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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청주 용자산 송천사 나옹진당기(靑州龍子山松泉寺懶翁眞堂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48

기(記) 
 
 
청주 용자산 송천사 나옹진당기(靑州龍子山松泉寺懶翁眞堂記)
 

나옹(懶翁) 의 진당(眞堂 초상을 모신 곳)은 명산과 복지(福地)에는 어느 곳이나 있다. 한산(韓山) 목은자(牧隱子)가 붓을 잡아 그 시말(始末)을 기록한 지도 오래이다. 이제 그 무리인 각련(覺連)이 또 와서 말하기를, “청주 용자산(龍子山)에 돌미륵과 석탑이 있습니다. 실로 복지(福地)이기에 촌과 읍을 잇달아 쫓아다니며 불교 신도인 남녀들을 뵙고 재물을 약간 얻어 모아서 방 세 칸을 만들었습니다. 무술년 8월에 준공하고 우리 나옹(懶翁)의 초상을 그 가운데 방에 걸고, 중들은 그 좌우의 방에 살고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향화(香火)를 받들어 스님의 은공에 보답하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선생님께 기(記)를 청합니다. 기문을 누가 쓰지 못하겠습니까마는 나옹의 진당(眞堂)에 기문을 쓰는 것은 선생님의 일입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옹의 탑(塔)에는 내가 왕명을 받들어 명(銘)을 쓰는데, 나옹의 진당에는 그의 제자를 위하여 기문을 쓰는구나. 나와 나옹과는 아득히 멀어서 연결되지 못하였으니, 내가 나옹의 문하에 노닐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나옹의 진당이 나로 인하여 영구히 전해져서 뒷사람들로 하여금 나옹의 이름을 알게 한다면, 실로 나의 붓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평소에 직접 그의 교화를 받았으면서 그가 죽은 뒤에 보탬이 없는 자들과 어찌 같은 날에 견주어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나의 다행인가, 나옹의 다행인가, 아니면 제자들의 다행인가? 인연(因緣)을 만나 마주침은 마땅히 한번 미소로 돌려야 할 것이다.” 하였다.


[주D-001]나옹(懶翁) : 고려 공민왕 때의 고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