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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사례 (4) 월마트의 성장

천하한량 2007. 6. 2. 18:35
월마트의 성장
 
 
1995년 3월
미국의 대표적인 할인점의 하나인
 
K마트(Kmart)의 회장
죠셉 안토니니(Joseph Antonini)가 사임함으로써
 
30여년에 걸친 월마트(Wal-mart)와 K마트의 주도권 쟁탈전은
일단 월마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87년 안토니니가 K마트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K마트는 월마트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

K마트는 2,223개의 점포와
256억달러의 외형을 갖고 있는데 반하여,
 
월마트 의 점포수는 1,198개
그리고 매출액은 16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K마트는
주로 도심의 비싼 땅에 위치하고 있었고,
 
월마트는
보통 중소 도시의 한적한 교외에 있었다.
 
하지만 월마트는
급속히 점포망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K마트와 맞부딪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이에 대비하여 안토니니는 마케팅,
특히 광고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K 마트와 월마트는
인지도면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월마트의 점포는커녕
 
광고도 본 적 이 없을 정도로
월마트의 인지도는 낮았다고 한다.
 
그러나 월마트의 샘 월튼(Sam Walton) 회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본사와 각 점포를 연결하는 컴퓨터시스템과 트럭,
 
그리고 유통센터의 건설에 많은 돈을 투자하였으며,
유통센터를 중심으로 점포를 개설해 나갔다.
 
이렇게 함으로써 점포망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K마트는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미지와
점포 애호도를 높이려고 애를 쓴데 반하여,
 
월마트는 궁극적으로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가를 낮추는데 힘을 기울인 것이다.
 
또 전문가들이 앞으로는 유통업계에서
할인점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자
이에 대하여 두 회사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즉 안토니니는 할인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스포츠 용품을 파는 스포츠 오소리티(Sports Authority),
 
사무용품 체인 오피스맥스 (OfficeMax) 등
할인점 이외의 부문을 강화했다.

그러나 월튼은 안토니니와는 정반대로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할인판매에 걸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프라이스 클럽(Price Club)을 본떠
회원제 할인점인 샘스 클럽(Sam"s Club)을 시작했고,
 
또한 할인점과 식품점을 결합한
슈퍼센터(Supercenter)라는 새로운 업태를 개발한다.
 
월튼은 언젠가 하이퍼마트(Hypermart)라는
비슷한 개념의 점포를 시도 했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하이퍼마트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게가 지나치게 넓은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월튼은 하이퍼마트보다 작은 규모의
슈퍼센터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90년 월마트는 드디어 K마트를 따라 잡는다.
 
즉 K마트가 299억달러를 버는 동안에
월마트는 326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더구나 월마트의 점포수(1,721개)는 아직도
K마트(2,330개)보다 적은데도 이제는 외형이 더 큰 것이다.

월마트는
거의 모든 중소도시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K마트의 아성인 대도시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토니니는 이러한 월마트의 침공에 대비하여
무려 25억달러의 돈을 들여
 
5년에 걸쳐
K마트의 점포를 대대적으로 쇄신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판매현장에서는
점포의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눈에 잘 안 띄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아주 정교한 유통, 재고, 스캐너 시스템 덕분에
 
손님들은 사고 싶은 물건을
늘 가게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점원이 물건값을 알아보느라고
시간을 끄는 적도 없었다.
 
반면에 K마트의 금전등록기는
틀린 가격을 찍기 십상이었으며,
 
종업원은 훈련부족으로 말미암아
재고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92년 월튼이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데이비스 글라스(David Glass)가 그의 뒤를 잇는다.

글라스는 모든 부문에서의 철저한 원가절감이라는
월튼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계승하였는데,
 
그 결과 월마트는 대도시에서
K마트보다 더 싸게 팔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각화전략에서도
월마트는 더 성공적이었다.
 
즉 K마트를
할인점과 전문점의 제국으로 만들려던
 
안토니니의 계획은
93년 말부터 실패였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힘이 분산된 K마트는
할인점 분야에서 급속도로 월마트에 시장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전문점의 수익성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일반상품과 식료품을
같은 가게에서
 
싸게 판다는 개념의 월마트 슈퍼센터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리하여 K마트도 그것을 흉내낸
슈퍼 K마트(Super Kmart)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슈퍼 K마트에 돈을 투입하는 바람에
안토니니의 야심적인 점포쇄신 계획은 타격을 받게 된다.
 
즉 상당수의 점포에 대한 공사를
예정대로 추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어차피 공사가 끝난 점포도
기대했던 만큼 매출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87년에 안토니니가 K마트의 회장이 될 때
 
34.5%였던 할인점분야에서의 K마트의 시장점유율은
가 떠날 때쯤 22.7%로 떨어졌으며
 
같은 기간 동안에 월마트는
점유율을 20.1%에서 41.6%로 올렸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전략 못지 않게 최고경영자의 태도도
두 회사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의 월튼과 글라스는 부하
들에게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당부했으며
 
그들이 좋지 않은 소식을
숨기거나 제때 알려주지 않으면 크게 야단쳤다.

간부들은
판매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며
 
그들 역시 부하들로 하여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게 한다.
 
반면 안토니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특히 비판과 변화를 싫어했다.
 
그는 또한 그에게 도전할 만한 사람은
바깥에서 데려오지 않았으며
 
외부 컨설턴트도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를 하면
가차 없이 꾸짖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