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조눌인 광진 에게 주다[與曺訥人 匡振][1]

천하한량 2007. 3. 9. 04:49
조눌인 광진 에게 주다[與曺訥人 匡振][1]

시월이 하마 지나고 이 해도 역시 그럭저럭 다 되어가니 금석(金石)의 언약은 이제 이미 변해버렸소.
뜻밖에도 팔월에 보낸 서한을 이제야 받았는데 오히려 흐뭇하고 기쁜 것은 편지 속에 약속이 들어 있어 예전에 바라던 것이 상기도 지워지지 않은 때문이지요.
다시 묻노니 눈과 추위가 갑자기 대단한데 동정(動靜)이 더욱 편안한지요. 멀리서 비는 바이며 소눌(小訥)도 역시 잘 지내며 글씨 공부도 더 나아갔는지요.
바로 곧 쪽지를 본 바 임서한 글자가 비록 많지는 않으나 평정하고 타당하여 차근차근 신묘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로는 추측할 바가 아니요, 오직 좌우와 내가 알 뿐인데, 한스러운 것은 자리를 마주하여 등불을 돋우고 한바탕 극론을 벌일 수가 없으니 말이외다.
이서(李書)는 기굴하여 흐뭇하기는 하나 오늘날 우리들의 강론하는 자리에서 논할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는구려.
나의 근황은 족히 말할 만한 것이 없으며 다만 좌우(左右)가 나는 듯이 빨리 와서 전자의 약속을 저버리지 말아주길 바랄 뿐이외다. 모든 것은 추후로 미루고, 불선.
필체가 이와 같이 괴괴하여 남의 비웃음을 끌어들일까 두려우니 곧 찢어 없애는 것도 좋을 거요. 집안의 두우(痘憂 마마)가 있으니 출장(出場)한 뒤에 다시 인편을 찾아 계속 추함(追椷)을 부치겠소.

[주D-001]좌우(左右) : 상대방을 지칭한 것임. 그 사람을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그 좌우의 시자(侍者)를 지칭한 것은 겸사(謙辭)임. 《사기(史記)》장의전(張儀傳)에 "敬使使臣 先聞左右"라는 대문이 있어 기인된 것인데 지금 서찰 속에 많이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