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은선생글 ▒

표전(表箋) 사판문하 전(辭判門下箋)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3. 23. 18:36

표전(表箋)
 
 
사판문하 전(辭判門下箋) 
 

신은 아뢰옵니다. 신은 사신으로 갔다가 비방을 들은 일로 직무를 해면하기를 청하였사온데, 성자(聖慈)가 윤허하지 아니하시니, 신은 부끄러워 땀이 그치지 아니하와 두 번째 낮은 포부를 아뢰는 것이옵니다. 위에 계신 이는 혜택을 베풀기를 힘써 특별히 덕음(德音)을 내리었사오나, 속이 좁아 부끄러움을 간직하기 어려워 다시 간곡한 정성을 아뢰게 되오니 감격함이 부끄러움과 함께 모여들고 눈물이 말씀을 따라 흐르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위포(韋布) , 외로운 인생이옵고, 시서(詩書)의 만학(晩學)으로 그릇 태정(台鼎)에 참예하였으므로 항상 복속(覆?)의 기롱을 근심하옵고, 천정(天庭)에 조회하오니 마침내 사실이 아니라는 비방을 초래하였기로 반열(班列)들이 지목하여 비웃고 여항(閭港)이 떠들썩하오니, 색(穡)은 비록 문을 닫고 깊이 들어앉아도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띠겠사온데 어찌 감히 옷자락을 끌고 활보하여 몸소 경광(耿光)에 가까이 하겠사옵니까. 대개 신은 약속을 내렸으되 아래서 따르지 아니함은 신이 엄하지 못한 때문이옵고, 아래서 속이되 신이 알지 못함은 신의 불찰이오니, 살피지 못한 것은 어두운 탓이옵고 엄하지 못한 것은 유약한 까닭이라, 천하에 어찌 어둡고 유약한 자가 가히 하는 것이 있을 때를 당하여 모두 우러러보는 지위에 처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 때문에 하루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남은 목숨을 애걸하는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전하께서는 이 심정을 이해하시고 제 소원에 따라 주시오면 신은 녹야(祿野)에 한거하여 태평의 풍월(風月)을 읊조리고, 화봉(華封)을 본받아 군왕의 만수를 빌겠사옵니다.


[주D-001]위포(韋布) : 가죽과 베라는 말인데, 미천한 사람의 의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