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夫人禮安李氏哀逝文] |
임인년 11월 을사삭(乙巳朔) 13일 정사에 부인이 예산(禮山)의 추사(楸舍)에서 일생을 마쳤는데 다음 달 을해삭(乙亥朔) 15일 기축의 저녁에야 비로소 부고가 해상(海上)에 전해 왔다.
그래서 부(夫) 김정희는 설위(設位)하여 곡을 하고 생리(生離)와 사별(死別)을 비참히 여기며 영영 가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면서 두어 줄의 글을 엮어 본집에 부치어 이 글이 당도하는 날 그 궤전(饋奠)을 인하여 영괘(靈几)의 앞에 고하게 하는 바이다.
어허! 어허! 나는 행양(桁楊)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가 뒤에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한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 매자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이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부인만은 죽어가서는 안 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될 처지인데도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 없는 원한을 품어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부자(夫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 행양보다 영해보다 더욱더 심했던 게 아니겠소.
어허! 어허! 삼십 년 동안 그 효와 그 덕은 종당(宗黨)이 일컬었을 뿐만 아니라 붕구(朋舊)와 외인(外人)들까지도 다 느껴 칭송하지 않는 자 없었소. 그렇지만 이는 인도상 당연한 일이라 하여 부인은 즐겨 받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었소. 그러나 나 자신은 잊을 수 있겠소.
예전에 나는 희롱조로 말하기를 "부인이 만약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것이 도리어 낫지 않겠소."라 했더니, 부인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놀라 곧장 귀를 가리고 멀리 달아나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거요. 이는 진실로 세속의 부녀들이 크게 꺼리는 대목이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이와 같아서 내 말이 다 희롱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었소.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뻔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
[주D-001]추사(楸舍) : 재사(齋舍)를 이름.
[주D-002]행양(桁楊) : 형구(刑具)로서 목과 다리에 채우는 것.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桁楊相推 刑獄相望"이라 하였음.
[주D-003]영해(嶺海) : 오령(五嶺)의 남쪽,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유배간다는 것.
[주D-002]행양(桁楊) : 형구(刑具)로서 목과 다리에 채우는 것.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桁楊相推 刑獄相望"이라 하였음.
[주D-003]영해(嶺海) : 오령(五嶺)의 남쪽,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유배간다는 것.
'▒ 완당김정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바람에 뉘우치는 마음이 싹트다의 논[秋風悔心萌論] (0) | 2007.03.09 |
---|---|
박중회 묘표(朴仲恢墓表) (0) | 2007.03.09 |
단을 내려와서의 제문[下壇祭文] (0) | 2007.03.09 |
남해신에 올리는 제문[祭南海神文] (0) | 2007.03.09 |
중모 숙부인 정씨 제문(仲母淑夫人鄭氏祭文) (0) | 200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