씨의 신하로써 적신(賊臣)에게 아부하여 왕씨의 종사(宗社)를 길이 끊어지게 하였으니, 그 죄악은 종사(宗社)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왕망(王莽)이 한() 나라를 빼앗는 것이 장우(張禹)에게서 이룩되었으니, 그것은 장우가 그 꾀에 참여하여 그 힘을 썼던 것이 아니었고, 다만 장우가 유종(儒宗)으로써 본디부터 중망을 지녔으므로, 왕망에게 붙게 되니 왕망은 꺼릴 것이 없었고, 온 나라 사람이 그를 신종(信從)하였으며 왕망에게 붙지 않은 자가 도리어 죄인이 되었는데, 능히 주운(朱雲)이 베어 죽이자고 청한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능히 스스로 후세의 공론도 피하지 못했거늘, 이색은 우와 창에게 붙어서 나라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이 장우보다 중하고 또 이색이 인임의 대우를 받아서 그 부귀를 보수하였으며, 인임이 그의 무리 견미(堅味)와 흥방(興邦)과 더불어 탐욕을 자행하여 벼슬을 팔고 죄인을 놓아 뇌물을 공공연히 행하고 백성의 농토를 빼앗아 점유하되 원망이 쌓이고 죄악이 충만하여 마침내는 패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색은 그 그릇됨을 말하지 않았으며, 우의 스승이 되어서 여러 차례 보상을 받아서 젖내[乳臭] 나는 자제들이 모두 높은 과거에 올라서 요직에 깔렸고, 우가 그 포악함을 멋대로 하여 죄없는 자를 살육하였으나, 이색은 그 허물을 바로잡지 않고 우가 망령되이 군사를 일으켜 장차 중국의 경계에 침입하여 동방의 무궁한 재화를 시작하려 함에도 이색은 또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국가에서 사전(私田)으로써 공가(公家)를 여위게 하고 민생을 해쳐서, 송사를 일으키며 풍속을 헐어버리니, 이를 개혁하여 전법(田法)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이색은 상상(上相)으로써 옳지 않다고 고집하여, 그의 아들 종학(種學)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말을 퍼뜨려 거실(巨室)의 원망과 비방의 단서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림(李琳)이 탐욕스럽고 변변하지 못함은 나라 사람이 모두 아는 바인데 이색은 또 외척(外戚)과 교제하여 보존하기를 도모하되, 이림을 추천하여 스스로 그 자리에 대체시켰고, 또 그가 유종(儒宗)임에도 불구하고 대장경(大藏經)을 인출하였으므로, 온 나라가 다투어가면서 본을 받아 오히려 미처 못할까 저어하여 풍속을 그르치게 하고는 그의 아들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선언하기를, “이것은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요, 할아버지 곡()의 뜻을 이룩한 것일 뿐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아비를 이단(異端)에다 빠트려도 돌아보지 않음이었습니다.

또 신창을 받들어 조회할 때에 신우를 맞이하여 세울 꾀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드디어 이숭인(李崇仁)에게 위촉하여 탄핵을 입고는 장단(長湍)으로 돌아가 사변을 관망하더니, 전하께서 위에 오르니 공공연히 와서 판문하(判門下)의 벼슬을 받아 백관의 위에 앉았으나,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고 배운 것을 굽히어 세상에 아부하되 거짓을 꾸며 이름을 낚시질하였으니, 청하건대, 유사에게 내려서 이색 부자와 민수(敏修)의 죄를 논하여 후세의 남의 신하로써 충성하지 못하는 자에게 경계가 되게 하소서.

 

동문선 제63   

 

 

 ()

 

 

상 도당 서(上都堂書)

 

 

재상(宰相)의 직임(職任)은 그 나라의 모든 책임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일찍이 석개보(石介甫)는 말하기를, “위로는 음양(陰陽)을 조화(調和)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안무(安撫)하여, 작상(爵賞)과 형벌(刑罰)이 경우하는 바의 관건이고, 정화(政化)와 교령(敎令)이 시작되어 나오는 바다.” 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도 재상의 직임은 이 네 가지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하겠고, 더욱이 그 중에서도 작상과 형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른바 음양을 조화한다는 것은, 그 일이 없는데 음양이 스스로 조화되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상을 주되 그 공로에 해당하게 한다면 선행(善行)을 한 자에게 권장(?)이 된 것이고, 형을 집행하되 그 죄에 해당하게 한다며 악행(惡行)을 한 자에게 징계(懲戒)가 될 것입니다.

생각하옵건대, 형 중에서 큰 것은 찬역(簒逆)하는 죄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 왕씨(王氏)를 저지(沮止)하고 창()을 세운 것은 바로 신우(辛禑)를 영립(迎立)하여 왕씨를 단절시킨 자들인데 찬역의 죄가 이보다 더 큼이 없는 난적(亂賊)의 괴수(魁首)입니다. 그런데도 구차히 천벌을 면함이 이제 이미 여러 해입니다. 또 그는 얼굴빛을 좋게 꾸미고 그 도종(徒從)을 성대하게 딸리고 궁중과 궁외를 출입하되 조금도 기탄(忌憚)함이 없이 하고 있으며, 그 자제(子弟)와 생질(甥姪)들도 요직(要職)에 들어 세워 놓고 있으나 아무도 그들에게 시비를 못하고 있으니, 지금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 상형의 권병(權柄)을 지키는 자는 그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당히 그 죄상(罪狀)을 낱낱이 논하여 전하(殿下)께 아뢰고 백성과 함께 대묘(大廟)에 고하고 그 죄를 세어서 처 죽인 뒤에야 하늘에 있는 영령이 위로 될 것이요, 신하와 백성의 울분이 씻어질 것이요, 천지의 바른 기강(紀綱)이 설 것이요, 재상의 책임이 메워질 것입니다.

만약 말하기를, “사람의 죄악은 내가 알 바 아니오, 사람을 살리고 죽이며, 없애고 폐하고 놓아두는 권한은 임금이 맡은 것인데 재상이 어떻게 이에 관여하겠는가”고 한다면, 동호(董狐)가 어찌하여 조순(趙盾)이 임금을 시해(弑害)한 역적을 처 죽이지 않은 것으로써 그에게 악명(惡名)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춘추(春秋)시대에 진() 나라 조천(趙穿)이 임금을 시해함에 직사관(直史官)인 동호가 기록하되, “조순(趙盾)이 임금을 시해하였다.” 하자 조순이 말하되, “임금을 시해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직사(直史)가 말하되, “그대가 정경(正卿)이 되어 가지고 망명해서는 국경을 넘지 못하였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처 죽이지 못하였으니 임금을 시해한 자는 바로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하기를, “동호는 훌륭한 사가(史家), 조순은 훌륭한 대부(大夫)인데 법을 위해 악명을 받았다.” 하시었습니다. 무릇 조순이 정경(正卿)으로 임금을 시해한 역적을 토벌하지 못함으로써 시역하였다는 악명을 씻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뒤에 도적을 토벌하는 의리가 엄중하여져서 난적의 무리가 천하에서 용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남의 군부(君父)가 되어 《춘추》의 의리에 통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최악의 이름을 얻을 것이요. 남의 신자(臣子)가 되어 《춘추》의 의리에 통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찬역과 시해의 죄에 빠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내 비록 재주가 없으나 내가 재상의 뒤를 따라, 나라 정사에 참여하여 듣고 있는데 이 훌륭한 사가의 의논을 감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만약 말하기를, “이른바 죄인이 유종(儒宗)이 있고, 거듭 왕실에 혼인한 자가 있어서 그 법을 의논하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옛날 임연(林衍)이가 원왕(元王)을 폐하고 동복 동생 (?)을 영립(迎立)할 적에 연()이 먼저 모든 계모(計謀)를 꾸며 놓고 나중에 시중(侍中) 이장용(李藏用)에게 알리자 이 일을 당한 장용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직 예, , 하는 대답으로 이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그 뒤에 원왕이 반정(反正)함에 장용이 그 지위가 재상에 있으면서도 능히 그 계모(計謀)를 누르지 못하고 그 반란을 진정시키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그의 직위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색(李穡)의 유종(儒宗)됨이 장용과 더불어 어떻다고 보시며 그가 먼저 간악한 계교를 일으켜서 왕씨를 저지하고 창()을 영립한 것이 장용이 다만 임연의 모역(謀逆)에 예, , 라고 대답한 것뿐인 것과 더불어 누가 낫다고 보십니까.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옛날에 문강(文姜)이 노환공(魯桓公)을 시해하는 데 참여하였고, 애강(哀姜)이 두 임금을 시해하는 데 관여하였으나, 성인께서 준례로 ‘손()’이라고 써서 그는 가고 돌아오지 않은 것같이 하였음은 깊이 끊어 버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정(恩情)은 가볍고 의리는 무거움을 나타낸 것이다.” 하였습니다.

무릇 환공(桓公)을 시해한 사람은 양공(襄公)이요, 두 임금을 시해한 사람은 경보(慶父)입니다. 그러니 문강과 애강은 의심컨대 죄 없는 것같이 보이나 여기 성인께서 문강과 애강 두 부인에게 그 일을 참여하여 들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깊이 끊어버리고 이와 같이 심하게 주토(誅討)한 것입니다.

무릇 사군(嗣君)은 부인이 출산한 바이나 자식과 모친의 사사 은정으로서 임금과 신하의 큰 의리를 폐하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그 아래에 있는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이색(李穡), ‘우()가 비록 돈()의 아들이긴 하나 현릉(玄陵)이 자기의 자식으로 삼아서 강녕군(江寧君)에 봉하였고, 또 천자(天子)의 고명(誥命)을 받아 임금이 되었다. 이미 신하가 되었다가 임금을 몰아냄은 크게 옳지 못하다.’ 하는데 그 말이 옳지 않으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은, 왕위(王位)는 태조(太祖)의 왕위요, 사직(社稷)은 태조의 사직입니다. 현능이 진실로 사사로이 하지 못할 일입니다.

옛날에 연() 나라의 왕자지(王子之)가 연 나라를 정승 자쾌(?)에게 주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연 나라를 가히 정벌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맹자 말하기를, “옳지 못한 일이다. 자지가 자쾌에게 연 나라를 주지 못할 것이며, 자쾌도 스스로 연 나라를 자지에게서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현의 마음이 이와 같으시니, 땅과 백성은 먼저의 임금께 받은 것입니다. 임금이 사사로이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주 나라 혜왕(惠王)이 사랑함으로써 세자를 바꾸자 제() 나라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를 거느려 왕세자를 수지(首止)에서 회견하여 그 지위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이때에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분수는 비록 달랐으나, 그 혜왕의 아들됨은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천왕의 존귀함으로서도 그 나라는 사사로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제후는 그의 낮은 몸으로서도 제후의 무리를 거느려 천자의 명령에 항거하였으나 성인께서는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세자가 아버지의 명령을 항거하였고, 제환공(齊桓公)이 임금의 명령에 항거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천하의 의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현릉이 어찌 태조(太祖)의 왕위와 태조의 백성을 저 역적 신돈(辛旽)의 자식에게 사사로이 준단 말입니까.

또 천자께서 고명(誥命)하신 것은 한때 권신(權臣)이 우를 현릉의 아들이라고 속여서 얻어진 것입니다. 그 뒤에 천자께서 명하여 말씀하기를, “고려 임금의 지위는 후사(後嗣)가 끊어져서 다른 성을 빌려서 왕씨를 대신하였으나, 이것은 삼한(三韓)이 대대로 지켜오던 좋은 계모(計謀)가 아니다.” 하고 또 이르되, “과연 어질고 지혜로운 배신(陪臣)이 있어 인군(人君)과 신하(臣下)의 지위를 정하였다.” 하였는데 이는 앞에 명령한 과오를 천자도 또한 알고서 말씀하신 것인데 어찌 감히 천자의 고명(誥命)이 있었던 것으로 핑계한단 말입니까.

그 신하가 되었다는 말도 변명됨이 있습니다. 이는 주자가 〈강목(綱目)〉의 앞에는 이기(食其)가 제()의 큰 스승이 되고, 주발(周勃)과 진평(陳平)이 승상(丞相)이 되었다고 썼고, 뒤에는 한() 나라 대신이 아들 홍()을 목 베고 대왕항(大王恒)을 영입하여 황제의 지위에 나아갔다 하였습니다. 그를 제()라 하고 승상(丞相)이라고 쓴 것은 신하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말하여 대신이라 하고 자홍의 목을 베었다 함은 적을 주토(誅討)하였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무재인(武才人 측천무후)이 황제를 칭호한 지가 오래였습니다마는, 적인걸(狄仁傑)이 장간지(張柬之)를 천거하여 재상을 삼았는데 간지가 무재인을 폐위하고 중종(中宗)을 영립하였습니다. 그를 천거하여 재상을 삼은 것은 어찌 신하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재인을 폐한 것은 또한 역적이 된 것을 주토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세를 두고 내려오면서 주발(周勃)과 진평(陳平)은 유씨(劉氏)를 편안하게 하였고 장간지가 당() 나라를 다시 회복한 공로가 있다고 칭송은 할지언정 여러 공들(주발(周勃) ㆍ 진평(陳平) ㆍ 적인걸(狄仁傑) ㆍ 장간지(張柬之))이 신하가 되어서 옛 임금을 폐하였다고 하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색과 다못 현보가 비록 인의롭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나, 모두 글을 읽어 옛일을 통한 선비인데 어찌 이런 말들을 듣지 못하였을 것이겠습니까마는 그 미혹(迷惑)됨에 사로잡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특(邪慝)한 말을 만들어 내서 민중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있음을 이에서 가히 보겠습니다. 선왕의 법에 말을 조작하여 민중을 현혹시킨 자는 있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야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간악한 말을 불러 일으켜서 난적(亂賊)의 일을 꾸미는 죄에 있어서야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혹은 말하기를, “신우(辛禑)를 영입하여 왕씨를 절사(絶嗣)시켰다고 하는 것은 그 죄를 더 가중되게 하기 위한 말이다.”라고 하기도 하나, 이때를 당하여 충신과 의사가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이성(異姓)을 폐출(廢黜)할 것을 의결하여 왕씨를 부흥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왕(僞王) 신우의 무리가 먼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얻어, 천자의 명이 있음과 충신의 의결이 있음을 알고도 창()이 어리고 약하니 그 부()를 영립하여 그 사사로운 일을 이루기도 도모하였으니, 이는 신우를 영입하여 왕씨를 사절시킨 것이 아니겠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색()과 현보(玄父)는 그대에게 있어 항렬(行列)이 선배가 되고, 사문(斯文)의 구의(舊誼)와 고구(故舊)의 정()이 있을 것인데, 그대가 힘써 공격함이 이와 같으니, 너무 각박한 것이 아닌가.”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옛날 소식(蘇軾)은 주문공(朱文公)의 전배(前輩)였지만 식()이 감히 괴이한 논의를 하여 예악(禮樂)을 없애고 명교(名敎)를 파괴하니 그를 깊이 꾸짖고 힘써 헐뜯되 조금도 가차(假借) 없이 하면서 곧 말하기를, “감히 옛사람을 공격하여 꾸짖음이 아니라, 옛 성탕(成湯)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상제(上帝)를 두려워 하기에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하였는데 나도 또한 상제를 두려워하기에 감히 논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무릇 식의 죄가 이론(異論)을 세우고 예법을 멸하기에 이르자 주자(朱子)의 인자하고 관용스런 덕으로도 그를 공격하기를 성탕(成湯)이 걸()을 주()하는 말로써 아울러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이성(異姓)에 작당하여 왕씨를 저지하였다는 것은 조종(祖宗)의 죄인이요, 또 명교(名敎)의 적괴(賊魁)인데 어찌 선배의 인연으로서 용서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까.

하물며 저의 말에 “무진(戊辰)년 폐위하고 영입하는 때에 사문에 이의가 있었다.” 합니다. 이른바 이 이의한 것은 왕을 세움을 의논한 것입니다. 또 민중에게 제창(提倡)하기를 “제장(諸將)이 왕씨를 영입하는 일에 대해 의논할 때, 우리 아버지가 이를 저지시켰으니 우리 아버지의 공이 크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와 창의 귀에 깊이 흘러 들렸던 것입니다. 우 창으로 하여금 뜻을 얻었을 것 같으면 사문과 제장이 과연 그의 머리를 보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경박한 처사를 어떻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왕씨를 세우는 일에 이의(異議)를 하고, 왕씨를 저지한 것을 자기의 공을 삼았으니, 이제는 거짓 신우를 영입한 것에 이의를 하고, 왕씨를 저지한 것을 중죄를 삼음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또 혹은 말하되, “그대가 이미 편지를 올려 사면(辭免)하고는 글을 전하(殿下)께 올려 죄인을 잡아서 묘당에 고할 것을 논하고 있으니 이는 너무 심한 일이 아니냐.” 하였습니다.

반드시 이 말과 같음이 있을진대, 옛날의 제() 나라 일로 말해 보겠습니다. 진항(陳恒)이 그 임금을 시해(弑害)함에 공자께서 목욕하시고 조회(朝會)하여 말씀하시되, “진항이 그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청하건대 주토(誅討)하시옵소서. 또 삼자(三子)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진항이 그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청하건대 주토하소서.” 하시었습니다.

임금을 시해한 사람은 제 나라에 있으니 노() 나라와는 관련됨이 없을 것 같은 일이요, 공자가 대로(大老)에게 고한 것은 이것도 노 나라의 성사에는 관련됨이 없을 것 같은 일이요, 또 공자께서는 임금에게 진항을 주토할 것을 청하였음에 반드시 삼자에게는 고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또 성인이 그의 넓고 큰 겸용(謙容)한 마음을 지니고서도 들어와서는 임금께 청하였고, 나와서는 삼자에게 고하여 반드시 그 죄인을 주토한 뒤에 말고자 하였음은 진실로 시해하는 역적(逆賊)은 사람마다 주토하기를 원하는 것이오니 천하가 미워함은 한결같다 하겠습니다.

또 노 나라에 살면서도 제 나라에 있는 역적을 보고 참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역적을 보고 참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대부의 뒤에 쫓아서도 이웃 나라의 정사에 참지 못하였거니와 하물며 공신(功臣)의 반열(班列)에 있으면서 왕실(王室)의 역적을 보고 참을 수 있겠습니까.

《춘추》에 “위인(衛人)이 주우를 죽였다[殺州?]”라 썼습니다. 이에 대해 호씨(胡氏)는 “인()은 여러 사람이라는 말이요, 그 주우(?)를 죽임은 석작(?)이 도모(圖謀)한 것이니, 우재추(右宰醜)로 하여금 그를 죽이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글자를 고쳐서 사람이라 말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주토(誅討)하는 마음을 두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마다 주토할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또 변란(變亂)을 일으키는 신하와 적해(賊害)하는 자식은 사람마다 주토하는 것인데 재상이 주토의 의거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하겠습니까. 하물며 석작이 주우의 연고(緣故)로써 그 자식인 후()를 죽였으니, 군자는 말하기를 “석작은 순수한 신하다. 큰 의리는 친척도 없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로써 말할 것 같으면 난적(亂賊)한 사람은 친하고 멀고 귀하고 천하고를 막론하고 모두 주토해 버리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말하기를, “진항(陳恒)과 주우(?)는 자신이 시해와 역모를 감행한 자이다. 그러나 색()과 현보(玄父)는 일찍이 시해한 일이 없는데 자네는 둘을 비교하여 같다고 하니 이는 또한 지나친 말이 아니냐. 또 어찌 그의 죄악을 무고(誣告)하여 그릇되이 죄악을 입었음을 알겠느냐”고 하나, 이것은 이미 호씨(胡氏)의 말이 있지 아니합니까. 임금을 시해하고 임금을 영입하는 것은 종묘(宗廟)는 오히려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종묘를 옮기고 그 국성(國姓)을 고치면 이것은 그 나라를 멸망시킨 것인데 어찌 시군하는 것보다 중죄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성(異姓)에 당여가 되어 왕씨의 종사(宗祀)를 끊어지게 한 것은 실상 호씨가 말한 그 종묘를 옮기고 동성을 멸망시킨 것이 그 죄도 시해함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옛날의 대신도 그의 죄를 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죄수복(罪囚服)으로 갈아입고 그 죄를 청하였습니다. () 나라의 곽광(?)은 무제(武帝)의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서 소제(昭帝)를 옹립(擁立)하였으니 그 공덕이 지극히 컸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상서하여 그 죄를 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감히 금중(禁中)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자기의 죄를 기다렸습니다. 이런 일로써 볼지라도 진실로 죄를 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마땅히 체읍(涕泣)하여 절실하게 자기의 죄를 청하여야 될 것인데 몸소 유사(有司)에 대하여 그 죄를 변명한 후에라야 그 마음이 편안하게 될 것입니다. 처자를 권유하여 글을 올리고 병들었음을 핑계삼아 의원을 외사(外舍)에 불러 놓고 어찌 그 죄를 밝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자기에게 죄가 있음을 알려 줌이니 기필코 말이 막히어 변명하지 못함에서입니다. 춘추(春秋)의 난적을 주토하는 법에 비록 그 사람의 죄상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오히려 그 뜻을 찾아 주토하였던 것입니다. 하물며 이미 그 자취가 드러남이 이와 같은 사람이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고종(高宗)이 무재인(武才人)을 책봉(冊封)하여 황후(皇后)를 삼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수량(?遂良) ㆍ 허경종(許敬宗)은 같은 재상직에 있을 때입니다. 수량은 임금께 그 처사가 옳지 못함을 힘써 간하다가 마침내 살육의 화를 입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종은 고종의 뜻에 순응하여, “이 일은 폐하(陛下)의 집안일일 뿐이옵니다. 재상이 알 바가 아니옵니다.”라고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이에 고종은 경종의 말을 인용하여 마침내 무재인을 황후(皇后)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종은 평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5왕자들이 함께 반정(反正)을 협의하다가 다같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지금에 와서 살펴보면, 경종의 계모(計謀)는 성취되었고, 수량(遂良) 5왕자는 실책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종이 한때 부귀를 누렸다는 것은 몹시 빠른 것이어서 회오리바람이 귀바퀴를 지남과 같이 그 자취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수량과 5왕자의 영특한 성예(聲譽)와 정의의 열백(熱魄)은 역사 기록에 휘황찬란하게 우주를 관통하여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 비록 비천(鄙賤)하고 졸렬(拙劣)한 몸이오나 경종을 수치로 여기고 수량을 사모하는 바입니다. ()에 이르기를, “처음에 더불어 같이 도모(圖謀)하였으면 마침내 더불어 같이 죽는다.” 하였습니다.

임금께서는 이 어리석고 졸렬한 몸을 버리지 아니하셔서 반정의 의거에 참여함을 얻었습니다. 간흉한 도당의 화해(禍害)를 두려워하여 내 어찌 감히 묵묵히 구차하게 지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춘추》의 난적을 주토하는 법을 법받아서 공자 석작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종사가 퍽 다행한 일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