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가을 바람에 뉘우치는 마음이 싹트다의 논[秋風悔心萌論]

천하한량 2007. 3. 9. 20:13
가을 바람에 뉘우치는 마음이 싹트다의 논[秋風悔心萌論]

신은 근안(謹按)하온바 뉘우침이란 길(吉)의 조짐이니 과(過)를 범하고서 능히 뉘우치면 과를 잘 메운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뉘우침이 있어서는 아니 되오니 하루에도 만기(萬幾)여서 민생의 휴척(休戚)이 매이고 국가의 안위(安危)가 판단지므로 한 가지 일에 뉘우침이 생기면 백성과 나라는 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명군(名君) 철벽(哲辟)은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황녕(荒寧)함이 없었으니 어찌 일찍이 칙천(勑天) 갱화(賡和)의 시절에 뉘우칠 만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사옵니까.
신은 일찍이 윤대(輪臺)의 한 조서(詔書)는 무제(武帝)가 자신의 허물을 잘 때운 것으로서 그 조짐은 실지로 추풍의 삼첩(三疊)에서 싹이 텄다고 논했으나 애석하게도 무제는 능히 학을 주로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윤대의 뉘우침을 칭하면서 "그가 평일에 오히려 육경(六經)의 말을 외고 익히며 유생의 논을 들을 줄 알았기 때문에 선단(善端)이 가끔 싹틀 때가 있다." 했으니, 그렇다면 무제는 일찍이 학에 뜻을 아니한 것은 아니나 특히 그 힘을 실용하고 이 마음을 확충하지 못했기 때문에 옛것을 상고하고 문(文)을 숭상하는 정치가 마침내 그 욕심 많은 사심을 이길 수 없어서 결국 해내(海內)가 소란하여 거의 망한 진(秦) 나라의 자취를 밟을 뻔했던 것입니다.
가사 종시(終始)에 학을 주로 하기를 은종(殷宗 은 고종(殷高宗))과 같이 하고 즙희(緝熙)하여 광명(光明)하기를 성왕(成王)과 같이 하였다면 문제(文帝)·경제(景帝)의 부서(富庶)한 나머지를 이어받아 덕택이 만백성에게 흡족하고 빛이 역사에 남을 것을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윤대의 허물 메꿈은 겨우 그 엎어지고 무너짐을 구하는 데 족할 따름이며, 인생과 국가의 이미 받은 병에 이르러는 비록 소제(昭帝)·선제(宣帝)의 휴식 안양(安養)하는 정치가 이어졌다 해도 마침내 다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신은 그렇기 때문에 "임금으로서 뉘우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무제는 특출한 영의(英毅)와 웅무(雄武)와 과단(果斷)으로써 뜻만 쏟으면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터이니 이 마음을 문학(問學)에 옮겨 힘쓰고 힘써 스스로 다스려 나가면 탕무(湯武)의, 성(性)으로 돌아온 효험은 곧 한번 돌리고 옮기는 사이의 일일 것이며 요순(堯舜)의 시옹(時雍)의 화(化)도 여기에 벗어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임금의 한 마음은 만화(萬化)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선유(先儒)는 말하기를 "일념(一念)의 선(善)에 따라 경성(景星)과 경운(卿雲)이 나타나고 일념의 어긋남에 따라 질풍과 괴우(怪雨)가 나타난다." 하였으니, 신은 때문에 추풍 삼첩에 대하여 그 뉘우침을 아름답게 여기면서도 그 능히 학을 주로 하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기는 바입니다.

[주C-001]가을……싹트다 : 한 무제(漢武帝)의 추풍사(秋風辭)를 이름인데, 무제는 추풍사를 짓고 지난 일을 뉘우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다는 말이 있음.
[주D-001]칙천(勅天) 갱화(賡和) :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帝庸作歌曰 勅天之命 惟時惟幾"란 대문이 있음.
[주D-002]윤대(輪臺)의 한 조서(詔書) : 《한서(漢書)》 서역전 찬(西域傳贊)에 "효무(孝武)의 세상에 흉노를 제압하기 위하여 하곡(河曲)을 표(表)하고, 사군(四郡)을 설치하고 옥문(玉門)을 열고 서역(西域)을 통하여 흉노의 오른팔을 잘랐는데, 급기야 말년에는 윤대(輪臺)의 땅을 버리고 애통의 조서를 내렸으니 어찌 인성(人性)의 뉘우치는 바가 아니겠는가." 하였음.
[주D-003]남헌 장씨(南軒張氏) : 송(宋)의 이학가(理學家)로 이름은 식(栻), 자는 경부(敬夫)임. 영오 숙성(穎悟夙成)하여 옛 성인으로써 기약했으며 주희(朱熹)와 더불어 벗이 되었다. 그 학(學)이 의리의 변(辨)에 엄하여 저술로는 《논맹설(論孟說)》·《태극설(太極說)》 등이 있으며 학자들이 남헌선생이라 칭함.
[주D-004]즙희(緝熙)하여 광명(光明)하기를 : 《시경(詩經)》 주송(周頌) 경지(敬之)에 "學有緝熙于光明"의 대문이 있는데, 이는 주 성왕(周成王)이 제사지낼 때에 스스로 격려하여 지은 시임.
[주D-005]탕무(湯武)의……효험 :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堯舜性之也 湯武反之也"란 대문이 있음.
[주D-006]요순(堯舜)의……화(化) :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이란 대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