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5년 5월 선조 28년 을미년 (충무공 이순신 51세)

천하한량 2007. 5. 5. 17:56

 

 

 

 

 

5월1일[계유/6월8일] 바람이 세게 불고 비오다.
5월2일[갑술/6월9일] 아침에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었다. 웅천현감ㆍ거제현령ㆍ영등포만호ㆍ옥포만호가 와서 봤다. 밤 열 시쯤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며, "종사관이 벌써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5월3일[을해/6월10일] 맑다.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해남현감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는 진에 이르렀다.
5월4일[병자/6월11일] 맑다.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다. 몸소 나아가 잔을 드리지 못하고 홀로 멀리 바다에 앉았으니, 회포를 어찌다 말하랴! 저녁 나절에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해남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아들 편지를 보니, "요동의 왕작덕(王爵德)이 고려(왕씨)의 후예로서 군사를 일으키고자 한다"고 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5월5일[정축/6월12일] 비오다. 오후 여섯 시쯤에 잠깐 개었다. 활 세 순을 쏘았다. 우수사ㆍ경상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모였다. 오후 다섯 시에 종사관 유공진이 들어왔다. 이충일ㆍ최대성ㆍ신경황이 같이 이르렀다. 몸이 춥고 불편하고 아파 토하고서 잤다.
5월6일[무인/6월13일] 맑으며 바람도 없다. 아침에 종사관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공사례를 받고 함께 이야기하였다. 저녁 나절에 활 스무 순을 쏘았다.
5월7일[기묘/6월14일] 맑다. 아침에 종사관(유공진)ㆍ우후(이몽구)와 함께 이야기했다.
5월8일[경진/6월15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출항하여 삼도가 같이 선인암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고 구경도 하며, 또 활도 쏘았다. 오늘 방답첨사(張麟)가 들어와 아들들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초나흘에 종 춘세가 잘못 불을 내어 집 열 채가 번져 타버렸다. 다만 어머니께서 계신 집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고 했다. 이야말로 다행이다. 어둡기 전에 배를 돌려 진에 이르렀다. 종사관과 우후는 방 붙이는 일로 뒤떨어졌다.
5월9일[신사/6월16일] 맑다. 아침에 식사를 한 뒤에 종사관이 돌아갔다. 우후도 같이 갔다. 활 스무 순을 쏘았다.
5월10일[임오/6월17일] 맑다.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많이 적중했다. 종사관 등이 영문에 이르렀다고 했다.
5월11일[계미/6월18일] 저녁 나절에 비가 뿌렸다. 두치(하동읍 두곡리)의 군량, 남원ㆍ순창ㆍ옥과 등을 합하여 예순 여덟 섬을 실어 왔다.
5월12일[갑신/6월19일] 궂은비가 그치지 않더니 저녁에야 잠깐 개었다. 대청에 나가 공무를 봤다. 동지 권준과 조방장 신호가 함께 왔다.
5월13일[을유/6월20일] 비가 퍼붓듯이 오는데 종일 그치지 않다. 홀로 대청 가운데 앉아 있으니 온갖 회포가 끝이 없다. 배영수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 했다. 또 세 조방장을 불러 오게 하여 같이 이야기했다. 하루 걸릴 탐후선이 엿새나 지나도 오지 않으니 어머니 안부를 알 수가 없다. 속이 타고 무척 걱정이 된다.
5월14일[병술/6월21일] 궂은비가 그치지 않고 종일토록 내렸다. 아침에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는데, "흥양현감이 받아 간 전선이 암초에 걸려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대장(代將) 최벽과 십호선 장수(十船將)와 도훈도(都訓導)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동지 권준이 왔다.
5월15일[정해/6월22일] 궂은비가 그치지 않아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겠다. 새벽 꿈이 어수선했다. 어머니 소식을 들은지 이레나 되니 몹시 속이 타고 걱정이 된다. 또 조카 해가 잘 갔는지 궁금하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보자니, 광양의 김두검이 복병으로 나갈 적에 순천과 광양의 두 원에게서 이중으로 월급(朔料 )을 받은 것 때문에 벌로써 수군으로 나왔는데, 칼도 안 차고 활도 안 차고서 나온 데다가 무척 오만하므로 곤장 일흔 대를 쳤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가 술을 가지고 와서 몹시 취하여 돌아갔다.
5월16일[무자/6월23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다고 하고, 아내는 실수로 불을 낸 뒤로 마음이 많이 상하여 담천이 더해졌다고 한다. 걱정이 된다. 비로소 조카 해 등이 잘 간 줄을 알았다.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동지 권준이 잘 맞추었다.
5월17일[기축/6월24일] 맑다. 아침에 나가 본영의 각 배에 사부ㆍ격군의 급료받은 사람들을 점고했다. 저녁 나절에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박ㆍ권 두 조방장이 잘 맞추었다. 오늘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부어 만들었다.
5월18일[경인/6월25일] 맑다. 충청수사 진에 이르렀다. 다만 결성현감(손안국)ㆍ보령현감ㆍ서천만호(소희익)를 거느리고 왔다. 충청수사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세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거제현령이 와서 보고 그대로 잤다.
5월19일[신묘/6월26일] 맑으나 샛바람이 차게 불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권ㆍ박ㆍ신ㆍ세 조방장과 사도ㆍ방답 두 첨사와 함께 활 서른 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도 와서 같이 참여했다. 저녁에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부어 만들었다.
5월20일[임진/6월27일] 비바람이 저녁내 오고 밤새도록 멎지 않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수사 선거이, 조방장 권준과 같이 장기를 두었다.
5월21일[계사/6월28일] 흐리다. 오늘은 꼭 본영에서 누가 올 것 같은데도, 당장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종 옥이ㆍ무재를 본영으로 보내고, 전복과 밴댕이젓, 물고기알 몇 점을 어머니께 보냈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보자니, 투항해 온 왜놈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저희 같은 또래 중에 산소(山素)란 놈이 흉칙한 짓거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죽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왜놈을 시켜서 그놈의 목을 베게 했다. 활 스무 순을 쏘았다.
5월22일[갑오/6월29일] 맑고 화창하다. 동지 권준 등과 함께 활 스무 순을 쏘았다. 이수원이 상경할 일로 들어왔다. 비로소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이다.
5월23일[을미/6월30일] 맑다. 세 조방장과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5월24일[병신/7월1일] 맑다. 아침에 이수원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조방장 박종남과 충청수사 선거이를 시켜 활을 쏘게 했다. 소금 굽는 가마솥을 부어 만들었다.
5월25일[정유/7월2일] 맑다가 저녁 나절에 비오다. 경상수사ㆍ우수사ㆍ충청수사가 모여서 같이 활 아홉 순을 쏘았다. 충청수사가 술을 내어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경상수사 배설에게서 "김응서가 거듭해서 대간들의 혹평을 받고 있고, 원수도 거기에 끼었다"는 말을 들었다.
5월26일[무술/7월3일] 저녁 나절에 개었다. 홀로 대청에 앉아 있었다. 충청수사, 세 조방장과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저녁에 현덕린이 들어왔다.
5월27일[기해/7월4일] 맑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와 두 조방장이 취하여 돌아갔다. 정철이 서울에서 진에 왔다. 장계회답 내용에 "김응서가 함부로 강화에 대하여 한 말이 죄가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였다. 영의정(유성룡), 좌의정(김응남)의 편지가 왔다.
5월28일[경자/7월5일] 흐리다가 마침내 저녁에 비가 많이 왔다. 끝내 밤에 바람이 세게 불어 전선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는데, 간간히 구호했다. 식사를 한 뒤에 수사 선거이, 세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했다.
5월29일[신축/7월6일]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종일 퍼부었다.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님의 총애를 받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띠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입으로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