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 석준에게 써서 보이다[書示金君奭準] |
왕 우군이 써 낸 《황정경(黃庭經)》은 바로 한·위(漢魏) 시대 신선가(神仙家)들이 전해 내린 법으로서 그 말이 정(精)하고 실(實)다워 제·양(齊梁) 시대 도사들이 만들어 낸 《내경황정경(內景黃庭經)》의 부탄(浮誕)한 것과는 같지 않다.
대저 사람의 몸이 코로 흡수한 천기(天氣)는 그 목구멍으로부터 내려가 아래로 전음(前陰)에 통하는데 모두 칠문(七門)이 있어 여간(廬間)이라 이르니 오장이 들어 있는 곳이요, 날로 받아 먹는 수곡(水穀)은 목구멍으로부터 내려가 아래로 후음(後陰)에 통하는데 역시 칠문(七門)이 있어 삼초(三焦)라 이르니 위장의 위치이다.
양생가(養生家)들이 심신(心神)과 신신(腎神)으로써 비(脾)의 곳에 어울리게 하는데 그곳을 황정(黃庭)이라 일러 약간은 배꼽과 더불어 서로 마주하며 황정 아래에 관이 있어 대략은 위장의 교관(交關)과 더불어 서로 마주한다. 여간(廬間)의 칠문에 이 문이 가장 중요하여 숨을 내쉬면 관(關)이 열리어 심기(心氣)가 신(腎)과 통하고 들이쉬면 관이 닫기어 신기(腎氣)는 심(心)에 달한다. 이곳이 개합(開闔)과 호흡이 골라지면 온 몸의 관절이 조화되지 않는 곳이 없다.
관 아래에 단전(丹田)이 있어 이를 정해(精海)라 이르는데 신선가들이 흔히 심·신으로써 어울리게 하여 태(胎)가 황정에 맺어지면 단전의 정(精)을 추켜 올리어 기르며, 단(丹)이 이루어지고 영아(嬰兒)가 자라면 승거(昇擧)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건대 세상에서 이를 배우는 사람들이 거의 다 중도에서 실패하고 만다. 대개 이 일은 인간을 이절(離絶)하고 칠정(七情)을 물리치지 않으면 능히 정(精)을 오로지 하여 성공을 이룩하지 못하니 이것이 한 가지 병이며, 신선은 이 하늘을 어기는 일과는 같지 않으니 그 사람이 세상에 공덕이 없으면 어찌하여 죽지 않는 수명을 차지할 수 있으리오. 때문에 반드시 공(功)과 행(行)을 겸한 후라야 선(仙)을 이룰 수 있는 것이며, 행이 부족한 자는 공이 아무리 전일하다 해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바이니 이도 또한 하나의 병이다.
만약 보통사람이 다만 호흡을 조절하여 염담(恬澹)으로써 마음을 편안히 하고 욕심을 경계하여 신(腎)을 보존하면 병이 없이 되어 천년(千年)을 다할 것이니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황정외경경(黃庭外景經)》은 황산곡(黃山谷) 노인이 오통미(吳通微)의 글씨라고 했는데 이 말이 진실로 그러하다. 산곡의 감상은 별도로 한 눈을 갖추어 홀로 정예(精詣)의 곳에 나아갔으니 비록 미원장(米元章 미불(米茀)) 같은 이도 눈을 굴리며 뒤로 서게 될 것이다.
대개 석본(石本)은 이제와서 표준할 수가 없으며 이 밖에는 바로 정운(停雲)의 이른바 "원본과 더불어 대증하여 별로 심한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역시 정운의 서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점이 변하지 않은 것을 벌려 놓은 바둑알이라 이르고, 획이 변하지 않은 것을 벌려 놓은 숫대라 이르고, 방(方)이 변하지 않은 것을 말[斗]이라 이르고, 원(圓)이 변하지 않은 것을 고리[環]라 이른다.
첫째는 생필(生筆)이니, 토호(兎毫)가 둥글고 건장한 것이어야 하며 반드시 쓰고 나면 거두어 넣어 두고 쓸 때를 기다려야 한다.
둘째는 생지(生紙)이니, 새로 협사(篋笥)에서 꺼내야 펴지고 윤기가 나서 먹을 잘 받는다.
셋째는 생연(生硯)이니, 벼룻먹을 다 쓰고 나면 씻어 말리어 젖거나 불게 아니해야 한다.
넷째는 생수(生水)이니, 새로 맑은 샘물을 길러 와야 하며, 다섯째는 생묵(生墨)이니, 쓰게 되면 그때그때 갈아 써야 한다.
여섯째는 생수(生手)이니, 공부를 간단(間斷)해서는 안 되고 항상 근맥(筋脈)을 놀리어 움직여야 하며, 일곱째는 생신(生神)이니, 정회(情懷)가 화평하고 적의하며 신은 편안하고 일은 한가해야 한다. 여덟째는 생목(生目)이니, 자고 쉬고 갓 일어나서 눈은 밝고 체(體)는 고요해야 하며, 아홉째는 생경(生景)이니, 때는 화창하고 기운은 윤택하며 궤(几)는 조촐하고 창은 밝아야 한다.
팔목을 종이면에 붙이고 쓰면 붓 끝에 지력(指力)만 있고 비력(臂力)은 없게 되니 제필(提筆)로도 역시 해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미원장(米元章)이 하얀 종이에 쓴 그가 올린 보의잠표(黼扆箴表)는 필획이 단근(端謹)하여 글자는 파리 머리와 같으나 위치와 규모가 한결같아서 대자(大字)와 같으니 이제부터는 매양 글자를 쓸 때에는 한 글자라도 제필하고 쓰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면 오래 함에 따라 저절로 익숙하게 되는 것이다.
소당(小棠)이 동문(東門)의 역(役)에 있어 크게 힘을 써서 나의 글씨 대자(大字)·소자(小字)를 막론하고 모두 거두어들여 상자에 가득 찼는데도 오히려 부족을 느껴 또 아이종의 어깨를 벌겋게 부어오르게 하였다. 그 후 한달이 지나서 또 산극(山屐)을 챙겨가지고 청계산중(淸溪山中)으로 나를 따라와 다시 선탑(禪榻)을 빌렸는데 종이창 등잔불에 불황(佛幌)이 매우 뜻에 맞아서 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비록 동문(東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역시 바깥 인연이 서로 침요(侵擾)하는 일이 없어 정명(淨名)의 설경(說經)을 두루 보았다.
당승탑명(唐僧塔銘)은 바로 주국인(周菊人)의 소장인데 마단서(馬丹書)가 풍주소시(馮注蘇詩)로써 바꾸어 갔으며 그것이 또 굴러서 동으로 온 것이다. 이 명(銘)은 곧 저파(褚派)로서 또 삼감(三龕)과 근사하니 이는 당 나라 한 시대의 서법이 구(歐)가 아니면 곧 저(褚)로서 이 두 파 이외에는 거의 문호가 나누어지고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 동방에 이르러는 나·려(羅麗) 시대의 금석이 일체 다 구의 법이요 평백제탑(平百濟塔)만이 저체가 된 것이다. 마단서의 발(跋)에는 당서의 일종으로 삼았으니 어찌 상고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던가. 소당과 더불어 서로 대하여 한번 웃었으니 역시 금석 고변(金石考辨)의 한 가지 어려움이었다.
산중 밤에 들리는 것이 많아서 천뢰(天籟)·지뢰(地籟)·인뢰(人籟)가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빗소리, 솔소리, 규두(竅竇)의 노호(怒號)소리, 절중의 범패(梵唄)소리, 종판(鐘板)·경괴(磬䈭)·목어(木魚)소리가 어울려 일어나 일제히 주악하니 서천축(西天竺)의 이른바, 성교(聲敎)의 한 문(門)이 바로 다 이로부터 화현(化現)하여 일어난다. 우리나라 근일에 일종의 아양(啞羊)의 무리들이 단지 화두(話頭)의 한 법에만 들고 나고 하는 것이 곧장 하나의 집상(執相)이요 사구(死句)인 것과는 같지 않다. 정명의 입 다물고 말 없는 것도 곧 이 성문(聲門)의 하나인데 선림(禪林) 속에는 마침내 한 사람도 해철(解澈)한 자가 없단 말인가. 이 또한 운구(雲句)로 하여금 방참(旁參)케 하기바란다.
요새 사람들의 속서(俗書)는 모두 객기(客氣)를 부려 비양(飛揚)하는 것만을 숭상하여 초서에 이르러는 마침내 하나의 집 지키는 부적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소당은 유독 침정(沈靜)한 곳에서 득력(得力)하여 비록 안평원(顔平原)을 배웠지만 그 추광(麤獷)한 기를 염장(歛藏)하고 문약(文弱)한 사람같이 나가 깊이 안서(顔書)의 졸(拙)한 뜻을 터득하였으니, 이것이 안을 배우는 상승(上乘)이라 하겠다. 미남궁(米南宮)이 이 때문에 되돌아보게 된 것이요 동사백(董思白)이 홀로 묘체를 뽑은 것이다.
[주D-001]승거(昇擧) : 몸이 들려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것으로 즉 승천(昇天)임.
[주D-002]천뢰(天籟)·지뢰(地籟)·인뢰(人籟) : 《莊子 齊物論》에 보임.
[주D-003]아양(啞羊) : 벙어리의 양인데 지극리 어리석은 사람에게 비유한 것임.
[주D-002]천뢰(天籟)·지뢰(地籟)·인뢰(人籟) : 《莊子 齊物論》에 보임.
[주D-003]아양(啞羊) : 벙어리의 양인데 지극리 어리석은 사람에게 비유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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