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모씨가 내 글씨가 시중에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하여 수장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입안에 든 밥알이 벌나오듯 튀어 -완당 김정희-

천하한량 2007. 3. 12. 18:44
모씨가 내 글씨가 시중에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하여 수장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입안에 든 밥알이 벌나오듯 튀어나왔다. 그래서 붓을 달려 써서 부끄러움을 기록함과 동시에 서도를 약술하고 또 이로써 권면하다[聞某從市中得拙書流落者 購藏之 不覺噴飯如蜂 走寫以志媿 略畧敍書道 又以勉之]

내 글씨 옹졸하고 또 고루하여 / 吾書拙且陋
이십 년을 갈림길에 헤매었다오 / 卄載迷路岐
원화의 각본조차 이해 못하니 / 未解元和脚
난정의 피상(皮相)인들 어찌 알쏜가 / 寧識蘭亭皮
혹 더러 사람들이 강요해오면 / 或有人强要
부끄럼이 앞서네 붓 들자마자 / 拈毫先忸怩
토란 하나 얻어 내기도 부족한데 / 不足博一芋
어찌하여 장사꾼의 손에 들었노 / 何緣贐市兒
절묘하다 그대 글씨 성을 기울여 / 君書妙傾城
거울 속에 봄의 양자(樣姿) 춤을 추누나 / 鏡裏舞春姿
호올로 이르러가 기재(奇才) 달리니 / 獨詣騁異才
제게서 법을 찾아 만족할 텐데 / 自求有餘師
괴이하다 기가의 벽이 많아서 / 多怪嗜痂癖
애목의 어리석음 되었군그래 / 仍成愛騖癡
적전(赤箭) 청지(靑芝) 아울러 비축할진대 / 芝箭歸並蓄
진실로 저령(猪苓)조차 버리지 않네 / 豨苓諒不遺
스스로 살펴보고 문득 혹하여 / 自檢輒自惑
곧바로 그대에게 힐문하고자 / 直欲詰君爲
그러나 내 글씨는 잘 못쓰지만 / 然吾不善書
서도에 나아가선 들은 바 있네 / 書道頗聞之
근원을 거슬러서 삼창을 알고 / 溯源該三蒼
진본(珍本)의 여러 비를 배워야 하네 / 模眞學衆碑
평직이라 균밀이라 그 사이에는 / 平直均密間
글자 밖의 기상(奇狀)이 빛나느니라 / 煥乎字外奇
회계라 천년적을 고사하고도 / 會稽千年跡
오히려 쾌설시가 있다는 것을 / 尙有快雪時
곁으로는 악의론(樂毅論)의 해 자(海字)를 찾고 / 旁探樂毅海
멀리 이재(彝齋) 낙수본을 입증하게나 / 遙證落水彝
구괴라 저연이라 가릴 것 없이 / 而歐怪褚硏
하나의 모니주(牟尼珠)로 거두어져야 / 攝之一牟尼
산과 바다 높깊음을 두들겨 보고 / 山海叩崇深
난새 봉새 마음껏 채찍질하네 / 鸞鳳恣鞭笞
이것저것 하고한 번각본이야 / 紛紛屢飜本
약반(籥盤)을 문질기라 서글프기만 / 捫籥堪一噫
고비나 금수를 만나거드면 / 古肥與今瘦
거꾸로 또 역으로 끌고 가야 해 / 倒行又逆施
대아의 수레바퀼 잡아일으켜 / 扶起大雅輪
특별히 물자기를 세우고 가면 / 特竪勿字旗
종당에는 우리 군사 늘어나리니 / 行當張吾軍
이걸로써 지제를 삼을지어다 / 以此爲質劑

[주D-001]원화의 각본 : 당 나라 원화 연간에 유공권(柳公權)이 글씨로 이름이 났었는데 그 글씨를 일컬어 원화각이라 하였음. 《천중기(天中記)》에 "유공권이 원화 연간에 글씨가 가장 유명하였으므로 유우석(劉禹錫)의 시에 '柳家新樣元和脚'이라 했다." 하였다.
[주D-002]난정 : 왕희지의 난정첩(蘭亭帖)을 말함.
[주D-003]성을 기울여 : 경도(傾倒)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진성(盡城)과 같은 말임. 《문선(文選)》의 손초(孫楚) 시에 "傾城遠追送"의 구가 있음.
[주D-004]기가의 벽 : 성품이 편호(偏好)가 있는 것. 《남사(南史)》 유목지전(劉穆之傳)에 "목지의 손자 옹(邕)은 부스럼딱지를 즐겨 먹으며 맛이 복어와 같다고 하였다. 일찍이 맹영휴(孟靈休)를 찾아가니 영휴가 부스럼을 앓아 딱지가 떨어져 침상에 있었는데 옹이 그것을 집어먹었다."고 하였다.
[주D-005]애목 : 동진(東晉) 사람 유익(庾翼)이 초서와 예서를 잘 써 왕희지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는데 유가(儒家)의 자제들이 희지의 글씨만 배우자 유익이 말하기를 "가계(家鷄)는 천히 보고 야목(野鶩)을 사랑하니 이는 늘 보는 것은 싫증을 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격이다."하였다.
[주D-006]적전(赤箭) 청지(靑芝) : 적전은 지초(芝草)의 유로 영약인데 줄기가 화살대처럼 생기고 적색임. 청지도 영약임.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赤箭靑芝牛溲馬勃敗鼓之皮 俱收竝蓄 待用無遺者 醫師之良也"라 하였음.
[주D-007]저령(猪苓) : 약용인데 천초(賤草)임.
[주D-008]삼창 : 서명(書名)인데 '蒼'은 '倉'이라고도 함. 진(秦) 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창힐편(倉頡篇) 칠장(七章)을 짓고, 중거부영(中車府令) 조고(趙高)가 원력편(爰歷篇) 육장(六章)을 짓고, 태사령(太史令) 호모경(胡母敬)이 박학편(博學篇) 칠장을 지었는데, 모두가 옛 주서(籒書)를 합하여 만든 것으로 무릇 3천 3백 자이다. 한 나라 때에 창힐·원력·박학을 합하여 60자를 끊어 한 장(章)씩 만들었는데 모두 55장으로 아울러 창힐편이라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를 삼창이라 칭함.
[주D-009]회계라 천년적 : 회계산의 구루비(岣嶁碑)를 말하는데 우비(禹碑)라고도 칭한다. 하우(夏禹)가 치수(治水)할 때 각(刻)한 것이라고 전해오는데 모두 70여 자이다.
[주D-010]쾌설시 : 왕희지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을 말함.
[주D-011]악의론(樂毅論)의 해 자(海字) : 왕희지가 쓴 악의론해자본을 말함.
[주D-012]이재(彝齋) 낙수본 : 조자고(趙子固)의 낙수난정본(落水蘭亭本)을 말함.
[주D-013]구괴라 저연 : 구양순(歐陽詢)의 괴와 저수량(褚遂良)의 연을 말함.
[주D-014]약반(籥盤)을 문질기라 : 사실을 잘못 안 것을 말함. 소식의 일유(日喩)에서 나온 말로서 세상에 태어나 해를 못 본 소경이 옆사람에게 해의 모양을 물으니 해는 구리반과 같다 하였는데 두들겨보니 소리가 나므로 종소리를 듣고 해로 알았고, 또 해의 빛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촛불과 같다 하였는데 촛대와 같이 생긴 젓대를 만져보고 햇빛으로 알았다고 한다.
[주D-015]우리 군사 늘어나리니 : 한유의 시에 "頗知書八分 亦足張吾軍"에서 나온 말.
[주D-016]지제 : 무역의 권계(勸戒)를 말함. 《주례(周禮)》 지관(地官)에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