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3년 3월 선조 26년 계사년 (충무공 이순신 49세)

천하한량 2007. 5. 5. 16:14

 

 

 

 

3월1일[병진/4월2일] 잠깐 맑다가 저녁에 비오다. 방답첨사(이순신)가 왔다. 순천부사(권준)는 병으로 오지 못했다.
3월2일[정사/4월3일] 온종일 비오다. 배의 봉창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온갖 회포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 마음이 어지럽다. 이영남ㆍ이여념이 와서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실로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3월3일[무오/4월4일] 아침에 비오다. 오늘은 답청하는 날인데,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 있으며, 또 명나라 군사들이 서울에 들어 왔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3월4일[기미/4월5일] 개었다. 소문을 들으니,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송도까지 왔다가 북로(함경도)쪽으로 간 왜적들이 설한령을 넘었다는 말을 듣고 서관 (평안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3월5일[경신/4월6일] 맑다. 바람기가 매우 사납다. 순천부사(권준)가 병으로 도로 돌아간다기에 아침에 몸소 배웅하여 보냈다. 탐후선이 왔다. 내일로 적을 치자고 약속하였다.
3월6일[신유/4월7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웅천에 이르니 적도들은 바쁘게 뭍으로 도망쳐 산중턱에 진을 쳤으므로, 군관들이 철환과 편전을 비오듯 마구 쏘니 죽는 자가 무척 많았다. 포로되었던 사천 여인 한 명을 빼앗아 왔다. 칠천량에서 잤다.
3월7일[임술/4월8일] 맑다. 우수사(이억기)와 이야기했다. 초저녁에 출항하여 걸망포에 이르니, 날이 이미 새었다.
3월8일[계해/4월9일] 맑다. 한산도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니 광양현감(어영담)ㆍ낙안군수ㆍ방답첨사(이순신)가 왔다. 방답첨사와 광양현감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 오고, 우수사(이억기)도 오고, 어란만호(정담수)도 쇠고기1)로 만든 음식 몇 가지를 보내 왔다. 저녁에 비가 왔다.
3월9일[갑자/4월10일] 궂은비가 종일 오다. 원식이 와서 봤다.
3월10일[을축/4월11일] 맑다. 사량으로 가는 낙안 사람이 행재소에서 와서 전하는 말이, "명나라 군사들이 진작 송도까지 왔지만, 연일 비가 와서 길이 질므로 행군하기가 어려워 날이 개기를 기다려서 서울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는 그 기쁨을 이길 길 없다. 첨사 이홍명이 와서 봤다.
「장계」에서
사량 앞바다로 퇴진하여 화선을 준비했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가 오래 머뭇거리는 것을 생각해 보니, 적선만 분멸하다가는 궁지에 몰린 도적들이 화풀이를 우리 백성들에게 할 것이므로 아직 화선으로 공격하는 일을 중지하고 웅천에는 복병선을 정하여 보냈다.2)
3월11일[병인/4월12일] 맑다. 본영의 탐후선이 왔다.
3월12일[정묘/4월13일] 맑다. 아침에 각 고을에 공문을 써 보냈다. 아들 염과 나대용ㆍ김인문 등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이억기)와 바둑을 두었다.
3월13일[무진/4월14일] 비가 많이 오다가 늦은 아침에야 개이다. 우수사 이억기와 첨사 이홍명이 바둑을 두었다.
3월14일[기사/4월15일] 맑다. 각 배를 출동시켜 배 만들 재목을 실어 왔다.
3월15일[경오/4월16일] 맑다. 우수사와 함께 여러 장수들이 관덕정에서 활을 쏘는데, 우리 편 장수들이 많이 이겼다. 그리하여 우수사가 떡과 술을 장만하여 왔다.
3월16일[신미/4월16일] 저녁 나절에야 맑다. 여러 장수들이 또 활을 쏘았는데, 우리 편 여러 장수들이 역시 이겼다.
3월17일[임신/4월18일] 맑으며 종일 센 바람이 불다. 신경황이 와서 전하기를, "임금의 분부를 받들고 선전관(채진ㆍ안세걸)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3월18일[계유/4월19일] 맑다. 바람이 세게 불어 사람이 출입조차 하지 못했다. 남해현령 기효근이 와서 봤다.
3월19일[갑술/4월20일] 비오다. 우수사와 함께 이야기하였다.
3월20일[을해/4월21일] 맑다. 오후에 소문을 들으니, "선전관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온다"고 하였다.
3월21일[병자/4월22일] 맑다.
3월22일[정축/4월23일] 맑다.
  (3월23일부터 4월30일까지는 일기가 빠지고 없음)

1) '도림(挑林)'은 '쇠고기'이며, 사찰에서는 '도림채(挑林菜)'라고도 함.
2) 『이충무공전서』 권3, 「장계」 6쪽, 「討賊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