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증 송자교 서(贈宋子郊序)
최소재(崔疏齋)가 와서 말하기를, “표(彪)가 염동정(廉東亭)과 함께 성산(星山) 송 영공(宋令公) 문하의 출신이었는데, 지금 그 손자 자교(子郊)가 또 동정(東亭)에게 뽑히게 되어 장차 성산에 돌아가서 그 조부를 뵈오려 하므로, 우리들이 그 떠남을 전송하게 되자 동정도 또한 감히 자중하지 못하고 나와서 모임에 참여하였다. 당연히 글을 써서 증별(贈別)해야겠는데, 시나 문에 우리가 능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스스로 요량해도 족히 우리 은문(恩門)을 감동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선생은 비록 후진이나 함께 용두회(龍頭會)에 있으니, 자교(子郊)를 보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 비할 바 아니므로 행여 한 마디 말로 빛나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나는 늙고 또 병들어 건망증이 이미 심하다. 그러나 우리 좌주(座主) 익재(益齋) 시중(侍中)의 손자 이 정당(李政堂)이 자기 조부의 문생 안(安) 정당 문하의 출신이고, 근재(謹齋) 안 문정공(安文貞公)의 손자 정랑(正郞) 경공(景恭)이 자기 조부의 문생 홍 찬성(洪?成) 문하의 출신이며, 내 아들 종학(種學)이 선친 가정공(稼亭公)의 문생인 한청성(韓淸城)의 문생이 되었는데, 지금 자교가 동정의 문하에서 나왔으니,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은문(恩門) 문생이 당(唐)에서 한창 성했고, 송(宋)의 말세에는 액을 당하였다. 그러나 문장의 혈맥이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흐르니 어찌 세교(世敎)의 높고 낮음과 시대의 경히 여기고 중히 여김이 그 사이를 틈나게 할 것인가.
중원이 사고가 많은 이래로 우리 동방은 선비를 존중하고 문치(文治)를 숭상하여 태평한 세상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그들도 주문(主文)의 영화와 급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감탄하지 않는 자 없으며 도저히 미칠 수 없다고 여겼으니, 아, 국가 풍화의 융성함과 인심의 정대함이 과거에 비교하여 줄어들지 아니하였다. 나는 비록 늙고 병들었으나 외람되게 봉군(封君)의 열에 있고 겸하여 사한(史翰)을 영솔하였으니, 인재를 격려하고 왕화를 넓히어 오늘 쓰고 뒷날에 물려주게 함이 밤낮으로 바라는 바이다.
소재(疏齋)의 청은 진실로 감히 어기지 못하거니와, 동정(東亭)의 아름다움도 또한 마땅히 기록해야 할 것이며, 송씨 자손도 또한 마땅히 기록해야 하므로 비졸(鄙拙)함도 잊고 글을 써서 떠나는 길을 전송하며, 또 이르기를, “동정의 영친(榮親) 잔치에 그대의 조부가 오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니, 서늘한 가을에 수레를 편안히 하여 그대가 모시고 오면, 나도 또한 다시 회의 말석에 참여하게 될 것이니, 유독 동정의 영광만이 아닐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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