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측천
무측천은 중국 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이다.
무측천의 본명은 무조[武照]나
황제의 봊좌에 오른 후
무조[武曌]로 고쳤다.
고향은 당나라 초 병주 문수[并州文水,
현재 산서성문수현(山西文水县)]이요,
지금의 사천성 과원[四川省广元市]사람으로
당고조 무덕 7년(서기624年) 정월 출생,
당 중종 신용원년(서기705年)11월에 사망했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무측천은 당 정관11년(서기637년)
14세의 나이에 궁녀로 뽑혀 "가인"을 봉받았다.
당태종은 그녀를 [미랑(媚娘)이라 불렀다.
민간이나 문학작품에서는
[무미랑, 우메이냥]으로 통한다.
당 영위 6년(서기 655年),
당고종의 사랑을 받았던 무측천은
드디어 황제로 책봉되는데 성공한다.
황제로 봉 받은 무측천은
5년 사이에 정적(政敵)들을 제거하고
자기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당 현경 5년(서기 660년) 병으로
정사를 처리할 수 없게 된 당고종은
무측천이 정사에 참여하게 한데 후회를 하고
상관의(상관완아의 부친)더러 조서를 내서
무측천을 폐하게 했다.
그러나 일이 탄로나면서 무측천은 선손을 써
상관의를 극형에 처하고 생살대권을 잡았다.
고종 상원 원년(서기 674년)부터
고종은 천황, 무측천은 천후(天后)라해서
천하는 이성(二聖)이라 칭하게 되었는데
무측천은 사실상 당나라의 정권을 완전 장악하게 되었다.
서기 69O년, 황제의 보좌에 오를 시기가
성숙 되었다고 생각한 무측천은
도처에 여론을 퍼뜨리는 한 편,
아들 당예종을 비롯한 6만 신민(臣民)들이
상서를 해서 황제의 보좌에 오를 것을 간청하는
시나리오를 연기함으로
67세의 나이에 황제의 보좌에 오르고
당나라 국호를 [주(周)]로 바꾸었다.
무측천은 정치모략과
수완이 뛰어난 여인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상 유일한 여 황제로 무측천은
자기가 통치하는 근 반세기 동안
강대한 중앙집권제 국가를 만들었으며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달된 나라를 건설함으로
위로는 "정관의 다스림(貞觀之治)"를 잇고,
아래로는 "개원성세(開元盛世)"를 여는 데
맥을 이어 주었다.
무측천을 두고 중국 국부 손중산(손문)의
부인 송경령은
"봉건시대의 걸출한 여성 정치인"이라고 평가햇다.
무측천은 자기가 죽은 뒤
무덤에 글이 없는 "무자비(無字碑)"를 세우도록 햇다.
'▒ 좋은글모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고대 10대 미녀 초상 (0) | 2007.03.12 |
---|---|
중국 고대 미녀_양귀비 (0) | 2007.03.12 |
중국 고대 미녀_왕소군(王昭君) (0) | 2007.03.12 |
중국 고대 미녀 초선(貂蝉) (0) | 2007.03.12 |
중국 고대 미녀 상관완아(上官婉兒,664~710) (0) | 2007.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