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미녀_왕소군(王昭君)
한헌제(漢宣帝)집정기간,
한나라와 흉노간에는 전쟁이 끊일 줄 몰랐다.
한원제는 흉노와 화친하기 위하여
왕소군을 흉노가한의 왕비로 보냈다.
흉노로 가는길은 말의 효용소리와
남으로 나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로 처량했다.
고향을 떠나 멀리 흉노로 가는
자기의 신세에 감탄하며
왕소군을 거문고를 뜯었다.
왕소군의 처량하고 비장한
거문고소리를 들은 기러기들은
거문고소리를 들으며 말을 탄
아릿다운 왕소군의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고 있노라
날개짓을 하지 않아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여 사람들은 왕소군이 기러기도 떨어지게하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녀를 "락안(落雁)”이라 불렀다.
정권다툼으로 형인 지지선우에 패한
후한선우는 한나라와 연맹을 맺기 위하여
한나라의 한헌제를 배알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버릴 수 없었던
한헌제는 몸소 장안 교외에까지 나가
그를 맞이 했고, 융숭히 접대했다.
후한선우가 장안에 머물러 있는 한달동안
한헌제는 그를 극진히 대접했고,
당시 양식이 적은 흉노의 사정을 보아
약시 3만 4천 홉을 보냄과 아울러
두 장군에게 명하여 1만 기병으로 후한선우를 호송했다.
한헌젝사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한원제는
기회를 보아 파병하여 후한선우의 형을 멸함으로
후한선우의 정권이 공고히 되도록 도와주었다.
기원전 33년 다시 장안을 방문한 후한선우는
공주나 왕실종친의 딸을 자기에게 줄 것을 바랐다.
이에 한원제는 궁녀들보고
누구든 흉노에 시집을 간다면
공주대우를 해준다고 햇다.
마침 왕소군이 자진하여 흉노로 가겠다고 하여
한원제는 왕소군을 후한선우에게 주었다.
이것이 중국 사상 유명한
"소군출새(昭君出塞, 왕소군이 새외로 가다)"이다.
흉노에 시집을 간 왕소군은
흉노가한 후한선우가 한나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권고하는 한 편,
중원문화를 흉노에 전파했다.
그녀의 노력으로 한나라와 흉노는
60여년이나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지냈다.
후한선우이 작고한 뒤,
왕소군은 또 흉노의 풍습에 따라
후한선우의 대알지(왕후)의 맏아들에게 재가했다.
비록 중원윤리관념에는 맞지 않았지만,
왕소군이 한나라와 흉노의 평화를 위해 한
일들을 대충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설에 따르면
절세의 미인 왕소군을 후한선우에게 준
한원제는 너무도 후회되어
궁녀들의 화상을 모두 가져오게 했다.
아무리 보아도 그림과 왕소군의 모습은 비슷한 데도 없었다.
원래 궁녀들이 입궁한 다음에는
화공이 그림을 그려
임금이 그림을 보고 궁녀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뽑혀간 궁녀들은 자기들을 예쁘게 그리게 하기 위해
화공들에게 예물을 주었다.
그러나 왕소군은 예물을 주려하지 않았던 관계로
당시 궁녀화상을 그렸던 화공인 모연수가
왕소군의 모습을 예쁘게 그리지 않았던 것이다.
왕소군이 언제, 어디서 사망했고,
어디에 묻혔는지는 사서에 기록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왕소군은
서시,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미녀 로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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