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설산기(雪山記)
설산(雪山)은 서역(西域)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이름만 들었을 뿐이요, 그 진면목을 알 인연이 없었다. 우선(牛禪)이란 자가 있어 이 이름을 취하여 스스로 호를 삼으니, 나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설산에 있는 소가 가장 살찌고 윤이 나며, 그 결백함이 더욱 유심하기 때문에 그 똥도 오히려 계단(戒壇)에 쓰인다는 것이다. 내 일찍이 그 말을 그의 서적에서 듣고 감히 고하였던 바이요, 상인이 본디 그 일을 알기 때문에 즐겨 취한 것이니 이제 나의 말을 구함에 있어 내 아마도 사양하기 어렵게 되었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그림을 그리려면 바탕이 흰 뒤라야 한다.” 하니, 희다는 것은 바탕의 문채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능히 5가지의 채색을 잘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품에 비유하면 착 가라앉아 움직이지 않고, 순수 전일하여 잡것이 없어 오상(五常)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성품이란 내가 마땅히 기를 바로써 유자(儒者)나 석씨가 다같이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우선은 계(戒)로써 혹시 물욕이 그 결백함을 더럽히는 것을 끊고, 정(定)으로써 혹시 물욕이 그 청정함을 혼란하게 하는 것을 막고, 혜(慧)로써 물욕이 화(化)하여 그 순일로 돌아가게 한다면, 결백이 소에 있지 않고 내 몸에 있을 것이다.
내가 대사를 대하니 설산 속에 있는 것같아서 설산이 멀지 않을 것이요, 대사는 이 설산으로 스스로 표방하면 설산이 대사와 더불어 둘이 아닐 것이다. 그 계로 말미암아 정에 들어가고, 정으로 말미암아 그 혜를 발하여,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이 순전히 결백 청정하여 부처와 더불어 같은 것이니 오히려 무엇을 의심하리오. 설산의 참된 면목이 대사에게 있을 것이다. 대사에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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