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가이드 ▒

문제는 눈높이야, 이 바보야!

천하한량 2007. 6. 3. 01:01
예전에 눈높이 학습이라는 이름이
교육 시장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들 아는 이야기고, 자주 쓰던 이야기였지만
눈높이를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브랜드 자체를 만든 것이 참 신선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으로
학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고 그것은 대 성공이었다.

요즘, 많은 제품과 다양한 서비스로 선택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소비자들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재화들을 다 보기도 벅차다.
 
책을 고를 때도, 음식점에 들어갈 때도,
TV프로그램을 정할 때도, 말 그대로 수준에 맞고,
 
눈 높이에 맞아야 겨우 눈에나 들어 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눈높이의 중요성은 시작된다.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까 한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빠져 나오면
소위찌라시를 나눠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홍보용 전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제 각각이다.
미안해 하면서 피하는 사람, 받자 마자 버리는 사람, 받고서 가져 가는 사람 등등.
 
하지만 대개 그 전단을 나눠 주는 사람들은 비슷하다.
그냥 기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 준다.
 
굳이 나누자면 조금이라도 웃으면서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일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전단을 나눠 주는 것으로 유명해 진 사람이 있다.
한 지역 번화가에서 수 년째 홍보용 전단을 나눠 주고 있는 사람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걸어 오는 사람들의 손에 거의 닿을 정도의 위치에
몸을 상당히 구부려서 준다는 것이다.
 
, 손님의 눈으로 봤을 때 편한 자세가 기준이다.
나눠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상당히 구부리며 주니까 힘들긴 하겠지만,
 
대신 전단이 소비자의 손에 쥐어 지는 빈도는
훨씬 높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몸을 구부리는 수고, 상대의 손 높이에 맞춰 주는 노력,
 
그리고 상대가 노력 없이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배려, 이런 것들이 하나가 되어
그 사람의 전단은 바로 버려지거나 받기를 거부하는 전단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 사람의 전단은
 전단 속의 가치까지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우와 반대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 한 한국 영화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작품성을 떠나
흥행성에 있어서는 대중들의 눈높이가 제일 중요하다.
 
대중들은 일방적으로 난해한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 허리우드보다 뛰어나지 않은 특수 효과는 높아진 대중들의 눈에 맞지 않는다.
 
차라리 사투리 쓰는 건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믹 영화가 더 와 닿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볼 테면 보라는 식으로 나온 영화는 철저히 외면을 받는다.
 
적어도 시장에 나오는 제품들은 어떤 것이든
대중의 기호에 철저히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고객들을 위해 새로운 제품을 내 놓는다.
모든 제품이 다 성공할 수는 없다.
 
품질에 있어서는 획기적이라는 말을 듣고도, 시장에서 그대로 묻혀 버리는 제품들은
대중의 눈높이를 찾아 내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있는
대량 맞춤(Mass Customization)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을 하겠다는
어찌 보면 꿈 같은 이야기가 선도적 기업들에 의해 시도되는 것이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의 델(Dell) 컴퓨터를 들 수 있다.
특히 직접 웹을 통한 사양 선택 후 주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BM)
 
소비자 눈높이를 델(Dell)이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보여 준다.
리고 델(Dell) BM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모든 기업들이 이야기한다.
우리 제품, 우리 서비스, 우리 컨텐츠는 차별성이 있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성의 기준이다.
단지 뉴스거리로서의 기술적인 차별성인가?
 
대중들이 혹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차별성인가?
너무 생산자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지는 않은 것인지?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눈높이이다.”

 
(고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