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보법사기(報法寺記)
왕성(王城 도성)의 남쪽과 백마산(白馬山)의 북쪽에 큰 절이 있으니, 태조(太祖)의 비(妃) 유(柳)씨가 희사한 것이다. 보시한 전토와 인민이 지금까지 전해오다가 중간에 폐한 지 오래되었다. 시중(侍中)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공(尹公)이 선원(禪源) 법온화상(法蘊和尙)과 더불어 중건할 것을 같이 맹서하고, 지정(至正) 계미년에 시작하여 공역을 마치게 되었다. 또 모의하기를, “《대장경(大藏經)》은 없을 수 없다.” 하고, 이에 강절(江浙)에서 가져온 것이 무자년이었고, 살고 있던 서쪽 건물을 철거하여 《대장경》을 보호하게 한 것은 임진년이었다. 전당(殿堂)이 이미 갖추어지자, 노래 부르는 데 따르는 도구와 일용에 수요되는 물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하여 낙성을 베푼 것은 계사년이었다.
신축년에 낙성중회(落成中會)를 베풀고 겨울에 사적(沙賊)에 의해 전당ㆍ기명(器皿)ㆍ경권(經卷)ㆍ상설(像設) 등이 유린되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드물었으니, 국가에서 서울을 회복한 뒤에 약간 보수하고, 조계선사(曹溪禪師) 행재주석(行齋主席)을 맞이한 것이 갑진년이었다.
을사년에 부인 유씨가 사망하니 공이 슬퍼하고 감회하여 공역을 동독하기를 더욱 급히 하였으니 명년에 공사의 준공을 고했던 것이다. 정미년에 또 다시 대장경을 강절에 가서 가져오고, 다음해에 또 수요되는 기명을 다시 완비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 절의 거듭 보는 초회이다.” 하였다. 드디어 낙성초회를 베푼 것이 경술년이요, 낙성중회는 정사년이었으며, 조계선사 행비주석(行備主席)을 맞이한 것이 무오년으로 □ 비로소 만일미타회(萬日彌?會)를 가졌던 것이다. 무릇 옥우(屋宇)로 된 것이 □□ 칸으로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아, 보는 자로 하여금 엄숙한 존경심을 낳게 하였다. 부인은 3월 5일에 사망하고, 공은 8월 4일에 출생하였기 때문에, 전장(轉藏)을 한 해에 2번한 것은 그 날짜를 사용한 것이었다. 공의 의중은 또 공이 세상을 버리는 날을 쓰고자 하니 아, 그 생각함이 원대하도다.
시포(施布 부처에게 시주한 베) 천 필을, 본(本)은 두고 이식[息]만을 취했다. 또 시전(施田)이 부평부(富平府)ㆍ김포현(金浦縣)ㆍ수안현(守安縣)ㆍ동성현(童城縣)에 있는 것은 공의 조상의 유업이요, 또 토지가 김포 동성에 있는 것은 부인 조상의 유업이었다. 한 해의 비용이 거기에서 나와 일찍이 구걸한 바 없으니, 공의 계책은 그 법을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 세상에는 남의 문간에 서서 구걸하는 자가 많다. 능히 부끄럽지 않으냐. 미타회를 한 지도 이미 6년이다. 공의 강강(康强)한 건강을 하늘이 도와 대반(大半)에 이를 것은 필연한 일이다. 경(經 불경)을 받들어 귀중히 하면 삼승(三乘)의 가르침이 바다의 마음속에 미치고, 부처를 마음속에 생각하면 구품(九品)의 안락한 곳이 반걸음 사이에 있으니, 옛 허물을 벗고 새로운 복을 더하여 그 혜택이 만물에 미치게 할 것을 또 어찌 의심하리오. 다만 알지 못할 것은 공의 뒤를 이어 이 절의 공덕주(功德主)로 되는 자가 능히 공의 마음과 꼭 같아 비록 여러 백 대라도 쇠하지 않을런지가 의문이다. 아, 이것이 바로 공이 기문을 구하는 뜻일 것이다.
공이 현릉(玄陵)의 상신(相臣)으로 덕망이 가장 높아 지금까지 조야(朝野)에 의지하기를 태산같이 중히 여기고 있거니와, 복을 빌어 군왕께 보답하고 만물과 인류가 함께 이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오래될수록 조금도 해태하지 않으니, 어찌 크게 뒷사람의 권계가 되지 않으리오. 염 좌사(廉左使) 중창부(仲昌父)가 공의 명으로 나에게 기문을 구하고, 또 말하기를, “사씨(史氏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가 마땅히 쓸 바이다.” 한다. 이 까닭에 사양하지 않고 기문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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