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5년 4월 선조 28년 을미년 (충무공 이순신 51세)

천하한량 2007. 5. 5. 17:51

 

 

 

 

 

4월1일[계묘/5월9일] 맑으며 바람이 세게 불다. 남원 유생 김굉이 수군에 관한 일로 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와 같이 이야기했다.
4월2일[갑진/5월10일] 맑다. 종일 공무를 봤다.
4월3일[을사/5월11일] 맑다. 세 조방장이 우수영의 진으로 가고, 나는 사도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4월4일[병오/5월12일]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배설)가 활을 쏘자고 청하므로 권ㆍ박 두 조방장과 함께 배를 같이 타고 경상수사에게 갔더니, 전라수사(이억기)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같이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4월5일[정미/5월13일] 맑다. 선전관 이찬이 비밀 유지(有旨)를 가지고 진에 이르렀다.
4월6일[무신/5월14일] 가랑비가 종일 오다. 동지 권준과 같이 이야기했다.
4월7일[기유/5월15일] 맑다. 저무 무렵 바다로 내려가 어두울 때에 견내령에 이르러 잤다. 선전관(이찬)이 돌아갔다.
4월8일[경술/5월16일]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다. 왜적들이 밤에 도망갔다고 하므로 들어가 치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침도(砧島)에 이르러 우수사(이억기), 경상수사 배설과 함께 활을 쏘았다. 여러 장수들도 모두 와서 참여했다. 저녁에 본진으로 돌아왔다.
4월9일[신해/5월17일] 맑다.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활을 쏘았다.
4월10일[임자/5월18일] 맑다. 구화역(仇化驛:九墟驛) 역졸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세 척이 또 역앞(통영시 광도면 노산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중위장들에게 각각 다섯 척씩 배를 거느리고 견내량으로 달려가 형세를 보아 무찌르게 했다.
4월11일[계축/5월19일] 맑다. 우수사가 와서 보고는 그대로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정여홍이 들어왔다. 또 변존서의 편지를 보니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줄을 알겠다. 기쁘다.
4월12일[갑인/5월20일] 맑다. 장계의 회답 열 여덟 통과 영의정(유성룡)ㆍ우의정(정탁)의 편지와 자임(子任:李軸) 영감의 회답 편지가 왔다. 군량을 독촉할 일로 아병(牙兵:군사의 일종) 양응원을 순천ㆍ광양으로, 배승련을 광주ㆍ나주로, 송의련을 흥양ㆍ보성으로, 김충의를 구례ㆍ곡성으로 정하여 보냈다. 삼도의 중위장 성윤문ㆍ김완ㆍ이응표가 견내량에서 돌아와 적이 물러갔다고 보고했다. 경상수사 배설은 밀포(密浦)로 나갔다.
4월13일[을묘/5월21일] 흐리고 비오다. 세 조방장이 같이 왔다. 장계와 편지 네 통을 봉하여 거제 군관 편에 올려 보냈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가 와서 왜적의 일을 말하고, 또 "거제의 왜적이 웅천에 군사를 청하여 야간에 습격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비록 믿을만 하지는 않으나 그럴 염려가 없지도 않다.
4월14일[병진/5월22일] 잠깐 비오다. 아침에 흥양현감이 교서에 숙배했다.
4월15일[정사/5월23일] 흐리다. 여러가지 장계와 단오절의 진상품을 봉해 올렸다.
4월16일[무오/5월24일] 종일 큰비가 왔다. 비가 흡족히 오니, 올해 농사는 큰 풍년임을 점칠 수 있다.
4월17일[기미/5월25일] 맑으나 높새바람이 세게 불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세 조방장과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 배설이 여기에 왔다가 해평장의 논밭 일구는 곳으로 갔다. 미조항첨사도 와서 활을 쏘고서 갔다.
4월18일[경신/5월26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우수사(이억기), 경상수사 배설, 가리포첨사(이응표)ㆍ미조항첨사(성윤문)ㆍ웅천현감(이운룡)ㆍ사도첨사(김완)ㆍ경상우후(이의득)ㆍ발포만호(황정록) 등 삼도의 장수가 모두 와서 모여 활을 쏘았다. 권준ㆍ신호 두 조방장도 같이 모였다.
4월19일[신유/5월27일] 맑다. 조방장 박종남이 적을 수색ㆍ토벌하는 일로 배를 탔다.
4월20일[임술/5월28일] 맑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에게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이영남이 장계 회답을 가지고 내려 왔는데, "남해현령을 효시하라"고 했다.
4월21일[계해/5월29일]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대청에 나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22일[갑자/5월30일] 맑다. 오후에 미조항첨사(성윤문)ㆍ웅천현감(이운룡), 적량만호 고여우, 영등포만호 조계종과 두 조방장이 아울러 왔다. 그래서 정사준(판관 鄭承得의 아들)이 보낸 술과 고기를 같이 먹으면서, "남해현령이 군령을 어기었으니 효시하라"는 글을 보았다.
4월23일[을축/5월31일]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어 배를 운행할 수 없으므로 다락 위에 앉아 공무를 보았다.
4월24일[병인/6월1일] 맑다. 이른 아침에 아들 울, 조카 뇌ㆍ완을 어머니 생신에 상차려 드릴 일로 내어 보냈다. 오정 때에 강천석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도망한 왜놈 망기시로(望己時老:孫四郞)가 우거진 풀숲 속에 엎드려 있다가 잡혀 왔고, 다른 한 놈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곧 그 놈을 압송해 오게 하고, 삼도에 갈라 맡긴 항복한 왜놈들을 모두 불러 모아 곧 머리를 베라고 하였더니, 망기시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죽으러 나왔다. 참으로 독한 놈이었다.
4월25일[정묘/6월2일] 맑고 바람도 없다. 구화역 역졸 득복이 경상우후(이의득)의 보고를 가지고 왔는데, "왜적의 대선ㆍ중선ㆍ소선을 아울러 50여 척이 웅천에서 나와 진해(마산시 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향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수 등을 정탐하도록 내어 보냈다. 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사량만호 이여념이 아뢰고 돌아갔다. 아들 회 및 조카 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다.
4월26일[무진/6월3일] 맑다. 새벽에 우수사가 조방장 신호와 함께 자기 소속의 배 20여 척을 거느리고 탐색하러 나갔다. 저녁 나절에 동지 권준, 흥양현감(배홍립), 사도첨사(김완), 여도만호(김인영)와 함께 활 스무 순을 쏘았다.
4월27일[기사/6월4일] 맑으며 바람도 없다. 몸이 불편하다. 동지 권준, 미조항첨사(성윤문)ㆍ영등포만호(조계종)가 와서 같이 활 열 순을 쏘았다. 한밤 자정에 우수사가 적을 수색ㆍ토벌하고서 진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데도 적의 자취가 없다"고 하였다.
4월28일[경오/6월5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ㆍ경상수사가 와서 활을 쏘았다. 송덕일이 하동현감(성천유)을 잡으러 왔다.
4월29일[신미/6월6일] 밤 두 시쯤에 비가 오더니, 아침 여섯 시쯤에 깨끗이 개었다. 해남현감(최위지)이 공사례를 마친 뒤에, 하동현감에게는 두 번이나 기일에 이르지 않은 죄로 곤장 아흔 대를 때렸고, 해남현감에게는 곤장 열 대를 때렸다. 미조항첨사는 아뢰고 휴가를 갔다. 세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했다. 노윤발이 미역 아흔 아홉 동을 따서 가지고 왔다.
4월30일[임신/6월7일] 맑다. 활 열 순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