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5년 3월 선조 28년 을미년 (충무공 이순신 51세)

천하한량 2007. 5. 5. 17:48

 

 

 

 

3월1일[갑술/4월10일] 맑다. 삼도의 겨울을 지낸 군사들을 모아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무명을 나누어 주었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
3월2일[을해/4월11일] 흐리다.
3월3일[병자/4월12일] 맑다.
3월4일[정축/4월13일] 맑다. 조방장 박종남이 들어왔다.
3월5일[무인/4월14일] 비오다. 노대해가 왔다.
3월6일[기묘/4월15일] 맑다.
3월7일[경진/4월16일] 맑다. 조방장 박종남, 조방장 신호, 우후(이몽구) 및 진도군수(박인룡)가 와서 봤다.
3월8일[신사/4월17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이억기)ㆍ경상수사(배설), 양 조방장(박종남ㆍ신호), 우후(이몽구)ㆍ가리포첨사ㆍ낙안군수ㆍ보성군수ㆍ광양현감ㆍ녹도만호가 아울러 모두 와서 이야기했다.
3월9일[임오/4월18일] 맑다. 저녁 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방답의 새로 부임한 첨사 장린, 옥포의 새로 부임한 만호 이담이 공적ㆍ사적으로 이사를 했다. 진주의 이곤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3월10일[계미/4월19일] 흐리고 가랑비 오다.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이야기했다. 보성군수 안흥국이 아뢰고 돌아갔다.
3월11일[갑신/4월20일]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다. 사도시(대궐 안의 쌀ㆍ간장 등을 맡은 부서)의 주부 조형도가 와서 전라좌도의 왜적의 정세를 말하고, 또 투항해 온 왜놈들의 말을 전하는데 "풍신수길이 삼년간이나 출병해도 끝내 효과가 없으므로 군사를 더 내어 바다를 건너 부산에다 진영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3월11일에 바다를 건너 오기로 벌써 전해졌다"고 했다.
3월12일[을유/4월21일] 흐리다. 조방장 박종남과 우후(이몽구)가 장기를 두었다.
3월13일[병술/4월22일]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다. 아침에 자윤 박종남 영감을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저녁에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3월14일[정해/4월23일] 비는 오고 바람은 그치다. 남해현령이 진에 이르렀다.
3월15일[무자/4월24일] 비가 잠깐 그치고 바람도 자다.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가 아뢰고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활을 쏘았다.
3월16일[기축/4월25일] 비오다. 사도첨사 김완이 들어왔다. 그 편에 들으니,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이 군량미 이백 여 섬을 조도어사 강첨에게 발각되어 그 때문에 잡혀 심문당한다"고 했다. "또 "새로 부임한 충청수사 이계훈은 배에서 불을 내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동지 권준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3월17일[경인/4월26일] 비가 걷힐 듯하다. 아들 면, 허주, 박인영 등이 돌아갔다.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딱지를 붙였다. 충청우후(원유남)가 달려와 보고하는데, "수사 이계훈이 불을 내고 자신은 물에 빠져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140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가 달려와 보고하기를, "견내량의 복병한 곳에서 온 투항한 왜인 심안은이(沈安隱已:시마즈)를 문초했더니, 그 놈은 본시 영등에 있던 왜놈이고, 그의 장수 심안돈(沈安頓:島津義弘)이 그의 아들(島津忠恒)을 대신 두고 가까운 시일 내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고 했다.
3월18일[신묘/4월27일] 맑다. 권언경,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 등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천만다행이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3월19일[임진/4월28일] 맑다. 권언경 영감과 함께 활을 쏘았다.
3월20일[계사/4월29일] 비오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에게로 가다가 길에서 수사 배설을 만나 배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다. 그는 밀포(密浦)의 둔전 치는 곳을 살펴볼 일로 간다고 했다. 그 길로 우수사에게로 가서 몹시 취하여서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3월21일[갑오/4월30일] 맑다. 저녁 나절에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이 돌아갔다. 나주반자(元宗義)와 우후(이몽구)가 와서 봤다.
3월22일[을미/5월1일] 샛바람이 세게 불다. 날씨가 일찍 흐리다가 저녁 나절에 개었다.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가 여기 와서 같이 쏘았다. 날이 저물어 헤어져 돌아왔다.
3월23일[병신/5월2일]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세 조방장 및 우후와 함께 걸어서 앞산 봉우리에 오르니, 삼면으로는 바라보이는 앞이 막히지 않고, 길은 북쪽으로 트여 있다. 과녁을 세우고, 자리를 닦고, 거기에 앉아 종일토록 돌아올 것을 잊었다.
3월24일[정유/5월3일] 흐리고 바람이 없다. 공문을 결재했다. 저녁 나절에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3월25일[무술/5월4일] 종일 비오다. 동지 권준, 우후ㆍ남도포만호ㆍ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영광군수도 왔다. 동지 권준과 장기를 두었는데 권준이 이겼다.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했는데, 닭이 울어서야 열이 조금 내리고 땀은 흐르지 않았다.
3월26일[기해/5월5일] 맑다. 영광군수(丁淵)가 나갔다. 저녁 나절에 조방장 신호ㆍ박종남과 우후와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저녁에 수사 배설, 이운룡ㆍ안위가 와서 새 감사(監司) 맞이할 일을 아뢰고, 사량(통영시 사량면)으로 갔다. 밤 열 시쯤에 동쪽이 어둡다가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지 모르겠다.
3월27일[경자/5월6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가 여기 와서 종일 활을 쏘았다. 어두울 무렵 조방장 박종남에게로 가서 발포만호ㆍ사도첨사ㆍ녹도만호를 불러서 같이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표마(表馬)와 종 금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3월28일[신축/5월7일] 맑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 나절에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기를, "각 포구의 병부(兵符)를 순찰사의 공문에 따라 각 포구에 직접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3월29일[임인/5월8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두 조방장과 이운룡ㆍ조계종이 활 스물 세 순을 쏘았다. 수사 배설이 순찰사에게서 오고, 미조항첨사(성윤문)도 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