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지를 훔쳐먹는 밀화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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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화부리는 참새목 되새과 밀화부리속의 여름 철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만주 한국 중국 중부 등지에서 번식하고 중국 남부, 일본 규슈, 타이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이 새는 옛부터 호조( 鳥), 상호(桑 ), 상호(桑扈), 절지(竊脂), 랍취조(蠟嘴鳥), 랍취작(蠟嘴雀), 그리고 고지조(高枝鳥)라고 불렸다. 주로 식물성 먹이를 먹되 특히 식물의 씨앗을 좋아한다.
유몽인의 〈조어십삼편(鳥語十三篇)〉 가운데 첫 수가 바로 〈고지조(高枝鳥)〉이다.
고지새 높은 가지 깃들기 즐기질 않고
와서는 내집의 박고지를 먹는구나
박고지는 정말로 맛이 없는데.
시골 아이 그물 짜 울타릴 막으니
고지새 마땅히 걸려들겠네.
어이해 훨훨 높은 가지 올라가
큰 나무 깊은 숲 갈 곳 찾아 가지 않나.
高枝鳥不肯栖高枝
來食我朴枯脂
朴枯脂甚無味
村童結羅遮其籬
高枝鳥應見罹
何不奮飛上高枝
大樹深林從所之
來食我朴枯脂
朴枯脂甚無味
村童結羅遮其籬
高枝鳥應見罹
何不奮飛上高枝
大樹深林從所之
밀화부리를 고지새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고지새라고 써놓고, 높은 나무 가지에 살아야 할 고지새가 높은 가지에 머물지 않고, 자꾸 마당으로 내려온다. 반찬하려고 마당에 널어 놓은 박고지를 훔쳐 먹으려는 것이다. 고지새가 박고지를 먹으려 든다는 것은 말장난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예쁜 모습의 이 새를 잡으려고 울타리에 그물을 널어 놓았다. 시인은 박고지 먹으려다 그물에 걸려들지 말고 빨리 빨리 숲속 높은 가지 위로 달아나라고 말한다.
이 새의 다른 이름이 절지(竊脂)이기도 한데, 내 생각에 이 새의 부리가 노오란 것이 마치 기름을 발라 놓은 것 같아서 `기름을 훔쳤다[竊脂]`는 누명을 씌게 된 것인가도 싶다. 한편으로 이 새가 박고지를 잘 훔쳐 먹어서 절지란 이름을 얻었는가 싶기도 하다. 또 다른 이름인 랍취조(蠟嘴鳥)도 역시 부리에 밀랍을 칠해 놓은 듯 반질반질하다는 뜻이니, 이 새의 특이한 부리가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던 듯 싶다. 오늘날 이 새의 이름인 밀화부리란 말도 사실은 바로 이 랍취(蠟嘴)를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 이 새는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를 좋아해서 오디새란 별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소개하는 그림은 청나라 때 유명한 낭세녕(郞世寧)이 그린 앵도나무 가지에 앉은 밀화부리 그림이다. 사실적 묘사가 참으로 아름답다. 영세랑은 이 밖에도 조류 도감의 그림보다 더 사실적이고 섬세한 필치의 조류 사생화들을 많이 남겼던 화가다. 그는 본래 예수회 소속의 신부로 선교차 중국에 파견되었다. 서양화의 사실적 기법으로 동양화의 소재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기에 이렇듯 전혀 새로운 느낌의 사생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황전(黃筌)의 사생화와 새 그림에 얽힌 이야기
송나라 때 유명한 화가 황전(黃筌)이 그린 〈사생진금도(寫生珍禽圖)〉이다. 10종의 새와 10종의 곤충, 그리고 자라와 거북을 섬세한 필치로 사생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화가가 그냥 대충 그린 것이 아니라 실물을 보고 꼼꼼히 관찰한 후 그린 것임을 대번에 알 수가 있다. 흔히 옛 화가들은 묘사하는 사물을 대충 상상력에 맡겨 그렸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송나라 때 휘종황제는 그 자신이 유명한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그림과 관련된 수 많은 일화를 남겼다. 한번은 용덕궁(龍德宮)을 완공한 후 어원의 화가를 불러 궁중 각처에 벽화를 그리게 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황제는 직접 둘러 보았는데 어느 하나도 칭찬하지 않았다. 다만 전각 앞 주랑에 그린 월계화 그림을 가리키며 누가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 신출내기 소년 화가가 앞으로 나왔다. 황제는 크게 상을 내렸다. 사람들이 까닭을 몰라 의아해 하자,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월계화는 잘 그리는 자가 드물다. 대개 사계절 아침 저녁으로 꽃술과 잎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봄날 정오의 것인데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다. 그래서 후하게 상을 준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선화전(宣和殿) 앞에 심어둔 여지( 枝)가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그때 우연히 공작새 한 마리가 그 아래서 놀고 있었다. 황제는 급히 화가들을 불러 이 모습을 그리게 했다. 온갖 찬란한 빛깔들을 베풀어 솜씨를 뽐냈다. 그런데 그림에서 공작새가 등나무 위로 오르려 하는데 먼저 오른쪽 발을 들고 있었다. 황제가 "틀렸다"고 했다. 화가들은 까닭을 알지 못했다. 며칠 뒤 황제는 화가들을 다시 불러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황제가 말했다. "공작새는 높은데로 오를 때 반드시 먼저 왼쪽 발을 드느니라."
이런 이야기들은 휘종황제가 사물에 대해 얼마나 날카롭게 잘 관찰한 훌륭한 화가였는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위 그림을 그린 황전에게도 이런 일화가 있다. 한번은 그가 나는 새를 그렸다. 목과 다리를 모두 펴고서 날아가는 그림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나는 새는 목을 움츠리면 다리를 펴고, 다리를 움츠리면 목을 펴지 둘 다 펴는 법은 없다"고 했다. 관찰해 보니 실제로 그러하였다. 이후 그의 새 그림은 또 한 단계 발전하였다. 송나라 때 등춘(鄧椿)이 지은 《화계(畵繼)》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는 또 황전이 그린 여러 종류의 새 그림 목록이 꽤 많이 나온다. 그는 정말로 새를 사랑한 화가였던 모양이다.
갈가마귀가 있는 풍경
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楓葉冷吳江
蕭蕭半山雨
寒鴉栖不定
低回弄社塢
渺渺黃雲城
依依紅葉村
相思憶遠人
聽爾添鎖魂
蕭蕭半山雨
寒鴉栖不定
低回弄社塢
渺渺黃雲城
依依紅葉村
相思憶遠人
聽爾添鎖魂
김시습의 〈한아서부경(寒鴉栖復驚)〉이란 작품이다. 바로 앞 작품이 〈낙엽취환산(落葉聚還散)〉이어서 `다시 놀란다[復驚]`고 했다. 가을이 왔다. 부쩍 높아진 하늘에 강가의 단풍잎은 공연히 오싹해서 몸을 사린다. 거기에 추적추적 비마저 내리니, 이제 이 비 맞고 잎들은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겠구나. 낙목귀근(落木歸根)이랬거니, 잎이 땅에 떨어져 다시 뿌리의 힘을 돋우는 물리의 순환이야 모를 바 아니지만, 그래도 빈 하늘에 빈 손을 올리고 선 나무가지들을 보면 왠지 사는 일이 허망하게만 여겨진다.
그래서였을까. 한아(寒鴉) 즉 갈가마귀도 보금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사당이 있는 언덕배기에 모여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다. 갈가마귀는 까마귀보다 몸집이 작다. 부리도 다른 까마귀 종류에 비해 가늘고 짧다. 목 뒤와 배 가슴이 흰색을 띄고 있고 다른 부분은 모두 검은 색이다. 잡식성의 새로 봄가을엔 풀씨가 곡물을 먹고, 여름철엔 곤충이나 유충을 잡아 먹고 산다. 나무가지 위에 무리 지어 살며 짧고 급촉한 울음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다툰다.
고개를 돌려보면 성에는 먼지 구름만 자옥하고, 건너다 보이는 마을은 단풍잎에 둘러 싸여 붉게 타고 있다. 나는 문득 그대가 그립다. 황량한 가을 벌판에서 까악 까악 울어대는 갈가마귀 떼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댈 곳 없는 타관 땅을 저렇듯 떠돌고 있을 그대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애가 다 녹을 것만 같다.
그림은 중국의 화가 석노(石魯, 1919-1982)가 그린 〈아서도(鴉棲圖)〉이다. 역시 잎 다 진 빈 가지 위에 떼를 지어 앉아 있는 적막한 풍경이다.
송 휘종황제의 동박새 그림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송나라 휘종(徽宗) 황제 조길(趙佶, 1082-1135)은 중국 회화사에서 손꼽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특히 화조화에 능했는데, 그가 그린 각종의 새그림은 그 섬세하고도 정확한 묘사가 일품이다.
다음 그림은 휘종이 그린 〈매화수안도(梅花繡眼圖)〉이다. 수안(繡眼)이란 눈가에 수를 놓았다는 뜻인데, 동박새의 옛 이름이다. 동박새가 눈 테두리에 마치 흰실로 수를 놓은 것처럼 동그란 무늬가 있어서 이렇게 예쁜 이름을 얻었다. 매화 가지 위에서 동박새 한 마리가 먼데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설레임으로 오는 봄빛을 마냥 기다리는 마음을 잘 담아내었다. 눈 가의 흰 테두리는 점을 똑똑 찍어 놓았는데, 그가 얼마나 섬세한 관찰가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시 속에서는 동박새를 직접 노래한 경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박용래 시인의 〈풍경(風磬)〉이란 작품에는 귀엽고 깜찍한 모습의 동박새가 보인다.
山寺의 골담초숲 동박새, 날더러 까까중 까까중 되라네. 갓난아기 배냇짓 배우라네. 허깨비 베짱이 베짱이처럼 철이 덜 들었다네. 白頭 오십에 철이란 무엇? 저 파초잎에 후득이는 빗방울, 달개비에 맺히는 이슬, 개밥별 초저녁에 뜨는, 개밥별?
山寺의 골담초숲 동박새, 날더러 발돋움 발돋움하라네. 저, 저 백년 이끼 낀 塔身 너머 風磬 되라네.
포롱포롱 까불대는 초록빛 동박새의 귀엽고 깜찍한 모습에서 까까중 까까중 하며 놀리는 장난을 보고, 갓난 아기의 배냇짓을 배우며, 자꾸 높은 데로 발돋움 하라는 다정한 권유를 읽기도 하는 시인의 섬세한 시심이 참 곱다.
송 휘종은 비둘기와 학, 그리고 백두옹, 금계, 앵무새, 오리 등 온갖 종류의 새 그림을 남겼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고 그 자신 훌륭한 화가이기도 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한 군주였다. 요(遼)와 서하(西夏), 그리고 금(金)나라 등은 변경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이들을 달래기 위해 굴욕 외교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대내적으로도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왕은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를 연일 강행하였고, 오로지 화려하고 사치한 생활만 향유하였다.
배고파 우는 피죽새
조선시대 어휘사전인 《물보(物譜)》에 보면 `제호로(提壺蘆)`란 새를 `후루룩피듁`새라고 적어 놓았다. 예전 문헌 속에 제호로(提葫蘆)·제호(提壺)·직죽(稷粥)·호로록(葫蘆 )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새는 바로 직박구리이다. 집단 생활을 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이 새는 눈 뒤로 밤색의 반점이 있고, 배에서 꼬리 쪽으로 가면서 흰색 반점이 더 많아진다.
피죽 피죽
쌀 적고 물은 많아 죽이 잘 익질 않네.
작년엔 큰물 지고 재작년엔 가뭄 들어
세금도 내지 못해 농부들 통곡하네.
죽 먹어 배 곯아도 주림은 면하리니
피죽도 넉넉잖타 그대여 싫다 마오.
稷粥稷粥
米少水多粥難熟
前年大水往年旱
官租未輸農夫哭
喫粥不飽猶免饑
勸君莫厭稷粥稀
米少水多粥難熟
前年大水往年旱
官租未輸農夫哭
喫粥不飽猶免饑
勸君莫厭稷粥稀
조선 중기 장유(張維)의 〈직죽(稷粥)〉이다. 직(稷)은 `피`이니, 직죽이라 써 놓고 `피죽`으로 읽는다. `호로록피죽`은 새 울음소리를 음차한 것인데, 멀건 피죽을 호로록 마시는 소리 같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춘궁기에 주로 우는 이 새의 속성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자꾸만 `피죽 피죽` 하며 새가 운다. 온 식구가 먹을 큰 솥에 한 웅큼의 쌀을 넣고 물을 가득 부어 죽을 끓이니 멀건 죽이 잘 풀어지지 않는다. 가뭄 끝에 홍수 난다더니, 먹고 살 길이 캄캄해진 농부들은 그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곡밖에 할 일이 없다. 그렇지만 그나마 죽이라도 있어 굶어 죽기는 면하지 않느냐며,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피죽새는 계속해서 `피죽 피죽` 하며 운다는 것이다.
다음은 양경우(梁慶遇)의 〈직죽(稷粥)〉이란 작품이다.
피죽 피죽
피 끓여 죽 쑤어도 나쁘지 않다네.
지난해 추수 못해 백성 주려 괴로워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이랴.
조밥꽃 쌀밥꽃은 먹지도 못하는데
피죽이라 외쳐본들 무슨 보탬되리오.
고을 아전 장부책을 손에 들고 와서는
거두는 세금은 종류도 많구나.
아아! 피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지도 못하거늘
민가의 세금이 어디에서 나온다냐.
稷粥稷粥
煎稷作粥也不惡
去年失秋民苦飢
茹草不辭況稷粥
粟飯花稻飯花喫不得
汝呼稷粥復何益
里胥手持官帖來
租稅之徵多色目
嗚呼稷粥充腸不可得
民家租稅從何出
煎稷作粥也不惡
去年失秋民苦飢
茹草不辭況稷粥
粟飯花稻飯花喫不得
汝呼稷粥復何益
里胥手持官帖來
租稅之徵多色目
嗚呼稷粥充腸不可得
民家租稅從何出
직박구리가 하루 종일 `피죽 피죽` 하며 울어댄다. 피죽은커녕 뜯어 먹을 풀도 없는데, 피죽 피죽 하고 울어대니 듣는 심사만 더 사나워진다. 그 와중에 고을 아전은 환곡 장부를 들고 와서 세금 독촉이 한창이다. 피죽도 못먹는 생활에 세금 낼 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이렇듯 그 새가 활동하는 계절적 특성과 백성들의 삶의 애환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이렇듯 그 새가 활동하는 계절적 특성과 백성들의 삶의 애환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백로가 놀랄까봐
도롱이 옷 풀빛과 한가진지라
백로가 시냇가로 내려앉았네.
놀라서 날아갈까 염려가 되어
일어날까 다시금 가만 있었지.
蓑衣混草色
白鷺下溪止
或恐驚飛去
欲起還不起
白鷺下溪止
或恐驚飛去
欲起還不起
조선 후기의 시인 이양연(李亮淵)의 〈백로(白鷺)〉란 작품이다. 도롱이를 들춰 입고 들일을 나온 농부가 물가에 섰다. 백로가 사람을 못알아보고 풀더미로만 알고 곁에 와 내려 앉는다. 지금 내가 움직이면 저 녀석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겠지? 갑자기 그는 꿀먹은 벙어리에다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다. 녀석이 제 볼일을 편안히 다 보고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서있을 작정이다. 이쪽의 딱한 사정도 모르는 녀석은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수면 위만을 응시하고 있다.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심산이다. 도롱이 위로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강가에 안개는 자옥히 번져가는데 농부는 그냥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고, 해오라기도 그냥 그렇게 서 있다.
미물이 놀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시인의 마음이 참 고맙다. 이양연은 백로를 몹시 사랑했던 모양이다. 같은 제목으로 이런 작품도 남겼다.
백로는 백사장서 놀아야하니
봄풀 푸른 곳엔 가질 말아라.
모름지기 스스로 분명찮으면
남들이 알아 채기 쉽게 된단다.
白鷺宜白沙
莫向春草碧
不須自分明
易爲人所識
莫向春草碧
不須自分明
易爲人所識
깃털 빛깔이 흰 백로는 흰 모래사장에서 놀아야 제격이다. 그런데 자꾸 봄풀 푸른 속으로 날아드니, 그 흰 빛깔이 초록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백로야! 여긴 네가 놀 데가 아니니 백사장에 가서 놀아라. 네가 네 몸가짐을 옳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 있는 곳을 금방 알아챌게 아니냐!
학을 춤추게 하는 법
나는 2학년 때 대구에서 올라와 왕십리에 있는 무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교가는 "티끌 많은 문안과 멀리 떨어진 왕십리 무학봉에 자리를 잡고, 정다운 동무들과 모여 뛰노니 춤추는 학이 바로 우리로구나"로 이어진다. 왕십리를 티끌 많은 문안과 멀리 떨어졌다고 표현한 것이 오늘에 와서는 뽕밭이 변해 푸른 바다로 된 감회마저 없지 않다.
그림은 기원전 전국시대 제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와당의 탁본이다. 고개를 길게 빼어 노래를 부르면서 학 두 마리가 화면 중앙에서 너울 너울 춤을 춘다. 그 애연한 목청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양 옆에선 조금 어린 두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물끄러미 춤추며 노래하는 학을 바라보고 있다.
학은 그 고결한 흰 빛과 날개 끝의 검은 깃으로 호의현상(縞衣玄裳), 즉 흰 옷에 검은 치마를 입었다고 했고, 이마의 붉은 점으로 인해 단정학(丹頂鶴)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워졌다. 이밖에 신선들이 학의 등에 올라타 하늘로 오르내렸으므로 여기에 신선적 이미지가 덧보태져서 선학(仙鶴)·선금(仙禽)·태금(胎禽)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옛부터 선비의 집안에서는 학을 길렀다. 동양화에서 선비의 거처를 그린 그림을 보면 마당 한켠에는 으레 학이 한 두 마리 쯤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학은 집에서 새끼를 쳐서 기르는 가금(家禽)이 아니었으므로, 야생의 학을 잡아서 기르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선 후기 서유구(徐有 )의 《금화경독기(金華經讀記)》란 책에 보면 야생 학을 잡아 길들이는 법을 설명한 대목이 있다.
지금 황해도 연안과 강령 등지에서 학을 길들이는 방법은 이러하다. 매년 가을이나 겨울에 들판에 나락이 떨어져 있을 때가 되면 학이 밭에 많이 모여든다. 마을 사람들은 비단실을 꼬아서 올가미를 만들고 말뚝에다 이를 매고는 학이 이르는 곳을 헤아려 땅에다 말뚝을 묻는데 십 여 걸음을 잇대어 놓는다. 학이 내려 앉기를 기다렸다가 한 사람이 털벙거지를 쓰고 소매 넓은 옷을 입고는 취한 사람이 비틀대는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접근한다. 그러면 학 또한 천천히 걸어 피하는데, 올가미 안에 발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마침내 급히 이를 쫒는다. 학은 놀라 날다가 발이 올가미에 걸리고 만다. 이에 급히 이를 덥치는데, 솜을 둔 두터운 옷 소매로 그 부리를 뒤집어 씌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쪼기 때문이다. 잡아 와서는 그 깃촉을 잘라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뜰 가운데 며칠 두었다가 주리고 지치기를 기다려 조금씩 익은 음식을 준다. 이렇게 몇 달을 먹이면 마침내 길들여 기를 수 있다.
학의 날개 깃촉을 잘라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동물 학대의 극치라 할만한 고약한 짓이다. 하지만 학의 고결한 자태를 마당 안에 들여두고 그로써 자신의 해맑은 정신을 가꾸려 한 옛 사람의 마음도 볼 수 있다.
학을 기르만 한 것이 아니라 춤도 가르쳤다. 학을 춤추게 하려면 훈련이 필요했는데, 아마 위 와당 속에 춤추는 학도 이런 훈련 과정을 거친 것이었던 듯 하다. 학의 훈련 방법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란 책 속에 보인다.
내가 일찍이 학을 춤추게 하는 법에 대해 들었다. 깨끗이 소제한 평평하고 미끄러운 방에다 그릇이나 집기는 남기지 말고 다만 둥글게 잘 구르는 나무 한 개를 놓아 두고 학을 방 가운데 가둔다. 온돌에다 불을 때어 방을 뜨겁게 달구면 학은 제 발이 뜨거운 것을 견디지 못해 반드시 구르게 되어 있는 둥근 나무 위에 올라 섰다가는 넘어지니, 두 날개를 오므렸다 폈다 하기를 쉴새 없이 하고, 굽어보고 올려보기를 끊임없이 한다. 그때 창밖에서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여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어 마치 학이 자빠지고 넘어지는 것과 서로 박자를 맞추듯이 하면 학은 마음은 열 때문에 번잡하고, 귀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가도 이따금 기뻐하며 그 수고로움을 잊는다. 그렇게 한참 지난 후에야 놓아준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나 또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면 학이 갑자기 기쁜 듯이 날개를 치고 목을 빼어들며 박자에 맞추어 날개를 펄떡인다.
이 역시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옛 한시 중에는 자신이 아껴 기르던 학이 잘못해서 우물에 빠져 죽자, 그를 애도한 시를 지어 준 것도 있다. 야외에서 시회(詩會)라도 열릴라치면 각자 집에서 기르던 학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와서 들판 정자 앞에 풀어 놓고 한바탕 학춤 한마당을 펼치기도 했다.
마당에서 노는 학
옛 사람들이 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야생의 학을 잡아와서 깃촉을 자르고, 마당에 놓아 길렀던 것은 잔인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학의 그 고고한 정신을 자신의 삶 속에 깃들이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큼은 그리 나무랄 일만도 아니라고 본다. 위의 그림 속에도 선비의 집 마당에 학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속에는 〈상학법(相鶴法)〉이란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을 보면 옛 사람들이 학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했던 가를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가 있다.
깨끗함을 숭상하기에 색깔이 흰색이고, 하늘에서 소리를 들으므로 머리는 붉으며, 물에서 음식을 취하기에 부리가 길다. 앞에서 머리를 위로 쳐들므로 뒤에서 발가락이 짧고, 뭍에서 깃들어 살기에 다리는 높으면서 꼬리는 엉성하다. 구름 속에서 빙빙 돌며 날기에 깃털이 풍부하면서도 살은 적고, 큰 소리를 토해내기에 긴 목을 가졌으며 새 기운을 받아들이기에 수명을 헤아릴 수가 없다. 몸에 청색과 황색이 없는 까닭은 목(木)과 토(土)의 기운이 몸 안에서 함양되어 있으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다닐 때는 반드시 모래톱 물가를 의지하고 머무를 때엔 숲 속의 나무에 모이지 않는다.
또 《산가청사(山家淸事)》란 책에는 학을 기르는 법이 나와 있다.
학을 집안에서 기를 때는 반드시 물과 대나무를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사료를 줄 때는 반드시 물고기와 벼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새장 안에 가두어 기를 때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면 때가 끼어 탁해져서 정채가 줄어든다. 어찌 학이 속된 것이랴. 사람이 속된 것일 뿐이다.
라고 했다.
한마리 학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밤은 찬데 한 다리를 들고 서있네.
참대 숲에 서풍이 불어오더니
온 몸에 가을 이슬 뚝뚝 듣누나.
獨鶴望遙空
夜寒拳一足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夜寒拳一足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이달(李達)의 〈화학(畵鶴)〉이란 작품이다. 그림 속의 학을 노래했다. 학 한 마리가 참대숲을 배경으로 외다리로 서있는 그림이었던 모양이다. 시간 배경을 밤이라고 했으니, 그림의 여백이 옅은 먹으로 암흑 처리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체의 감정어는 걸러지고, 시인은 충실히 시각적 화면을 언어로 재현할 뿐이다. `고학(孤鶴)`이라 해도 좋을 것을 `독학(獨鶴)`이라 한 것은 감정을 절제하려는 시인의 거리두기의 산물이다.
추운 밤이다. 외다리로 학 한 마리가 서 있다. 고개를 들고 먼 데를 바라본다. 가을 바람이 참대숲에서 불어온다. 이슬이 그 몸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독학(獨鶴)`과 `일족(一足)`에서 그 외로운 형국이 드러났다. 또 `고죽(苦竹)`은 `참대`의 이름일 뿐인데, 찬 이슬을 맞으며 홀로 잠들지 못하는 학의 `괴로운` 심정을 환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발이 시린 추위 속에서도 학은 이슬로 제 몸을 씻으며 `요공(遙空)` 즉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그처럼 학이 어떤 현실의 질곡과 간난 속에서도 초연히 꺾이지 않는 원대한 기상을 지녔음을 시인은 말하고자 한 듯 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림 속 학의 이야기인가? 시인 자신의 이야기인가? 대숲을 건너온 이슬의 투명함, 이 가을밤 그토록 해맑은 정신이 있어 학, 아니 시인은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림 속의 학은 어느새 시인의 내면과 삼투되어 하나가 된다.
지혜로운 야생 거위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글 가운데 《관물편(觀物篇)》이란 것이 있다. 경기도 안산에 은거하면서, 생활 속에서 듣고 본 이야기들을 짧은 토막글로 적어둔 것이다. 말하자면 생활 속의 비망록인데 이 가운데는 일상 속에 자주 접하는 새나 가축들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 가운데 보이는 이야기 한 도막.
어떤 이가 야생 거위를 길렀다. 불이 익힌 음식을 많이 주자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문득 먹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병이 난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거위는 먹지 않았다. 열흘 쯤 지나자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듣고 말했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이 이야기가 성호는 무척 마음에 와닿았던 모양이다. 이 일을 가지고 다시 시를 한 편 짓기까지 했는데, 시의 제목은 〈천아행(天鵝行)〉이다. 천아(天鵝)는 백조이니 고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위의 이야기로 보아 야생 거위를 말한 것인 듯 하다.
거위가 물가에 내려 앉았다
우연히 야인의 손에 잡혔네.
번화한 거리에 보내져서는
불에 익힌 음식을 마구 받아 먹었지.
큰 집 뜨락에서 장난 치면서
길들어 가축과 같게 되었네.
유유히 세월을 보내며 놀다
밥 찾아 배를 채우곤 했네.
갑자기 배고파도 곡식 끊으니
지혜로움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
병 들어 죽을려나 생각하면서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다네.
열흘 동안 마음이 변치 않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날개짓 하다,
갑자기 허공 솟아 멀리 날아가
호연히 강과 바다 즐겁게 노네.
곁에서 보던 이들 모두 경탄해
미물의 영험함을 그제야 깨달았지.
어이 굶주려 배고프지 않았으리
앞 자취를 뉘우쳐 참은 것일세.
기운을 섭취해 더러움을 제거하고
뱃속을 깨끗이 씻어 냈다네.
지금까지 지저분 하던 깃털을
맑은 물에 씻어서 없애려 하네.
드넓은 하늘서 짝을 찾아서
줄 지어 날아가니 누가 화살을 쏘랴.
이 일 참으로 기이하구나
많은 사람 부끄러워 하기 원하네.
구구히 늙은 욕심 많은 사람들
다투며 손가락질 싸움이 끝이 없네.
조금만 굶주리면 본색을 드러내고
한번 배부르자고 목숨과 맞바꾸지.
사람으로 미물과도 같지 않으니
생각사록 부끄러움 금할 길 없다.
그 누가 길들여져 떠나지 않는 새가
명철하고 어진 덕을 갖추었다 하는가.
이 거위의 노래를 지어
욕심에 빠진 세상 사람 경계하련다.
눈 앞에 먹을 것에 눈이 멀어서 그것이 저를 죽이는 덫인줄도 모르고 덤벼드는 욕심 사나운 인간들과, 열흘을 그대로 굶으면서 불에 익힌 인간의 음식을 받아 먹어 찐 군살을 말끔히 빼내고 허공을 박차고 날아 올라 자연으로 돌아간 거위의 이야기를 대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위가 제 몸을 가볍게 해서 훨훨 푸른 하늘을 날아갔듯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뱃속에 잔뜩 들어앉은 욕심의 덩어리들을 내려 놓고, 가뿐하게 한 세상을 건너갈 수 있을까?
그림은 송나라 때 화가가 그린 가을 연못 가의 야생 거위 그림이다.
우연히 야인의 손에 잡혔네.
번화한 거리에 보내져서는
불에 익힌 음식을 마구 받아 먹었지.
큰 집 뜨락에서 장난 치면서
길들어 가축과 같게 되었네.
유유히 세월을 보내며 놀다
밥 찾아 배를 채우곤 했네.
갑자기 배고파도 곡식 끊으니
지혜로움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
병 들어 죽을려나 생각하면서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다네.
열흘 동안 마음이 변치 않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날개짓 하다,
갑자기 허공 솟아 멀리 날아가
호연히 강과 바다 즐겁게 노네.
곁에서 보던 이들 모두 경탄해
미물의 영험함을 그제야 깨달았지.
어이 굶주려 배고프지 않았으리
앞 자취를 뉘우쳐 참은 것일세.
기운을 섭취해 더러움을 제거하고
뱃속을 깨끗이 씻어 냈다네.
지금까지 지저분 하던 깃털을
맑은 물에 씻어서 없애려 하네.
드넓은 하늘서 짝을 찾아서
줄 지어 날아가니 누가 화살을 쏘랴.
이 일 참으로 기이하구나
많은 사람 부끄러워 하기 원하네.
구구히 늙은 욕심 많은 사람들
다투며 손가락질 싸움이 끝이 없네.
조금만 굶주리면 본색을 드러내고
한번 배부르자고 목숨과 맞바꾸지.
사람으로 미물과도 같지 않으니
생각사록 부끄러움 금할 길 없다.
그 누가 길들여져 떠나지 않는 새가
명철하고 어진 덕을 갖추었다 하는가.
이 거위의 노래를 지어
욕심에 빠진 세상 사람 경계하련다.
눈 앞에 먹을 것에 눈이 멀어서 그것이 저를 죽이는 덫인줄도 모르고 덤벼드는 욕심 사나운 인간들과, 열흘을 그대로 굶으면서 불에 익힌 인간의 음식을 받아 먹어 찐 군살을 말끔히 빼내고 허공을 박차고 날아 올라 자연으로 돌아간 거위의 이야기를 대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위가 제 몸을 가볍게 해서 훨훨 푸른 하늘을 날아갔듯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뱃속에 잔뜩 들어앉은 욕심의 덩어리들을 내려 놓고, 가뿐하게 한 세상을 건너갈 수 있을까?
그림은 송나라 때 화가가 그린 가을 연못 가의 야생 거위 그림이다.
꾀꼬리의 방언학
정지용의 수필 〈꾀꼬리〉를 읽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갑자기 새들의 사투리에 대해 궁금해졌다. 옛 시를 보면 새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연상들을 하고 있는데, 새들의 울음소리는 암수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서도 울음 소리가 달라진다. 또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새들의 울음소리도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먼저 정지용의 수필을 함께 읽어 보기로 하자.
꾀꼬리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온지 강진 골 꾀꼬리 소리는 다른 듯 하외다. 경도(京都) 꾀꼬리는 이른봄 매화 필 무렵에 거진 전차길 옆에까지 내려와 울던 것인데 약간 수리목이 져 가지고 아담하게 굴리던 것이요, 서울 문밖 꾀꼬리는 아카시아 꽃 성히 피는 철 이른 여름에 잠깐 듣고 마는 것이나 이곳 꾀꼬리는 늦은 봄부터 여름이 다 가도록 운다 하는데 한 놈이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바로 장독대 뒤 큰 둥그나무가 된 평나무 세그루에서 하루종일 울고, 아침 햇살이 마악 퍼질 무렵에는 소란스럽게도 꾀꼬리 저자를 서는 것입니다.
꾀꼬리 보학(譜學)에 통하지 못하였고 나의 발음 기관이 에보나이트판이 아닌 바에야 이 소리를 어떻게 정확하게 기록하여 보내 드리리까?
이골 태생 명창 함동정월(咸洞庭月)의 가야금 병창 〈상사가(相思歌)〉 구절에서 간혹 이곳 꾀꼬리의 사투리 같은 구절이 섞이어 들리는가 하옵니다.
그는 그럴싸하게 들으니 그렇게 들리는 것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꾀꼬리도 망령의 소리를 발하기도 하는 것이니 쯕쯕 찢는 듯이 개액객거리는 것은 저것은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에 가깝기도 합니다.
바로 장독대 뒤 큰 둥그나무가 된 평나무 세그루에서 하루종일 울고, 아침 햇살이 마악 퍼질 무렵에는 소란스럽게도 꾀꼬리 저자를 서는 것입니다.
꾀꼬리 보학(譜學)에 통하지 못하였고 나의 발음 기관이 에보나이트판이 아닌 바에야 이 소리를 어떻게 정확하게 기록하여 보내 드리리까?
이골 태생 명창 함동정월(咸洞庭月)의 가야금 병창 〈상사가(相思歌)〉 구절에서 간혹 이곳 꾀꼬리의 사투리 같은 구절이 섞이어 들리는가 하옵니다.
그는 그럴싸하게 들으니 그렇게 들리는 것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꾀꼬리도 망령의 소리를 발하기도 하는 것이니 쯕쯕 찢는 듯이 개액객거리는 것은 저것은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에 가깝기도 합니다.
전남 강진으로 여행을 갔다가 거기서 들은 꾀꼬리의 울음 소리가 서울이나 일본의 교또에서 듣던 소리와 현저히 다른 것을 느꼈던 것이다. 교또의 꾀꼬리가 약간 수리목이 져가지고 아담하게 굴리는데 반해, 강진의 꾀꼬리는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에 가까운 소리라고 한 것이 참 재미있다.
강진의 꾀꼬리가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처럼 들렸던 것은 아마도 여름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인 듯 하다. 전남 지역에서는 5월이 지나면 꾀꼬리를 `개고마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가 되면 변성기가 와서 꽥꽥대는 소리로 변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꾀꼬리는 번식기가 되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거나,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영역을 알리기 위해 아름다운 노래로 지저귄다. 새의 노래 소리인 Song은 번식기의 수컷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노래 외에도 Call이라고 하는 울음소리도 있다. 이것은 주로 적의 침입으로부터 둥지와 새끼를 지키기 위한 경계성이 짙은 찢어질 듯 강한 음색의 단순한 소리다. 이것이 바로 정지용이 수필에서 적고 있는 "쯕쯕 찢는 듯이 개액객거리는" 소리요, "표독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 소리인 셈이다.
또 지역에 따라 새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새들이 해마다 같은 지역을 찾아오고,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학습 효과로 음색이나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류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보고한 것이 적지 않다. 박새·흰배지빠귀·휘파람새 등에 대한 연구가 있다.
솔개의 남의 둥지 빼앗기
남이 애써 이룩해 놓은 것을 빼앗아 차지하고 마는 얌체족들은 인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08년 10월 28일자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의장청조(依杖聽鳥)〉란 작품이 실려 있다. 지팡이를 짚고 서서 새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것인데, 모두 10수의 연작이다. 이 가운데 솔개를 노래한 한 수를 소개한다.
새가 새가 날아든다. 무수(無數) 연조(鳶鳥) 날아든다.
네 심장(心腸)은 어찌하여 어물전(魚物廛)에 배회하며
기인투식(欺人偸食) 위주(爲主)하고 오작소(烏鵲巢)를 탈거(奪居) 하니
탐관혼(貪官魂)이 네 아니냐.
네 심장(心腸)은 어찌하여 어물전(魚物廛)에 배회하며
기인투식(欺人偸食) 위주(爲主)하고 오작소(烏鵲巢)를 탈거(奪居) 하니
탐관혼(貪官魂)이 네 아니냐.
솔개가 어물전 근처를 배회하다가 주인이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잽싸게 허공을 차고 내려와 생선을 낚아채 달아난다. 기인투식(欺人偸食), 즉 사람을 속여 먹을 것을 훔쳐 먹는 나쁜 짓을 일삼고, 거기다가 까마귀나 까치가 애써 만들어 놓은 둥지를 빼앗기 일쑤니, 그 심보가 꼭 탐관오리와 같다고 나무란 것이다.
성호 이익의 한시 속에도 학의 둥지를 차지한 솔개의 이야기가 보인다.
학의 묵은 둥지에 솔개가 주인 되니
학이 와서 제 집 찾자 솔개 외려 성을 낸다.
학이 비록 수고로이 처음 집을 지었지만
솔개 또한 가꾸느라 공을 많이 들여 왔네.
솔개는 가벼이 날아 움켜 쥐기 잘하고
학은 부리 뾰족해서 쪼으기를 잘 한다네.
아아! 둘 가운데 그 누가 옳을까?
하늘 보고 웃을 뿐 내 어이 이를 알리.
학이 와서 제 집 찾자 솔개 외려 성을 낸다.
학이 비록 수고로이 처음 집을 지었지만
솔개 또한 가꾸느라 공을 많이 들여 왔네.
솔개는 가벼이 날아 움켜 쥐기 잘하고
학은 부리 뾰족해서 쪼으기를 잘 한다네.
아아! 둘 가운데 그 누가 옳을까?
하늘 보고 웃을 뿐 내 어이 이를 알리.
시의 원 제목은 〈희부연학쟁소(戱賦鳶鶴爭巢)〉이니, 솔개와 학이 둥지를 다투는 것을 보고 장난 삼아 지었다는 것이다. 학이 버리고 간 둥지를 솔개가 차지했다. 나중에 학이 돌아와서 제 둥지를 내 놓으라고 하자, 솔개는 성을 내며 학에게 대든다. 비록 이 집을 처음 지은 것은 학이겠지만, 살기에 마땅치 않아 버리고 간 집을 보수하고 고쳐서 이제 겨우 쓸만한 집으로 만들어 놓았더니, 고친 공은 생각지 않고 내 집이니 내놓으라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솔개에게는 날렵한 비행술과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학에게는 뾰족한 부리가 있으니, 둘의 싸움은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모양이다. 자! 그렇다면 처음 둥지를 지은 학이 이 둥지의 주인일까? 아니면 버리고 간 빈 둥지를 번듯하게 고쳐서 살고 있는 솔개가 주인일까? 쉽지 않은 문제라며 시인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위의 두 시를 보면 솔개는 대개 제 스스로 둥지를 짓지 않고 남이 지어 놓은 둥지를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오는 얌체 근성을 지닌 새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 솔개도 이제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새가 되고 말았다. 마당에 놀던 병아리 떼가 사라지면서 솔개도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그 많던 솔개는 모두 어디로 가버린걸까?
병아리를 채 가는 솔개
아무래도 옛 시문 속에 보이는 솔개는 그리 좋은 이미지를 지닌 것 같지가 않다. 성호 이익 선생의 《관물편》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새 중에는 벌레를 잡아 먹는 것이 있다. 수풀 속에서나 거름 흙 또는 늪에서 벌레를 구하여 얻을 수가 있다. 고기를 먹는 것도 있다. 이것들은 산야에서 사냥하여 얻을 수가 있다. 다만 솔개만은 성질이 벌레를 잡아 먹지도 못하고, 재주가 꿩이나 토끼를 사냥하지도 못하여, 다만 하루 종일 빈 마을 사이를 맴돌며 멀고 가까운 곳을 엿보다가, 병아리 따위를 훔치곤 한다. 내가 이를 보고 말하였다. 아! 사람 또한 이같은 자가 있다.
하루 종일 주인 없는 빈 마을 사이를 맴돌며 기회만 엿보다가 병아리 따위를 낚아채 가는 솔개를 보다가 이익은 `사람 또한 이같은 자가 있다`고 했다. 병아리를 채 가는 것도 제 자신의 노력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꿩이나 토끼를 사냥하지도 못하고 벌레도 잡아 먹지 못하면서, 남이 애써 가꾸어 놓은 것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놈에다가 솔개를 견준 것이다.
박지원의 시에 〈전가(田家)〉란 작품이 있다. 농촌의 가을 풍경을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늙은이는 참새 지키려 남쪽 비탈에 앉았는데
개꼬리 수수 이삭엔 참새가 매달렸네.
큰 아들 둘째 아들 모두 밭에 나가 있어
시골집은 하루 종일 사립문이 닫혀 있다.
솔개가 병아리 채 가려다 헛짚어 못 잡으니
박꽃 핀 울타리에 뭇 닭 울음 시끄럽다.
젊은 아낙 광주리 이고 조심스레 시내 건너는데
벌거숭이와 누렁이가 졸랑졸랑 따라간다.
翁老守雀坐南陂
粟拖狗尾黃雀垂
長男中男皆出田
家田盡日晝掩扉
鳶蹴鷄兒攫不得
群鷄亂啼匏花籬
小婦戴권疑渡溪(木+卷)
赤子黃犬相追隨
粟拖狗尾黃雀垂
長男中男皆出田
家田盡日晝掩扉
鳶蹴鷄兒攫不得
群鷄亂啼匏花籬
小婦戴권疑渡溪(木+卷)
赤子黃犬相追隨
읽기만 해도 그냥 한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다 늙어 힘없는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거들지 못하고, 남쪽 비탈 뙈기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참새떼로부터 지켜 보겠다고 허수아비 대신으로 앉아 있다. 이따금씩 후여 후여 하고 새들을 쫓아 보지만, 얄미운 참새 녀석은 어느새 개꼬리 같이 탐스럽게 익어 고개 숙인 수수 이삭에 거꾸로 매달려 제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풍요로운 가을 들판이다. 식구대로 모두 밭일을 나간 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까부터 솔개 한 마리가 지붕 위 하늘을 빙빙 선회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쏜살같이 마당으로 날아와 병아리 한 마리를 나꿔챈다. 아차차! 헛발질이다. 간신히 솔개의 손아귀를 벗어난 병아리 떼와 어미닭은 온통 난리가 났다. 박꽃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울타리가에 피어 있고, 어미닭은 꼬꼬댁 거리며 새끼들을 호박 덩굴 아래로 숨긴다. 그러고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새끼들 단속에 여념이 없다.
집에서 일어난 소동을 전혀 알 길 없는 젊은 아낙은 들일 나간 남정네들 새참을 내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이다. 시내를 건너는데 징검다리를 딛는 발걸음이 자꾸만 불안해서 발아래로 자주 신경이 간다. 그 뒤로 고추를 내놓은 꼬마가 집에서 기르는 누렁이와 장난을 치면서 제 엄마의 치마 꼬리를 잡고 간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도 솔개 이야기가 나온다.
정조사(正朝使)가 북경에서 돌아올 때 장사꾼이 어미 원숭이를 사가지고 왔는데 임신한 상태였다. 우리나라 땅에 들어오자 슬퍼하며 머뭇거리니 장사꾼이 너그러이 이를 위로하였다. 중간에 새끼를 낳자 사람이 소매 속에 넣고 가다가 이따금 꺼내서 젖을 먹이게 하였다. 하루는 원숭이가 급히 새끼를 내놓기를 청하더니, 인하여 머리에 이고 사람처럼 서서 가는데 솔개가 낚아채 가버렸다. 원숭이가 슬픔을 능히 견디지 못하자 사람이 또 위로하기를, "네가 비롯 슬퍼한들 어찌하겠느냐?" 하니 원숭이는 마치 마음을 푸는 것 같았다. 여관이 이르자 갑자기 닭을 잡아 털을 뽑고서 머리에 이더니 솔개가 낚아 채간 곳을 맴돌았다. 솔개가 또 내려와 낚아채니 원숭이는 비로소 솔개를 잡아 이를 찢어 죽였다. 장사꾼이 낮잠 자기를 기다려 그 고삐를 풀어 목을 매고는 죽었다. 아! 이는 진실로 금수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 할 만하다. 저 사람의 탈을 쓴 짐승같은 자들이야 어찌 족히 귀하게 여기겠는가? 원숭이가 사람에게 묶임을 당한 데다 또 새끼까지 잃고 보니 죽지 않고서야 어찌하겠는가?
앞서 새끼를 올빼미에게 잡아 먹힌 후 깃털이 온통 희게 변한 까치 이야기도 보았지만,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은 미물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솔개에게 새끼를 잡아 먹힌 원숭이가 털 뽑은 닭을 머리에 이고 솔개를 유인해서 이를 찢어 죽인 이야기이다. 어미 원숭이는 그 슬픔을 못이겨 목을 매어 죽었다.
이 글을 읽다보니, 벌써 여러 해 전 일본 후쿠오카의 원숭이 공원에 갔을 때 일이 자꾸 떠오른다. 수 천마리의 원숭이가 자연 상태로 사는 그곳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죽은 제 새끼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벌써 보름 째 저러고 있다는 것이다. 죽은 새끼의 다리는 이미 썪어 곧 몸에서 떨어질 듯 간들거리고 있는데, 어미는 여전히 제 새끼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안아 주고 했다. 이런 것을 보면 때로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옛글 속에 솔개는 악역만을 도맡아 하는 새로 나온다. 남의 새끼를 잡아 먹고, 남이 애써 지어놓은 둥지를 슬그머니 차지하는 나쁜 놈이다.
제비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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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진흙을 물기 시작하면 따뜻한 봄날이 시작된다. 언 땅이 풀리고, 집집 처마마다 재잘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지난 해 찾았던 집을 다시 찾아 주면 그것이 고맙고, 새로운 제비가 찾아오면 그것이 또 반갑다.
청나라 때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 중에는 금붕어가, 새 중에는 제비가 사물 중의 신선이라 말할 만하니, 동방삭이 금마문에서 벼슬하며 세상을 피하여 사람들이 이를 해치지 못했던 것과 꼭 같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금붕어는 빛깔은 곱지만 삶으면 맛이 써서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도 금붕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비가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제 집 찾아준 것을 고마워할 뿐, 참새처럼 이를 잡아 구이를 해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살아 별다른 근심이 없고, 듬뿍 사랑만 받으니 신선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한무제 때 동방삭은 벼슬 속에 몸을 감춘 이은(吏隱)이었다. 우스갯 소리 잘하고 낄낄대며 한 세상 건너갔기에 그 험한 시절에 제 한몸을 다치지 않고 삶을 마칠 수 있었다.
또 성호 이익 선생도 〈관물편〉에서 제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제비는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사람과 가깝다.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벌레와 짐승의 해를 피할 수가 있다. 벌레와 짐승은 피하면서 사람은 피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어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비는 고기가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고, 날개가 장식으로 꾸미는데 쓰이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죽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제비가 문득 그렇지 않음을 환히 깨달았다면 또한 높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비 보다 지혜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제비는 사람이 저를 해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짐승의 해를 피한다는 것이다. 제비가 집 들보에 둥지를 틀면 주인에게 길한 일이 있다 해서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잡아 먹는 경우란 없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노래한 〈제비의 하소연〉이다. 원래 따로 제목은 없고, 〈고시(古詩)〉 27수 가운데 하나이다.
제비가 강남 갔다 처음 와서는
지지배배 쉼없이 조잘거리네.
말 뜻은 비록 분명찮으나
집 없는 근심을 하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어째서 거기엔 머물질 않니."
제비가 다시금 조잘대는데
마치 내게 대꾸라도 하는 듯 하다.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홰나무 구멍엔 뱀이 와 뒤집니다."
燕子初來時
지지배배 쉼없이 조잘거리네.
말 뜻은 비록 분명찮으나
집 없는 근심을 하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어째서 거기엔 머물질 않니."
제비가 다시금 조잘대는데
마치 내게 대꾸라도 하는 듯 하다.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홰나무 구멍엔 뱀이 와 뒤집니다."
燕子初來時
남남語不休(남:口+南)
語意雖未明
語意雖未明
似訴無家愁
楡槐老多穴
楡槐老多穴
何不此淹留
燕子復남남
燕子復남남
似與人語酬
楡穴관來啄(황새 관)
楡穴관來啄(황새 관)
槐穴蛇來搜
지붕 위에서 조잘대는 제비가 자꾸 내게 무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가만히 들어보니 집이 없어 걱정이라는 하소연이다.
"저기 저 느릅나무나 홰나무에는 둥지로 쓰기에 꼭 알맞은 구멍도 많은데, 거기에 깃들면 될 것을 왜 걱정하니?"
제비가 대답한다.
"그러면 편한 줄을 모르는 바 아니지요. 그렇지만 느릅나무 구멍에는 이따금씩 황새가 쳐들어 와서 제 집이라며 그 날카로운 부리로 꼭꼭 쪼아 대지요. 홰나무 구멍 속에는 구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새끼들을 다 잡아 먹는 답니다. 그러니 어째요. 열심히 진흙을 물어 처마 밑에 둥지를 지을 밖에요."
"저기 저 느릅나무나 홰나무에는 둥지로 쓰기에 꼭 알맞은 구멍도 많은데, 거기에 깃들면 될 것을 왜 걱정하니?"
제비가 대답한다.
"그러면 편한 줄을 모르는 바 아니지요. 그렇지만 느릅나무 구멍에는 이따금씩 황새가 쳐들어 와서 제 집이라며 그 날카로운 부리로 꼭꼭 쪼아 대지요. 홰나무 구멍 속에는 구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새끼들을 다 잡아 먹는 답니다. 그러니 어째요. 열심히 진흙을 물어 처마 밑에 둥지를 지을 밖에요."
아마 다산 선생께는 제비가 황새나 뱀 같은 힘있는 자들에게 짓눌려 자기의 터전 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가엾은 백성처럼 보였던가 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도처에 함정과 덫이 발목을 노리고 있다. 수월하겠다 싶어 이미 만들어진 것에 파고 들면, 황새가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고 이마를 쪼고, 뱀이 너 잘 걸렸다 하며 꿀꺽 삼킨다. 그러니 힘들어도 진흙을 한톨 한톨 물어다 거꾸로 매달린 처마 밑에다 둥지를 지을 밖에.
하지만 이 제비집도 이제는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소식이다. 농약으로 곤충들이 다 죽어 먹이 사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제비의 개체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을뿐더러, 그나마 알을 까고 나온 새끼의 생존율도 먹이 공급의 문제 때문에 갈수록 낮아진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그림은 청나라 때 화가 운수평( 壽平)이 그린 〈버들가지와 제비〉란 그림이다. 일렁이는 봄바람에 날개를 꺾어 방향을 트는 제비의 날갯짓이 경쾌하다.
못된 새를 죽인 이야기
정지용은 앞서도 보았듯이 새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수필을 몇 편 남겼는데, 다음에 보는 〈때까치〉란 수필에서도 남의 둥지를 빼앗는 새의 습성에 관한 관찰이 보인다.
평나무 위에 둥그런 것은 까치집에 틀림없으나 드는 것도 까치가 아니요 나는 놈도 까치가 아닙니다.
몸은 가늘고 길어 가슴마저 둥글지 못하고 보니 족제비처럼 된 새입니다.
빛깔은 햇살에 번득이면 남색이 짜르르 도는 순흑색이요 입부리는 아조 노랗습니다. 꼬리도 긴 편이요 눈은 자색이라고 합디다. 까치가 분명히 조선 새라고 보면 이 새는 모양새가 어딘지 물 건너적이 아니오리까? 벙어리가 아닌가고 의심할만치 지저귀는 꼴을 볼 수가 없고 드나드는 꼴이 어딘지 서툴러 보이니 까치집에는 결국 까치가 울어야 까치집이랄 수 밖에 없습니다.
음력 정 2월에 까치가 마른 나뭇가지와 풀을 물어다가 보금자리를 둥그렇게 지어 놓고, 3,4월에 새끼를 치는 것인데 뜻 아니한 침략을 받아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배앗긴다는 것입디다. 이 침략자를 강진 골에서는 `때까치`라고 이르는데, 까치가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 보금자를 얽는 정교한 법을 타고난 것이라고 하면, 그만 재주도 타고나지 못한 때까치는 남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드는 투쟁력을 가질 뿐인가 봅니다.
알고 보면 때까치는 조금도 맹수류에 들 수 있는 놈이 아니요 다만 까치가 너무도 순하고 독하지 못한 탓이랍니다. 우리 인류의 도의로 따질 것이면 죄악은 확실히 때까치한테 돌릴 것이올시다. 그러나 이 한더위에 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태여 때까치를 인류의 법대로 다스리고 까치를 다시 불러올 맛도 없는 일이고 보니 때까치도 절로 너그러운 인류의 정원을 장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보금자리를 빼앗긴 까치떼가 대거 역습하여 와서 다시 탈환하는 꼴을 볼 수가 있으량이면 낮잠이 달아날만치 상쾌한 통쾌를 느낄만한 것입니다.
까치가 애써 지은 제 둥지를 때까치에 빼앗긴 이야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때까치가 까치 둥지를 빼앗아 차지하는 경우는 없고, 정지용이 새의 모습을 설명한 것을 보거나, 실제로 파랑새가 까치 둥지를 차지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 말하고 있는 때까치는 진짜 때까치가 아니라, 파랑새를 말한 것이지 싶다.
까치는 솔개나 파랑새에게 제 둥지를 툭 하면 빼앗기는 조금 멍청한 새이기도 하다. 까치가 살다가 버리고 간 빈집을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살고 있는 집을 차지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달리 보면, 까치의 집 짓는 솜씨가 그만큼 야무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관빈(趙觀彬)의 《회헌집(悔軒集)》을 보면 〈일악조설( 惡鳥說)〉이란 글이 실려 있다. 못된 새를 죽인 이야기란 뜻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임신년 봄에 내가 강화에 머물러 있을 때 일이다. 정당(正堂)의 남쪽에 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까치 두 마리가 그 위에 둥지를 틀었다. 온 병영의 장수와 아전들이 모두 길조라며 좋아들 했다. 나 또한 전부터 몇 차례 경험이 있던 터여서 자못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땔감의 잔 가지를 주어서 둥지 짓는 것을 돕게 했지만, 모진 바람이 불어와 둥지가 땅에 떨어질까봐 걱정이 되어 밖에 있을 때나 안에 있을 때나 눈을 떼지 못했다. 둥지가 마침내 완성되었고, 나도 마침 바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府)의 아전이 와서 나와 이야기 하다가 말이 까치의 둥지에 미치게 되었다. 아전이 말하기를 내가 병영을 떠난 뒤에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못된 새가 까치를 쫓아내고 그 둥지를 차지해버리고는 편안히 살 수 없게 하므로, 까치는 이따금 와서 우짖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나도 몰래 분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 놈의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니, 올빼미의 종류인데 몸집이 조금 작고, 부리가 날카롭고 발톱이 뾰족하니 못된 종자가 분명하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까치는 영물이다. 어찌 저 새가 제 멋대로 못된 짓을 하게 내버려 둔단 말이냐. 병영 막사에 남아 있는 비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총을 잘 쏘는 자를 시켜 쏘아 죽이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세 마리를 잡았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산채로 잡아 내게 가져왔다. 내가 그 모습을 살펴보니 과연 아전의 말과 같았다. 마침내 어린 하인 중 성질이 사나운 녀석에게 맡겨, 묶어다가 가차 없이 발로 차서 죽이게 하였다.
인하여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러한 못된 것들은 흉악하고 요망한 기운에서 나온 것이니, 하늘 이치로 보아 마땅히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다. 그러나 벌레 가운데는 뱀이 있고, 짐승 가운데는 범이 있으며, 새 중에는 또 올빼미의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심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물주가 물건을 만들 때 기운이 혹 잘못 불어넣어져서 선과 악이 뒤섞여 살게 되었고, 악한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을 해치게 만드는 것일까? 요임금은 산택(山澤)을 태우고, 주공(周公)은 맹수를 몰아 냈으니, 위대한 성인이 백성을 위해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지극한 뜻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때 일은 이미 아득히 멀고, 이러한 법도 폐하여 진지가 오래되었다. 새나 짐승 가운데 흉악한 놈들이 제멋대로 날뛰며 새끼를 낳아 번식하는데도 죽여 끊어 버릴 수가 없다면 도리어 상서롭고 착한 동물이 그 해를 입게 될 것이니 이것이 무슨 이치란 말인가? 내가 둥지의 까치를 위해 못된 새를 죽인 것은 또한 옛 성인이 산택에 불을 놓고 맹수를 몰아낸 뜻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종류는 매우 많으니 그 누가 이를 모두 죽일 수 있겠는가?" 총을 잘 쏘아 맞춘 자를 권면하지 않을 수가 없어 돈과 베를 내려 후하게 상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붓을 휘둘러 이 글을 쓴다.
올빼미과에 속한 몸집이 작은 새가 까치를 몰아내고 그 둥지를 차지해 버렸다. 까치는 길조로 널리 인식되어 왔으므로 집에 까치가 둥지를 틀면 상서로운 일이 있을 것이라 하여 모두들 기뻐하곤 했다. 까치가 강화도의 병영 앞뜰에 둥지를 틀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싶어 기뻐했는데, 못된 올빼미가 나타나 둥지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격분하여 조총을 쏘아 올빼미를 죽인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나 죽였다. 그 중 한 마리는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끈으로 묶어 놓고 발로 차서 죽였다. 올빼미는 예전에는 불길하고 재수 없는 새로 여겨졌기에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선악의 가치 기준에 따라 새들을 판단해서 남의 둥지를 빼앗았다고 총을 쏘아 죽이는 것은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일로 여겨진다. 인간의 선악 판단을 기준으로 착한 새와 못된 새를 구분하여, 악을 징치하는 장면은 옛 사람들의 도덕적 가치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만 과연 까치 둥지를 빼앗은 올빼미를 총 쏘아 죽인 그의 행동은 옳은 것이었을까?
흰 까치 이야기
얼마전 충남 서산에서 흰 제비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흰 꿩이나 흰 사슴이 잡혀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온 나라가 기뻐한 일도 있었다. 새나 짐승의 깃털이 온통 희게 변하는 백화(白化) 현상은 이따금씩 관찰되는 일인 모양이다. 고려 때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에도 흰 까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흰 까치는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시대의 길조를 예징하는 상서로움의 상징이 아니라 안타까운 모성의 이야기이다.
수선사(修禪社의 탁연(卓然) 스님은 재상의 아들로 글씨를 매우 잘 썼다. 갑진년(1184) 봄에 경사(京師)에서 강남으로 돌아가다가 계룡산 아래 한 마을을 지나다가 나무 위에 까치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은 하얗고 가슴은 붉은데 꼬리는 검었다.
마을 사람 장복(張福)이 말했다. "이 까치가 와서 둥지 튼 것이 이미 일곱해나 됩니다. 그 새끼를 매년 올빼미가 잡아 먹으니, 소리쳐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슬픈 마음을 자아내더니, 첫해에는 머리가 처음으로 희어지더니, 둘째 해에는 머리가 온통 희어지고, 세해가 되자 몸이 온통 희게 되었습지요. 금년에 요행이 그 재앙을 면하게 되자 꼬리가 점차 도로 검게 되었답니다." 탁연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같은 절의 천영(天英) 스님에게 말했다. 천영 스님이 말했다. "아! 이것은 이른바 금두인(禽頭人), 즉 새의 머리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시를 지었다.
마을 사람 장복(張福)이 말했다. "이 까치가 와서 둥지 튼 것이 이미 일곱해나 됩니다. 그 새끼를 매년 올빼미가 잡아 먹으니, 소리쳐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슬픈 마음을 자아내더니, 첫해에는 머리가 처음으로 희어지더니, 둘째 해에는 머리가 온통 희어지고, 세해가 되자 몸이 온통 희게 되었습지요. 금년에 요행이 그 재앙을 면하게 되자 꼬리가 점차 도로 검게 되었답니다." 탁연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같은 절의 천영(天英) 스님에게 말했다. 천영 스님이 말했다. "아! 이것은 이른바 금두인(禽頭人), 즉 새의 머리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시를 지었다.
원망 기운 머리에 쌓여 눈 덮인 산 이루었고
핏자욱 가슴 적셔 붉은 밭이 되었구나.
네가 만약 남의 자식 괴롭히지 않는다면
사해의 흰 머리가 하루만에 검게 되리.
怨氣積頭成雪嶺
血痕沾臆化丹田
渠如不腦他家子
四海霜毛一日玄
血痕沾臆化丹田
渠如不腦他家子
四海霜毛一日玄
겉모습은 새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안에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고 해서 금두인(禽頭人)이라고 했다. 까치가 털이 희게 변한 것은 새끼를 잃은 근심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가슴이 붉게 물든 것은 가슴이 아프다 못해 피멍이 든 것이었다. 꼬리가 조금 검은 것은 이제 새끼를 기를 수 있게 된 것이 기뻐, 본래의 마음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미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와 같은데, 오늘날에는 자기 자식을 내다버리는 부모도 많다. 사람이 새만도 못한 세상이 되었다.
올빼미가 다른 새의 새끼를 잡아 먹는 못된 습성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말하자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못된 새다. 그러고 보면 앞서 조관빈이 까치 둥지를 빼앗은 올빼미를 총으로 쏘아 죽인 일을 당시 사람의 정서로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은 윤무부 교수의 《한국의 새》에 실린 흰 까치의 사진이다. 이 까치는 어째서 깃털이 온통 희게 변한 것일까? 근처에 못된 올빼미라도 있었던가? 위 글을 읽고 이 사진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안타깝다.
물총새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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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는 그 아름다운 비취 빛의 깃털로 인해 많은 시인과 화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물총새는 고독을 즐기는 새다. 물가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수면 가까이로 올라오는 작은 물고기를 노리며 몇 시간이고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보통 물총새는 자기 구역 몇 곳에 감시소를 마련해 둔다.
중국 시인들도 당나라 때 육구몽(陸龜蒙)을 비롯하여 후한 때 채옹(蔡邕)·전기(錢起)·최덕부(崔德符)·한악(韓 )·육유(陸游) 등 유명한 시인들이 모두 이 새를 노래한 작품을 남겼다. 육구몽의 것만 여기에 소개한다.
붉은 옷깃 푸른 깃 알록달록 고운데
안개 꽃길 떨쳐와 가는 가지 올랐네.
봄물이 불어나 고기 잡기 쉬우니
비바람도 마다 않고 앉았을 때 많구나.
紅襟翠翰兩參差
徑拂煙花上細枝
春水漸生魚易得
不辭風雨多坐時
徑拂煙花上細枝
春水漸生魚易得
不辭風雨多坐時
1구에서 `붉은 옷깃`을 말한 것은 이 새의 앞가슴이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고운 날개깃을 지닌 물총새가 안개 자옥한 숲길에서 나와 물가에 있는 가는 가지 위에 올라 앉아있다. 봄이 왔고, 물이 불어났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자꾸만 뻐끔거린다. 비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적셔도 물총새는 나뭇가지 위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 물고기만 나타나면 곧장
수면 위로 차고 내려 물고기를 낡아채려는 속셈이다.
다음은 이부재의 〈그리움〉이란 작품이다. 물총새 한 마리가 연꽃이 핀 물가 나뭇 가지에 혼자 앉아 있다. 화가는 이런 시를 붙여 자신의 마음을 얹었다.
그리움은 진창이라도 좋다.
이것이 네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내 살에 불을 놓아
그대 강 건너리.
이것이 네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내 살에 불을 놓아
그대 강 건너리.
아! 이 얼마나 치열한 사랑인가. 그대를 향해 가는 길이 발목이 푹푹 빠지는 진창이라도 나는 마다하지 않겠다. 그 길을 가야만 그대에게 도달할 수 있다면, 내 살에 불을 지펴서라도 그대 있는 저 강을 건너 가고야 말리라.
아마도 화가는 수양버들이 하늘대는 연못 가에서 몇 시간 채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물총새의 뒷모습을 보았겠지. 그 끈질긴 기다림의 시간을 훔쳐보다가 가슴 속에 간직한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 겨웠던 모양이다. 물총새의 하염없는 기다림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눈 먼 기다림을 읽었다. 오! 놀라운 사랑의 신비여.
이청준의 소설 가운데 〈빗새〉란 단편이 있다. 고향을 떠나 소식도 끊긴 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비 속에서 그 비를 다 맞으며 울고 있는 빗새를 타관살이에 지쳐 떠돌 아들의 모습에 겹쳐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 속의 빗새도 바로 물총새다.
물총새는 연못이나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이다. 또 이 새가 여름 철새인지라, 그림 속에서는 언제나 연꽃과 함께 등장한다. 그 깃털이 너무도 아름답고 울음소리 또한 맑고 사랑스러워 시인 화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모양이다.
백석의 시 <배꾼과 새 세마리>
어느 때 어느 곳에 배꾼 하나 살았네
하루는 난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더니
센 바람에 돛 꺾이고
큰 물결에 노를 앗겨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밤낮 없이 떠 흘렀네
하루는 난바다에 고기잡이 나갔더니
센 바람에 돛 꺾이고
큰 물결에 노를 앗겨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밤낮 없이 떠 흘렀네
배고프고 목마르고 비 맞아 몸은 얼고
가엾은 이 배꾼은 거의거의 죽어갔네
가엾은 이 배꾼은 거의거의 죽어갔네
그러자 난데없는 새 세 마리 날아왔네
한 새는 고물 밀고
한 새는 이물 끌고
또 한 새는 뱃전 밀어
어느 한 섬 다달았네
한 새는 이물 끌고
또 한 새는 뱃전 밀어
어느 한 섬 다달았네
섬에 오른 이 배꾼 목숨 건져 고마우나
앉아 걱정 서서 걱정
자꾸만 걱정했네
앉아 걱정 서서 걱정
자꾸만 걱정했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돛대 없어 걱정이다 노가 없어 걱정이다"
"돛대 없어 걱정이다 노가 없어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돛대 삿대 내 만들게"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돛대 삿대 내 만들게"
이때부터 톱새는 하루 종일 톱질했네
삐꿍삐꿍 톱질했네
돛대감 노감을 자르노라고
삐꿍삐꿍 톱질했네
돛대감 노감을 자르노라고
돛대 없어 노대 없어 걱정하던 이 배꾼
돛대 얻어 도대 얻어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깨나 걱정이네
돛대 얻어 도대 얻어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깨나 걱정이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들물 몰라 걱정이다 썰물 몰라 걱정이다"
"들물 몰라 걱정이다 썰물 몰라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들물 썰물 내 알릴게"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들물 썰물 내 알릴게"
이때부터 도요새는 물때마다 외쳐댔네
도요도요 외쳐댔네
밀물이 또 미는 걸 알리노라고
도요도요 외쳐댔네
밀물이 또 미는 걸 알리노라고
들물 몰라 썰물 몰라 걱정하던 이 배꾼
들물 알고 썰물 알아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깨나 걱정이네
들물 알고 썰물 알아 걱정도 없으련만
그러나 웬일인지 자나깨나 걱정이네
그러자 새 한 마리 배꾼보고 물었네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배꾼 아저씨, 배꾼 아저씨, 무슨 걱정 그리 해요?"
이 말 들은 배꾼이 대답하는 말
"무채 없어 걱정이다 외채 없어 걱정이다"
"무채 없어 걱정이다 외채 없어 걱정이다"
이때에 새 한 마리 얼른 하는 말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무채 외채 내 썰을게"
"그런 걱정 아예 마오 무채 외채 내 썰을게"
이때부터 쑥쑥새는 저녁이면 채 썰었네
쑥쑥 쑥쑥 채 썰었네
무나물 외나물을 무치노라고
쑥쑥 쑥쑥 채 썰었네
무나물 외나물을 무치노라고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들물 따라 썰물 따라 그물질을 나갔다네
도요새가 알리는 소리 듣고
들물 따라 썰물 따라 그물질을 나갔다네
도요새가 알리는 소리 듣고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돛을 달고 노를 저어 먼 바다에 배질했네
톱새가 잘라놓은 돛대와 노로
돛을 달고 노를 저어 먼 바다에 배질했네
톱새가 잘라놓은 돛대와 노로
그러자 이 배꾼은 걱정 근심 하나 없이
무채나물 외채나물 저녁 찬도 맛있었네
쑥쑥새가 썰어 무친 채나물로
무채나물 외채나물 저녁 찬도 맛있었네
쑥쑥새가 썰어 무친 채나물로
백석 시인의 이 시는 1957년 북한에서 간행된 <집게네 네 형제>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솔출판사에서 간행한 <모닥불>이란 백석시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톱새와 도요새, 그리고 쑥쑥새가 등장한다. 톱새는 톱질할 때 나는 삐꿍삐꿍 소리를 내며 운다. 도요새는 도요 도요 하며 밀물과 썰물을 알려 준다. 쑥쑥새는 쑥쑥쑥쑥 하며 무채 써는 소리를 내며 운다.
삐꿍삐꿍 우는 톱새는 아마도 물레새인 듯 하다. 물레새는 삐꺽삐꺽 또는 찌꺽찌꺽 같은 소리를 내는데, 물레를 돌릴 때 나는 삐꺽 소리와 닮았다 해서 물레새라 부른다. 듣기에 따라 이 소리는 톱 켜는 소리로 들을 수도 있겠다. 물레새는 습성 상 숲속에서 주로 울어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여름 철새다.
도요새는 봄과 가을철에 우리나라의 갯벌지역에서 먹이를 찾고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간다. 도요새들은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교차지점, 주로 갯벌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서 먹이를 찾는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물때마다 도요새가 나타나므로 마치 물때를 알려주는 것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도요새는 썰물을 따라 나갔다가 밀물이 될 무렵이면 집단을 이루어 날거나 갯벌 가를 걸어다니며 먹이를 먹으므로, 도요새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이제 곧 물이 들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쑥쑥새는 바로 쏙독새다. 쏙독새는 `쏙똑똑똑` 하는 아주 빠른 연속음을 내는데, 이것이 마치 도마 위에서 무채를 연속적으로 써는 소리와 같이 들린다. 경상도에서는 무채 써는 것을 쭉지 친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새를 쭉지새라고도 불렀다. 북한에서는 이를 쑥쑥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이 시가 말해준다. 쏙독새는 워낙에 특이한 울음 소리 때문에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새 울음소리를 가지고 펼친 재미난 연상과 상상이 흥미롭다.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든 새 이야기의 한 자락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시다. 백석의 이 동시집은 여러가지 우화를 시로 담아낸 재미난 작품이다. 그의 시세계는 참으로 보석같이 아름답다. 여태껏 진흙 속에 묻혀서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3,4구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일까? 조선 중기 권응인의 <송계만록>이란 책에 보면 뻐꾸기 은사(隱士)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들이 강호자연이 좋다고 강호에 숨어 살면서도 현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뻐꾹 뻐꾹 하며 자기 존재를 알리는 뻐꾸기처럼 나 여기 숨어 있다며 세상을 향해 저 있는 곳을 알리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뻐꾸기 은사들은 숨어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사는 뜻높은 선비라는 소문을 얻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는 풍자다.
이런 것은 뻐꾸기의 생태에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한편으로 당시 지식인의 행태와 관련되는 재미있는 생각을 읽게 해 준다. 새가 늘 인간의 가까이에 있었던 까닭이다.
시비를 따지는 제비
초당 봄 비 속에 사립을 닫아 거네.
사립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주렴까지 내리고 앉았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제비가 내 심사를 건드린다. 한가히 세상 잊고 지내겠다는 날더러 자꾸만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고, 나만 편하면 좋은 거냐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보자는 듯이 따지고 들더라는 것이다.
제비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며 우는 것을 시인은 `시시비비 시시비비`쯤으로 들은 것이다. 뭔가 바깥 세상과 불편한 일이 있어 들어앉기는 했지만, 그러고만 있자니 나몰라라 하고 나만 편하자는 것은 아닌지 싶어 은근히 자의식이 발동하는 참에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와 시시비비 시시비비 하고 울어대니 공연히 해 본 소리다.
제주도의 까마귀, 제주도의 까마귀
천하에 까마귀 다 있다 해도
제주도의 까마귀 같은 건 없네.
네 무리 어찌 그리 많이도 울며 날고
어찌 그리 사람 집 근처까지 오느냐.
사람들 네 모습과 소리를 싫어하여
마당에 많던 돌 너 맞히느라 하나도 없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 하나
사생은 하늘에 달린 것 까마귀가 어찌 하랴만,
다만 능히 시끄럽게 어지럽혀서
또한 한가지 근심 더하기에 충분하구나.
대낮에도 사람 곁서 부뚜막을 엿보다가
기물을 차 깨뜨리고 밥과 고기 훔쳐가네.
닭이 알을 낳아도 병아리를 못 까니
네가 모두 훔쳐먹어 둥지엔 알이 없네.
집에서야 닭이 중하지 까마귀는 아끼잖아
감히 장차 병아리로 네 무리를 배불릴까?
활을 당겨 쏘아봐도 아무런 소용없고
날개 쳐서 쫓으려도 웅크려 가만있네.
나무 심은 본래 뜻은 좋은 새들 오라함인데
좋은 새 오지 않음 네가 살기 때문이라.
밤중엔 높은 나무 위에서 자고
새벽엔 하마 벌써 서로를 불러댄다.
바람 불고 파도 쳐서 모두들 근심이라
내 외론 꿈조차 태백산 어귀도 이르지 못하게 하네.
나무를 찍자니 나무가 아깝고
멀리로 내쫒자니 마땅한 방법 없네.
내 장차 옆집 사냥꾼에게 부탁하리,
사냥꾼의 탄환은 사슴 옆구리도 뚫으니
널 쏘아 죽임도 잠깐 사이이리라.
떼로 몰려와 새끼를 지킨 까치
쏙독새의 울음소리는 듣기에 따라 `쯧쯧쯧쯧`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들으면 머슴아이가 소를 몰며 `이려 이려, 쯧쯧쯧쯧` 하는 소리가 된다. 일부 지방에서 이 새를 두고 머슴새로 부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이를 한자식으로 적어 호독조(呼犢鳥)라고도 했다. `호독`이란 `송아지를 부른다`는 뜻이 되고, `호독`과 `쏙독`은 소리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어 이렇게 불렀다. 〈호독조(呼犢鳥)〉시는 서산대사의 《청허집(淸虛集)》에 실려 있다.
고기 잡이의 명수 물총새
비단 날개 금빛 부리 아침 해에 반짝이며
붉은 연꽃 연못 가서 득의롭게 나는구나.
호해(湖海)가 넓은 줄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기를 엿보느라 괜한 애를 쓰느냐.
錦翎金 耀朝暉 紅藕池邊得意飛
有底不知湖海大 窺魚空自費心機
새끼를 죽인 엽기적인 제비
* 원고 작성과정에서 톱새는 국립환경연구원의 박진영 선생의 도움 말씀이 있었고, 도요새에 대한 설명은 유승화 선생의 도움 말씀이 있었다. 고마운 뜻을 전한다.
논어를 읽는 제비
유몽인이 임진왜란 때 중국 사람 황백룡을 만났다. 그가 유몽인에게 조선 사람은 몇 가지 경서를 공부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삼경 또는 사경을 읽지요. 심지어는 제비나 개구리, 꾀꼬리도 경서 하나 쯤을 읽을 줄 알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비는 《논어》를 읽을 줄 알지요. 그래서 `지위지지(知謂知之), 불지위불지(不知謂不知), 시지야(是知也)`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삼경 또는 사경을 읽지요. 심지어는 제비나 개구리, 꾀꼬리도 경서 하나 쯤을 읽을 줄 알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비는 《논어》를 읽을 줄 알지요. 그래서 `지위지지(知謂知之), 불지위불지(不知謂不知), 시지야(是知也)`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소리대로 빨리 읽으면 마치 지지배배 하고 조잘대는 제비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개구리는 《맹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인데, 《맹자》 가운데 `독락악여중락악숙락(獨樂樂與衆樂樂孰樂`이란 구절을 또박또박 소리대로 읽으면 개구리의 개굴개굴 하는 소리와 흡사하기에 하는 말이다. 이 말은 "혼자 풍류를 즐기는 것과 무리가 풍류를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거운가?"란 뜻이다.
또 꾀꼬리는 《장자》를 잘 읽는다. 《장자》에 "이지유지지비지(以指喩指之非指), 불약이비지유지지비지(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 이마유마지비마(以馬喩馬之非馬), 불약이비마유마지비마야(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란 구절을 빨리 읽으면 흡사 꾀꼬리의 재잘대는 소리와 흡사했던 까닭이다. "엄지를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엄지가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 백마를 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백마가 아닌 다른 동물을 가지고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조선의 제비는 《논어》를 능히 읽을 줄 알았고, 꾀꼬리는 그 어려운 《장자》를 암송할 줄 알았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그는 〈조어십삼편(鳥語十三篇)〉 연작 가운데 〈제비〉란 작품을 또 남겼다.
제비 조잘조잘 무슨 소리를 내나
아는 것 안다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 하네.
깃털도 고기도 가죽도 쓸데 없으니
인가에 둥지 쳐도 두려울 것 없어라.
마당에 한 알 콩 떨어졌길래 삼키니 비리고 달콤해라
비리고 달콤한데 어이해 하루 종일 조잘대느냐.
燕燕作何辭 知知之不知不知之
毛不用肉不用皮不用 托巢人家吾何恐
庭有一粒黃豆落呑之醒且甘 醒且甘終日何남남
아는 것 안다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 하네.
깃털도 고기도 가죽도 쓸데 없으니
인가에 둥지 쳐도 두려울 것 없어라.
마당에 한 알 콩 떨어졌길래 삼키니 비리고 달콤해라
비리고 달콤한데 어이해 하루 종일 조잘대느냐.
燕燕作何辭 知知之不知不知之
毛不用肉不用皮不用 托巢人家吾何恐
庭有一粒黃豆落呑之醒且甘 醒且甘終日何남남
제비는 깃털도 쓸데 없고, 구워도 먹을 것이 없고, 가죽도 쓸모가 없어 사람들이 잡을 생각을 않는다. 제비가 그 눈치를 알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열심히 《논어》를 외고 있다. 그러다 마당에 떨어진 콩 한 알을 날름 주워 먹으니 비릿한 것이 또 들큰하기도 해서 이번엔 도대체 무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대며 하루 종일 지지배배 지지배배 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화기 때 최영년도 그의 〈백금언(百禽言)〉 가운데서 제비를 이렇게 찬미했다.
사람들은 안다고 말하며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지. 아는 것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네. 그 이른바 안다는 것은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닐세. 너의 `앎`을 배움은 성인의 앎이로다.
人之爲知, 未有不知. 知而爲知, 不知亦知. 其所謂知, 都未可知. 爾之學知, 聖人之知.
人之爲知, 未有不知. 知而爲知, 不知亦知. 其所謂知, 都未可知. 爾之學知, 聖人之知.
세상 사람들은 조금 아는 것은 젠 체 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한다. 정작 아는 것 하나 없는 인간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제비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제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야 말로 공자께서 가르치신 `앎`의 가르침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사람이 제비만 영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새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연상을 일으키는 것은 참 재미가 있다.
술래잡기 새
조선 후기의 시인 이양연(李亮淵)의 <미장조(迷藏鳥)>란 작품이다. `미장迷藏`은 우리말로 하면 술래잡기라는 말이다.
저 먼 곳의 술래잡기 새
산 그늘 봄날에 술래잡기 하누나.
몸 감추고 스스로를 뽐내며 우니
네 숨음이 참 아님 부끄러워라.
遠遠迷藏鳥 迷藏岑월春
藏身鳴自衒 愧爾隱非眞
藏身鳴自衒 愧爾隱非眞
시에 붙은 주석에는 "우리나라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이 뻐꾸기 소리를 내므로 뻐꾸기를 이름하여 술래잡기새라고 한다"고 써놓았다.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술래가 저 숨은 곳을 못찾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으면 숨은 녀석은 `뻐꾹 뻐꾹` 하면서 공연히 제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래서 술래를 저 있는 쪽으로 유인하자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3,4구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일까? 조선 중기 권응인의 <송계만록>이란 책에 보면 뻐꾸기 은사(隱士)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들이 강호자연이 좋다고 강호에 숨어 살면서도 현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뻐꾹 뻐꾹 하며 자기 존재를 알리는 뻐꾸기처럼 나 여기 숨어 있다며 세상을 향해 저 있는 곳을 알리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뻐꾸기 은사들은 숨어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사는 뜻높은 선비라는 소문을 얻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는 풍자다.
다시 말해 선비들이 입으로는 귀거래를 되뇌이고 은거를 예찬하면서도 속 마음은 티끌 세상에 있어, 자꾸만 세상을 향해 제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꼴을 두고 권응인은 눈꼴이 시어 `뻐꾸기 은사`란 말로 이들을 조롱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뻐꾹 뻐꾹 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뻐꾸기는 영문도 모르고 술래잡기새란 별명을 얻은 셈이다. 제 몸을 봄 숲 속에 감추어 두고 자꾸 나 여기 있다고 뻐꾹 뻐꾹 하고 우니, 너의 속셈도 아마 숨는데 있지 않고 나 여기 있으니 찾아오라고 제 자신을 드러내는데 있는 모양이라고 삐죽거린 것이다.
이런 것은 뻐꾸기의 생태에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한편으로 당시 지식인의 행태와 관련되는 재미있는 생각을 읽게 해 준다. 새가 늘 인간의 가까이에 있었던 까닭이다.
시비를 따지는 제비
초당 봄 비 속에 사립을 닫아 거네.
온갖 일 유유하게 한 웃음에 부쳐두고
얄밉구나 주렴 밖 강남 갔던 제비야
한가한 사람더러 시비를 말하다니.
萬事悠悠一笑揮 草堂春雨掩松扉
生憎簾外新歸燕 似向閑人說是非
生憎簾外新歸燕 似向閑人說是非
이식(李植)의 〈영신연(詠新燕)〉이란 작품이다. 앞서는 제비가 논어를 읽을 줄 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갑자기 제비가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하면서 시비를 따져온다는 이야기다. 무슨 얘길까?
제목에서 `새로 온 제비를 노래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봄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 것을 보고 마음에 무슨 느낌이 일어 시를 지었던 모양이다. 세상 만사를 한 웃음에 부쳐둔다고 했으니 뭔가 언짢은 일이 있었던 듯도 싶다. 겨우내 먼지만 풀풀 날리던 초당에 봄비가 촉촉히 내린다. 솔잎으로 가린 사립문도 닫아 걸고, 세상 일 상관 않고 앉아 지내겠다는 다짐이다.
사립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주렴까지 내리고 앉았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제비가 내 심사를 건드린다. 한가히 세상 잊고 지내겠다는 날더러 자꾸만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고, 나만 편하면 좋은 거냐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보자는 듯이 따지고 들더라는 것이다.
제비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며 우는 것을 시인은 `시시비비 시시비비`쯤으로 들은 것이다. 뭔가 바깥 세상과 불편한 일이 있어 들어앉기는 했지만, 그러고만 있자니 나몰라라 하고 나만 편하자는 것은 아닌지 싶어 은근히 자의식이 발동하는 참에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와 시시비비 시시비비 하고 울어대니 공연히 해 본 소리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서예가 이광사(李匡師)의 〈영연(詠燕)〉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상을 찾아볼 수 있다.
먹이 줘도 곡식은 마다하면서
시비를 사절한다 말을 하누나.
미운 것들 원래부터 오지 않건만
하루 종일 들보 둘레 날아다니네.
營食違粱稻 多言謝是非
嫌猜元不到 終日繞梁飛
시비를 사절한다 말을 하누나.
미운 것들 원래부터 오지 않건만
하루 종일 들보 둘레 날아다니네.
營食違粱稻 多言謝是非
嫌猜元不到 終日繞梁飛
벌레 먹는 새라 벼나 기장 같은 곡식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입은 살아서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고 계속 말을 해댄다. 정말로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왜 벌레만 먹고 곡식은 먹지 않는게냐. 시인은 애꿎은 제비에게 또 이렇게 시비를 건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 사는 집 들보 위에 있는 둥지니 다른 짐승이 해칠 일도 없을텐데, 뭐가 그리 조바심이 나서 안달인지, 하루 종일 들보 둘레를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다스러운 제비 울음소리를 듣다가 장난기가 동해 농을 쳐 보았다.
제주도의 까마귀 떼
제주도의 까마귀, 제주도의 까마귀
천하에 까마귀 다 있다 해도
제주도의 까마귀 같은 건 없네.
네 무리 어찌 그리 많이도 울며 날고
어찌 그리 사람 집 근처까지 오느냐.
사람들 네 모습과 소리를 싫어하여
마당에 많던 돌 너 맞히느라 하나도 없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 하나
사생은 하늘에 달린 것 까마귀가 어찌 하랴만,
다만 능히 시끄럽게 어지럽혀서
또한 한가지 근심 더하기에 충분하구나.
대낮에도 사람 곁서 부뚜막을 엿보다가
기물을 차 깨뜨리고 밥과 고기 훔쳐가네.
닭이 알을 낳아도 병아리를 못 까니
네가 모두 훔쳐먹어 둥지엔 알이 없네.
집에서야 닭이 중하지 까마귀는 아끼잖아
감히 장차 병아리로 네 무리를 배불릴까?
활을 당겨 쏘아봐도 아무런 소용없고
날개 쳐서 쫓으려도 웅크려 가만있네.
나무 심은 본래 뜻은 좋은 새들 오라함인데
좋은 새 오지 않음 네가 살기 때문이라.
밤중엔 높은 나무 위에서 자고
새벽엔 하마 벌써 서로를 불러댄다.
바람 불고 파도 쳐서 모두들 근심이라
내 외론 꿈조차 태백산 어귀도 이르지 못하게 하네.
나무를 찍자니 나무가 아깝고
멀리로 내쫒자니 마땅한 방법 없네.
내 장차 옆집 사냥꾼에게 부탁하리,
사냥꾼의 탄환은 사슴 옆구리도 뚫으니
널 쏘아 죽임도 잠깐 사이이리라.
김락행(金樂行, 1708-1766)의 〈탐라오(耽羅烏)〉란 작품이다. 제주도의 무서운 까마귀떼 이야기이다. 제주도에 귀양가 있을 때, 집안은 물론 부뚜막까지 쳐들어와 그릇 뚜껑을 차서 깨뜨리며 밥이고 고기고 간에 사정없이 먹어치우던 까마귀떼의 가증스런 행동에 지칠대로 지쳐 원망과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집에 닭이 알을 낳아도 다 먹어 치워 병아리조차 부화할 수가 없다. 참다못해 화살로 쏘아봤자 워낙 무리가 많아 아무 소용이 없고, 작대기로 쳐도 가만 앉아 꿈쩍도 않고 맞는다는 것이다. 밤에는 나무 가득 새까맣게 올라 잠을 자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까악까악 대며 먹을 것을 찾아 집 근처로 몰려든다.
풍파가 심한 날은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멀리 태백산 아래 동해 바닷가 고향집을 꿈에서나마 가볼까 싶어도, 까마귀 떼의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이 들 수가 없다. 견디다 못해 그는 이웃집 사냥꾼을 청해다 사슴의 옆구리도 능히 뚫을 수 있는 총알로 모두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몇 십년 전까지도 제주도의 까마귀떼는 유명했던 모양이다.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은 〈탐라점철〉이란 글에서 제주도의 까마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물 맑고 산 아름다운 이 섬에 보기만 하여도 정 떨어지는 까마귀가, 듣기만 하여도 흉물스런 탁한 목소리로 까왁까왁 밤낮 난동을 친다. 물이 맑으면 노래 맑은 물새라도 살 법하고 산이 아름다우면 빛 고운 산새라도 살 법한데 이렇단 물새 이렇단 산새 한 마리 없이 이 어인 까마귀란 말인가. 빛이 까만 새가 하필 까마귀 뿐이랴만 그래도 다들 발이나 주둥이가 색다른 빛을 지녔더라. 주둥이도 발도 왼통 새까맣게 몸을 더럽힐 법이야 어디 있는가. 제주에는 바람이 세다. 어쩌면 바다에 바람이라니 바람이 셈은 당연한 바람일 것이오, 바다엔 파도라니 파도가 셈은 바다의 운치를 돕는 것으로 오히려 상줄 바로되 이 바람이 파도 소리에 까마귀 소리가 어울려 제주의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한다는 것은 모름지기 제주의 욕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간 한두 마리도 아니요, 수천 수만으로 세일 수도 없는 떼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고 흉물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떠돌다가는 행길이나 지붕이나 해안에까지도 격에 맞지 않게 새까맣게 나려와 깔려서는 어쩌자는 노릇인지 목춤을 추어가며 까왁신다. 아무리 까마귀 제소리라고 해도 지붕 위에 따라 올라앉아서 방 안을 들여다보며 까왁심을 볼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으리라.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 없었을 제주도에서, 그의 눈에도 수천 수만의 무리로 하늘을 뒤덮고 행길을 뒤덮으며 까왁시는 까마귀 떼가 몹시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제주일보에 실린 사설을 보니, 지금은 그 가증스런 까마귀 떼가 있던 자리에 까치들이 극성을 부리는 모양이다. 단감 재배 농가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고, 텃새 철새는 물론 둥지에서 품고 있는 알마저도 까치의 포식 대상이 되고 있어 생태계에도 심각한 파괴를 가져오고 있다는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 까치는 원래 제주도에 없던 것을 길조라고 몇 마리 들여온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수렵협회 회원을 동원해서 이 해로운 새를 집단 사냥하여 아예 씨를 말리기로 작정했다고 하니, 이래저래 금석(今昔)의 감회가 없지 않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지붕 위고 어디고 할 것 없이 수천 수만 마리로 떼를 지어 횡행하던 까마귀 떼들은 지금은 다 어디 갔을까? 어쩌다 그 자리에 까치 떼가 들어와 사냥꾼을 동원할 생각까지 하게 만든걸까? 지금부터 250년 전 제주도로 유배된 귀양객이 그 횡포를 견디다 못해 이웃 사냥꾼 생각을 했던 것처럼, 지금 제주도도 사냥꾼을 동원해 까치 멸종에 나설 작정이라고 한다.
애써 지은 감귤 농사를 다 망치고, 다른 새들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행태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제주도민의 입장을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려니와, 그 왕성한 번식력과 적응력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장 흔한 새가 되어 버린 까치의 입장도 난처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떼로 몰려와 새끼를 지킨 까치
펄펄 나는 까치가 있어
내 집 서편 나무서 새끼를 쳤네.
황소같이 건장한 이웃집 아이
나무 올라 둥지 밑에 이르렀다네.
어미가 먹이를 구해 와서는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고,
사생결단 사람 향해 곧장 내달아
제 몸이 으깨져도 알지 못할듯.
아이의 머리를 쪼으려다가
갑자기 멀리로 날아가누나.
한 마리 까치가 동에서 오고
서너 마린 서편에서 몰려들었지.
잠깐 만에 열 마리 백 마리 되어
변방 병사 난리에 나아가는듯.
깍깍 깍깍 시끌벅적 깍깍대면서
이리저리 날면서 새낄 지키네.
동편 나무 있던 놈은 서편 나무로
서편 가지 있던 놈은 남쪽 모서리로.
갑작스레 나뭇가지 떨쳐 일어나
몸 번드처 구름 안개 속으로 들어,
깍깍 대며 다투어 날아 들오니
물 다 마른 구덩이의 물고기 같네.
다급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았지.
둥지를 에워싸 한 바퀴 둘러
까치 떼 있는대로 성내며 노해.
남아있는 새끼들은 둥지 곁에 앉아서
목 빼어 제 어미가 먹이 주길 기다리네.
어미가 동편으로 오면 동편으로 가 앉고
서편으로 오면 서편으로 돌아보네.
아이 녀석 머쓱해져 내려 왔지만
성 덜 풀린 까마귀는 여태 화내네.
무리로 모여선 서로 소리지르며
성공을 서로에게 알려주는 듯.
흩어져 날아가 뵈지 않더니
두 마리 까치 한가로이 깃털 다듬네.
기쁜 듯 새끼 곁에 가까이 가서
머리 털며 모이를 먹이는구나.
내 집 서편 나무서 새끼를 쳤네.
황소같이 건장한 이웃집 아이
나무 올라 둥지 밑에 이르렀다네.
어미가 먹이를 구해 와서는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고,
사생결단 사람 향해 곧장 내달아
제 몸이 으깨져도 알지 못할듯.
아이의 머리를 쪼으려다가
갑자기 멀리로 날아가누나.
한 마리 까치가 동에서 오고
서너 마린 서편에서 몰려들었지.
잠깐 만에 열 마리 백 마리 되어
변방 병사 난리에 나아가는듯.
깍깍 깍깍 시끌벅적 깍깍대면서
이리저리 날면서 새낄 지키네.
동편 나무 있던 놈은 서편 나무로
서편 가지 있던 놈은 남쪽 모서리로.
갑작스레 나뭇가지 떨쳐 일어나
몸 번드처 구름 안개 속으로 들어,
깍깍 대며 다투어 날아 들오니
물 다 마른 구덩이의 물고기 같네.
다급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았지.
둥지를 에워싸 한 바퀴 둘러
까치 떼 있는대로 성내며 노해.
남아있는 새끼들은 둥지 곁에 앉아서
목 빼어 제 어미가 먹이 주길 기다리네.
어미가 동편으로 오면 동편으로 가 앉고
서편으로 오면 서편으로 돌아보네.
아이 녀석 머쓱해져 내려 왔지만
성 덜 풀린 까마귀는 여태 화내네.
무리로 모여선 서로 소리지르며
성공을 서로에게 알려주는 듯.
흩어져 날아가 뵈지 않더니
두 마리 까치 한가로이 깃털 다듬네.
기쁜 듯 새끼 곁에 가까이 가서
머리 털며 모이를 먹이는구나.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인 황상(黃裳)의 〈군작행(群鵲行)〉이란 작품이다. 요컨대 동네 장난꾸러기 머슴 녀석이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까치 둥지까지 올라가 까치 새끼를 잡으려 하자, 그 어미가 처음엔 있는 힘껏 사람을 공격하여 머리를 쪼다가, 힘이 부치자 제 무리를 불러와 협동작전을 감행하여 새끼를 구한 이야기다.
처음 서너 마리가 오는 가 했더니, 잠깐 사이에 수십 마리의 까치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둥지를 새까맣게 에워싸고 깍깍 괴성을 지르며 위협하고, 하늘을 오르내리며 겁을 주어, 아이는 제풀에 겁을 집어 먹고 나무를 내려오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어미는 부지런히 새끼에게 먹이를 실어 날랐고, 아이가 나무를 내려오자, 까치 떼는 마치 승리를 확인이라도 했다는 듯이 저희들끼리 무어라 떠들어 대더니 원래 왔던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둥지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까치 부부가 제 새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평화롭게 먹이를 주고 있다.
우선 까치의 생태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다. 까치가 자신의 둥지를 습격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를 mobbing이라고 하는데, 야생조류들이 자신의 둥지나 새끼에게 위협을 가하는 대상에게 공격하는 척 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까치는 둥지뿐 아니라 자신의 세력권 안에 들어오는 침입자나 다른 수컷에 대해서도 이같은 공격행위를 한다.
다만 이런 공격에서 직접 침입자와 부딪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근접거리까지 다가왔다가 급선회해서 돌아가는 행위를 반복하곤 한다. 그래도 침입자가 후퇴하지 않으면 까치는 부리로 쪼는 행동을 하거나, 자신보다 더 힘이 센 상대로 인식하고 도망간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직접적인 몸싸움은 피하게 되는데, 이런 mobbing에 의해서도 웬만한 침입자는 물러가게 된다. 이런 행동은 파푸아 뉴기니아 등지에서 살고 있는 원시종족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그 종족들은 이웃 부족끼리 수시로 전투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집단이 서로 마주보고 전투를 하는 시늉만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과시 행동에서 자기 편의 힘이 딸린다고 생각한 부족은 선물을 바치며 패배를 시인하고, 승자도 패자를 죽이지 않고 선물을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양쪽 모두 치명적인 전쟁을 피하게 된다.
위 시에서는 까치의 집단 방어행동이 특이하게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까치는 한 쌍의 부부가 반경 200m 내외의 영토를 차지한다. 이 지역은 한 부부의 독점적인 영토로 다른 까치가 들어 올 수 없는 구역이다. 평상시에는 이웃 영토의 까치가 침범하면 격력한 싸움을 해서 쫒아 버린다. 그러다가 자신의 둥지나 새끼가 사람이나 고양이의 습격을 받게 되면 까치는 위급 상황을 알리는 특정한 울음소리를 내게 된다. 이 소리를 듣고 평소에는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던 이웃 까치들이 모두 몰려들어 집단적으로 방어를 한다. 까치들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살아간다. 침입자가 물러나고 전투가 종료되면 이웃집 까치들도 다시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고, 서로 이웃집을 침범하지 않는다.
황상의 〈군작행〉은 시인이 자기 집 앞 마당에서 벌어진 뜻밖의 소동을 보고 흥미로와 관찰한 내용을 상세히 적은 작품이다. 그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까치의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원고의 작성에 이한수·유승화 님의 도움 말씀이 있었다.
무채를 잘 써는 쏙독새
쏙독새는 여름 철새다. 낙엽처럼 보이는 위장색을 지녔고 야행성 조류라 관찰이 어렵다. 낮에는 나뭇가지 위나 수풀 속에 가만히 앉아 꼼짝도 않고 있으므로 눈에 띠지 않는다. 둥지를 따로 틀지 않고 알을 낳는다. 학명은 Caprimulgus indicus이고, 영어 이름은 Jungle Nightjar이다. 일본에서는 야응(夜鷹)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문모(蚊母)라 부른다. 저녁 무렵부터 새벽 사이에 활동하며, 모기나 나방, 딱정벌레, 메뚜기 등 곤충류를 먹고 산다. 다리가 짧은데다 힘이 없어 거의 걷지 못한다. 알을 품고 있을 때도 곧장 하늘 위에서 알 위로 내려 온다. 입이 크고, 부리 옆에 억센 털이 나 있어서 곤충을 잡아 먹기 편하게 되어 있다. 위장색이 뛰어나 발견하기 어렵고, 낮에 이를 발견하여 건드려도 날지 않고 가만 있는다.
진(晋)나라 때 곽박(郭璞)이 엮은 《이아주(爾雅注)》에서는 "문모는 오복(烏 )과 비슷한데 크기가 더 크고 황백색의 무늬가 섞여 있다. 울음 소리는 집비둘기 소리와 같다. 지금 강동에서는 문모라고 부른다. 속설에 이 새가 항상 모기를 토해내므로 이로 인해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고 했다. 쏙독새는 날 때 입을 벌리고 모기를 잡아 먹는데, 옛 사람들은 이것을 모기를 토해내는 것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이와 비슷한 기록으로, 당나라 때 진장기(陳藏器)가 펴낸 《본초습유(本草拾遺)》에서는 쏙독새에 대해 "이 새는 크기가 닭만하고 검은 빛이다. 남쪽 연못가 갈대밭에서 살고, 강동(江東)에도 또한 많다.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이 구토하는 것 같은데, 매번 모기 한 두 되씩을 토해낸다."고 했고, 송나라 때 맹관(孟琯)은 《영남이물지(嶺南異物志)》에서 "토문조(吐蚊鳥)는 청역(靑 )과 비슷한데 부리가 크다. 늘 연못가에 있으면서 고기를 잡아 먹는다. 매번 소리를 한번 낼 때마다 모기가 그 입에서 무리지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 새의 옛 이름은 문모(蚊母), 또는 문조(蚊鳥)라고 했다. 또 이 새가 낮에는 지상에서 쉬거나 가로 걸린 나뭇 줄기에 딱 붙어 있으므로 화북(華北) 지방에서는 첩수피(貼樹皮)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야응(夜鷹)으로 부르는데, 매와는 날개 빛이 비슷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습은 물론 습성도 완전히 다르다.
쏙독새는 중국이나 일본의 시 속에서는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며 이런 저런 전설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아 시속에 제법 등장하고 있다. 선인들은 이 새가 `쏙독 쏙독` 하며 울므로 쏙독새라고 불렀다. 때로는 `쏙쏙쏙쏙` 하며 1초에 4회 정도로 빠르게 연속적인 소리를 내기도 한다.
조선 중기 유몽인은 〈숙도조(熟刀鳥)〉란 시에서 이 새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쏙독새 `독독독독`
사실은 칼도 없고 도마도 없는데
온종일 독독독독 무우를 써네.
절집에 손님 와서 밥 달라 하니
도마질 하는 소리 쉴새가 없네.
산속 새 공교로운 재주 배워서
`독독독독` 그렇게 울어댄다오.
熟刀鳥 聲篤篤
旣無刀更無机 終日篤篤割蘿蔔
僧房有客來索飯 刀机相薄聲相續
山中鳥巧能學 是以鳴篤篤
사실은 칼도 없고 도마도 없는데
온종일 독독독독 무우를 써네.
절집에 손님 와서 밥 달라 하니
도마질 하는 소리 쉴새가 없네.
산속 새 공교로운 재주 배워서
`독독독독` 그렇게 울어댄다오.
熟刀鳥 聲篤篤
旣無刀更無机 終日篤篤割蘿蔔
僧房有客來索飯 刀机相薄聲相續
山中鳥巧能學 是以鳴篤篤
`숙도(熟刀)`는 쏙독새의 `쏙독`을 음차한 것이다. 의미로는 `칼질이 능숙한 새`란 뜻이다. 이 새의 울음소리가 마치 익숙한 칼솜씨로 무채를 썰 때 나는 소리처럼 빠른 연속음으로 `독독독독` 하며 울기 때문이다. 쏙독새의 울음소리를 음식 준비 하느라 도마질 하는 소리로 연상했다. 하루 종일 쏙독새는 칼도 도마도 없이 혼자서 무채를 잘도 썬다.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다 보니 나도 몰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고파 들른 절집에선 밥 한 그릇 내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산 속 새가 나그네 시장한 것을 헤아리고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부지런히 도마질을 계속하더라는 것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 새를 쭉지새라고도 부른다. 그 지역 방언에 무채 써는 것을 쭉지 친다고 하므로, 이 새가 무채를 잘 썬다 하여 쭉지새라 불렀다.
쏙독새를 도마질을 잘하는 새로 인식한 것은 뒤에 따로 볼 백석의 시, 〈배꾼과 새 세 마리〉에도 나온다. 무채를 잘 썬다고 하여 `쑥쑥새`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1956년 북한에서 간행된 시집이므로, 북한 지역에서는 이 새를 쑥쑥새라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머슴의 죽은 넋이 돌아온 쏙독새
쏙독새의 울음소리는 듣기에 따라 `쯧쯧쯧쯧`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들으면 머슴아이가 소를 몰며 `이려 이려, 쯧쯧쯧쯧` 하는 소리가 된다. 일부 지방에서 이 새를 두고 머슴새로 부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이를 한자식으로 적어 호독조(呼犢鳥)라고도 했다. `호독`이란 `송아지를 부른다`는 뜻이 되고, `호독`과 `쏙독`은 소리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어 이렇게 불렀다. 〈호독조(呼犢鳥)〉시는 서산대사의 《청허집(淸虛集)》에 실려 있다.
전날엔 목동이요 지금은 새가 되어
해마다 그 옛날 봄바람을 사랑하네.
산 깊고 숲 빽빽해 찾을 곳이 없건만은
보슬비 내리는 속에 "쯧쯧쯧쯧" 부르누나.
前是牧童今是鳥 年年猶愛舊春風
山深樹密無尋處 呼犢一聲烟雨中
해마다 그 옛날 봄바람을 사랑하네.
산 깊고 숲 빽빽해 찾을 곳이 없건만은
보슬비 내리는 속에 "쯧쯧쯧쯧" 부르누나.
前是牧童今是鳥 年年猶愛舊春風
山深樹密無尋處 呼犢一聲烟雨中
전생에 소에게 꼴을 먹이던 목동이 새로 화해 태어났다. 옛날 소를 몰고 꼴 먹이던 그 봄동산의 따스한 바람을 못잊어서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동산을 찾아와서 운다. 3구를 보면 소 먹이던 목동이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소가 달아나 찾을 수가 없었고, 목동은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봄 비 속에서 그 비를 쫄쫄이 맞으면서 `쯧쯧쯧쯧 쯧쯧쯧쯧` 송아지를 찾으며 운다는 것이다.
위 시를 읽고, 노산 이은상은 〈호독조전설(呼犢鳥傳說)〉에서 다섯 수의 연작시조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돌아 보아 연화봉(蓮花峰)은 반 남아 구름인데
금강대(金剛臺) 안개비 속에 호독조 우는 소리
그 누구 저 새 이야길 청성스리 지어 냈노
금강대(金剛臺) 안개비 속에 호독조 우는 소리
그 누구 저 새 이야길 청성스리 지어 냈노
옛날 저 아랫 동네 남의 집 살던 아이
어느 날 이 산에 와서 송아지 풀을 뜯기다
천자(千字)0책 익히는 바람에 송아지를 잃었더라오
어느 날 이 산에 와서 송아지 풀을 뜯기다
천자(千字)0책 익히는 바람에 송아지를 잃었더라오
깜짝 놀라 일어나 숲 속을 헤매면서
애타게 불러도 송아지는 안 보이고
그대로 해가 저물자
부슬비조차 오더라오
애타게 불러도 송아지는 안 보이고
그대로 해가 저물자
부슬비조차 오더라오
주인 댁 매가 무서워 돌아 갈 수도 없고
밤 새껏 비를 맞으며
송아지 찾아 쏘다니다
지쳐서 숲 속에 쓰러진 양
숨이 그만 지더라오
밤 새껏 비를 맞으며
송아지 찾아 쏘다니다
지쳐서 숲 속에 쓰러진 양
숨이 그만 지더라오
그 아이 죽은 넋이 이 산에 새가 되어
비오는 저녁이면 송아지 부르면서
숲 속을 날아 다닌대서
호독조라 하더라오
비오는 저녁이면 송아지 부르면서
숲 속을 날아 다닌대서
호독조라 하더라오
남의 집 소를 치던 아이가 천자문을 익히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에 꼴 먹이던 송아지를 잃고 말았다. 하루 종일 부슬비 속에 송아지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한 목동은 주인의 매가 무서워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비 내리는 숲속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헤매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 아이의 넋이 새로 화해 비가 오는 밤이면 저렇듯이 `쯧쯧쯧쯧` 하며 송아지를 찾아 온 숲을 헤맨다는 것이다. 이것이 `호독조(呼犢鳥)`에 얽힌 전설이다.
이밖에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금언십장(禽言十章)〉 가운데 〈숙득(孰得)〉이란 작품이 있다.
숙득 숙득(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암수 서로 쫓아 나네.
높은 둥지엔 비바람이 매섭고
낮은 가지엔 도끼질이 겁나지.
인가에도 깃들일 수가 없으니
언제나 구워서 먹으려 드네.
孰得孰得 雄雌逐逐
高巢饒風雨 卑枝斧斤逼
人家不可依 常令親 炙
암수 서로 쫓아 나네.
높은 둥지엔 비바람이 매섭고
낮은 가지엔 도끼질이 겁나지.
인가에도 깃들일 수가 없으니
언제나 구워서 먹으려 드네.
孰得孰得 雄雌逐逐
高巢饒風雨 卑枝斧斤逼
人家不可依 常令親 炙
새의 울음소리를 `숙득`으로 들은 것으로 보아 이 또한 쏙독새 울음소리의 음차임이 분명하다. 이 새가 높은 가지에도 둥지 치지 않고, 낮은 가지에도 둥지 치지 않는 생태를 알아, 이것으로 시를 지은 것이다. `숙득`을 여기서는 어디로 가야할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풀었다. 높은 가지도 안되고, 낮은 가지는 겁나고, 인가도 무섭고 하니, 도대체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들의 존재는 이 새가 늘 생활 가까이에 있어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1920년 6월에 간행된 《개벽》 창간호에 실렸다가 압수 삭제된 시에 〈옥가루〉란 작품이 있다. 이 가운데 역시 쏙독새가 보인다.
황혼남산(黃昏南山) 부흥이 사업 부흥하라고 부흥부흥(復興復興) 하누나
만산모야(晩山暮夜) 속독새 사업독촉(事業督促) 하여서 속속속속(速速速速) 웨이네
경칩(驚蟄) 맛난 개구리 사업 저 다 하겠다 개개개개(皆皆皆皆) 우놋다
만산모야(晩山暮夜) 속독새 사업독촉(事業督促) 하여서 속속속속(速速速速) 웨이네
경칩(驚蟄) 맛난 개구리 사업 저 다 하겠다 개개개개(皆皆皆皆) 우놋다
〈옥가루〉의 제재는 `사업`에 있는데, 이때 집이란 바로 빼앗긴 조국을 나타내고, 사업은 나라 되찾는 사업이다. 재미 있는 것은 새울음소리의 음차다. 부엉이는 `부엉부엉` 울지 않고, 나라 찾는 사업을 다시 일으키자고 `부흥부흥` 울며, 앞서 무채를 썰며 도마질이 한창이던 쏙독새가 여기서는 어서 빨리 독립하자고 `속속속속` 울고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새를 두고, 각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쏙독새를 두고 숙도조(熟刀鳥)·쭉지새·쑥쑥새·머슴새·호독조(呼犢鳥)·숙득조(孰得鳥) 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중국에서는 이 새를 문모(蚊母)라 하여, 모기를 토해내는 새로 인식하였음은 앞서 이미 살핀 바 있다. 다른 새와는 달리 이러한 인식의 흔적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새는 단순히 새일 뿐이지만, 한밤 중 집 가까운 숲속에서 연속음으로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가 상상을 낳고 전설을 낳으며 긴 세월 동안 노래되어 왔던 것이다. 새 울음소리 속에는 그 민족의 원형적인 심성이 스미어 있다.
고기 잡이의 명수 물총새
물총새는 옛 문헌에서는 비취새란 이름으로 나온다. 파랑새목 물총새과 물총새속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작은 몸에 큰 머리, 길쭉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산다. 비취빛의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푸른 보석 비취에 견주어졌고, 취조(翠鳥)·취노(翠 )·취벽조(翠碧鳥)로 불리기도 한다. 물고기 잡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서 Kingfisher란 영어 이름을 가졌다. 수구(水狗)·천구(天狗)·어구(魚狗)·어호(魚虎)·어사(魚師)·조어옹(釣魚翁) 등의 별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작(鐵雀)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금경(禽經)》에는 "등에 예쁜 깃털이 있어 비취라 한다. 빛깔이 아주 푸른데 선명하면서도 화려해서 사랑스럽다. 맑은 여울이나 연못 가에서 산다. 제 깃털을 아주 아껴서 날마다 물에 씼는다.(背有采羽, 曰翡翠, 色正碧, 鮮縟可愛. 飮喙於澄瀾 淵之側. 尤惜其羽, 日濯於水中.)"고 했고,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어구(魚狗)는 부리가 뾰족하고 길며, 다리는 붉고 짧다. 등의 깃털은 비취빛으로 푸른 빛을 띠었고, 날개는 검은색에 푸른 빛이 섞여 있다. 여자의 머리꽂이로 꾸밀 수 있다.(魚狗喙小而長, 足紅而短. 背毛翠色帶碧, 翅羽黑色揚靑. 可飾女人首物.)"고 하였다.
이 새는 물가 언덕의 벼랑이나, 물가에서 떨어진 흙벽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만든다. 송나라 때 나원(羅願)이 엮은 《이아익(爾雅翼)》에는 "입( )은 천구(天狗)이다. 이 새는 흙에 굴을 파서 둥지를 만든다. 겨울에 굴을 파는데, 가로로 한 자 남짓 파들어 가서 그 속에서 새끼를 기른다. 부리는 모두 붉고 목 아래는 희다. 인가 근처 연못에 와서 물고기를 엿보아 잡아 먹는다. 지금 사람들은 어구(魚狗)라고도 한다.( , 天狗. 此鳥穴土爲巢. 嘗冬月起其穴, 橫入一尺許, 雛於其中. 其喙皆紅, 項下白. 亦來人家陂池中竊魚食之. 今人謂之魚狗.)"고 했다.
같은 물총새과에 호반새가 있다. 물총새와는 달리 부리와 다리가 선명한 붉은 색을 띄고 있다. 비를 좋아해서 수연조(水戀鳥)란 별명을 가졌다. 이 새는 "쿄로로로"하며 우는데, 이 새가 비가 주룩주룩 올 때 물가에 나와 울므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이것을 "비쭈루르" 하며 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총새는 그 화려한 깃털과 예쁜 자태로 인해 그림과 시 속에 자주 등장했다. 15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철화무늬 장군에 보이는 새가 바로 물총새다. 이밖에도 이 새는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의 하나이기도 하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특별히 물총새를 사랑했던지 물총새 시를 혼자 세 수나 남겼다. 먼저 〈취조(翠鳥)〉란 작품을 보자.
비단으로 옷해 입은 한 쌍 비취새
못가에서 깃을 털며 맑은 볕을 희롱하네.
어디서 들려오는 두 세 곡 쇠피리에
쭈루루 소리내며 놀라 날까 걱정일세.
翠鳥一雙錦作衣 池邊刷羽弄淸暉
誰家鐵笛兩三弄 有數聲驚且飛
못가에서 깃을 털며 맑은 볕을 희롱하네.
어디서 들려오는 두 세 곡 쇠피리에
쭈루루 소리내며 놀라 날까 걱정일세.
翠鳥一雙錦作衣 池邊刷羽弄淸暉
誰家鐵笛兩三弄 有數聲驚且飛
비단옷을 예쁘게 차려 입은 한쌍의 비취새가 연못가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깃단장이 한창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도 몰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들어도 좋겠는데, 저 소리에 놀라 비취새가 그만 훌쩍 날아가 버리면 어찌하나 싶어 조바심이 들더라는 것이다. 다음은 〈영취조(詠翠鳥)〉이다.
비단 날개 금빛 부리 아침 해에 반짝이며
붉은 연꽃 연못 가서 득의롭게 나는구나.
호해(湖海)가 넓은 줄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기를 엿보느라 괜한 애를 쓰느냐.
錦翎金 耀朝暉 紅藕池邊得意飛
有底不知湖海大 窺魚空自費心機
화려한 비단옷에 금빛 부리를 한 비취새가 자태도 화려하게 연꽃이 무성한 연못가를 날고 있다. 물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연못은 이렇게 넓고 큰데, 물고기가 어디 숨은 줄 알고 바쁘게 날아다니냐고 타박을 했다. 맑은 아침 햇살에 싱그런 마음이 들어 기쁘게 정원을 내다보다가, 아침부터 먹이감을 찾아 바삐 날아가는 비취새가 어여쁘면서도 얄미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림 2 鄭遂榮, 〈蓮池翠禽圖〉: 연잎 줄기에 앉아 연못 위 물고기를 노리고 있는 비취새)
서거정은 〈죽장취금(竹藏翠禽)〉이란 작품을 한 수 더 남겼다.
만 줄기 푸른 대가 깨끗함에 잠겨 있어
쟁글쟁글 금옥 소리 땅 그늘을 말아가네.
한 쌍 비취 날아오는 모습 보기 좋더니만
교묘한 혀 맑은 소리 한갖지게 들려온다.
쟁글쟁글 금옥 소리 땅 그늘을 말아가네.
한 쌍 비취 날아오는 모습 보기 좋더니만
교묘한 혀 맑은 소리 한갖지게 들려온다.
깨끗한 대숲에 바람이 불자 이슬이 떨어지고 쟁글쟁글 옥소리가 쏴아하니 들려온다. 그 소리와 함께 한 쌍의 비취새가 날아 들더니, 숲 속 어디선가 맑은 울음소리를 보내오고 있다. 오늘은 비가 올라나. 시인은 대숲에 숨은 비취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겠다.
새끼를 죽인 엽기적인 제비
한 쌍 제비 주림 참고 벌레 물어와
부지런히 왔다 갔다 제 새끼를 먹이누나.
날개 자라 높이 높이 날아가게 되어도
부모의 그 사랑을 능히 알진 못하겠지.
雙燕銜蟲自忍飢 往來辛苦哺其兒
看成羽翼高飛去 未必能知父母慈
부지런히 왔다 갔다 제 새끼를 먹이누나.
날개 자라 높이 높이 날아가게 되어도
부모의 그 사랑을 능히 알진 못하겠지.
雙燕銜蟲自忍飢 往來辛苦哺其兒
看成羽翼高飛去 未必能知父母慈
숙종 때 김이만(金履萬, 1683-?)의 〈쌍연(雙燕)〉이란 작품이다. 새끼를 기르는 부모의 마음이야 사람이나 미물이나 다를 것이 없다. 제 배도 고플텐데 제비 부부는 큰 입 벌리며 저 먼저 달라고 아우성 치는 새끼들을 먹이느라 하루 종일 쉴새 없이 둥지를 들락거린다. 한 입 가득 벌레를 물어와 새끼들 입에 털어 넣는 그 사랑을 지켜 보다가 그는 문득 결혼하여 제각금 가정을 마련해 떠난 자식들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저렇게 애를 써서 키워봤자 그 은공을 알기나 하랴. 제 부모가 날라다 주는 벌레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날개에 깃이 돋아 허공을 훨훨 날게 되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이 뒤도 안돌아보고 제 갈 길들을 서두를 것이 뻔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강재항(姜再恒, 1689-1756)의 문집에는 〈현조행(玄鳥行)〉이라는 시가 한 수 실려 있다. 현조(玄鳥)는 제비다. 이 이야기는 새로 얻은 아내에 정신이 팔려 새끼를 모두 죽인 비정의 제비를 노래하고 있다.
사는 집 서북편 모서리에다
제비가 그 위에 둥지 틀었네.
기르는 새끼가 다섯 마리라
둥그런 둥지가 가득하구나.
암수가 나란히 돌아 날다가
화답하여 울면서 오르내리네.
고양이가 문가에서 숨어 있다가
몰래 엿봐 멋대로 잡아 죽였지.
수컷이 암컷을 잃고 나서는
외로이 혼자 날며 서러워 했네.
깃털도 부러지고 추레해져서
제 짝 잃고 상심한 사람 같더니,
어느새 새 짝 찾아 함께 살면서
짝이 좋아 혼자서 펄펄 날았네.
그 새끼 갑작스레 죽어 버리니
다섯 마리 발로 차서 모두 던졌지.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 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배에 가득해.
내 마음 이 때문에 구슬퍼져서
한동안 손에 들고 못 놓았다네.
지붕에 불지르고 우물을 덮었다던
옛부터 전하던 말 헛말 아닐세.
하물며 어여쁜 짝과 더불어
새끼의 죽음을 속이려 드니.
이 모두 미물이기 때문일텐데
그때엔 어이해 못 깨달았나.
미물도 오히려 이와 같거니
하물며 사람의 같잖은 꼴이랴.
뒷 사람에게 사죄하노니
경계하여 삼가서 잊지를 말라.
제비가 그 위에 둥지 틀었네.
기르는 새끼가 다섯 마리라
둥그런 둥지가 가득하구나.
암수가 나란히 돌아 날다가
화답하여 울면서 오르내리네.
고양이가 문가에서 숨어 있다가
몰래 엿봐 멋대로 잡아 죽였지.
수컷이 암컷을 잃고 나서는
외로이 혼자 날며 서러워 했네.
깃털도 부러지고 추레해져서
제 짝 잃고 상심한 사람 같더니,
어느새 새 짝 찾아 함께 살면서
짝이 좋아 혼자서 펄펄 날았네.
그 새끼 갑작스레 죽어 버리니
다섯 마리 발로 차서 모두 던졌지.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 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배에 가득해.
내 마음 이 때문에 구슬퍼져서
한동안 손에 들고 못 놓았다네.
지붕에 불지르고 우물을 덮었다던
옛부터 전하던 말 헛말 아닐세.
하물며 어여쁜 짝과 더불어
새끼의 죽음을 속이려 드니.
이 모두 미물이기 때문일텐데
그때엔 어이해 못 깨달았나.
미물도 오히려 이와 같거니
하물며 사람의 같잖은 꼴이랴.
뒷 사람에게 사죄하노니
경계하여 삼가서 잊지를 말라.
처마 밑에서 새끼 다섯 마리를 기르던 제비 부부가 다정하게 화답하며 부지런히 새끼를 길렀다. 고양이란 녀석이 문 뒤에 숨어 노리다가 어미 제비를 잡아먹었다. 짝을 잃은 수컷은 외로이 날며 슬퍼했다. 깃털도 빛을 잃고 추레한 모습이 몹시 측은하였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새로운 짝을 불러다가 즐거이 화답하며 노니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짝이 오자 새끼들이 갑자기 죽어 버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비는 죽은 제 새끼를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발로 차서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내가 죽은 새끼의 주둥이 속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새끼들의 주둥이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 가시가 새끼들의 배를 찔러 잘 자라던 다섯 마리 새끼들이 한꺼번에 죽었던 것이었다. 어미 잃은 새끼가 거추장스러웠던걸까? 아비는 제 새끼들에게 벌레 대신 죽으라고 가시를 물어다 먹였던 것이다.
그 옛날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도 새 장가를 든 뒤, 아들을 죽이려고 곡식 창고를 고치러 지붕에 올라가게 해 놓고 아래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이를 덮어버려 아들을 죽이려 했던 일이 있었다. 이제 아비가 제 짝이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 살림 차리는데 거추장스럽다고 제 새끼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먹여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발로 차서 땅에 떨어뜨리는 비정의 부정(父情)을 보며 그는 새삼 세상을 개탄했다. 미물이 이러할 바에 인간의 참혹한 일들이야 일일이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보이는 그의 관찰은 새의 생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서 인간의 기준으로 바라본데서 기인한 잘못된 생각이다. 제비는 번식 기간 내에 두 번의 번식이 가능하고, 한번에 4,5마리 정도의 새끼를 기른다. 부모가 쉴새없이 먹이를 날라도 새끼를 배불리 먹이기가 힘들다. 이 경우처럼 어미나 아비 중 도중에 어느 하나가 죽게 되면 번식을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까 시에 나오는 제비는 새끼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양육을 포기한 것이 된다. 입안에 가시가 가득한 것을 애비가 새끼들 죽으라고 일부러 가시를 먹인 것으로 본 것도 오해다. 새들은 먹이의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목구멍 속에 기사처럼 뽀족뾰족하게 솟아오른 기관이 있다. 이것을 그는 잘못 가시를 먹인 것으로 오해를 했던 듯 하다.
도움말 : 유승화
현대시 속의 제비
벨기에의 작가 메텔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인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남매는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마법사 할멈의 부탁을 받고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요정과 함께 상상의 나라,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 추억의 나라 등을 찾아 밤새껏 헤맨다. 어디에서도 파랑새는 찾지 못하고 꿈을 깨고 보니 파랑새는 바로 머리 맡 새장 속에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이후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제비는 현대시 속에서도 계속 노래되어 왔다. 권환은 〈제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제멋대로 헤엄친다
바위도 모래도
섬도 가[涯]도 없는
새파란 하늘의 호수에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바위도 모래도
섬도 가[涯]도 없는
새파란 하늘의 호수에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그는 자유형 수영 선수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위로위로 가물가물 올라간다
푸른 대공의 물결을 헤치며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위로위로 가물가물 올라간다
푸른 대공의 물결을 헤치며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어느덧 또 밑으로 밑으로
보기 좋게 미끄러진다
저공 비행하는 荒鷲처럼
보기 좋게 미끄러진다
저공 비행하는 荒鷲처럼
잔디밭 위에 폭탄이 떨어진다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화살같이 半月形을 지어
제멋대로 날다
제멋대로 날다
마치 대공이 제 혼자 영토인 것처럼
이편서 저편으로
저편서 이편으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저편서 이편으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제멋대로 난다
제멋대로 재잘거린다
쳐다보는 많은 四足獸를
내려다보고 비웃는 것처럼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제멋대로 재잘거린다
쳐다보는 많은 四足獸를
내려다보고 비웃는 것처럼
비시 비시 비시 비시 비시
제비의 울음소리를 `비시비시`로 들은 것은 앞서 한시에서 `시시비비`로 들은 것과 비슷한 연상을 준다. 제비의 경쾌하고 날렵한 비행과 즐거운 재잘거림을 소묘하듯 노래한 시이다.
백석도 〈大山洞〉이란 작품에서, 제비를 이렇게 노래했다.
백석도 〈大山洞〉이란 작품에서, 제비를 이렇게 노래했다.
비얘고지 비얘고지
제비야 네 말이다
저 건너 노루섬에 노루 없드란 말이지
신미도 삼각산엔 가무래기만 나드란 말이지
제비야 네 말이다
저 건너 노루섬에 노루 없드란 말이지
신미도 삼각산엔 가무래기만 나드란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 말이다
푸른 바다 흰 하늘이 좋기도 좋단 말이지
해밝은 모래강변에 돌비 하나 섰단 말이지
제비야 네 말이다
푸른 바다 흰 하늘이 좋기도 좋단 말이지
해밝은 모래강변에 돌비 하나 섰단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 말이다
눈빨갱이 갈매기 빨갱이 갈매기 가란 말이지
승냥이처럼 우는 갈매기
무서워 가란 말이지
제비야 네 말이다
눈빨갱이 갈매기 빨갱이 갈매기 가란 말이지
승냥이처럼 우는 갈매기
무서워 가란 말이지
제비의 울음소리를 `비얘고지 비얘고지`로 들었다. 부산스런 그 너스레를 보면서 제비가 자꾸 내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만 같아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나희덕의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란 작품이다. 여기서의 제비는 세상에 다친 마음을 도닥여주고 내 마음에 한 물결을 일으켜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언젠가 불렀던 노랫소리를 일깨워 주는 따뜻한 새로 표상되고 있다.
옛 한시와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제비는 인간에게 친근한 존재로 사랑 받아왔다. 특히 그 울음소리를 가지고 갖가지 연상을 떠올려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냈다. 오늘날 농약으로 벌레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제비의 개체수도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새끼를 낳고도 다 기르지 못하고 양육을 포기하는 사례도 자꾸 늘고 있다는 우울한 보고다. 늘 인간의 처마 밑에서 사람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하던 제비가 차츰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파랑새의 정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녹두꽃이 피는데 파랑새가 녹두밭에 앉으니, 녹두꽃이 땅에 떨어진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 열매가 맺지 못할테고, 녹두 열매가 맺지 못하면 청포 묵을 못 만드니 청포장수가 헛걸음을 하게 되어 울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이 노래는 동학혁명 당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을 빗대어 말한 참요(讖謠)로 알려져 있다. 위 노래에서 녹두밭은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가리키며, 파랑새는 그들을 탄압하는 일본 군대, 청포 장수는 조선 민중을 가리킨다고 흔히 알려져 왔다. 전봉준은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지녀 어릴 적 별명이 녹두였다.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못 견뎌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여 동학혁명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그를 녹두 장군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볼 때 녹두꽃이 떨어지는 것은 전봉준이 일본군에 패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청포장수가 울고 간다는 것은, 그 녹두꽃이 지지 않고 열매를 맺어 그 녹두 열매로 청포묵을 담그리라는 소망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즉 전봉준의 봉기가 좋은 결실을 맺어 백성들이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랬는데, 꽃이 다 져서 열매 맺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위 노래에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에 대한 민중의 뜨거운 열의가 담겨 있어, 패주한 농민군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한 만가(輓歌)로 불려왔으며, 호남 지방에서는 오랫동안 자장가로 전해져 왔다. 그 자장가는 이렇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남게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사 울고간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우리같은 아이들은 엄마품에 잠을 자고
어제 왔던 새각시는 신랑품에 잠을 자고
뒷집에 할마시는 영감품에 잠을 자고.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사 울고간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우리같은 아이들은 엄마품에 잠을 자고
어제 왔던 새각시는 신랑품에 잠을 자고
뒷집에 할마시는 영감품에 잠을 자고.
그런데 이와는 달리 조금 다른 의미로 전하는 민요도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봄철인줄 알지마라
백설분분 흩날리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봄철인줄 알지마라
백설분분 흩날리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앞에서는 녹두꽃을 떨어지게 하는 새가 파랑새였는데, 여기서는 파랑새가 곧 녹두새라고 했다. 일설에 파랑새는 바로 팔왕새(八王새)를 말한다고도 한다. 팔왕(八王)은 전봉준의 전(全)자의 파자다. 이렇게 보면 팔왕새는 바로 전봉준이 된다. 위 노래는 댓잎 솔잎이 푸른 것을 보고 봄철인 줄 알고 나온 파랑새더러 아직은 때가 아니니 흰눈이 쏟아져 굶어죽게 되기 전에 어서 빨리 돌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읽으면 위 노래는 시절을 잘못 읽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 전봉준을 애도하는 내용이 된다.
앞에서는 파랑새가 녹두꽃을 지게 만들어 청포장수를 울게 만드는 새로 등장하고, 위에서는 파랑새가 곧 녹두새라 하여 청록빛을 띤 이 새를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참요란 원래 이렇게 정확한 의미를 잘 알 수가 없는 노래다. 과연 어떻게 읽는 것이 바르게 읽는 것일까?
동학군이 전라감영을 지키던 군대와 싸워 이긴 고부의 황토재에 세워진 동학혁명기념탑에는 위의 노래 말고도 아래의 노래가 돌에 새겨져 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가보세`는 갑오세(甲午歲)를 연철한 것이니, 동학혁명이 일어난 해다. 그러니 첫 줄은 갑오년으로 가보자는 말이다. 을미적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자음으로는 을미(乙未)적이니 이 또한 `을미년`에 미적거리다 큰 일을 성취하지 못했단 뜻이 된다. 을미년은 전봉준이 죽은 해다. 병신도 병신(病身)의 뜻과 병신(丙申)년이란 의미가 쌍관된다. 병신년이 되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이 또한 갑오 농민혁명의 실패를 뼈아프게 생각하는 민중들의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정말 파랑새는 녹두꽃이 피는 시절에 녹두밭에 즐겨 앉아, 한해 녹두 농사를 망치는 새일까? 앞서도 보았듯 파랑새는 팔왕새의 의미도 담고 있고, 녹두 장군 전봉준의 이야기와 겹쳐져 있어, 파랑새가 정말로 녹두밭에 앉아 녹두꽃을 지게 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파랑새는 희망과 자유의 상징으로 노래되는데, 여기서 파랑새는 오히려 그 희망을 짓밟는 새로 나온다. 파랑새는 몸길이가 30cm정도되는 비교적 큰 새로 부리는 붉은색, 털은 어두운 청록색을 띠고 있다. 활엽수가 많은 인가 부근에 서식하며, 높은 고목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새는 둥지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는데, 그런 욕심 사나운 모습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속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후투티의 멋진 모자
후투티는 모자를 쓴 멋쟁이다. 한자 이름 대승(戴勝)은 멋짓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다는 뜻이다. 후투티의 멋진 모자 때문에 옛 그림 속에는 후투티를 그린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멋진 외양과는 달리, 번식기의 둥지는 더럽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일반적으로 어미새는 새끼의 배설물이나 음식물의 껍질 같은 것을 다른 곳에 운반하여 버리는 습성이 있는데, 후투티는 그렇지 않다. 후투티는 나무의 구멍이나 절벽에 굴을 파서 둥지를 만든다. 새끼는 놀라면 꼬리 부분에서 지독한 독성 물질을 배출한다. 마치 스컹크가 악취를 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가는 후투티의 별명이 취파낭(臭婆娘), 즉 `냄새나는 할망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위나라 양왕(襄王, 기원전 651-618)의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 가운데 후투티에 관한 언급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곡우(穀雨)가 지난 지 열흘 쯤 되어, 후투티가 뽕나무에 내려 앉는다. 후투티가 뽕나무에 내려 앉지 않으면 정교(政敎)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
뽕나무는 백성들의 의복과 관련되고, 후투티가 뽕나무에 내려 앉아 뽕잎을 갉아 먹는 벌레를 많이 잡아 먹어야 누에가 먹을 뽕잎이 그만큼 많아지겠기에 나온 말로 보인다. 후투티는 뽕나무, 즉 오디나무에 즐겨 앉으므로 오디새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시인이 후투티를 노래한 것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노계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후투티의 노래[戴勝吟]〉를 읽어 보자.
후투티 울음소리 낮잠을 자주 깨니
어이해 자꾸만 농부 마음 재촉하나?
저 서울 좋은 집 모서리에 울어서
밭 갈라 권하는 새 있음을 알게 하렴.
午睡頻驚戴勝吟 如何偏促野人心
啼彼洛陽華屋角 令人知有勸耕禽
어이해 자꾸만 농부 마음 재촉하나?
저 서울 좋은 집 모서리에 울어서
밭 갈라 권하는 새 있음을 알게 하렴.
午睡頻驚戴勝吟 如何偏促野人心
啼彼洛陽華屋角 令人知有勸耕禽
후투티의 경쾌한 울음 소리가 집 가까이에서 자꾸 들려와 낮잠을 깬다. 대개 이 새가 농번기에 나타나 울기 때문에, 이 새의 울음소리는 다시 바빠질 때가 가까웠다는 신호로 들린다. 그래서 한가롭게 누워 자다가 후투티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문득 계절을 느껴 마음이 바빠졌다고 노래하였다.
당나라 때 왕건(王建)은 또 이렇게 노래한다.
후투티 뉘 너와 이름 다투랴
나무 속에 둥지 파고 담 위서 우네.
소리마다 날 더러 씨뿌리라 재촉하며
인가에서 밭을 향해 귀숙(歸宿)치 않는도다.
자줏빛 모자 어여쁘고 베옷엔 얼룩무늬
잠자리 물고서 집을 날며 지나도다.
슬프다 연못 가득 저 흰 백로야
후투티가 계절 앎만 같지 못하구나.
戴勝誰與爾爲名 木中作과牆上鳴
聲聲催我急種穀 人家向田不歸宿
紫冠采采褐衣斑 銜得청정飛過屋
可憐白鷺滿綠池 不如戴勝知天時
나무 속에 둥지 파고 담 위서 우네.
소리마다 날 더러 씨뿌리라 재촉하며
인가에서 밭을 향해 귀숙(歸宿)치 않는도다.
자줏빛 모자 어여쁘고 베옷엔 얼룩무늬
잠자리 물고서 집을 날며 지나도다.
슬프다 연못 가득 저 흰 백로야
후투티가 계절 앎만 같지 못하구나.
戴勝誰與爾爲名 木中作과牆上鳴
聲聲催我急種穀 人家向田不歸宿
紫冠采采褐衣斑 銜得청정飛過屋
可憐白鷺滿綠池 不如戴勝知天時
주로 고목의 구멍을 찾아 둥지를 트는 습성을 지닌 후투티가 담장 위에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앞서 박인로와 마찬가지로 씨뿌리라고 재촉하는 소리로 들었다. 부지런히 벌레를 물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다가 계절의 변화를 제 때에 감지하는 이 새가 저 연못에 가득한 해오라기 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고 했다. 또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가도(賈島)는 후투티를 이렇게 노래했다.
별 점 무늬 꽃 모자 도사의 복장이니
자양궁의 궁녀가 변화하여 나는도다.
천상에 봄 소식을 능히 전하겠지만
봉래산 다달으면 돌아오지 못하리.
星點花冠道士衣 紫陽宮女化身飛
能傳上界春消息 若到蓬山莫放歸
자양궁의 궁녀가 변화하여 나는도다.
천상에 봄 소식을 능히 전하겠지만
봉래산 다달으면 돌아오지 못하리.
星點花冠道士衣 紫陽宮女化身飛
能傳上界春消息 若到蓬山莫放歸
아름다운 별점 무늬에 화려한 꽃모자를 쓴 모습은 흡사 황색의 도포와 두건을 쓴 도사같다. 혹 천상 자양궁의 궁녀가 벌로 새의 몸을 받아 인간 세상에 환생한걸까? 높이 높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다 시인은 하늘 나라에 지상의 봄 소식을 전하려 가는가 하고 묻다가, 아마도 봉래산에 다다르면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재수 없는 새, 올빼미
서양에서 올빼미는 지혜자의 상징이다. 어린이 만화영화에서도 올빼미는 돋보기를 걸치고 나무에 앉아 주인공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들려준다. 사람보다 수 십 배나 뛰어난 시력을 지녀 암흑 속에서도 물체를 또렷히 보는 그 속성에서 끌어와 잘 알 수 없는 사물의 이치를 훤히 꿰뚫어 보는 현자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동양에서 올빼미는 집에 와서 울면 그 집 주인이 죽고 그 집에 재앙이 드는 아주 불길하고 재수 없는 새로 알려져 왔다. 《시경(詩經)》에 〈치효( )〉편이 있다. 치효는 올빼미의 한자 이름이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내 자식을 이미 잡아 먹었으니
내 집은 헐지 말아다오.
치효치梟
내 자식을 이미 잡아 먹었으니
내 집은 헐지 말아다오.
치효치梟
旣取我子
無毁我室
無毁我室
여기서 올빼미는 다른 새의 새끼를 잡아먹고 그 집까지 차지해 버리는 못된 새로 그려져 있다. 또 《금경(禽經)》에는 올빼미를 괴복(怪 )이라 적고, "일명 휴류( )라고도 한다. 강동 지역에서는 괴조(怪鳥)라고 부른다. 울음소리를 들으면 재앙이 많이 생기므로 사람들이 이를 미워하여 귀를 막곤 한다"고 적혀 있다. 화조(禍鳥)로도 불려졌다.
한나라 때 유명한 문인 가의(賈誼, BC 200-168)가 장사 땅에 귀양가 살 때, 자기가 거처하던 집 횃대 위로 올빼미가 날아들었다. 이 지방에는 올빼미가 인가에 날아들면 집주인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가의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며 〈복조부( 鳥賦)〉 즉 올빼미의 노래를 불렀다. 이후 올빼미는 더욱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새로 깊이 각인되었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재미있는 우화가 실려 있다. 올빼미가 비둘기를 만나니 비둘기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올빼미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내 울음소리를 싫어하므로 동쪽으로 이사가려 한다고 했다. 그러자 비둘기는 네 울음소리를 고치면 되겠지만, 고칠 수 없다면 동쪽으로 이사해 봤자 그곳 사람들도 미워할테니 아무 소용이 없을거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 권필(權 , 1569-1612)은 올빼미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밤에 앉아 술에 취해 붓을 달려 지은 세 수(夜坐醉甚走筆成章三首)〉 가운데 세 번째 시이다.
숨어서 사는 집은 구석진 거처
집 둘레엔 오래 묵은 나무가 많네.
새 있어 한밤중 울어대는데
어린애 울음소리 비슷하구나.
그 이름 올빼미라 부른다 하니
울면은 주인에게 재앙이 오지.
주인이 올빼미에게 이야기했네.
"네 소리 비록 심히 독해도
세상 사람 모두다 너와 같으니
상서롭지 못한 것이 어찌 너뿐이랴.
아첨하여 교묘히 혀를 놀리고
번득이며 간사한 눈빛을 하지.
얼굴 빤히 보면서 함정 만드니
빠지면 꼼짝도 할 수가 없네.
너를 세상사람과 견주어 보면
어찌 알리, 외려 복이 되지 않을 줄."
집 둘레엔 오래 묵은 나무가 많네.
새 있어 한밤중 울어대는데
어린애 울음소리 비슷하구나.
그 이름 올빼미라 부른다 하니
울면은 주인에게 재앙이 오지.
주인이 올빼미에게 이야기했네.
"네 소리 비록 심히 독해도
세상 사람 모두다 너와 같으니
상서롭지 못한 것이 어찌 너뿐이랴.
아첨하여 교묘히 혀를 놀리고
번득이며 간사한 눈빛을 하지.
얼굴 빤히 보면서 함정 만드니
빠지면 꼼짝도 할 수가 없네.
너를 세상사람과 견주어 보면
어찌 알리, 외려 복이 되지 않을 줄."
훈호(訓狐)는 올빼미의 다른 이름이다. 6구까지는 올빼미에 대한 속신(俗信)을 설명했다. 이하 8구에서 끝까지는 주인이 올빼미에게 하는 말이다. 올빼미의 뾰족한 부리와, 깊은 밤 나무 위에서 어린애 울음 같이 울어대는 음험한 소리, 밤중에도 불길하게 번득이는 간사한 눈빛. 이 새의 이러한 외형과 생태는 재수 없는 새, 불길한 징조로 올빼미의 이미지를 굳혀 놓았다. 하지만 정작 올빼미를 그토록 싫어하는 세상사람들은 어떤가. 간이라도 꺼내 줄듯한 교언영색의 아첨,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번득이는 교활한 눈빛, 밤도 아닌 대낮에 상대의 면전에서 덫을 놓아 빠뜨리는 권모술수. 기실 올빼미보다 오히려 더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이 시는 올빼미에 가탁하여 교활한 권모술수로 남을 음해하고 해악을 끼치는 인간들을 풍자하고 있다.
옛 문헌 설화 속에도 올빼미는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태평한화》라는 설화집에는 집 근처에서 올빼미가 울면 그 집안 사람이 올빼미를 따라 계속 같은 소리를 내서 끝까지 지지 않아야 하는데, 만약 올빼미에게 지게 되면 그 집에 재앙이 온다고 적고 있다. 이어 안선생이란 사람이 집 근처에 와서 우는 올빼미 소리를 듣고 밤새도록 대응해서 소리를 내다 보니 나중엔 지쳐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올빼미가 계속 울자, 그는 하인들을 불러다가 교대로 울게 하여, 마침내 아침이 되어 올빼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하였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조선시대에는 올빼미가 주로 집에 화재를 불러온다는 속신이 널리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올빼미 때문에 생긴 여러 차례의 불상사를 적고 있다. 명례방에 살 때 아침에 일하는 아이가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나가 보니 부엌 들보 위에 올빼미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대기로 이 새를 쳐서 떨어뜨렸는데, 그 날 밤 사랑채에 큰불이 났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를 잃고 장례를 치르는데, 올빼미가 제사를 준비하던 종의 아내의 가슴에 앉았다. 요괴롭다 하여 여자를 접근치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 날 밤 어린 종이 실수로 산기슭에 불을 떨구는 바람에 묘막(墓幕)을 다 태우고 말았다. 또 대낮에 올빼미가 사람에게 와 닿았으므로 불조심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 불이 나서 이웃집을 반 넘게 태운 일도 있었다.
이런 문헌설화를 보면 올빼미가 조선시대에 어떤 새로 인식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한편 까마귀가 반포조(反哺鳥)라 하여 부모에게 먹이를 가져다 먹이는 효성스런 새로 알려진데 반해, 올빼미는 은혜를 저버리고 제 어미를 잡아먹는 패륜적인 불효의 상징으로도 알려졌다.
중국 양나라 때 유협(劉 )이 엮은 《유자(劉子)》란 책에는 "올빼미는 그 새끼를 백일 동안 품어 기른다. 날개가 생겨나면 어미를 잡아먹고 날아간다"고 했고, 《금경(禽經)》에서도 "올빼미는 둥지에 있을 때는 어미가 이를 먹여 기른다. 날개가 생기면 어미의 눈알을 쪼아먹고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배은망덕하여 살모(殺母)하는 패륜의 새로까지 낙인 찍힌 것이다. 물론 아무런 과학적 근거는 없는 말이다.
중국 양나라 때 유협(劉 )이 엮은 《유자(劉子)》란 책에는 "올빼미는 그 새끼를 백일 동안 품어 기른다. 날개가 생겨나면 어미를 잡아먹고 날아간다"고 했고, 《금경(禽經)》에서도 "올빼미는 둥지에 있을 때는 어미가 이를 먹여 기른다. 날개가 생기면 어미의 눈알을 쪼아먹고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배은망덕하여 살모(殺母)하는 패륜의 새로까지 낙인 찍힌 것이다. 물론 아무런 과학적 근거는 없는 말이다.
이런 속설 때문에 올빼미는 공연한 수난을 많이 겪었다. 앞서 올빼미를 잡아죽인 이야기도 보았지만, 《둔재한람(遯齋閒覽)》이란 책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올빼미는 어미를 잡아먹는 불효를 행하는 까닭에 옛 사람이 국을 끓이고, 또 나무에다 그 머리를 내걸었다. 그래서 후인들이 적의 머리를 내걸어 무리에게 보이는 것을 일러 효수(梟首)라고 하였다." 효수형이란 목을 베어 장대에 매달아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게 하는 형벌이다. 옛 사람들이 이 새가 어미를 잡아먹는 불효조라 하여, 몸뚱이는 국을 끓여 먹고, 머리는 나무에 매달았으므로, 이를 본떠 사람의 머리를 장대에 매다는 것을 효수라 했다는 것이다.
김귀주(金龜柱, 1740-1786)의 《가암유고(可庵遺稿)》에는 〈오효설(烏梟說)〉이란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새가 귀한 흑산도에 까마귀와 올빼미가 특별히 많은 것을 보고, 어미를 먹여 봉양하는 까마귀와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가 한 곳에서 서식하는 것이 음양의 조화를 맞추려는 조물주의 뜻이 아니겠느냐고 하고, 올빼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올빼미의 성질은 속임수에 가까워 스스로 추한 외모를 부끄럽게 여겨 환한 대낮에는 달아나 숨어 남몰래 흉악한 욕심을 채우려고 잠든 새를 덮친다. 깊숙이 숨었다가 재빨리 날아 가니 그 오고감이 잘 보이지 않아 예측할 수가 없다. 사람이 비록 그 자취의 비밀스런 점을 안다고는 해도 그 어미를 잡아먹는 불인(不仁)함을 직접 보는 경우란 드물고, 게다가 깜깜한 밤중이기 때문에 화살이나 돌로도 잡을 수가 없는지라, 이 때문에 올빼미는 재앙을 면하는 경우가 또한 많다."
올빼미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이래저래 억울하고 원통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희망의 새 파랑새
벨기에의 작가 메텔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인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남매는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마법사 할멈의 부탁을 받고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요정과 함께 상상의 나라,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 추억의 나라 등을 찾아 밤새껏 헤맨다. 어디에서도 파랑새는 찾지 못하고 꿈을 깨고 보니 파랑새는 바로 머리 맡 새장 속에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이후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파랑새는 파랑새목 파랑새과에 속하는 새로, 약 30cm 가량의 제법 큰 몸집을 지녔다. 몸은 선명한 청록색이고, 머리와 꽁지는 검다. 주로 곤충을 잡아 먹고 산다. 여름 철새로 나무의 썩은 구멍이나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깃들어 산다. 5월 경에 처음 날아와서는 둥지를 차지하려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동양에서도 이 새는 기쁨과 희망을 상징하는 새로 노래되어왔다. 푸른 빛이 주는 신비함 때문인 듯 하다. 신화 전설 속에서 청조(靑鳥)는 서왕모(西王母)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고 소식을 전해주는 신조(神鳥)로 나온다. 한나라 반고(班固)가 지은 〈한무고사(漢武故事)〉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7월 7일, 한 무제가 승화전(承華殿)에서 재를 올렸다. 정오가 되자, 갑자기 파랑새 한 마리가 서방으로부터 날아와 승화전에 앉았다. 한 무제가 동박삭에게 묻자, 동박삭이 말했다. "이것은 서왕모가 오려는 조짐입니다.` 조금 있자 서왕모가 도착하였다. 까마귀처럼 생긴 파랑새 두 마리가 서왕모를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널리 읽혀지면서 파랑새는 서왕모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자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십 여년 전 새롭게 발굴된 《화랑세기(花郞世紀)》에는 〈청조가〉란 노래가 실려 있다. 화랑 사다함이 미실을 사랑하였는데, 전쟁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이미 궁중으로 들어가 전군(殿君)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이에 상심한 사다함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청조가〉다. 그 내용이 몹시 구슬퍼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이를 외워 전하였다고 한다. 노래는 이렇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이해 내 콩 밭에 머물렀던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내 콩 밭의 파랑새야.
어이해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버렸니?
왔거든 모름지기 가지를 말지
또 갈 걸 어이해 찾아 왔더냐.
부질없이 눈물만 비오듯 하고
애간장 다 녹아 죽게 되었네.
내 죽어 무슨 귀신이 될까?
나는야 죽어서 신병(神兵)이 되리.
전군에게 날아들어 호신(護神)이 되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전군 부처(夫妻) 보호하여
만년 천년 길이길이 스러지지 않게 하리.
靑鳥靑鳥 彼雲上之靑鳥
胡爲乎止我豆之田
靑鳥靑鳥 乃我豆田靑鳥
胡爲乎更飛入雲上去
旣來不須去 又去爲何來
空令人淚雨 腸爛瘦死盡
吾死爲何鬼 吾死爲神兵
飛入殿君護護神
朝朝暮暮保護殿君夫妻
萬年千年不長滅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이해 내 콩 밭에 머물렀던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내 콩 밭의 파랑새야.
어이해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버렸니?
왔거든 모름지기 가지를 말지
또 갈 걸 어이해 찾아 왔더냐.
부질없이 눈물만 비오듯 하고
애간장 다 녹아 죽게 되었네.
내 죽어 무슨 귀신이 될까?
나는야 죽어서 신병(神兵)이 되리.
전군에게 날아들어 호신(護神)이 되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전군 부처(夫妻) 보호하여
만년 천년 길이길이 스러지지 않게 하리.
靑鳥靑鳥 彼雲上之靑鳥
胡爲乎止我豆之田
靑鳥靑鳥 乃我豆田靑鳥
胡爲乎更飛入雲上去
旣來不須去 又去爲何來
空令人淚雨 腸爛瘦死盡
吾死爲何鬼 吾死爲神兵
飛入殿君護護神
朝朝暮暮保護殿君夫妻
萬年千年不長滅
콩밭에 내려와 앉는 파랑새는 대뜸 동학항쟁 당시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보면, 파랑새 민요의 연원이 오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민요란 원래 그런 것이다. 중간의 몇 글자는 원문이 이즈러져 판독할 수 없다.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소나무, 1999)를 참조하여 새로 해석했다.
자기 밭에 날아왔던 파랑새가 다시 구름 위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애간장이 다 썩어 문드러지는 그리움과 하염없는 눈물 뿐이다. 파랑새는 미실이고, 하늘 위는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궁궐 안이다. 사다함은 그리움을 못 견뎌 죽어 가면서도 죽어 호신(護神)이 되어 애인이었던 미실과 그녀의 남편 전군(殿君)을 영원토록 지켜주겠노라고 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천주사(天柱寺)에 가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자, 그날 밤 사다함이 미실의 품에 뛰어드는 꿈을 꾸었는데,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夏宗公)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하종공은 모습이 사다함과 아주 비슷했다 하였다.
조선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설 〈숙영낭자전〉에도 파랑새가 나온다. 세종대왕 때 경상도에 살던 부부가 부처님께 빌어 선군을 얻었다. 선군은 천상 선녀가 화생한 숙영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날 남편은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고 부인은 남편이 급제하여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부인은 시부모의 학대와 모함을 못 견뎌 가슴에 칼을 꽂고 자살하고 만다. 사람들이 칼을 뽑으려해도 뽑히지 않았다. 선군이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와 보니, 부모는 숙영이 외간 남자의 침입으로 죽음을 당했다고 했다. 선군이 가슴에 꽂힌 칼을 뽑자 뽑힌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파랑새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알려 주니, 그를 죽이고 숙영을 제사하였다. 그러자 숙영은 다시 살아나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다가 선녀의 인도를 받아 하늘 나라로 승천하였다.
이렇게 파랑새는 우리 옛 노래 속에서도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매월당 김시습은 파랑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문청조성유감(聞靑鳥聲有感)〉이란 시를 남겼다.
꿈에 부용성서 보허자 노래 듣다가
잠 깨니 파랑새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얼키설키 뒤엉킨 살구나무 가지에
집 모롱이 기운 햇볕 숲을 뚫고 환하도다.
박명한 제 신세를 원망하여 호소하듯
영항(永巷)에서 은혜 입음 가벼움을 탄식하듯.
쫓겨난 신하가 상강(湘江) 가를 배회하며
〈이소(離騷)〉를 곰곰 읽어 불평한 맘 울먹이듯.
산 중의 늙은이가 향기를 맡으려고
널 인해 꿈을 깨어 뜰 가운데 노니누나.
세 개인지 다섯 갠지 풀싹 새로 돋았고
한 잎인지 두 잎인지 꽃잎은 날리누나.
봄 바람아 물렀거라 근심 겨워 못살겠다
방주의 새 풀들은 어이 저리 푸르른가.
세월은 새가 날 듯 쉴새 없이 흘러가니
어지러운 뜬 세상을 뉘 능히 멈추리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멀리 곤륜산 꼭대기서 건너온 줄 내 아노니
돌아가 서왕모께 말씀을 전해다오
날 위해 삼천년 사는 복숭아를 주시라고.
내 손수 천 그루 복숭아를 심어서
인간 세상 얽힌 근심 다 녹여 버릴란다.
말 마치자 빙빙 돌다 어느새 날아가니
푸른 하늘 아득하고 구름 안개 걷히었네.
夢聽步虛芙蓉城 睡罷初聞靑鳥聲
間關睍완紅杏枝 屋頭斜日穿林明
初如怨訴妾薄命 後似永巷承恩輕
又如放臣逐客在湘南 細讀離騷鳴不平
山中老人會寧馨 爲爾夢覺遊中庭
三개五개草芽抽 一片二片花飄零
減却春風愁殺人 芳洲之草何靑靑
年光鼎鼎一飛鳥 擾擾浮世誰能停
靑鳥靑鳥 知爾遠涉崑崙
歸來煩語西母前 遺我碧桃三千年
我欲手栽千樹桃 銷盡人間愁纏綿
言訖고翔忽飛去 碧天遼闊收雲烟
잠 깨니 파랑새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얼키설키 뒤엉킨 살구나무 가지에
집 모롱이 기운 햇볕 숲을 뚫고 환하도다.
박명한 제 신세를 원망하여 호소하듯
영항(永巷)에서 은혜 입음 가벼움을 탄식하듯.
쫓겨난 신하가 상강(湘江) 가를 배회하며
〈이소(離騷)〉를 곰곰 읽어 불평한 맘 울먹이듯.
산 중의 늙은이가 향기를 맡으려고
널 인해 꿈을 깨어 뜰 가운데 노니누나.
세 개인지 다섯 갠지 풀싹 새로 돋았고
한 잎인지 두 잎인지 꽃잎은 날리누나.
봄 바람아 물렀거라 근심 겨워 못살겠다
방주의 새 풀들은 어이 저리 푸르른가.
세월은 새가 날 듯 쉴새 없이 흘러가니
어지러운 뜬 세상을 뉘 능히 멈추리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멀리 곤륜산 꼭대기서 건너온 줄 내 아노니
돌아가 서왕모께 말씀을 전해다오
날 위해 삼천년 사는 복숭아를 주시라고.
내 손수 천 그루 복숭아를 심어서
인간 세상 얽힌 근심 다 녹여 버릴란다.
말 마치자 빙빙 돌다 어느새 날아가니
푸른 하늘 아득하고 구름 안개 걷히었네.
夢聽步虛芙蓉城 睡罷初聞靑鳥聲
間關睍완紅杏枝 屋頭斜日穿林明
初如怨訴妾薄命 後似永巷承恩輕
又如放臣逐客在湘南 細讀離騷鳴不平
山中老人會寧馨 爲爾夢覺遊中庭
三개五개草芽抽 一片二片花飄零
減却春風愁殺人 芳洲之草何靑靑
年光鼎鼎一飛鳥 擾擾浮世誰能停
靑鳥靑鳥 知爾遠涉崑崙
歸來煩語西母前 遺我碧桃三千年
我欲手栽千樹桃 銷盡人間愁纏綿
言訖고翔忽飛去 碧天遼闊收雲烟
여기서도 파랑새를 서왕모의 전설과 결부지었다. 자다 파랑새 울음소리에 잠을 깨었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듣는 파랑새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그 파랑새더러 곤륜산으로 가서 서왕모에게 한 알만 먹으면 삼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반도(蟠桃) 복숭아를 주라고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복숭아를 심어 인간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잊고 신선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파랑새는 내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옛 시조 속에 나오는 파랑새는 이렇다.
청조야 오도고야 반갑다 님의 소식
약수(弱水) 삼천리를 네 어이 건너온다
우리 님 만단정회를 네 다 알까하노라
약수(弱水) 삼천리를 네 어이 건너온다
우리 님 만단정회를 네 다 알까하노라
약수는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둘레를 감돌아 흐르는 강물이다. 이 강물 위에는 가벼운 새 깃털도 가라앉고 말아, 그 이름이 약수다. 이 강물에는 배를 띄워봤자 그대로 가라앉고 만다. 약수를 건너는 방법은 허공으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 누구도 다다를 수가 없는 곳이다. 그 곤륜산으로부터 청조가 애타게 기다리던 님의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날아온다. 너는 내 님의 소식을 잘 알고 있겠지? 나에게 어서 알려주려므나. 전할 길 없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파랑새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파랑새에게서 자유를 보았다. 다음은 그의 시 〈파랑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 다니며
푸른 들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푸르름은 희망이고, 또 슬픔의 빛깔이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마음껏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을 원없이 우는 그런 파랑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슬픈 삶에 비추어 볼 때 더 슬프고 간절하게 읽힌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가까운데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나 꿈을 세워놓고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인생의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늘 손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단지 우리의 눈과 귀가 욕심에 사로잡혀 그 소리를 듣고 그 빛깔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밖의 파랑새 시
파랑새/ 김상미(검은, 소나기떼, 세계사, 12면)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내 청춘의 중간 지점에 나무관으로 걸려 있습니다 아직도 나는 나무관을 따뜻한 지하로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힘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모르는 척 지나갔습니다 끙, 끙, 끙, 나는 나무관을 끌어내리는 데 내 청춘을 다 소비했습니다 물빛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뚝, 뚝, 뚝, 나무관을 적실 때마다 나무관 위엔 붉은 꽃들이 피고 붉은 꽃들이 졌습니다 내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나는 내 삶 전체를 흔드는 아버지의 나무관 때문에 자꾸만 끝이 뾰족해졌습니다 끝이 뾰족한 것은 모두 죄다, 힘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모르는 척 지나갔습니다 너무나도 끝이 뾰족해진 나는 어깨 위의 나무관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관에 뚫린 구멍이 아주 커다란 구멍이 되었을 때, 그 구멍 속에서 새 한 마리 날아올랐습니다 파랑새, 나는 것은 모두 죄다, 끝내 아버지는 따뜻한 지하에 내려서지 못하고 추운 하늘로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죄의 얼룩만 남은 나무관 곁에서 이제 홀로, 홀로 노래해야 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골칫거리 참새
참새는 새 중에 새다. 오죽하면 이름도 참새일까. 참다운 새, 진짜 새가 참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늘 인간의 주변에 함께 해온 새다. 참새는 몸이 작다. 참새 작(雀)자가 새 추( ) 자 위에 적을 소(少)를 쓴 것만 봐도 이 새가 얼마나 작은 새인 줄 알 수 있다. 참새는 진짜 새인데, 정작 진짜 대접은 못 받는 새다. 개나리꽃이 참나리꽃보다 더 사랑을 받는 것은 이른 봄에 피기 때문인데, 참새는 너무 흔하고 늘 보는 새이다 보니 오히려 시큰둥하게 본다. 가을 추수를 앞둔 농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참새다. 참새는 허수아비를 세워 쫓으려 들면 어느새 가짜인 줄 알고 허수아비 머리 위에 올라앉는 영리한 새다. 한 마디로 얄미운 녀석이다. 한시 속에서 참새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두 팔 든 허수아비 도롱이 입혀 세우니
그제야 한가한 입 산유화가 부르누나.
어제는 의심턴 새 오늘 내려 앉으니
외려 허수아비 향해 욕을 퍼붓는구나.
撑揭偶人의사笠 得閒口山花歌
昨日鳥疑今復下 還向偶人笑罵多
그제야 한가한 입 산유화가 부르누나.
어제는 의심턴 새 오늘 내려 앉으니
외려 허수아비 향해 욕을 퍼붓는구나.
撑揭偶人의사笠 得閒口山花歌
昨日鳥疑今復下 還向偶人笑罵多
이명오(李明五, 1780-1836), 〈참새 쫓는 아이[驅雀兒]〉란 작품이다. 가을걷이를 앞둔 황금 들판에 참새 떼가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애가 탄 아이는 꽹과리를 두드리며 참새 떼를 쫓기에 여념이 없다. 안되겠다 싶어 허수아비를 팔 벌려 세웠다. 녀석들은 사람인가 싶어 아이의 논 근처엔 얼씬도 않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아이는 산유화가도 흥얼거리며 제법 여유를 부려본다. 그것도 잠시, 이튿날 아침 논에 나온 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수아비 근처에 얼씬도 못하던 참새 떼가 오늘은 다시 내려앉아 찧고 까불며 제멋대로 알곡을 먹어치우고 있다. 아이는 화가 나서, "그것도 못 지키니 이 바보야! 팔은 왜 벌리고 서 있어? 바보 같은 자식. 허수아비 자식." 하며 씩씩거린다.
참새야 참새야 요 조그만 녀석아
천지의 사이에서 몸을 길러 나왔구나.
깃을 털며 날개 펴고 다시 근심 없으니
이따금 다투어 꽃밭으로 달려나네.
서쪽 동산 비갠 뒤에 벼가 처음 익으니
참새가 포식하며 농부를 속이누나.
농부는 한낮까지 소리쳐도 못 내쫓아
입술 타고 입은 말라 쇳소리가 나는구나.
참새야 참새야 너 무엇을 만날까
때마침 매 한 마리 가을 바람 타고 있다.
黃雀黃雀甚微物 養出形軀天地中
刷毛伸翼無復慮 有時爭赴百花叢
西園雨後禾初熟 黃雀飽食欺田翁
田翁日午呼不得 唇焦口燥鳴桑弓
黃雀黃雀爾何遇 會有鷹준乘秋風
천지의 사이에서 몸을 길러 나왔구나.
깃을 털며 날개 펴고 다시 근심 없으니
이따금 다투어 꽃밭으로 달려나네.
서쪽 동산 비갠 뒤에 벼가 처음 익으니
참새가 포식하며 농부를 속이누나.
농부는 한낮까지 소리쳐도 못 내쫓아
입술 타고 입은 말라 쇳소리가 나는구나.
참새야 참새야 너 무엇을 만날까
때마침 매 한 마리 가을 바람 타고 있다.
黃雀黃雀甚微物 養出形軀天地中
刷毛伸翼無復慮 有時爭赴百花叢
西園雨後禾初熟 黃雀飽食欺田翁
田翁日午呼不得 唇焦口燥鳴桑弓
黃雀黃雀爾何遇 會有鷹준乘秋風
성간(成侃, 1427-1456)의 〈황작가(黃雀歌)〉다. 세상에 상팔자가 참새 팔자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놀고,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으면 농부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아가며 알곡으로 배를 채운다. 일년 농사를 다 망칠까 봐 농부는 후여 후여 소리치며 밭 두둑 가를 차마 떠나지 못한다. 하도 소리를 치다 보니 목이 다 쉬어 화살이 활시위를 떠날 때 나는 쇳소리가 난다. 저 하늘 위를 맴돌고 있는 매가 어서 빨리 저 얄미운 참새를 잡아가 버렸으면 싶다는 말로 시를 맺었다. 안타깝고 얄미웠던 것이다.
빈 창고의 참새
아래 창고 위 창고로 울며 짹짹거리네.
담 높고 땅 넓은데 흰 빛이 번쩍번쩍
새끼 함께 구슬 같은 낱알들을 톡톡 쪼네.
운반 창고 이 바로 관가에서 쓸 것이라
수레 몰아 곡식 엎어 낱알이 즐비해라.
그 누가 아이더러 새 총을 쏘게 했나
몸 작아 다시금 나는 활도 두렵잖네.
긴 시간 새매는 긴 지붕에 내려 앉아
모르는 중 재앙 기틀 어지러이 부딪누나.
가을 들판 벼와 기장 밭마다 가득하고
위에는 밝은 해가 아래는 푸른 곡식.
높이 날며 지저귀면 너를 어이 하리오
고개 숙여 한 번 쪼아도 재앙이 없을텐데.
空倉雀 上倉下倉鳴促促
墻高地寬白삭삭 將雛啄啄珠顆穀
輸倉的是官家足 驅車覆 粮簇簇
兒童誰敎汝挾彈 身小不復畏飛鏃
長時輕준下長무 暗中禍機紛相觸
秋郊禾黍田 上有白日下靑薄
高飛嘲석奈汝何 一만一啄從無厄
아래 창고 위 창고로 울며 짹짹거리네.
담 높고 땅 넓은데 흰 빛이 번쩍번쩍
새끼 함께 구슬 같은 낱알들을 톡톡 쪼네.
운반 창고 이 바로 관가에서 쓸 것이라
수레 몰아 곡식 엎어 낱알이 즐비해라.
그 누가 아이더러 새 총을 쏘게 했나
몸 작아 다시금 나는 활도 두렵잖네.
긴 시간 새매는 긴 지붕에 내려 앉아
모르는 중 재앙 기틀 어지러이 부딪누나.
가을 들판 벼와 기장 밭마다 가득하고
위에는 밝은 해가 아래는 푸른 곡식.
높이 날며 지저귀면 너를 어이 하리오
고개 숙여 한 번 쪼아도 재앙이 없을텐데.
空倉雀 上倉下倉鳴促促
墻高地寬白삭삭 將雛啄啄珠顆穀
輸倉的是官家足 驅車覆 粮簇簇
兒童誰敎汝挾彈 身小不復畏飛鏃
長時輕준下長무 暗中禍機紛相觸
秋郊禾黍田 上有白日下靑薄
高飛嘲석奈汝何 一만一啄從無厄
권헌(權헌, 1713-1770)의 〈빈 창고의 참새[空倉雀]〉다. 곡식 창고는 높은 담장 안에 있다. 나라의 곡물을 실어 나르는 이곳에는 운반 도중 떨어진 낱알이 많다. 하지만 그 많은 낱알을 먹는 것도 막상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새총을 들고 노리고, 또 화살을 매겨 시위를 당기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야 워낙에 몸집이 작아 잘 피해 갈 수 있다 해도, 아까부터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새매도 호시탐탐 참새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손쉽게 얻는 듯 해도 감수해야 할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왜 저 드넓은 가을 벌판으로 나가서 시원스레 높이 날면서 마음껏 낱알을 먹으면서 걱정 없이 살지 않느냐고 말이다.
아마도 시인은 먹고사는 일에 얽매어 훌훌 떨치고 자연의 삶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을 풍자하고 싶었던 듯 하다. 더구나 제목에서 `빈 창고`를 말한 것을 보면, 그나마 그 곳도 먹을 것이 그렇게 풍족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새총에다 화살에다 새매의 위협까지 감수하지 않으면 그나마 호구조차 할 수 없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전원으로 돌아와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며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럴 때 참새는 욕심에 눈이 멀어 위험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시인은 먹고사는 일에 얽매어 훌훌 떨치고 자연의 삶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을 풍자하고 싶었던 듯 하다. 더구나 제목에서 `빈 창고`를 말한 것을 보면, 그나마 그 곳도 먹을 것이 그렇게 풍족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새총에다 화살에다 새매의 위협까지 감수하지 않으면 그나마 호구조차 할 수 없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전원으로 돌아와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며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럴 때 참새는 욕심에 눈이 멀어 위험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참새가 무슨 일로 푸드득 대나
마른 갈대 가지에 둥지 쳤다가,
강 가로 불어온 매운 바람에
갈대 꺾여 둥지가 기울었다네.
둥지야 부서져도 안 아깝지만
알 깨지니 참으로 구슬프구나.
암수 서로 날면서 우짖는도다.
저물어도 깃들어 쉴 곳이 없네.
그대여 저 참새를 자세히 보게
세상 이치 이로 미뤄 알 수 있나니.
둥지 엮음 단단치 않았으랴만
의탁한 곳 마땅치 않았음일세.
黃雀何翩翩 寄巢枯葦枝
江天위然風 葦折巢仍의
巢破不足惜 卵破良可悲
雌雄飛且鳴 日夕無所依
君看彼黃雀 物理因可推
結巢豈不固 所託非其宜
마른 갈대 가지에 둥지 쳤다가,
강 가로 불어온 매운 바람에
갈대 꺾여 둥지가 기울었다네.
둥지야 부서져도 안 아깝지만
알 깨지니 참으로 구슬프구나.
암수 서로 날면서 우짖는도다.
저물어도 깃들어 쉴 곳이 없네.
그대여 저 참새를 자세히 보게
세상 이치 이로 미뤄 알 수 있나니.
둥지 엮음 단단치 않았으랴만
의탁한 곳 마땅치 않았음일세.
黃雀何翩翩 寄巢枯葦枝
江天위然風 葦折巢仍의
巢破不足惜 卵破良可悲
雌雄飛且鳴 日夕無所依
君看彼黃雀 物理因可推
結巢豈不固 所託非其宜
권필(權필, 1569-1612)의 〈감회(感懷)〉시다. 갑자기 강가 갈대숲이 소란하다. 참새가 짹짹 울며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며 우짖는다. 마른 갈대 사이에 얽어둔 둥지가 매운 바람에 갈대가 꺾이면서 부서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둥지만 부서진 것이 아니다. 그 안에 품고 있던 알까지 다 깨지고 말았다. 암수 두 놈이 해 저무는 강변에서 갈 데도 없이 우짖고 있다. 시인은 넌지시 이야기한다. 둥지를 허술하게 만들어서 부서진 것은 아니었겠지. 둥지를 지어서는 안될 곳에다 둥지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을 맞이한 것일 터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는 특별한 행간이 있다. 가녀린 갈대 위에 둥지를 쳤다가 바람에 꺾여 둥지는 물론 알까지 깨져버린 참새는 임금을 가리킨다. 둥지는 종묘사직이고, 매서운 바람은 바로 왜적의 침입이다. 알은 백성이다. 종묘사직이 간신배들의 손아귀에서 농락 당하다 예기치 못한 왜적의 침입에 속수무책 사직의 붕괴는 물론 깨진 알, 즉 백성들에게 한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탄식이다.
이렇게 한시 속에서 참새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위험을 자초하거나, 분별력이 부족한 그런 존재로도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시도 있다.
족족 언제나 이리 우는 새
어이해 허구헌 날 족족거리나.
세상 사람 만족을 모르는지라
그래서 언제나 부족하지요.
足足長鳴鳥 如何長足足
世人不知足 是以長不足
어이해 허구헌 날 족족거리나.
세상 사람 만족을 모르는지라
그래서 언제나 부족하지요.
足足長鳴鳥 如何長足足
世人不知足 是以長不足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새 울음 소리를 듣다가[鳥鳴有感]〉란 작품이다. 참새가 짹짹 우는 소리를 족족으로 들었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저 놈의 새는 뭐가 그리 좋다고 맨날 만족 만족 하며 우느냐고 했다. 그에 비해 사람들은 어떤가? 이것을 갖고 나면 저것이 갖고 싶고, 저것을 손에 쥐면 또 이것이 탐난다. 그래서 언제나 만족을 모르고 부족하다는 타령만 하며 일생을 탕진한다. 저 자족할 줄 아는 조그만 참새만도 못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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