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원 나라 사람 왕숙명의 글씨 뒤에 제하다[題元王叔明書後]

천하한량 2007. 3. 9. 18:37
원 나라 사람 왕숙명의 글씨 뒤에 제하다[題元王叔明書後]

황학산인(黃鶴山人 왕몽(王蒙))은 그림으로 소문이 났는데 서법의 묘도 또한 그림 아래에 있지 않다. 이는 구·저(歐褚)의 신수(神髓)가 있고 또 대령(大令)의 십삼항(十三行)의 규도(規度)가 있으니 참으로 진·당(晉唐)의 깊은 경지에 들어갔다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의 이른바 진체(晉體)란 가위 부처 없는 곳에서 존(尊)을 일컫는 격이니 바로 다 천연의 외도(外道)이다.
대개 구·저가 산음의 계경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않는 것은 너무도 요량 모름을 보여줄 뿐이다.

[주D-001]대령(大令)의 십삼항(十三行) : 진인(晉人) 왕헌지(王獻之)가 쓴 낙신부(洛神賦) 십삼항.
[주D-002]부처……격이니 : 《속등록(續燈錄)》에 "석상자명선사(石霜慈明禪師)가 경사(京師)에 와서 부마도위(駙馬都尉) 이준욱(李遵勗)을 만나보자, 이(李)는 묻기를 '사(師)가 떠나올 적에 한 구절을 뭐라고 지었지요?' 하니, '무불처작불(無佛處作佛)'이라 하였다." 하였고, 황정견의 한식첩제발(寒食帖題跋)에 "使蘇子瞻見之 應笑我于無佛處稱尊也" 하였는데, 이 뜻도 윗말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