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7년 10월 선조 30년 정유년 (충무공 이순신 53세)

천하한량 2007. 5. 5. 19:18

 

 

 

 

 

10월1일[무오/11월9일] 맑다. 병조의 역군이 공문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아산 고향이 적에게 불타 버렸다"고 했다.
10월2일[기미/11월10일] 맑다. 아들 회가 배를 타고 올라갔으나 잘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10월3일[경신/11월11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법성포로 되돌아 왔다.
10월4일[신유/11월12일]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잤다.
10월5일[임술/11월13일] 맑다. 그대로 머물면서 마을집 아래로 내려가 잤다.
10월6일[계해/11월14일] 흐리며 눈비가 흩날리다.
10월7일[갑자/11월15일] 바람이 고르지 않고 비가 오락가락하다. 소문에 "호남 안팎에는 적선이 없다"고 한다.
10월8일[을축/11월16일] 맑다. 출항하여 어외도에 이르렀다.
10월9일[병인/11월17일] 맑다. 일찍 출항하여 우수영에 이르니 성 밖에는 인가도 없고 인적이 하나도 없다. 보이는 것은 참혹뿐이었다. 그러나 소문에 "흉악한 적들이 해남에 진치고 있다"고 한다. 초저녁에 김종려·정조(鄭詔)·백진남 등이 와서 봤다.
10월10일[정묘/11월18일]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게 불다. 밤 열 시 쯤에 중군장 김응함이 와서 전하는데, "해남에 있던 적들이 많이 물러간 모양이다"고 했다. 몸이 불편하여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우우후 이정충이 왔는데도, 배가 보이지 않은 것은 바깥 섬으로 달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월11일[무진/11월19일] 맑다. 밤 두 시쯤에 바람이 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닻을 올려 바다 가운데에 이르러 정탐인 이순·박담동·박수환·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에는 연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적의 무리들이 달아나면서 불을 지른 것이다. 오정에 발음도에 이르니 바람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다. 육상에 내려 산마루로 올라 가서 배 감출 곳을 찾아보니, 동쪽에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는 없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 월출산으로 뚫렸으며, 서쪽에는 비금도로 통하여 눈앞이 툭 트였다. 잠깐 있으니 중군장(김응함)과 우치적이 올라 오고, 조효남·안위·우수가 잇따라 왔다. 날이 저물어 산봉우리에서 내려와 언덕에 앉았으니 조계종이 와서 왜적의 사실 형편을 말하고, 또 "왜놈들이 우리 수군을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10월12일[기사/11월20일] 비오다. 가리포첨사(이응표)·장홍부사(전봉) 등 여러 장수들이 와서 종일 이야기했다. 탐후선이 나흘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 아마 생각컨대, 흉악한 적들이 멀리 도망가니 그 뒤롤 쫓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10월13일[경오/11월21일] 맑다. 조방장 배홍립과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조금 있으니 탐후선이 임준영을 싣고 왔다. 그편에 적의 소식을 들으니, '해남에 들어와 웅거해 있던 적들은 7일에 우리 수군이 내려 오는 것을 보고 11일에 몽땅 도망가 버렸는데, 해남의 향리 송언봉·신용 등이 적속에 들어가 왜놈들을 꾀어 내어 선비들을 죽였다"고 했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곧 순천부사 우치적, 금갑도만호 이정표, 제포만호 주의수, 당포만호 안이명, 조라포만호 정공청 및 군관 임계형·정상명·봉좌·태귀생·박수환 등을 해남으로 보냈다. 저녁 나절에 조방장 배홍립, 장홍부사 전봉 등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날 우우후 이정충이 뒤떨어진 죄를 다스렸다. 저녁에 김응함에게서 섬 안에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산골에 깊숙이 숨어서 소와 말을 잡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황득중·오수 등을 보내어 염탐케 하였다.
10월14일[신미/11월22일] 맑다. 밤 두 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디어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고 막내 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같은 형상이었는데,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알았다.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는고!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가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은 것이냐? 내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어본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고!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년같구나.
10월15일[임신/11월23일] 비바람이 종일 불다. 임중형·박신이 적을 정탐하려고 작은 배를 타고 홍양·순천 등지의 바다로 나갔다.
10월16일[계유/11월24일] 맑다. 우수사와 미조항첨사를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현감 유형도 보냈다.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지 나흘째가 된다. 마음놓고 통곡할 수도 없으므로 영 안에 있는 강막지 집으로 갔다. 밤 열 시쯤에 순천부사, 우후 이정충, 금갑도만호, 제포만호 등이 해남에서 돌아왔다. 왜적 열 세명과 투항했던 송언봉 등을 목베고서 왔다.
10월17일[갑술/11월25일] 맑다. 새벽에 아들 상복을 입으니 비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10월18일[을해/11월26일] 맑다. 임계형, 임준영(이 林은 任일 것임)이 들어왔다.
10월19일[병자/11월27일] 맑다. 윤건 등이 왜적에게 붙었던 두 명을 잡아 왔다.
10월20일[정축/11월28일] 맑다. 미조항첨사·해남현감·강진현감이 해남의 군량을 운반할 일로 아뢰고 돌아가고, 안골포만호 우수도 아뢰고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김종려·정수·백진남이 와서 보고, 또 윤지눌의 못된 짓을 말하였다. 김종려를 솜도(所音島)등 열 세 섬의 염전의 감자도감검(監煮都監檢 : 감독감)으로 정하여 보냈다.
10월21일[무인/11월29일] 비오다 눈오다 했다. 바람이 몹시 추워 뱃사공이 추워 얼까 걱정이 되어 마음을 잡지 못했다. 무안현감 남언상이 들어왔다. 남언상은 원래 수군에 소속된 관리인데, 사사로이 목숨만 보존할 꾀를 부려 수군에 오지 않고 산골에 숨어서 달포쯤 관망하다가, 적이 물러간 뒤에 무거운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비로소 이제야 나타나니 그 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해괴하다.
10월22일[기묘/11월30일] 아침에 눈오다가 저녁 나절에 개었다. 군기직장 선기룡이 임금의 분부와 의정부의 방문을 가지고 왔다. 해남현감 유형이 적에게 붙었던 윤해·김언경을 묶어서 올려 보내왔다. 그래서 단단히 가두었다. 무안현감 남언상은 가리포의 전선에 가두었다.
10월23일[경진/12월1일] 맑다. 윤해·김언경을 처형했다. 진사 백진남이 와서 봤다.
10월24일[신사/12월2일] 맑다. 해남에 있던 왜의 군량 삼백 스물 두 섬을 실어왔다. 초저녁에 선전관 하응서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우후 이몽구를 처형하라"는 것이었다. 그 편에 들으니, '명나라 수군이 강화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밤 세 시에 또 선전관과 금오랑이 왔다고 한다. 날이 밝자 들어오는데, 선전관은 권길이요, 금오랑(의금부도사 주부)은 홍지수였다. 무안현감(남언상)·목포만호(방수경)·다경포만호(윤승남)를 잡으러 온 것이다.
10월25일[임오/12월3일] 맑다. 몸이 몹시 불편했다. 초저녁에 선전관 박희무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명나라 수군이 배를 정박하기에 알맞은 곳을 골라서 장계하라는 것이었다.
10월26일[계미/12월4일] 비가 뿌렸다.
10월27일[갑신/12월5일] 맑다. 영광군수(전협)의 아들 전득우가 군관이 되어 알현했다.
10월28일[을유/12월6일] 맑다. 아침에 여러가지 장계를 봉하여 피은세(皮銀世)에게 주어서 보냈다.
10월29일[병술/12월7일] 맑다. 밤 두 시쯤에 출항하여 목포로 향하였다가 보화도(목포시 고하도)에 정박하니, 된하늬바람을 막을만하고 배가 감추기에 아주 알맞다. 그래서 뭍에 내려 섬 안을 둘러 보니 형세가 매우 좋으므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했다.
10월30일[정해/12월8일] 맑다. 아침에 집 지을 곳으로 내려가 앉았으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알현했다. 해남현감 유형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사람들의 소행을 전했다. 황득중으로 하여금 섬 북쪽 봉우리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베어 오게 했다. 저녁 나절에 해남에 있던 적에게 붙었던 정은부 및 김신웅이 왜놈에게 지시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죽인 자 두 명과, 선비집 처녀를 강간한 김애남을 아울러 목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