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이상재 ▒

李商在 先生 十年祭

천하한량 2007. 4. 5. 18:35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삼천리 제9권 제1호
호수 제9권 제1호
발행년월일 1937-01-01
기사제목 李商在 先生 十年祭
필자
기사형태 회고·수기

李商在 先生이 昭和 2年 2月 29日에 別世하섯스니 今春으로 滿10年祭를 마지하게 된다. 이에 生前 先生으로 더부러 親交게시든 數氏의 追悼文을 실거니와 더욱 來2月號의 祭日에는 社會人士諸氏의 새로운 문물의 追憶을 本誌에 실고저 함니다.

어허, 벌서 十年인가

尹致昊
月南先生이 가신지 어허 벌서 만10년인가, 그때 청년회관에서 運柩하든 광경이 어제갔것만 어허, 벌서 그사이 10년이 흘넛든가.
寂寞韓山月
先生去不歸
八十風浪息
芳名與日輝
라고 나는 輓詞를 써드렷더니, 그 동안이 벌서 10년 채든가, 이제 月南先生의 10年祭를 當함애 추然한 心懷를 금할 길이 없다.
내가 先生으로 더부러 사괴기 시작하기는 辛巳年이라. 그 때 日本정부에 修信使를 보내게 되이 朴定陽씨가 使節이 되고, 月南先生과 나는 그 隨員이 되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甲申改革運動의 主要人材이든 洪英植씨를 맛낫든 것이다. 그 뒤 月南은 甲申改革이 실패되고 또한, 洪英植씨 마저 관군에게 죽으매 一時 忠南故里에 가 게시다가, 丁亥年에 다시 駐米全權의 서기관이 <63> 되어 米國에 가 있었고 그러기를 몇 해 하다가, 다시 서울에 도라와 統衛營의 文案 노릇도 하고 혹 典園局委員으로도 있다가 甲午更張때에 右副承旨로 임명되었고 그 뒤 學部의 學務局長으로 게섰는데, 이 여러해 동안을 늘 갔가히 대하며 지내왔섰다. 더구나 이처지지 안은 일은 乙未年 겨을일이다. 米國에서 도라온 新進 徐載弼씨가 協成會를 모으니, 그 때 月南先生은 孔孟의 儒學의 士요, 徐씨는 기독교 신자엇스나, 서로 의기상합하야 필경 獨立協會를 창설하고, 西大門밧 慕華舘에 모히여 上下協力, 新文化運動을 이르키기 시작한 것이니, 그 때 月南은 거지반 每日이다십히 演壇에 올나 警世의 소리를 전하였다. 그 뒤 기독교 세례을 受하고, 이어 基督敎靑年會 總務로, 半島基督敎運動에 다년 헌신하였음은 世人이 다 아는 바와 如하다.

생각건대 우리 사회의 모든 방면에 선생의 발차최 아니 간데 벌로 없섯으니 만년에는 기독교 일을 보시는 한편 朝鮮敎育協會長, 少年斥候聯盟總裁, 朝鮮日報社長으로 게섰다. 선생이 별세함애 一世―깁흔 哀悼의 뜻을 표했음이 엇지 뜻없다 하리요.
이제 시세는 더욱 復雜多端하매 선생을 追慕하는 감회, 새삼스러히 절실함을 늣기노라.<64>

月南先生 逸話

청년회관에서 間隙있을 때면 흔이 청년들로더부터 將棋를 戱弄하더니 1일은 국세가 불리하야 先生은 宮을 직히고 대수편에 馬卒이 있는지라 馬卒을 가진 자―先生을 향하야
「先生님 인제는 지섯음니다.」 <62>
그러나 先生은 여전히 不肯하며
「어듸 익있나 더 두게.」
하야 몃 번을 行馬한 후 드듸여 卒이 宮中에 들어와 呼將을 하게 되매 先生은 비로소 將棋를 노으며
「인제는 젓네. 앗가 將 불으기 전에 어듸 젓는가.」
先生은 이러한 유희중에도 청년에게 항상 무언의 교훈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럼 帽子 우에다 쓸나

평생 邊幅을 꿈이지 아니 하는 先生은 老來애 더욱 不關하게 되야 매양 冬節酷寒의 際에는 在來의 풍동이 위에다 中山帽를 쓰는 일이 많었다. 一日은 靑年會舘에서 이를 본 청년이 大驚小怪하여 曰
「先生님 中山帽일에다 풍동이를 쓰심닛가.」
先生은 미소를 帶하고 應口反問하여 曰
「그러면 中山帽위다가 풍동이를 쓰랴.」
하야 滿座를 失笑케 하니 先生의 圓滑應酬가<63> 대개 이러하더라.

내 몸 便차고 求乞은 안는다

先生이 在監時에 재판장이 先生을 보고
「나가고 십흔가?」
「나가라면 나가고 있스라면 있슬 뿐이로라.」
「그러면 保釋을 할 터이니 돈 300원을 낼 수 있는가.」
「나는 艱難한 사람이라. 分錢도 업노라.」
「그대가 尹致昊와 친하니 그에게 保證金을 구하여 보라.」
「내 몸 편하자고 남에게 돈을 請求함은 無理한 일인즉 절대로 못 하겠노라.」
其後 재판소에서 尹씨에게 교섭하야 放釋하었다. <64>

가外의 生命

乙丑冬에 某씨가 早朝路上에서 先生을 맛나 先生이 시외 某교회에 講道次로 가심을 알고 老來의 勤勞를 慰勞하니 先生은 莞爾히 우서 曰
「人生七十古來稻인데 70이상의 생명은 가外의 것이 아닌가. 지금 나는 이 가外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앗가울 것은 업네.」
先生은 그 생명까지도 私有치 아니함이 이리하었다.

賣官의 代錢請求

先生이 *贊으로 在** 時때 參政大臣<65>朴齊純씨가 一日은 先生을 대하야
「내가 불가불 委員 幾10名을 쓸 터이니 알어주오. 그리고 令監도 幾名間 쓰시요.」
이와가치 상의하니 先生은 1차 快諾하고 다시 말을 이어
「내게는 委員이 소용없으니 代錢으로 주시요.」
이와 가치 請求하는지라 朴씨가 唐慌하야
「내가 무슨 돈이 있어 代錢을 들이겠소.」
先生은 여전히 自若한 태도로
「大監께서는 늘 팔어 자시닛가 販路를 잘 아시려니와 내야 販路를 몰으니 소용이 있소.」
朴씨가 말을 듯고 무然無語하였다.

月南先生 遺稿

餞春

於斯春己暮代謝悵由天惜別鶯啼樹含情花舞筵番風來有信一夜去無邊借問何時至再逢只隔年 <66>

所感

長夜無眠坐悠悠倍所思家書千里隔友夢一年遲窮達元非我炎火自有時秋虫何卿卿爾亦見秋悲.

除夕

去年此日又今年生寄這間我自然七十二年何所得鏡中霜髮白盈顚歲新人猶舊去舊方就新惟天能再造新歲見新人

朴淵

朴淵瀑布大興城到此行人喫一驚銀河直下三十尺石字分明第一名長天忽掛長天勢呼地上聞霹*聲下有老龍藏變化而非潛毒**淸

遺稿 靑年에 告하는 書

李商在
청년이 개인 신분상의 관계가 如何함과 敎導방법이 如何함과 결과 效力의 如何함을 前己 略述하야 청년되는 諸君에게 권고하였거니와 曾聞하니 建屋於泥沙하면 潦至風撞에 必致傾覆하고 建屋於磐石하면 潦至風撞에 永不壞損이라 하니 同一廻屋이로대 或 傾覆不壞者는 何也오. 以其基礎之或石沙하야 固與不固가 不同故也라. 一屋子의 有形한 關係가 如是할 뿐 아니라 一家의 盛裏禍福과 一國의 安危興亡이 無形冥冥之中에 亦有所由然之基礎하나니 第以一家論之하건대 華堂巨棟이 左列右翼하고 良由之土가 近舖遠列하며 珍寶는 堆積於箱底하고 使令이 동足於廊舍언*는 入其家見之하니 主 人翁은 霜雪이 滿顚하야 東西奔走에 勞苦勤骨하되 其子弟之靑年者난 或 其性이 不正하야 專事貧暴하거나 或 智識이 愚昧하야 不辨叔麥하거나 或 身體가 不康하야 疾病長臥한즉 今日에 雖曰 靑年은 不*家務라 하니 他日에 家主人을 作하리니 然則然後事를 可知할지로다. 自手로 一朝蕩盡하거나 他人이 窺視 占有하야 田宅이 浩劫이오. 黃金이 糞土라. 徒歎 運之否塞하고 尙不知悔悟前非하나니 一何愚哉오. 設有悔之者라도 失羊補牢가 時己晩矣니 奈何, 오 苟使靑年으로 早定方針하야 養其德以正心性하고 修其學以開智識하며 衛其生以健身體하야 以是而子之子孫之孫하면 其榮福이 顧何如哉아 然則靑年之爲一家基礎者不其然乎아. 第就一國論之하건대 <65> 城池堅固가 非家之恃오 甲兵精銳가 非國之福이오 闢土地實倉底이 非國之急務오 良法美規와 善政嘉謨가 不過是爲國之機具니 苟無其人이면 政謨規法之良美善嘉者가 變而爲食慾暴虐하고 倉底土地와 城池甲兵이 亦足爲病國宮民之一助하리니 內底이 群起하고 外侵이 日甚하야 國之滅亡을 自招自取할지라. 古聖이 有訓하대 其人이 存則其政이 擧라 하니 國之爲國이 亶在乎人而人爲人이 豈徒目之能視와 耳之能德으로 謂之人乎아 手之挽足之動과 舌之悼口之喫으로 謂之人乎아. 飛禽走獸와 대 虫潛魚도 皆有是能하나니 人之異乎是者는 德性也와 智識也와 肉體之衛生也니 欲養此三者컨대 將於何時可乎아 苟不於靑年에 早修前程하야 動勉栽培하면 壯而老而에 其將何爲오. <66> 今日之靑年은 他日之老成이라. 廟堂之上에 施措政令 者此人也오 閭巷之間에 移易善俗者도 此人也오. 勤勉後來之靑年하야 以是而傳之世世에 永永不替者도 亦此人也니 一家之寶錄이 無彊하야 由貧而富하고 甲弱而强하고 由小而大하고 由暗而明하야 愈久而愈進鞏固者가 莫非此人이라. 然則一國之基礎가 顧不在於靑年乎아. 敢將數句話하야 當世靑年의 父兄과 當路諸公에게 勤告하노니 莫謂吾國이 今日泰平하고 莫謂吾家가 今日安樂하소서. 泰平安樂이 元來靡常하야 福善禍惡이 由人自作이니 善惡은 由何오. 非敎不得이며 敎在何時오. 時哉靑年이로다. 人之所欲者는 寶也니 忽藏寶於木箱鼠倉이다. 靑年이 是寶며 人之所求者는 福也니 忽求福於怫宇神祠어다. 靑年이 施福이며 人之所好者는 榮也니 勿求榮於陸海權門이어다. 靑年이 是榮이라 榮者는 名譽之文明이오. 福者는 安樂之無窮이요 寶者는 富强之根本이니 第看京城內靑年會堂이어다. 福也寶也榮也가 俱從此中來하나니 請勿建屋於沙上하고 以靑年으로 爲家之基礎하소서. <67>
<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