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무자/12월9일] | 비오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
11월2일[기축/12월10일] | 흐리다. 선창에 내려가 앉아서 다리 놓는 일을 감독했다. 그 길로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어두워서야 배로 내려왔다. |
11월3일[경인/12월11일] | 맑다.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선전관 이길원이 배설을 처단할 일로 들어왔다. 배설은 벌써 성주 본집으로 갔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이곳으로 왔다. 그 사정을 보아주는 (이길원의) 죄가 더 크다. |
11월4일[신묘/12월12일] | 맑다. 일찍 새집 지어 세우는 곳으로 올라갔다. 진도군수 선의경이 왔다. |
11월5일[임진/12월13일] |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같다.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영암군수 이종성이 밥 서른 말을 지어 일꾼들에게 먹이고, 또 말하되 "군량미 이백 섬과 벼 칠백 섬을 마련하였다"고 했다. 이날 보성군수와 홍양현감으로 하여금 군량창고 짓는 것을 보살피게 했다. |
11월6일[계사/12월14일] | 맑다. 일찍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종일 어슬렁거리니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전라우우후가 나무 베어 올 일로 황원장으로 갔다. |
11월7일[갑오/12월15일] | 맑고 따뜻하다. 해남 의병이 왜놈의 머리 하나와 환도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전 홍산현감 윤영현, 생원 최집이 와서 보고, 또 군량에 쓸 벼 마흔 섬과 쌀 여덟 섬을 바쳤다. 본영의 박주생이 왜놈의 머리 두 개를 베어 왔다. 전 현감 김응인이 와서 봤다. |
11월8일[을미/12월16일] | 맑다.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이중화 부자가 와서 봤다. |
11월9일[병신/12월17일] |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같다. |
11월10일[정유/12월18일] | 눈과 비가 섞여 오다. 된하늬바람이 세개 불었다. 간신히 배를 구호했다. 이정충이 와서 말하기를, "장홍의 적들이 달아났다"고 했다. |
11월11일[무술/12월19일] | 맑다. 새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평산포의 새 만호가 도임장(부임명령서)을 바쳤다. 그는 하동현감(신진)의 형 신훤이다. |
11월12일[기해/12월20일] | 맑다. |
11월13일[경자/12월21일] | 맑다. |
11월14일[신축/12월22일] | 맑다. 남해현감 유형이 와서 윤단중의 무리한 일을 많이 전했다. 그래서 중군선에 가두었다. |
11월15일[임인/12월23일] |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같다. 새집으로 올라갔다. 임환과 윤영현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한이 서울에서 돌아왔다. |
11월16일[계묘/12월24일] | 맑다. 군공마련기(軍功磨練記 : 개인별 전공조사기록)를 보니 거체현령 안위가 통정대부가 되고, 나머지도 차례차례 벼슬을 받고, 은 스무냥을 나에게 상으로 내렸다. 명나라 장수 경리 양호는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 이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영의정의 회답편지가 왔다. |
11월17일[갑진/12월25일] | 비오다. 경리 양호의 차관이 초유문(招諭文)과 면사첨(免死帖)을 가지고 왔다. |
11월18일[을사/12월26일] |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같다. 윤영현이 와서 봤다. 정한기도 왔다. |
11월19일[병오/12월27일] | 맑다. 조방장 배홍립과 장홍부사가 와서 봤다. |
11월20일[정미/12월28일] | 비오다. 임준영이 와서 "완도를 정탐하니 적들이 없다"고 전했다. |
11월21일[무신/12월29일] | 맑다. 송응기가 산의 일꾼을 거느리고 해남의 소나무 있는 데로 갔다. |
11월22일[기유/12월30일] | 흐리다. "장흥에 있던 적들이 20일에 달아났다"는 보고가 왔다. |
11월23일[경술/12월31일] |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오다. |
11월24일 [신해1598년/1월1일] |
눈과 비가 오다. 된하늬바람이 계속 불었다. |
11월25일[임자/1월2일] | 눈오다. |
11월26일[계축/1월3일] | 비와 눈이 오다. |
11월27일[갑인/1월4일] | 맑다. 장흥의 승첩 계본을 수정했다. |
11월28일[을묘/1월5일] | 맑다. 무안에 사는 진사 김덕수가 군량에 쓸 벼 열 다섯 섬을 가져와 바쳤다. |
11월29일[병진/1월6일] | 맑다. 유격 마귀(麻貴)의 차관 왕재(王才)가 "물길을 따라 명나라 군사가 내려 온다"고 했다. 전희원·정봉수가 왔다. 무안현감도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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