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8년 9월 선조 31년 무술년 (충무공 이순신 54세)

천하한량 2007. 5. 5. 19:36

 

 

 

 

(1월5일부터 9월14일까지는 일기가 빠지고 없음)
9월15일[정유/10월14일] 맑다. 명나라 도독 진린과 함께 일제히 항해하여 나로도에 이르렀다.
9월16일[무술/10월15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렀다.
9월17일[기해/10월16일] 맑다. 나로도에 머물렀다.
9월18일[경자/10월17일] 맑다. 낮 두시에 출항하여 방답(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이르렀다.
9월19일[신축/10월18일] 맑다. 아침에 좌수영 앞바다에 옮겨대니, 눈앞의 전경이 참담하다. 한밤에 하개도(何介島)로 옮겨 대었다가 (20일) 채 밝기도 전에 출항했다.1)
9월20일[임인/10월19일] 맑다. 오전 여덟 시쯤에 유도(여천군 송도)에 이르니 명나라 제독 유정이 벌써 진군했다. 수륙으로 협공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많이 겁내는 모양이다. 수군이 드나들며 대포를 쏘아댔다.
9월21일[계모/10월20일] 맑다. 아침에 진군하여 종일 싸웠으나 물이 매우 얕아 진격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해의 적이 가벼운 배를 타고서 들어와 정탐하려 할 즈음, 허사인(許思仁) 등이 추격하니 왜적들은 뭍으로 올라가 산으로 도망갔다. 그리하여 왜놈들의 배와 여러 잡된 물건을 빼앗아 도독(유정)에게 바쳤다.
9월22일[갑진/10월21일] 맑다. 아침에 진군하여 싸웠는데, 유격(마귀)이 어깨에 적탄을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명나라 군사 열 한 명이 적탄에 맞아 죽고, 지세포만호·옥포만호가 적탄에 맞았다.
9월23일[양력/10월22일] 맑다.
9월24일[병오/10월23일] 맑다. 남해 사람 김득유 등 다섯 사람이 다녀와서 그 고을 적정을 전하였다. 진대강이 돌아갔다.
9월25일[정미/10월24일] 맑다. 진대강이 도로 와서 제독 유정의 편지를 전했다. 김정현이 와서 봤다.
9월26일[무신/10월25일] 맑다. 정응룡이 와서 북도(北道)의 일을 말했다.
9월27일[기유/10월26일] 비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명나라 군문 형개가 "수군이 재빨리 진군한 것을 가상히 여긴다"는 글을 보냈다. 식사를 한 뒤에 도독 진린을 보고 조용히 의논했다. 저녁에 신호의(愼好義)가 와서 보고 잤다.
9월28일[경술/10월27일]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9월29일[신해/10월28일] 맑다.
9월30일[임자/10월29일] 맑다. 오늘 저녁 명나라 유격 왕원주, 유격 복승, 파총 이천상이 백여 척을 거느리고 진으로 왔다. 등불을 밝히니, 휘황찬란하여 적도들은 간담이 써늘했을 것이다.

1) 이날의 "채 밝기도 전에 출항"이라는 것은 '20일'로 보아야 시간상 맞게 된다. 뒷날에 며칠간 한꺼번에 쓰다가 일어난 착오인 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