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Leader 옥션 이금룡 사장의 성공스토리
어려웠던 집안형편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장 근로자였던 아버지밑에서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식구가 한 방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할래야 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집안형편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온가족이 모두 한방에서 지낸다는 것이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의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공부방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때 내가 인천도서관의 ‘도서위원회’를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나는 단지 도서위원이 되면 책도 마음껏 보고 도서관에서 매일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서위원회에 지원, 원하던 공부를 실컷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양심은 민족의 소금’
내가 다닌 중학교의 교훈은 ‘양심은 민족의 소금, 학식은 사회의 등불’이었다. 학교에서는 이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무감독시험’이라는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참 장난칠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감히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자율적으로 ‘양심’을 실천했었는데 그것은, 부정행위를 일으켰을 때 당할 소위’왕따’라는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성적보다 중요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은 나의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쳐 현재 나의 경영 소신인”투명경영’의 바탕이 되었다. 삼성물산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각 협력업체마다 쇼핑몰입점을 위해 대표상품들을 Sample로 보내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見物生心이라고 샘플이 쌓이면 쌓일수록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협력업체들로서도 상당한 비용발생과 함께 부담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나는 회사로 들어오는 샘플은 사용후 모두 업체에 다시 돌려주었다. 우리 사원들도 나의 취지를 이해하고 협조해주어 협력업체들의 호응도 상당히 높았다.
지금도 투명경영에 대한 나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 투명경영은 외부적으로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는데에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 사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더 중요하다. 사원들사이에서 회사에 대한 소문이 나거나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며 직원들의 사기저하에 대한 손실은 돈으로 수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한편 ‘학식은 사회의 등불’이라는 교훈은 나의 독서와 학업에 불을 붙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서위원을 통해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대출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라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독서가 곧 놀이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나는 퍽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의 폭넓은 독서는 나의 사고와 지식과 상식의 폭을 넓혀주어 회사를 경영하는데나 강의를 하는데 토대가 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해 준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은 매일매일 빠른속도로 발전한다. 나는 이것을 ‘인터넷진화론’이라 정의하는데, 이렇듯 매일 발전하는 인터넷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금새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의 비젼을 제시하는 CEO에게있어 ‘독서’란 가장 이상적인 취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도 로맨티스트… 꼬박 한달, 정성을 다해 그녀를 얻다
삼성 입사 초기시절, 당시는 온나라가 수출에만 집중하고 있던 시기라 종합상사(삼성물산)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아침아홉시부터 밤 열시까지, 개인적인 시간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성을 만나거나 데이트를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의 배려로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영어회화강좌를 듣게 되었다.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낼 여유가 전혀 없던 나에게,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수업은 이성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코스에서 당시 학생이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회화코스는 넉달만에 끝이 나게 되었고, 그녀는 외국인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제대로 데이트 신청조차 해보지 못한 나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야근속에서 도저히 그녀를 만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급기야 부장님께 말씀드리고 한달동안의 ‘반차’를 얻었다. 사실 말이 반차이지 저녁 6시무렵 소위 ‘칼퇴근’을 하는 것이었다. 6시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추기위해 매일 오후 5시 40분에 퇴근, 그녀의 회사앞에서 기다려 만나기를 한 달. 한 달동안 공(?)을 들이자 그녀의 마음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 이후 다시 나는 야근의 연속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반대로 나를 기다려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고도 용기있는 행동이었지만,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두 번의 시련이 모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이렇듯 상사의 이해와 지원속에 회사생활을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나는 업무에 대한 추진력과 모험심이 강해 윗사람과의 마찰이 잦은 편이다. 그런 나의 强性때문에 승진이 좌절되고 엉뚱한 부서로 전배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시련들은 결과적으로 나에게나 회사로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삼성물산 부장시절, 대북사업부(북한 및 중국)에 있을 때, 나의 거침없고 적극적인 업무추진 스타일 때문에 상사와 의견충돌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은 창조관(삼성그룹 연수원) 교육담당으로 전배되었다. 창조관을 거쳐 당시 한직(閒職)이었던 유통부문으로 배치되는 등 상당한 맘고생을 겪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통부문의 경험은 samsungmall 운영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한참 활발하게 유통사업을 전개하다가 당시로서는 그룹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인터넷 사업부로 다시 발령받아 인터넷사업부를 책임지게 되었다. 인터넷사업부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인터넷의 사업성을 직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IMF를 맞자 회사에서는 인터넷사업부를 분사시키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사업성이 뛰어난 인터넷 비즈니스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굽히지 않고 인터넷 사업부를 지켰고, 인터넷사업부는 현재 ‘잘나가는’ Samsungmall로 어엿하게 자리잡게 되었으니 이것 역시 전화위복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시련으로 ‘겸손’과 ‘인내’를 배웠다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도서위원에 이어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도서위원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당시 성당에서는 남학생들만을 위한 도서관을 운영했었는데, 나는 그때도 도서관이 탐나 성당에 다니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세례를 받는 등 성당활동도 했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성당과 멀어졌다.
고교졸업후 냉담신자로 지내던 내가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던 것은 96년 삼성물산에서 유통쪽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는 임원승진을 앞두고 여러가지 회사일로 몹시 힘든 때였는데 그 때 아내의 권유로 다시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성당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레지오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레지오를 통해 나는 <겸손>과 <인내>를 배웠다. 몇차례의 크고 작은 좌절과 시련속에서도 나의 마음은 레지오를 통해 평정되어 갔으며 많은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레지오는 내 개인에게 있어서는 ‘인간적 성숙의 계기’였던 것이다.
사실, ‘공동대표제’는 매우 어려운 자리이다. 두사람이 서로 진정으로 존경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여 신뢰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나는 레지오에서 배운 <겸손>과 <인내>로, 나의 아내를 존경하고 공동재표이신 오혁사장님을 존경하며,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우리 직원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담당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맡겨 고객관련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원들의 판단을 따르는 편이다. 지난해 9월 1일 옥션에 부임했을 때 옥션의 직원은 58명이었다. 나는 단 하루만에 모든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워, 부임 첫 날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불러주어 직원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직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가능했던 일이었으며 지금도 상호신뢰와 존경,믿음은 사람과 사람관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