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공(歐陽公)의 논(論)에, 시(詩)는 "궁(窮)해야만 좋아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만 빈천(貧賤)의 궁을 들어 말한 것이다. 부귀하다 궁한 자라야만이 이를테면 그 궁을 궁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이며 궁해서 좋아진 것도 또 빈천의 궁으로써 좋아진 것과는 다름이 있다. 빈천의 궁으로써 좋아진 것은 심히 이상하게 여길 것이 못 되며 또 부귀한 자라 해서 어찌 잘하는 자가 없겠는가. 부귀하면서 잘하는 자는 또 그 궁을 겪어야만 다시 좋아지니 이것은 빈천의 궁으로서는 능히 못할 바이니, 아! 동남(東南)의 이시(二詩)가 이 때문에 좋아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성령(性靈)과 격조(格調)가 구비된 연후라야 시도(詩道)가 마침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역(大易)에 이르기를 "진퇴와 득상(得喪)에 있어 그 정(正)을 잃지 않는다."라 했다. 무릇 그 정을 잃지 않는 시도를 들어 말한다면 반드시 격조로써 성령을 재정(裁整)하여 음방(淫放)과 귀괴(鬼怪)를 면한 뒤라야 시도(詩道)만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또 그 정을 잃지 않는 것이 되는데 하물며 진퇴와 득상의 즈음에 있어서랴. 아! 지금 동남의 이시는 성령과 격조마저 구비했기 때문이다. 아! 나아가도 좋아지고 물러가도 좋아지고 득(得)을 보아도 좋아지고 실(失)을 보아도 좋아지니 이는 그 정(正)을 잃지 않은 까닭인 동시에 부귀로서 궁하여 좋아지는 것이 빈천으로 좋아지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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