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表箋)
사좌대언 전(辭左代言箋)
이색(李穡)
신은 아뢰옵니다. 직에 헌신한 이래로 보익한 일이 없사옵고 한갓 성명(聖明)을 더럽혔사옵기로 본직을 해면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밝은 임금은 정성을 미루어 선비를 대우하므로 은혜를 보이는 것만을 전용하지 아니하옵거늘, 충신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오므로 어찌 총애를 굳혀서야 되겠사옵니까. 감히 진정을 아뢰어 존엄을 모독하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천성이 우매하옵고, 마음씀이 편협하오며, 줄이 좋아 빨리 존귀해졌으므로 평소에 물의를 많이 들었사옵고, 행동이 법도가 없어 모두들 청반(淸班)의 흠이라고 지적하오니, 한산한 곳에 몸을 둠이 분에 합당하온데 영광이 무리를 넘었사옵니다. 이는 대개 넓으신 도량으로 결점을 숨겨주시고, 거룩하신 은혜가 대로 미치어, 신의 아비가 성상의 직위(?位)하시기 전에 위질(委質)한 것을 어여삐 여기시고, 신의 이름이 처음 실시하는 과거에 오른 것을 아시와 차서를 무시하고 뽑아 올리시고, 유윤(惟允)의 직에 거하게 하신 것이온데, 신이 이미 가한 것은 드리고 그른 것은 대체하지 못하였사오며, 더구나 기미(幾微)를 막고 시초를 단속한 무슨 공이 있사옵니까. 일에 임하오면 뜻을 바로하기 때문에 도리어 뇌정(雷霆)의 노(怒)하심을 격동하였사오며 몸둘 곳을 생각하오면 천지의 사이에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사오니, 이는 다 복이 지나쳐 하가 생긴 것이오라, 정히 명예를 이루었으므로 몸이 물러감이 합당하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의 불초한 현상을 용서하시고 신의 그칠 줄 아는 마음을 가긍히 여기시와, 유음(兪音)을 내리어 어리석은 포부를 이루게 하여 주시오면, 신은 한가하게 나아가 살면서 더욱 학업을 넓히는 것이 바로 소원이오며, 지휘를 받들어 문사(文詞)를 진달하는 것은 많은 사양을 아니하겠사옵니다. 신은 감격하고 황송함을 누를 길 없사옵니다.
[주D-001]위질(委質) : 몸을 맡김.
[주D-002]유윤(惟允) : 오직 옳게 한다는 말인데, 대언(代言)이라는 직무는 비서와 같은 것으로 임금의 명령을 옳게 인도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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