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묵헌선생문집 서(?軒先生文集序)
아, 문장의 흥하고 쇠하는 것은 천지의 기수(氣數)와 관계되는 것인가. 원 세조(元世祖)가 해내를 통일하여 문학하는 선비가 대궐 아래로 폭주하게 되자 묵헌(?軒) 선생은 충선왕을 따라 들어가 세조를 뵈오니, 세조는 관(冠)을 쓰지 아니한 채 한가히 앉았다가 갑자기 이르기를, “너는 비록 왕자(王子)지만 내 집 외손이요, 저는 비록 배신(陪臣)이지만 유자(儒者)다. 어째서 나로 하여금 관을 쓰지 않고 유자를 보게 하느냐.” 하고, 드디어 의관을 갖추고 단정히 앉았다. 인하여, “교지(交趾)를 치자면 장차 어떤 계책을 써야 하느냐.” 물으니, 선생은 꿇고 아뢰기를, “군사를 수고롭게 하여 멀리 치는 것이 사신을 보내어 불러오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선생의 학문이 이와 같으므로 이를 발하여 문장을 지으면 인정과 물태(物態)가 극진하게 담기고 물이 쏟아지듯이 기세가 거침없으니 학자가 지금까지 종주로 삼고 있다.
선생의 증손(曾孫)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자복(子復)이 그 아우 자의(子宜)와 함께 와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받아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 순수하기가 마치 광석과 박석(璞石) 속에서 금과 옥이 금방 나온 듯하고, 준일(俊逸)하기가 마치 고기가 냇물에 있고 새가 구름 사이에 있는 것같다. 그 제정(帝庭)에 진언(陳言)하여 표장(表章)을 기술하고 국사(國史)를 교정하여 강령과 조목을 구분한 데 이르러는 진실로 일세를 독보하였다. 나는 만생(晩生)이나 오히려 선생의 자손을 상종하여 문장 도덕의 여서(餘緖)를 듣게 됨으로써 스스로 다행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검열(檢閱) 형제가 우리 도에 뜻을 두어 능히 선조의 아름다움을 앎에 있어서랴. 알고서 전하지 아니하면 또 어질지 못한 것이니, 그 서를 급히 구하여 판각하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동방의 문학이 융성하여 중국에서 칭찬받음을 보게 된 것은 대개 최 문창(崔文昌)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 녹명(鹿鳴)으로 말미암아 제정에서 대책(對策)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독권(讀卷)하는 자가 그 사이에 있어 면주(面奏)할 길이 없는데, 유독 선생은 침전에 입대하여 천하의 대사를 판단하였으니 진실로 공사(貢士)의 미칠 바가 아님은 물론이요, 비록 옛 명신(名臣)이라도 이보다 나을 수 없다. 나는 일찍이 그 사실을 노래하여 뒷 사람에게 알리려 하면서도 아직 못했는데 검열 형제가 다행히 글을 청하므로,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않고 즐거이 서를 만들었다. 그 문장의 흥하고 쇠함으로써 머리에 쓰는 것은 선생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요, 또한 자탄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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