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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증 휴상인 서(贈休上人序)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30. 19:54

서(序)
 
 
증 휴상인 서(贈休上人序)
 

이색(李穡)

내 나이 16ㆍ7세에 뭇 선비들과 노닐며 연구(聯句)를 짓고 술을 마시곤 하였다. 지금 천태판사(天台判事) 나진자(懶眞子)가 우리들을 사랑하여 불러 함께 시를 읊조리며 해가 부족하면 밤까지 계속하고 술이 얼근하면 고담(高談)과 희학(戱謔)을 하였다. 오(吳) 선생이란 분이 왕왕 와서 모임에 참여하였는데, 얼굴이 청수하고 말도 잘하였다. 휴상인(休上人)은 그 아들이다.
선생이 휴상인에게 명하여 나진자(懶眞子)에게 배우게 하였는데, 휴상인은 《논어(論語)》ㆍ《맹자(孟子)》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곧 떠나서 삼각산으로 들어갔다. 다음해 갑신 정월에 나진자가 또 우리 무리 2ㆍ3명과 더불어 삼각산에서 놀았는데, 휴상인이 동도주(東道主) 가 되었었다. 휴상인은 나이가 나보다 두어 살이 위며 사이가 매우 좋았었는데, 그뒤부터 서로 만날 기회가 매우 적었고, 아주 보지 못한 적이 오래였다. 그때 함께 노닐던 사람 중에 정랑(正郞) 홍의원(洪義元), 진사(進士) 오동(吳同), 내시(內侍) 김정신(金鼎臣)은 다 고인이 되었고, 단지 지금 광양군(光陽君) 이공(李公)이 나와 함께 조정에 있을 뿐이며, 중랑(中郞) 김군필(金君弼), 정랑(正郞) 한득광(韓得光)은 다 시골에 있다.
그런데 어찌 휴상인이 내 집에 찾아오리라고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휴상인이 올 적에, 나진자가 시자(侍者)를 보내면서 편지를 갖추어 휴상인의 일을 매우 자상히 말하였는데, 내가 잊었을까 걱정하여 그런 것같다. 그 편지를 읽고 그 얼굴을 대하니 어렴풋이 전일에 본 기억이 난다. 휴상인이 사중은(四重恩)을 갚아야겠다는 생각 아래 몸과 마음을 수련한 것은 스스로 그 도가 있으려니와, 또 부처의 형상과 부처의 언어가 다 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더욱 긴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자인 도우(道于)ㆍ달원(達元)이란 자로 하여금 종이와 먹을 구걸하여,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法華經)》을 주해가 있는 것으로 각각 한 질씩 인출(印出)하도록 하였다. 또 설법해서 얻은 시주로 서방미타(西方彌陀) 여덟 보살을 그려 장명등(長明燈)에 두고, 그 나머지를 미루어주어 경을 인출하는 비용에 보태었다. 또 말하기를, “법보(法寶)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내 나이 60에 가까우니 봉지(奉持)하는 것이 혹시 태만하면, 다른 변이 없으리라고 보증할 수 없으므로 장차 대산(臺山)에 두고 뒷사람으로 하여금 지켜 나가게 하려는 것이니, 원하건대 선생은 그 사실을 기록해 주십시오.” 하였다.
나는 불교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배우지 않았으므로, 인과(因果)와 진수(進修)의 두 이야기는 모두 모르는 바이니, 어찌 감히 언급하리오만 휴상인의 말이, “위로 사중은(四重恩)을 갚겠다.” 하니, 우리 유도(儒道)와 크게 틀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풍속이 무너져서 부자(父子)가 서로 등지고 형제가 서로 싸우며, 역적이 계속해 일어나고 완악한 백성이 자주 난리를 꾸미는데, 천륜을 무시하는 부도(浮屠)가 도리어 이와 같이 중한 은혜를 갚을 줄 아니, 어찌 기뻐서 뛰고 싶지 않겠는가. 또 하물며 휴상인과 같은 옛 친구임에랴. 또 더구나 나진자의 청으로 먼저 하는 데는 어찌하랴. 이에 즐거이 이 글을 만드는 것이다.


[주D-001]동도주(東道主) : 동도(東道)는 동도주(東道主)의 준말인데 흔히 그 지방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사용됨.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나라 사신(使臣) 촉지무(燭之武)가 진백(秦伯)을 보고 한 말임. 《좌전(左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