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5년 9월 선조 28년 을미년 (충무공 이순신 51세)

천하한량 2007. 5. 5. 18:08

 

 

 

 

 

9월1일[경오/10월3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우후가 도양장에서 와서 영에 이르러 공문을 가지고 와 바치는데, 정사립을 해치는 뜻이 많이 있으니 우습다. 종사관(유공진)이 병을 돌아가서 조리하겠다고 하므로 결재해 보냈다.
9월2일[신미/10월4일] 맑다. 새벽에 상선을 출항시키었다. 재목을 끌어내릴 군사 1,283명에게 밥을 먹이고서 끌고 내려왔다. 충청수사ㆍ우수사ㆍ경상수사, 두 조방장과 함께 이르러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9월3일[임신/10월5일] 맑으며 샛바람이 세게 불다. 아우 여필과 아들 울과 유헌이 돌아갔다. 강응호가 도양장에서 가을걷이할 일로 같이 돌아갔다. 정항ㆍ우수ㆍ이섬이 정탐하고 들어와서 "영등포에 있는 적진은 초이틀에 소굴을 비우고, 누각과 모든 소굴을 불살라 버렸다"고 했다. 웅천의 적에게 투항하여 붙었던 사람 공수복 등 열 일곱 명을 달래어 왔다.
9월4일[계유/10월6일] 맑다. 경상수사가 와 보기를 청하여 종일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아우 여필, 아들 울 등이 잘 갔는지 알 수 없어 몹시 궁금하다.
9월5일[갑술/10월7일]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 권준이 쇠고기를 조금 보냈다. 충청수사, 조방장 신호와 같이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신 조방장, 충청수사 선거이와 함게 같은 배로 경상수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이 날 체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순천ㆍ광양ㆍ낙안ㆍ홍양의 갑오년(1594)의 전세(田稅)를 실어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답장했다.
9월6일[을해/10월8일]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충청수사가 술을 바치므로 우수사, 두 조방장이 와서 같이 마셨다. 송덕일이 들어왔다.
9월7일[병자/10월9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경상수사가 왔다. 충청도 병영의 배와 서산ㆍ보령의 배를 내어 보냈다.
9월8일[정축/10월10일] 맑다. 나라 제사날(세조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회와 송덕일이 같은 배로 나갔다. 충청수사, 두 조방장이 와서 이야기했다.
9월9일[무인/10월11일] 맑다. 우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모여서 영내의 군사들에게 떡 한 섬을 나누어 주고 초저녁에 끝내고 돌아갔다.
9월10일[기묘/10월12일] 맑다. 오후에 나는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과 함께 우수사 있는 데로 가서 이야기하고 밤에 돌아왔다.
9월11일[경진/10월13일] 흐리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못했다.
9월12일[신사/10월14일] 흐리다. 아침에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을 청해다가 같이 아침밥을 먹고 늦게 끝내고 돌아갔다. 저녁에 경상수사와 우후 및 정항이 술을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서는 밤이 늦어서야 헤어졌다.
9월13일[임오/10월15일] 맑다. 다락에 기대어 혼자 앉았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9월14일[계미/10월16일] 맑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ㆍ경상우수사가 같이 와서 이별하는 술잔을 들고서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수사 선거이와 작별하며 준 시는 이러하다.

북쪽에 갔을 때도 같이 일하고(北去同動苦)
남쪽에 와서도 죽사리 같이 하더니(南來共死生)
오늘 밤 이 달 아래 한 잔을 나누면(一杯今夜月)
내일은 우리 서로 헤어져야만 하리(明日別離情)
9월15일[갑신/10월17일] 맑다. 수사 선거이가 와서 아뢰고 돌아가는데, 또 이별의 잔을 들고나서 헤어졌다.
9월16일[을유/10월18일] 맑다. 나가 공무를 봤다. 장계 봉하는 것을 감시했다. 저물 무렵 일식을 하여 밤이 되어서야 밝아졌다.
9월17일[병술/10월19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서울에 편지를 써 보냈다. 김희번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유자 서른 개를 영의정에게 보냈다.
9월18일[정해/10월20일] 맑다. 저녁 나절에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9월19일[무자/10월21일] 맑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가 돌아갔다.
9월20일[기축/10월22일] 맑다. 밤 두 시쯤에 둑제를 지냈다. 사도첨사 김완이 헌관으로 행사했다. 아침에 우수사가 와서 봤다.
9월21일[경인/10월23일] 맑다. 박ㆍ신 두 조방장과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박 조방장을 작별하려 했으나, 그대로 경상수사를 작별하고서 갔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저녁에 이종호가 들어왔다. 다만 목화만 가져왔기로 모두 나누어 주었다.
9월22일[신묘/10월24일]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다. 박자윤(종남의 字) 영감이 나갔다. 경상우수사도 와서 전별했다.
9월23일[임진/10월25일] 맑다. 나라 제사날(태조 신의왕후 한씨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웅천 사람인데 사로잡혔던 박녹수ㆍ김희수가 와서 알현하고 겸하여 적정을 보고했다. 그래서 무명 한 필 씩을 나누어 주어 보냈다.
9월24일[계사/10월26일] 맑다. 아침에 각처에 편지 열 통 남짓 썼다. 아들 울ㆍ면과 방익순 및 온개(溫介) 등과 함께 나갔다. 이 날 저녁에 우수사ㆍ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9월25일[갑오/10월27일] 맑다. 오후 두 시쯤에 녹도의 하인이 실수로 불을 내어 대청ㆍ다락방 등이 모두 타버렸다. 군량ㆍ화약ㆍ군기 등의 창고에는 불이 붙지 않았으나, 다락 위에 있던 장전과 편전 이백 여 개가 모두 타버렸으니 애석하다.
9월26일[을미/10월28일] 맑다. 홀로 온종일 배 위에 앉아 있다가 누웠다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언량(龜船將)이 재목을 깎아 가지고 왔다.
9월27일[병신/10월29일] 흐리다. 안골포 사람으로 왜적에게 붙었던 자 230여 명이 왔다. 배는 스물 두 척이라고 우수(禹壽)가 와서 보고했다. 식사를 한 뒤에 불난 데로 올라가 집 지을 만한 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9월28일[정유/10월30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집 짓는 곳으로 올랐다. 우수사ㆍ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아들 회ㆍ울이 기별을 듣고 들어왔다.
9월29일[무술/10월31일] 맑다.
9월30일[기해/11월1일]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