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5년 6월 선조 28년 을미년 (충무공 이순신 51세)

천하한량 2007. 5. 5. 17:59

 

 

 

 

6월1일[임인/7월7일] 저녁 나절에 개었다. 권ㆍ박ㆍ신 세 조방장과 웅천현감ㆍ거제현령과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충청수사 선거이는 이질에 걸려 쏘지 않았다. 새로 번드는 영리가 들어왔다.
6월2일[계묘/7월8일] 종일 가랑비 내리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에서 공무를 봤다. 한비가 돌아갔다.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영리 강기경ㆍ조춘종ㆍ김경희ㆍ신홍언이 모두 당직을 마치고 나왔다. 오후에 가덕진첨사ㆍ천성보만호ㆍ평산포만호ㆍ적량첨사 등이 와서 봤다. 천성보만호 윤홍년이 와서 청주의 이계(李繼)의 편지와 서숙부의 편지를 전하며, "김개(金介)가 지난 3월에 죽었다"고 했다. 비통함을 이길 길이 없다. 저물 무렵에 권언경 영감이 와서 이야기했다.
6월3일[갑진/7월9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각 보고문서를 처리하고 하달 공문을 내보냈다. 느지막에 가리포첨사ㆍ남도포만호가 왔다. 권ㆍ신 두 조방장과 방답첨사ㆍ사도첨사ㆍ여도만호ㆍ녹도만호가 와서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남해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해평군 윤두수가 남해에서 본영으로 건너온다고 한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나 곧 배를 정비하고 현덕린을 본영으로 보냈다. 사량만호가 와서 양식이 떨어졌다고 보고하고서 돌아갔다.
6월4일[을사/7월10일] 개이다. 진주의 서생 김선명이라는 자가 계원유사(繼援有司)가 되고 싶다고 여기에 왔는데, 보인(保人) 안득이라는 자가 데리고 왔다. 그 말을 들어 살펴보니, 그 속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같아서 아직 좀 두고 보자고 하고는 공문을 만들어 주었다. 세 조방장과 사도첨사ㆍ방답첨사ㆍ여도만호ㆍ녹도만호가 와서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탐후선이 오지 않아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
6월5일[병오/7월11일] 맑다. 이(李) 조방장 등과 더불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데, 자윤 박종남(조방장)은 병으로 오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ㆍ웅천현감ㆍ거제현령이 와서 같이 종일 이야기했다. 오정 때부터 비가 내려서 활을 쏘지 못했다. 나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저녁식사도 먹지 않고, 종일 쓰리고 앓았다. 종 경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다.
6월6일[정미/7월12일] 종일 비오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송희립이 들어 왔다. 그 편에 도양장의 농사 형편을 들으니, 흥양현감(배흥립)이 무척이도 애를 썼기 때문에 추수가 잘 될 것이라고 했다. 계원유사 임영도 힘을 많이 쓴다고 했다. 정항이 이곳에 왔으나, 나는 몸이 불편하여 종일 앓았다.
6월7일[무신/7월13일] 종일 비오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신음하며 앉았다 누웠다 했다.
6월8일[기유/7월14일] 비오다. 몸이 좀 나은 것같다. 저녁 나절에 세 조방장이 와서 보고, 곤양군수는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매우 섭섭하다.
6월9일[경술/7월15일] 맑다. 몸이 아직도 쾌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걱정된다. 조방장 신호, 사도첨사ㆍ방답첨사가 편을 갈라서 활쏘기를 했는데, 신호 편이 이겼다. 저녁에 원수 군관 이희삼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이곳에 왔는데, "조형도가 수군 한 사람에 양식 다섯 홉씩, 물 일곱 홉씩이라고 없는 것을 꾸며서 장계를 하였다"고 했다. 인간의 일이란 참으로 놀랍다. 천지에 어찌 이처럼 속이는 일이 있단 말인가. 저물녘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이질이 걸리셨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난다.
6월10일[신해/7월16일] 맑다. 새벽에 탐후선을 본영으로 보냈다. 저녁 나절에 세 조방장, 충청수사,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광주의 군량 서른 아홉 섬을 받았다.
6월11일[임자/7월17일] 가랑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다. 아침에 원수 군관 이희삼이 돌아갔다. 저녁에 나가 공무를 보고 광주 군량을 훔쳐간 도둑놈을 가두었다.
6월12일[계축/7월18일] 가랑비가 오고 바람 불다. 새벽에 아들 울이 돌아왔다. 어머니의 병환이 좀 덜하다고 한다. 그러나 연세가 아흔 살인지라 이런 위험한 병에 걸리셨으니 염려가 되고 또 눈물이 난다.
6월13일[갑인/7월19일] 흐리다.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을 잡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대신으로는 권준이 되었다. 남해현령 기효근은 그대로 유임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 배설에게 다녀가서 보고 돌아왔다. 어두워서 탐후선이 들어왔다. 금오랑이 이미 영 안에 와 있다고 했다. 또 별좌의 편지를 보니 "어머니 병환이 차차 나아간다"고 한다. 다행이다.
6월14일[을묘/7월20일] 새벽에 큰비가 오다. 사도첨사가 활을 쏘자고 청하여 우수와 여러 장수들이 다 모였는데, 저녁 나절에 개었으므로 활 열 두 순을 쏘았다. 저녁에 금오랑이 경상수사 배설을 잡아갈 일로 들어왔다. 권준을 수사로 임명한다는 조정의 공문과 유서와 밀부(密符)도 왔다.
6월15일[병진/7월21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 포구로 나가 배설을 떠나 보내니 마음이 불편하다. 아들 울이 돌아갔다. 오후에는 조방장 신호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6월16일[정사/7월22일] 맑다. 나가 공무를 봤다. 순천의 7호선의 장수 장일이 군량을 훔치다가 잡혀 왔으므로 처벌했다. 오후에 두 조방장과 미조항첨사 등과 함께 활 일곱 순을 쏘았다.
6월17일[무오/7월23일] 맑으나 바람이 종일 불다. 경상수사(권준)ㆍ충청수사(선거이), 두 조방장이 같이 활을 쏘았다.
6월18일[기미/7월24일] 비가 오락가락하다. 진주의 유생 유기룡 및 하응문이 양식을 대어 달라면서 쌀 다섯 섬을 받아갔다. 저녁 나절에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고 헤어졌다.
6월19일[경신/7월25일] 비오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아 있는데 몽매간에 아들 면이 윤덕종의 아들 윤운로와 같이 왔는데, 어머니의 편지를 보니 병환이 완쾌하시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신홍헌 등이 들어와서 보리 일흔 여섯 섬을 바쳤다.
6월20일[신유/7월26일] 비가 오락가락하다. 종일 다락에 앉았는데, 충청수사가 말이 분명치 않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몸소 가보니 중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습한 곳에 기거함으로 일어나는 뼈마디가 저리고 아픈 풍습이라는 병으로 많이 상했다. 무척 염려가 된다.
6월21일[임술/7월27일] 맑다. 몹시 덥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신홍헌이 돌아갔다. 거제현령이 또 왔다. 경상수사(권준)가 보고하는데, "평산포만호(김축)가 병에 걸려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내어보낼 일로 적어서 보냈다.
6월22일[계해/7월28일] 할머니의 제사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6월23일[갑자/7월29일] 맑다. 두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저녁에 배영수가 돌아갔다.
6월24일[을축/7월30일] 맑다. 우도(右道)의 각 고을과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했다. 음탕한 계집 열 두 명을 잡아다가 그 대장(隊長)을 아울러 처벌했다. 저녁 나절에 침을 맞아 활을 쏘지 않았다. 허주, 조카 해가 들어왔다. 전마도 왔다. 기성백의 아들 기징헌이 그의 서숙부 기경충과 함께 왔다.
6월25일[병인/7월31일] 맑다. 원수의 공문이 들어왔다. "세 위장(衛將)을 세 패로 갈라 보낸다"고 했고, 또 "소서행장이 일본에서 와서 화친할 것을 이미 결정했다"고 했다. 저녁에 조방장 박종남과 충청수사 선거이에게로 가서 그의 병세를 보니 이상한 일이 많았다.
6월26일[정묘/8월1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보고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오늘이 권언경 영감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국수를 만들어 먹고 술도 몹시 취하며, 거문고도 듣고 피리도 불다가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6월27일[무진/8월2일] 맑다. 허주, 조카 해, 기운로1) 등이 돌아갔다. 나는 조방장 신호, 거제현령과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6월28일[기사/8월3일] 맑다. 나라 제사날(명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6월29일[경오/8월4일] 아침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가 와서 활 여남은 순을 쏘았다.
6월30일[신미/8월5일] 맑다. 문어공이 날삼(生痲)을 사들일 일로 나갔다. 이상록도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거제현령ㆍ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방답첨사ㆍ녹도만호, 조방장 신호가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1) 尹雲輅는 尹德種의 아들이며(6. 19). 奇誠伯의 아들은 奇澄憲이다(6. 24). 조카 해와 온 사람은 기징헌이므로 이 날 간 사람은 奇雲輅는 아니고 기징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