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록 ▒

成宗 284卷 24年 11月 13日 (甲辰) 002 / 지중추부사 이봉의 졸기

천하한량 2007. 3. 23. 02:49

成宗 284卷 24年 11月 13日 (甲辰) 002 / 지중추부사 이봉의 졸기


○知中樞府事李封卒。 輟朝、賻祭如例。 , 字藩仲, 號蘇隱, 韓山人也。 領中樞院事季甸之子, 韓山君之曾孫。 天順己卯中司馬試, 以門蔭授保義將軍, 成化乙酉魁文科, 授藝文館直提學, 丙戌擢重試, 丁亥拜承政院同副承旨, 累陞左承旨, 秋加嘉善工曹參判, 轉吏曹參判, 甲午拜江原道觀察使, 乙未遷同知中樞府事, 戊戌拜黃海道觀察使, 辛丑拜司憲府大司憲, 遷吏曹參判, 壬寅特除全州府尹, 甲辰特加嘉靖, 遞拜漢城府右尹, 丙午加資憲刑曹判書。 弘治戊申拜永安道觀察使, 己酉爲知中樞府事, 坐事配扶安, 未幾放還, 授漢成府判尹, 遷刑曹判書, 癸丑轉知中樞府事, 至是以疾卒。 年五十三, 諡憲平, 博聞多能, 憲; 布剛治紀, 平。 性執不依違, 好學不倦, 以至地理、卜筮, 亦皆涉獵。

성종 284권 24년 11월 13일 (갑진) 002 / 지중추부사 이봉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봉(李封)이 졸(卒)하였다. 철조(輟朝)하고 부의(賻儀)와 제사(祭祀)를 예(例)대로 하였다. 이봉의 자(字)는 번중(藩仲), 호(號)는 소은(蘇隱)이니, 한산인(韓山人)이며,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의 아들이고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의 증손(曾孫)이다. 천순(天順) 기묘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문음(門蔭)으로 보의 장군(保義將軍)에 제수되었고, 성화(成化) 을유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에 제수되었다. 병술년에 중시(重試)에 합격하였고 정해년에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가 여러 번 승진하여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 가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더하여 공조 참판(工曹參判)이 되었다가 다시 천전(遷轉)하여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었다. 갑오년에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제수받았고 을미년에 옮겨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리고 무술년에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제수받았고, 신축년에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제수받았다가 옮겨서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었다. 임인년에 특별히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제수받았으며, 갑진년에 특별히 가정 대부(嘉靖大夫)를 더하여 체직되었다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제수되었다. 병오년에 자헌 대부(資憲大夫)를 더하여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가 홍치(弘治) 무신년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에 제수되었다. 기유년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는데 사건에 연좌되어 부안(扶安)으로 유배당하였다가 얼마 안되어 풀려나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고, 천전(遷轉)하여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계축년에 천전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가 이에 이르러 병으로 졸하니, 나이가 53세였다. 시호(諡號)는 헌평(憲平)인데, 견문(見聞)이 넓고 능(能)한 것이 많은 것를 ‘헌(憲)’이라 하고, 강직(剛直)함을 펴고 기강(紀綱)을 다스림을 ‘평(平)’이라고 한다. 이봉은 성품이 고집스러워 의위(依違)하지 않았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리(地理)와 복서(卜筮)에 이르기까지 또한 섭렵하였다.

【원전】 12 집 439 면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