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양문원에게 주다[與梁文畹][2]

천하한량 2007. 3. 9. 04:55
양문원에게 주다[與梁文畹][2]

마을 날씨가 화창하고 길에 따라 여러 갈래 회포를 거두어들이기 어렵더니 곧 보내온 편지와 연전(連牋) 수십 편을 받아 보니 역시 마음에 흐뭇하다.
다만 친환(親患)이 오래 간다니 염려가 놓이지 않으며 여러 가지 근심 걱정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늘 마음에 쓰이네.
이 몸은 근자에 더욱 쇠약하여 병정(病情)이 갈수록 사나우니 붓으로는 낱낱이 적을 수 없네. 면병(麵餠) 선전(扇箋)을 이와 같이 아름다운 것을 보내주니 매우 고맙네.
일본 사람이 나의 글씨를 청구해 왔는데 먼 데 사람의 정중한 뜻을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일세. 다만 팔이 강하고 붓이 건장할 때에는 약간 정력을 허비하면 마칠 수 있는데 이렇게 여지없이 쇠퇴하여 또 거년에 산사(山寺)나 강사(江寺)에 있을 때의 비교가 아니며 또 그대 같은 사람이 곁에서 도와주고 거들어주어야만 흥이 나서 가로 긋고 내리 쓰곤 할 텐데 적적한 마을 창에 햇빛마저 들어오지 아니하고 안력은 몹시 달리고 필력(筆力)도 역시 줄어드네. 지금 만약 급히 성취하기로 한다면 아무래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네.
근자에 가슴이 답답하여 덮인 것도 같고 뭉친 것도 같아서 사십 리 밖에 있는 산절로 한번 소창을 나가고 싶으나 사소한 일로 인하여 꼼짝 못하고 있으니 꽁무니가 들썩여서 더욱 견딜 수 없는 지경일세.
이 밖의 여러 가지 보여준 뜻은 이 편지로는 자세히 언급을 못하겠으니 미루어 두고 한번 만나야 되겠네. 헤아려주게. 근자에 더욱 세상 일에는 마음두는 바 없어서 이일이건 저일이건 모두 간섭하고자 아니하며 일체 문을 닫아버렸으니 옛날 나와 지금 나를 이상히 여길 것이 없네.
표이(蔈耳)는 동승(東僧)과 더불어 언약이 있으니 오면 당연히 나눠 주겠으며 운구(雲句)는 상기도 오지 않았네. 마침 화성(華城)의 유상(留相 수원유수(水原留守)를 이름)이 역로(歷路)에 들려서 극히 분요하므로 간신히 답을 썼네. 불선.

[주D-001]꽁무니가 들썩여서 : 《장자(莊子)》매종사(大宗師)에 "假使化子之尻 以爲輗 以神爲馬 予因以乘之"라는 대문이 있음.
[주D-002]운구(雲句) : 산승(山僧)임. 완당에게 자주 내왕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