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8월 상하이[上海(상해)]에서 한국 독립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외교활동후훤회.
원명은 대태평양회의한국외교후원회이다.
같은 해 11월 태평양 및 극동문제 등의 토의를 위해 워싱턴에 서 개최된 태평양회의에서,
한국의 국권회복운 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관할 아래
상하이 프랑스 조계(祖界)에서 조직하였다.
홍진(洪震)·장붕(張鵬)·이병주(李秉周)·여운홍 (呂運弘)·김인전(金仁全) 등이 간부를 지냈다.
장붕을 주필로 《선전(宣傳)》을 발행하였고,
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로 이승만(李承晩)·김규식 (金奎植)을 파견,
국내 애국지사 372명이 서명 한 장문의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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