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이 듣건대 평양(平陽)의 뛰어난 가락과 운곡의 평화로운 바람으로 팔율(八律)은 비로소 선양되고, 칠창(七鬯)은 이에서 길어지니 뇌문(雷門)의 북을 울리매 범향(凡響)은 모두 잠기고, 영인(郢人)의 당에 오르니 초유(楚歈)는 재창(再唱)을 못한다네. 때문에 신사(神思)를 아로새기고 쪼며 온회(蘊褱)를 머금고 뱉곤 하여, 연하(煙霞)는 색채를 다투고 금석(金石)은 기이를 도왔도다. 세대가 이미 변함에 따라 유음(流音)도 차츰 미묘해지니 영사(靈蛇)의 척주(尺珠)를 쥐고 녹기(騄騏)의 천리마를 달리어 비록 빛깔은 후승(後乘)에 넘실대고 먼지는 전구(前驅)를 휘날렸지만 뜻은 성하고 쇠함이 있고 소리는 크고 작음이 있도다. 드디어 옛법을 누(陋)하게 여기고 새로운 운(韻)에 휩쓸리어, 비단을 찢어 꽃을 만들매 조루(雕鏤)에만 익숙하고, 재료를 취함이 조심성을 잃어 배우보다 야비하도다. 그래서 호(戶)마다 촌편(寸篇)을 고집하고 집마다 백사(百笥)를 전수하니 이 때문에 양웅(揚雄)은 소도(小道)라는 비웃음이 있었고, 유협(劉勰)은 명시(明詩)의 변(辨)이 급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정(精)은 먼 곳에 달리고 마음은 분원(芬苑)에 노닐어 먹줄을 당겨 스스로 합하고 자귀[斤]를 놀려 쉽게 쓰며 쇠미(衰微)를 떨치고 방렬(芳烈)을 뿌려 이것만이 숭상되었도다. 나의 벗 아무개는 아름다운 절조가 겉에 드러나고 훌륭한 재주[修能]가 속으로 무성하며 약한 날개 하마 굳세어 오래 청운(靑雲)을 쳐다보고 빛나는 모습 짝이 없었으나 끝내 현표(玄豹)가 숨었도다. 부구(浮邱)의 소매를 끄니 효작(孝綽)의 청의(淸儀)를 중히 여기고 난대(蘭臺)에서 무리를 뛰어나니 언승(彦升)의 온자(蘊藉)를 추앙하놋다. 경괴(瓊瑰)는 강좌(江左)로 쏟고 난봉(鸞鳳)은 층공(層空)에서 울며 전예(典藝)를 씨날로 삼아 상영(觴詠)에 풀어놓으니 한 방(房)에서 자득하여 사조(詞藻)를 천정(天庭 궁궐의 뜰을 말함)에 드날리고, 십 년 동안 조고(操觚)하여 청간(靑簡)의 끝을 얽었으니 위려(偉麗)의 조짐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새벽에는 남헌(南軒)에 벌리고 저녁에는 북령(北欞)을 여니 붉은 표첨(表籤)은 자리를 애우고 옥붓대는 괘안을 스치며 연정(淵情)은 예철(睿哲)의 무리에 읍하고 충금(沖襟)은 강해의 계(契)를 불러들여 팔유(八儒)·삼묵(三墨)은 완절(腕節)에 치달리고 한 번 부르며 두 번 탄식하니 치아에 탈영(脫穎)하네. 붓을 머금고 연유(燕遊)하며 고개를 들고 구상할 제 푸른 이끼는 담장에 두르고 꽃다운 꽃은 나무에 피도다. 비바람의 밤에 맑은 거문고를 갓 고르고 술항아리 앞에 벗님이 홀로 가니 정서(情緖)의 고요함이 서글퍼서 내 가슴에 떠나지를 않는다. 옷소매를 치켜들고 천천히 읊으려다 마침내는 말을 놓아 그칠 줄을 모르도다. 또 간혹 태충(太沖)의 긴 감상은 영사(詠史)의 풍류를 벌리고 예릉(醴陵)의 번거론 근심은 예를 법받는 시가 많았으며, 천고를 평론[月朝]하여 마음을 일으켜 슬퍼도 하고 백가를 진퇴[盈育]하여 손을 맞대고 정을 나누네. 벽라(薜蘿) 미인의 가락은 소상강(瀟湘江)의 초신(楚臣)을 부르고 부용 초일(芙蓉初日)의 시편은 사가(謝家)의 지관(池館)에 가깝도다. 어룡은 뒤섞여 춤을 추고 능학(陵壑)은 일제히 울리네. 생(笙)을 불고 황(簧)을 타며 나의 불(黻)과 그대의 패(佩)로 지나간 바퀴를 서로 수답(授答)하며 맺힌 줄로 스스로 즐기놋다. 더더구나 옥규(玉虯)를 달리고 멀리 가며 난사(蘭槎)를 타고 곧장 올라가서 글귀는 추수(秋水)를 이루고 마제(馬蹄)에 적(迹)을 붙이며 붓은 봄 노을에 가려진 채 새로 우저(牛渚)로 돌아오니 영운(靈運 사영운(謝靈運))의 아율(雅律)은 내와 뭍이 무궁을 이바지하고 곽박(郭璞)의 산경(山經)은 신귀(神鬼)가 그 절반을 차지했도다. 젊은 시절 장한 기개는 읽으면 혼을 날리고 세상 밖의 기이한 말은 엮어 놓으면 신(神)이 떨리는 것이다. [주D-001]평양(平陽)의 뛰어난 가락 : 평양은 요(堯)의 소도(所都)로서 평양곡(平陽曲)을 말함. [주D-002]팔율(八律) : 팔풍(八風)을 말한 것임. 《예기(禮記)》에 "八風從律而不姦"이라 하였음. [주D-003]뇌문(雷門)의 북 : 《한서(漢書)》 왕존전(王尊傳)에 "포고(布鼓)를 가지고 뇌문을 지나지 말라."는 대문이 있고, 그 주(注)에 "뇌문은 회계성문(會稽城門)인데 큰 북이 있어 이 북을 치면 소리가 낙양에까지 들린다." 하였음. 말하자면 포고(布鼓)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므로 무학자(無學者)에게 깨우쳐 재지(才智)의 사람 앞에서는 스스로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D-004]영인(郢人)의 당 : 영인은 노래 잘 하는 자를 이름. 송옥(宋玉)의 글에 "客有歌於郢中者其始曰下俚巴人 國中續而和者數千人"이라 하였음. 초유(楚歈)는 초 나라 노래임. [주D-005]영사(靈蛇)의 척주(尺珠) : 즉 수주(隋珠)를 말함. 제4권 주89) 주 309) 참조. [주D-006]양웅(揚雄)은……있었고 : 손건례(孫虔禮)의 서보(書譜)에 "揚雄云 詩賦小道 丈夫不爲"라 하였음. [주D-007]유협(劉勰)은……것이다 : 유협이 저술한 《문심조룡(文心雕龍)》에 명시 제육(明詩第六)의 편이 있음. [주D-008]휼륭한 재주[修能] : 굴원의 이소경(離騷經)에 "紛吾其有此內美 又重之以修能"이라는 구절이 있고, 주(注)에 "修能 好修而賢能也"라 하였음. [주D-009]현표(玄豹) : 《열녀전(烈女傳)》에 "도답자(陶答子)가 도(陶)를 교화한 3년에 명예가 일지 아니하자 그 아내는 말하기를 '첩은 들으니 남산(南山)에 현표(玄豹)가 있어 무우(霧雨)가 7일을 내려도 먹지 않고 숨은 것은 그 터럭을 윤택하게 하여 문장(文章)을 이루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심장(深藏)하여 해(害)가 멀어졌다고 합니다." 하였다. [주D-010]부구(浮丘)의……끄니 : 곽박(郭璞)의 시에 "左把浮丘袖 右拍洪厓肩"의 구가 있고, 그 주에 "부구는 신선 부구공(浮丘公)을 이름이다." 하였음. [주D-011]효작(孝綽)의……여기고 : 유효작(劉孝綽)은 남조(南朝) 양인(梁人)으로 소자(小字)는 아사(阿士)이며 7세에 능히 속문(屬文)을 하니 모구(母舅) 왕융(王融)이 신동(神童)이라 일컬었는데 마침내 사조(辭藻)가 후진의 종앙(宗仰)하는 바가 되었다. 일찍이 양 무제(梁武帝)를 모시고 잔치하면서 시 7수를 짓자 무제는 감탄하고 비서승(祕書丞)을 제수하였으며, 말년에는 비서감(祕書監)이 되었다. 문집이 있어 당시에 유행하였음. [주D-012]난대(蘭臺) : 도서를 비장(祕藏)한 곳으로 난대령사(蘭臺令史)를 두어 관장하게 하였는데 뒤에 비서성(秘書省)을 고쳐 난대라 하였음. [주D-013]언승(彦升)의 온자(蘊藉) : 임방(任昉)은 남조 양(梁)의 박창인(博昌人)으로 자는 언승이다. 8세에 능히 속문(屬文)하자 왕검(王儉)·심약(沈約)이 다 칭찬하였다. 무제(武帝) 때에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었으며 저술한 문장이 세상에 유명하였음. [주D-014]경괴(瓊瑰) : 문장의 화미(華美)를 예찬한 말임. [주D-015]강좌(江左) : 장강(長江) 이동(以東)의 땅을 이름인데 지금 강소(江蘇) 등처임. 예로부터 문장가가 여기서 많이 배출되어 심지어 《강좌문장록(江左文章錄)》이 나오기까지 하였음. [주D-016]난봉(鸞鳳)은……울며 : 문장의 유향(遺響)을 난봉의 울음에 비한 것임. [주D-017]조고(操觚) : 간책(簡策)을 잡고 글을 짓는다는 말임. 육사형(陸士衡)의 부(賦)에 "或操觚以率爾 或含毫而邈然"이라 하였고, 그 주에 "고(觚)는 목간(木簡)인데 옛사람이 종이 대신 사용하였다." 하였음. [주D-018]팔유(八儒)·삼묵(三墨) : 팔유는 도잠의 《성현군보록(聖賢群輔錄)》에 의하면, 자사씨(子思氏)·자장(子張氏)씨·안씨(顔氏)·맹씨(孟氏)·칠조씨(漆雕氏)·중량씨(仲梁氏)·악정씨(樂正氏)·공손씨(公孫氏)를 말하고, 삼묵은 묵자(墨子) 뒤에 갈라져 삼파(三派)가 된 것으로 송형(宋鉶)·윤문(尹文)의 묵(墨), 상리근(相里勤)·오후자(五侯子)의 묵, 고획이치(苦獲已齒)·등릉자(鄧陵子)의 묵을 말함. [주D-019]탈영(脫穎) : 즉 영탈(穎脫)의 도자(倒字)임. 《사기(史記)》 평원군전(平原君傳)에 "譬若錐之處囊中……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이라 하였고, 그 주에 "영(穎)은 송곳의 끝인데 말하자면 그 끝 전체가 벗어나고 조금만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였음. 세상에 능히 그 재주를 스스로 나타내는 사람에게 비유하여 쓰고 있음. [주D-020]태충(太沖) : 좌사(左思)는 진(晉) 임치인(臨淄人)으로 자는 태충이요, 박학 능문(博學能文)하여 사조(辭藻)가 장려(壯麗)하여 제도부(齊都賦)를 지어 1년 만에 이루고 또 삼도부(三都賦)를 지어 10년에야 마침내 이루었다. 장화(張華)는 그 글을 보고 감탄하여 반·장(潘張)의 유(類)로 삼았고 호귀(豪貴)한 집에서도 다투어 서로 전사(轉寫)하여 낙양(洛陽)에 종이가 귀해질 정도였다. 또 그의 영사(詠史) 8수가 《문선(文選)》에 실려 있음. [주D-021]천고를 평론[月朝]하여 : 《후한서(後漢書)》 허소전(許劭傳)에 "허소(許卲)는 허정(許靖)과 높은 명망을 지녀 함께 향당(鄕黨)의 인물을 핵논(覈論)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매양 달마다 그 품제(品題)를 고치게 되므로 여남(汝南)에서는 습속(習俗)에 월단(月旦)의 평이 있었음. 뒤에 와서 인물을 품평하는 의(義)로 삼고 있음. [주D-022]백가를 진퇴[盈育]하여 : 영육(盈育)은 곧 영육(盈朒)으로 육(朒)과 육(育)이 상통하는데 육(朒)은 부족을 이름. [주D-023]초신(楚臣) : 굴원(屈原)을 말함. [주D-024]부용초일(芙蓉初日) : 당승(唐僧) 탕혜휴(湯惠休)가 사령운(謝靈運)의 시를 보고 초일(初日)의 부용과 같다고 하였다. [주D-025]사가(謝家) : 남북조(南北朝) 송(宋)의 사령운(謝靈運)을 말함. [주D-026]봄 노을 : 경위(耿湋)의 원일조조시(元日早朝詩)에 "微風傳曙漏 曉日上春霞"의 구가 있음. [주D-027]우저(牛渚) : 지명임. 이백(李白)의 시에 "進帆天門山 回首牛渚沒"의 구가 있음. [주D-028]곽박(郭璞) : 진(晉) 문희인(聞喜人)으로 자는 경순(景純)임. 박학(博學)하고 높은 재주를 지녀 사부(詞賦)는 동진(東晉)의 으뜸이 되었으며, 더욱 음양(陰陽)·역산(曆算)·오행(五行)·복서(卜筮)의 술(術)에 정묘하여 점을 치면 기험(奇驗)이 많았다. 그 문학은 거의 술수로 가려진 바 되었다. 저술로는《이아주(爾雅注)》·《산해경주(山海經注)》 등이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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