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자료실 ▒

충청남도 이야기

천하한량 2007. 3. 31. 17:33

(충청남도)

충청남도의 역사


삼국시대 백제의 중심지로서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서 찬란한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고려시대에는 하남도(河南道), 조선시대에는 충청도(忠淸道)라 불리다가 1896년 부터 충청남도 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1896년8월 충청남도 설치

 1932년10월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1963년1월 전라북도 금산군을 충청남도에 편입, 천안군 천안읍을 천안시로 승격

 1986년1월 공주.대천.온양읍이 각각 시로 승격 (5시15군)

 1989년1월 대전시 및 대덕군을 통합, 대전직할시로 승격.분리, 서산군의 서산읍을 시로 승격 및  태안군 설치

 1995년1월 공주시.군, 대천시.보령군, 온양시.아산군, 서산시.군8개 시군이 4개 시로 통합(5시11군)

 1995년5월 천안시.군의 통합(5시10군)

 1996년3월 논산군을 시로 승격(6시9군)
 

충청남도의 상징

충청남도의 기

충남의 한글 첫글인 ㅊ,ㄴ과 영문의 이니셜인 C, N을 시각화함. 맑은 금강과 풍요로운 서해 바다 그리고 푸른 기상의 계룡산,  충남 정신과 미래의 정보를 상징하는 붉은색 원,
인간중심 (인본행정)의 따뜻하고 친근한 지역의 이미지를 표현.
전체적으로는 21세기로 향해 나아가는 충남인의 역동감을 상징함.

충청남도의 꽃

국화

은근과 꾸밈새가 없는 강인하고 소박한 모습은 굳센 지조와 고고한 성품을  자랑으로 여기는 충남인의 모습 표현

충청남도의 새

원앙

기품있고 화목한 금실 좋은 부부애는 충남인의 장점인 화합을 상징

충청남도의 나무

능수버들

은유 자적하며 편협하지 않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격조 높은 충남인의  성격 표현

충청남도의 전설


덕숭낭자와 수덕도령

충청남도 예산의 수덕사엔 해마다 버선꽃이 핀다고 한다.   이는 수덕사 창건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데.......

옛날 이 마을에 수덕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수덕은 어느 양반집 자제였다.
하루는 하인들을 데리고 사냥을 떠났다. 여기저기 살피고 돌아다니던 중 한 마리의 노루를 발견하였다.

그것을 본 하인들은 수덕에게 빨리 활을 쏘 라고 재촉하였다.  그러나 수덕은 묵묵부답 일뿐 하인들에게 답답함을 더해주었다.

"저길 보아라 사람이 있지 않느냐!" 그랬다 거기엔 한 묘령의 여인이 있었다.

달아난 노루와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뒤로하고 수덕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수덕의 가슴에 어느 샌가 그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을 읽어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그 여인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한 하인에게 그 여인에 대해 조사 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곳 그 여인의 이름이 덕숭 이라는 것과 부모를 여의고 홀로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덕망과 예의를 고루 갖추었다는 것도 들었다.   수덕은 사냥을 구실로 그 여인의 집을 자주 맴돌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것도 가끔 그녀 모습을 아주 멀리서 볼 수 있을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한 그가 하루는 체통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여인의 집으로 불쑥 들어갔다.

놀란 그녀 앞에서 그는 그만 모든 감정을 말하고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덕숭낭자는 사랑을 받지 않았다.  이에 수덕은 한층 더 열렬히 자신의 입장을 표하였다.

"그러시다면 저의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주십시오."
덕숭낭자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해 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덕은 곧 승낙하고 공사에 착수하였다. 그는 어서 빨리 절을 지어 덕숭낭자와 혼인을 하고 싶어했다.

그는 절을 지으면서도 덕숭낭자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한 달뒤 절은 완성되었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덕숭낭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왠지 그녀는 기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처님을 모시는 절을 짓는데 부처님을 생각하며 정성을 기울이시지 않고 한 여인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시다니요.  저 뒤를 보시옵소서."

절은 불타고 있었다.  수덕은 다시 시작하였다. 그런데 두 번째에도 이상히 절이 불타 버렸다.   인간으로 그것도 남자의 몸으로 여인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세 번째 수덕은 오로지 부처님만을 염하며 절을 지었다.  그리고 완성이 되자 덕숭낭자를 찾았다.   그녀도 이번엔 기쁨의 눈빛으로 그를 맞았다.  

"낭자 어서 혼례를 올립시다."

덕숭낭자는 시간을 좀 더 가지자는 제안을 했으나 수덕은 반대하며 성화였다.
그리하여 그 다음날 바로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덕숭낭자는 부부지간이지만 잠자리를 따로 하자고 하였다. 이 말을 수덕은 수긍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첫날밤 바로 관계를 가지려 하는데 그때 갑자기 뇌성이 울리고 심하게 비바람이 치기 시작하였는데  덕숭낭자가 일어나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수덕의 손엔 그녀의 버선 한 짝만이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낭자와 있던 방은 온데 간데 없고 넓은 벌판의 한 바위 위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버선은 한 송이 하얀 꽃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곧 깨달았다.  그녀는 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도 함께 깨달았다.
그 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절을 수덕사라 하고 산 이름을 여인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수덕사엔 지금도 버선꽃이 피어 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