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政요인 '김인전 일대기' 펴낸 사학자 이현희씨 | |||||
한국 사학계의 원로 이현희 전 성신여대 교수가 3·1절 85주년을 앞두고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인전 목사의 일대기를 펴냈다. 이씨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장 경재 김인전 목사의 나라사랑’ 제목의 저서를 내면서 “나라사랑이 지극했던 묻혀진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되찾고 싶었다”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서천 지역민 중심으로 구성된 ‘김인전추모사업회’로부터 지역을 빛낸 김인전의 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경재(經齋) 김인전(1876∼1923) 선생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전주 등지에서 목회와 민족교육을 수행하다 일제의 추격을 피해 중국 상해로 들어가 임정 요인으로 활약했다. 내무·재무·학무차장을 거쳐 오늘의 국회격인 의정원 제4대 의장을 지냈다. 지난 1993년 유해로 환국하기 전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2년전 정년퇴임한 이씨는 임정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부문에서 두 권의 책을 발간 이유필, 노백린 등 굵직한 임정요인들의 전기를 펴내 임정사를 꿰고 있었다. “김인전은 목사와 교육자, 독립운동가의 삶을 동시에 수행해 낸 선각자였지요.” 경재는 30세때인 1906년 고향 서천에서 중등과정인 한영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경재는 1914년 전주 서문교회의 초빙으로 목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13일을 전후로 서천과 전주에서 극렬히 전개됐던 3·1운동의 주동자가 된다. 경재는 이 사건으로 일경의 압박이 거세지자 상해로 피신해 임정에 합류, 상해 한인교회를 세워 목회를 했고, 초·중등 과정인 인성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격무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경재는 1923년 48세를 일기로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이씨는 “3·1운동의 저력은 봉사와 화합의 정신입니다. 지금처럼 돈에 눈이 멀고 종파간 담이 높았다면 독립운동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인전 일대기는 정치적 격랑의 이 시기에 나라사랑과 리더십의 표상으로 비쳐진다. 글 정성수, 사진 황정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