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

천하한량 2007. 3. 9. 18:36
단전 관악산시에 제하다[題丹鄽冠嶽山詩]

관악산 시의 제사구(第四句)인 "몇 천 년을 한결같이 푸르렀도다[一碧幾千年]"는 극히 웅기(雄奇)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혹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이구의 "바위와 솔이 서로 엇물렸구려[巖松相鉤連]"에 이르러는 겉으로 보면 순필로 지나가서 심상하게 접속해 온 것 같은데 이는 가슴속에 오천 권(五千卷)이 들고 붓 밑에 금강저(金剛杵)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천연스럽게 맞추어져서 비록 작자라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인데 더구나 범식(凡識)과 속체(俗諦)로서 가능하고 가해(可解)할 수 있는 일이랴. 옛사람의 묘한 곳은 오로지 이 한 경지에 있으니 이 때문에 옛날의 작자는 지금 사람과 다른 것이다.
지금 네가 안력이 원만하고 익숙한 경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능히 이 한 경(境)을 터득했단 말이냐. 옛사람은 오히려 오천 권·금강저를 가지고도 인공(人工)으로써 이루는데 이는 자연히 흘러나와서 암암리에 옛사람과 합치되었으니 비하자면 조창(槽廠)의 노행자(盧行者)의 보리명경(菩提明鏡)의 게(偈)와 같다. 때문에 오조(五祖)가 마음이 수그러져 저도 모르게 굴순(屈)을 전해주게 된 것이다.

[주D-001]금강저(金剛杵) : 범어로 벌절라(伐折羅)로서 본디 인도의 병기(兵器)를 삼았는데 밀종(密宗)이 빌려서 견리(堅利)의 지(智)를 표(標)하여 번뇌를 끊고 악마를 굴복시키는 것으로 사용하였음. 《인왕경 상(仁王經上)》에 "手持金剛杵者 標起正智 猶如金剛"이라 하였음.
[주D-002]조창(槽廠)의……게(揭) : 노행자는 선종(禪宗) 동토(東土) 제육조(第六祖) 혜능(慧能)을 이름. 8세에 부친을 여의고 장성하자 집은 더욱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가 팔아 편모(偏母)를 봉양하였다. 하루는 저자에 들어가 어떤 사람이 《금강경(金剛經)》을 외우는 것을 듣고 그 얻은 곳을 물어서 기주(蘄州) 황매산(黃梅山)의 오조(五祖) 홍인선사(弘忍禪師)를 찾아갔다. 오조는 묻기를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하였다. 조사(祖師)는 말하기를 "영남 사람은 불성(佛性)이 없다." 하자. 혜능은 "사람은 곧 남북(南北)이 있지만 불성은 어찌 그렇겠습니까." 하니, 사는 그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고서 대방(碓房)에 들어가 쌀을 찧으라 하고 인하여 노행자라 불렀다. 거기서 8개월을 지내자 오조가 부수(付授)할 때가 왔음을 알고 중도(衆徒)로 하여금 각기 득법(得法)의 게(偈)를 써 올리라 하자, 이때 상좌(上座) 신수(神秀)가 게를 쓰기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慝塵埃"라 하니 , 혜능은 듣고서 "나의 소득(所得)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하고 가만히 동자(童子)를 고용(雇傭)하여 밤에 벽 사이에다 한 게를 쓰기를 "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慝塵埃"라 하였다. 오조는 그것을 알고서 남몰래 대방(碓房)에 들어가 묻기를 "쌀이 희냐?" 하니 "희지만 키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오조는 막대기로 대(碓)를 세 번 치면서 갔다. 혜능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그날 밤 삼경에 조상의 방에 들어가니 조사는 마침내 의법(衣法)을 주었다.
[주D-003]굴순(屈>) : 포백(布帛)의 이름인데 제일포(第一布)로서 대세포(大細布)를 말한다. 《의초육첩(義楚六帖)》 22에 "寶林傳云 唐言第一布 紡本棉花心爲之 卽達摩所傳之衣七條也 自師子尊者傳與"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