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西施), 나라를 구하려 제 한 몸을 버린 여인
1. 중국의 4 대 미녀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녀. 이름은 이광(夷光)이며, 절강(浙江) 저라산(苧羅山) 근처에서 나무장수의 딸로 태어났다. 절세미녀였기 때문에 그 지방의 여자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 병이 들었을 때의 서시의 찡그리는 얼굴까지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방빈(倣빈) 또는 효빈(效빈)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또 오(吳)나라에 패망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 범여(范여)가 서시를 데려다가, 호색가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
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후에 서시는 범여와 함께 오호(五湖)로 도피했다고도 하고 또는 강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의 여인으로 있다가 27살 때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농염한 자태로 그
아버지 현종의 비가 되어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안녹산의 난 때 목매달아 죽은 양귀비((楊貴妃).
중국 전한(前漢) 원제의 명으로 한나라를 떠나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었고, 아들 하나를 낳았으나 호한야가 죽은 뒤 호한야의 본처의 아들인 복주루 선우
(復株累單于)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았다고 하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 왕소군(王昭君).
이 두 여인은 아들과 아버지의 품에 똑 같이 안겼던 전력은 같지만 한 사람은 아들의 품에 안겼다가 아들의 여인인줄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탐이 나서 나중 억지로 빼앗는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가고, 한 사람은 아버지의 여인이었다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들의 품에 안겨 자식을 낳은 것이 다르다고 하면 다르다고 할까…
폭군 동탁을 죽이기 위하여 여포의 여인이 되었다가 깊은 사랑에 빠져 함께 죽음으로
사랑을 마감한 초선(貂嬋)과 더불어 서시는 중국 고대 4대 미녀로 꼽히는데, 이들 중
으뜸은 서시이며, 미의 화신(化身)이자 대명사이다.
2. 서시와 범려
춘추 말엽,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하였지만 크게 패한 뒤 그는 범려를 재상으로 임용하고 이른바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복수의 일전을 준비하였다.
어느 날, 범려는 구천에게 한 가지 방책을 내놓았다.
"오나라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일단 금은보화와 미녀로 오나라 왕을 유혹하여 정국을 어지럽게 하고, 한편 내부적으로는 정예병을 훈련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나라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일단 금은보화와 미녀로 오나라 왕을 유혹하여 정국을 어지럽게 하고, 한편 내부적으로는 정예병을 훈련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천은 범려의 의견에 동의하고, 곧 그로 하여금 미인들을 찾아보게 하였다.
범려는 여러 차례 수소문한 끝에 완사계(浣沙溪)라는 곳에 이광(夷光)이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광의 어머니는 명주(明珠)를 몸에 맞고
범려는 여러 차례 수소문한 끝에 완사계(浣沙溪)라는 곳에 이광(夷光)이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광의 어머니는 명주(明珠)를 몸에 맞고
임신하였다가 빛이 찬란한 새가 품에 들어오자 그녀를 낳았다고 하였다.
범려는 곧 배를 타고 완사계로 향했다. 완사계에 도착한 범려는, 채 바위에 기대어 앉아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홍안소복(紅顔素服)의 여자를 발견하였다.
옆에는 흰 비단이 담긴 바구니가 있었다. 범려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낭자께서는 무슨 일로 그리 걱정을 하시는거요?"
홍안소복의 여자는 잘 생긴 사나이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렸다.
"사람들은 봄빛 새롭다 하지만, 삼 년 봄은 보이지 않고,
맑은 물 넘실거리지만, 나라 잃은 한(恨) 씻을 길 없네"
범려는 깜짝 놀라 한참동안 말을 잃었다.
범려는 몇 차례 알아보고, 그 여자가 이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범려는 의관을 갖추고 그녀를 찾아갔다. 범려가 마을 앞에 이르렀을 때, 이광은 작은 돌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범려가 가까이 가보니, 이광의 옆에는 연지나 화장분도 향유나 입술
"사람들은 봄빛 새롭다 하지만, 삼 년 봄은 보이지 않고,
맑은 물 넘실거리지만, 나라 잃은 한(恨) 씻을 길 없네"
범려는 깜짝 놀라 한참동안 말을 잃었다.
범려는 몇 차례 알아보고, 그 여자가 이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범려는 의관을 갖추고 그녀를 찾아갔다. 범려가 마을 앞에 이르렀을 때, 이광은 작은 돌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범려가 가까이 가보니, 이광의 옆에는 연지나 화장분도 향유나 입술
바르는 기름 따위는 없었으며, 푸른 나뭇잎이 떠 있는 맑은 물 한 그릇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범려는 본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인지라, 그 나뭇잎이 어떤 나무의 것인지 곧 알아차렸다. 그는 곧 물었다.
"낭자께서는 아침에는 비단(沙)을 빨고(浣), 저녁에는 비단을 짜면서도, 어찌 나뭇잎 띄운 물만으로 머리를 감는다는 말씀입니까?"
이광은 그가 전날 보았던 그 사나이라는 것을 알고,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읊었다.
"밤마다 금실 꼬아 비단을 짜지만 모두 공물로 받치네.
가련하도다, 완사 사람들, 등불 밝힐 기름 살 돈조차 없으니."
범려는 다시 한번 놀라며 생각하였다.
"밤마다 금실 꼬아 비단을 짜지만 모두 공물로 받치네.
가련하도다, 완사 사람들, 등불 밝힐 기름 살 돈조차 없으니."
범려는 다시 한번 놀라며 생각하였다.
"이 여인이 나라와 백성들을 이처럼 생각하다니, 우리 월 나라의 희망이로다."
범려는 이광에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나라의 어려움을 구하는데 나서자고 설득하기로 결심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범려는 월왕이 하사한 인부(印符)를 차고, 이광을 찾아갔다. 때가 마침 청명절이라, 월 나라의 고풍대로 집집마다 규수들이 모두 짝을 지어 놀이를 나왔다. 나라는 비록 존망의 위기에 처하여 있었지만, 완사계 언덕에서 답청(踏靑)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범려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이광을 찾다가, 문득 깨진 바위 아래에 어떤 여자가 있는 것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범려는 가까이 가보았다. 범려는, 그 여자가 바로 이광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았다. 이광은 머리에 흰 비단을 두른 채,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범려가 물었다.
"낭자, 청명가절 이 즐거운 날, 이런 차림을 하고 울고 계시다니, 집안에 슬픈 일이라도 있는지요?"
이광은 울먹이며 이런 시를 읊었다.
"남편이 죽은 것도,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오.
다만 나라가 망했던 날을 생각하니, 슬픈 마음 의지할 곳이 없을 뿐이오."
범려는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놀라며, 손을 꼽아 헤아려 보았다. 바로 3년 전 월 나라가
"남편이 죽은 것도,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오.
다만 나라가 망했던 날을 생각하니, 슬픈 마음 의지할 곳이 없을 뿐이오."
범려는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놀라며, 손을 꼽아 헤아려 보았다. 바로 3년 전 월 나라가
망했던 날이었다. 범려는, 이광이 나라의 멸망을 슬퍼하는 우국의 정이 조정의 대신들보다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려는 인부를 내보이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광은 인부를 보더니, 그 사나이가 월 나라의 현신(賢臣) 범려라는 것을 알고, 기꺼이 그의 계획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광은 서시
범려는 인부를 내보이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광은 인부를 보더니, 그 사나이가 월 나라의 현신(賢臣) 범려라는 것을 알고, 기꺼이 그의 계획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광은 서시
(西施)의 어릴 적 이름이었다.
3. 당랑재후(螳螂在後) 당랑규선(螳螂窺蟬) 당랑박선(螳螂搏蟬)
이슬을 먹으려는 매미는 그 뒤에서 사마귀가 노리는 줄을 모르고 또한 사마귀는 자기를
노리는 황작(黃雀)이 그 옆에 있음을 모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눈 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곧 큰 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당랑재후(당랑규선 당랑박선 같은 뜻으로 쓰임)라는 성어가 있다.
사마귀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덮치기를 잘하며 몸 색깔이 보호색이라 더욱 숨어 있기 편리하여 풀잎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가 이 풀숲의 무법자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다가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머리와 큰 눈으로 노려 보다가
낫처럼 생긴 앞발로 매미를 다리에 걸어 정확하게 잘 잡는다
아뿔사 그런데 제 어찌 알았으랴 ! 바로 옆에서 황작(黃雀-참새, 꾀꼬리) 한 마리가 제 머리를 쪼아 먹으려고 날아온다는 것을 …
춘추시대 말기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월나라 공략에 성공한 후 자만에 빠져 간신 백비의 중상을 믿고 상국(相國:재상) 오자서(伍自胥)를 죽였으며, 월(越)나라에서 보내 온 미인
서시(西施)와 유락 생활에 탐닉하였다.
월의 구천이 와신상담 재기를 노린다는 것을 아는 중신들이 간하여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 아침 태자 우(友)는 젖은 옷을 입고 활을 든 채 부차를 만났다. “너는 아침부터
월의 구천이 와신상담 재기를 노린다는 것을 아는 중신들이 간하여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 아침 태자 우(友)는 젖은 옷을 입고 활을 든 채 부차를 만났다. “너는 아침부터
무엇을 그리 허둥대느냐?” 부차가 묻자, 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침에 정원에 갔더니 높은 나뭇가지에 매미가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보니
사마귀 한 마리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사마귀를 먹으려고 노리는데, 사마귀는 통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활 쏘는 데 정신이 팔려 웅덩이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옷을 이렇게 적신 것입니다. 천하에는 이런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를테면 제나라는 까닭 없이 노 나라를 쳐서 그 땅을 손에 넣고 기뻐했지만, 우리 오 나라에게 그 배후를 공격 받고 대패했듯이 말입니다.”
부차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너는 오자서가 못다한 충고를 할 셈이냐? 이제 그런 소리는 신물이 난다.”
충심에서 우러난 간언을 듣지 않은 부차는 결국 월 나라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그 자신은 자결하였다.
장자는 이 일화를 ‘모든 사물은 본래 서로 해를 끼치는 것이며, 이(利)와 해(害)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는 것’이라는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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