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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贊) 판삼사사 최공 화상 찬 병서(判三司事崔公畵像贊 幷序 )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3. 23. 18:59

찬(贊)
 
 
판삼사사 최공 화상 찬 병서(判三司事崔公畵像贊 幷序 )
 

홍무(洪武) 12년 여름 4월 을축(乙丑)일에 중관(中官)이 임금의 명령을 전하기를 “판삼사사(判三司事)인 최영(崔瑩)은 나의 아버지를 섬기는데 힘을 다하고 정의를 떨쳤으며, 우리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어 오늘날에까지 잘지내게 하였으니 나는 그를 매우 가상히 여기는 바이다. 이제 그의 부하가 홍산(鴻山)에서 적진을 파하던 상황을 묘사하여 장차 영원한 세대에 전하려 하니 너 색(穡)은 여기에 찬(贊)을 지으라.” 하셨다. 신 색은 생각하옵건대 국가에서 문무(文武)의 신료를 쓰실 적에 어떤 사람은 중앙에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의 원기를 기르게 하며 어떤 사람은 지방에서 임금의 발톱과 어금니 노릇을 하여 무력으로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시국의 안정과 위험을 따라서 이에 대하여 마음을 주시합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서는 장군이 되고 들어오면 대신이 되어, 조정에서는 그를 믿고 대견히 생각하며 변경은 그를 힘입어 편히 살 수 있으며 간사한 무리들은 위엄을 두려워하여 기가 꺾이어 숨어버리고, 도둑들은 소문만 듣고도 물러가게 하는 사람을 오늘에사 찾는다면 판삼사(判三司)는 가장 그 중에도 걸출한 사람입니다. 판삼사는 곧 상서령(尙書令)입니다. 경인(庚寅)년 이후로 적을 해변에서 막아냈고 하남(河南)에서 적을 토벌하였고 흥왕사(興王寺)에서 난을 평정하여 크고 적은 전투가 78회인데 반항하는 자를 치며 허한 곳을 찌르고 어려운 고비를 당할 적마다 기묘한 전술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60을 넘었는데도 기운이 더 줄어들지 아니하였으니 하늘이 준 용맹과 지혜가 아니면 어찌 이렇게 되겠습니까. 삼사(三司)의 선대에서는 문장으로 우리 나라를 도와서 재상에 오르기도 하였고 과거에 고시관을 맡기기도 하여 하나 하나 지적할 수가 있었는데 삼사공은 다만 전술을 가지고 곤란하고 사변이 많았던 시기를 만나서 굉장하며 비상한 공적을 세웠으며 종종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기도하여 기운이 일세를 덮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에게 “황금을 흙덩이처럼 생각하라.”는 교훈을 받고 이를 마음에 명심하였기 때문에 그의 청백한 지조는 늙을수록 더욱 굳어졌사오니 삼사공의 문무(文武)와 충효(忠孝)는 이것을 모두 겸비하였다 할 것입니다. 생각하옵건대 우리 성상 전하(聖上殿下)께서 선왕의 뜻을 따르시와 덕을 높이며 공을 보답하시고 정명(精明)하심을 진작하시고 굳건한 기운으로 이 어려운 판국을 건져내어 태평을 맞이하였사오니 마땅히 삼사공이 첫째로 영광스런 은총을 이와 같이 극진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아, 훌륭하시도다. 신 색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며 발로 뛰며 길게 노래하옵나이다. 그 글월에 이르기를,
빛나는 위엄과 명성이여, 오직 굳세며 오직 밝도다. 바다 밖의 도둑들도 두려워서 떨고 있으니 나라의 방패며 성벽이로다. 지방의 토호들이 물러나서 숨을 죽이니 백성의 법관이로다. 개부(開府)의 봉작(封爵)을 받았으니 벼슬로 그를 후하게 대우함이다. 생각컨대 공의 마음씨는 곧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로다. 어름처럼 맑으며 소태처럼 쓰도다. 홍산(鴻山) 높은 곳에 북을 울리며 진두에 나섰을 적, 영걸한 그 풍채 찬바람이 휙휙 나니 기운은 세상에 떨쳐 있노라. 그림으로 비슷하게 나타냈으니 모두들 우러러 쳐다 보리라. 옛말에 이르기를, “덕(德)이란 미묘하여 지적할 수 없다” 했는데 이를 지적하자면 다만 공이 해당되리니 아아, 공이 아니면 그 누구이겠는가, 오래도록 건강하시어 우리 임금 곁에 계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