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홍군 현보 에게 주다[與洪君 顯普][3]

천하한량 2007. 3. 9. 04:48
홍군 현보 에게 주다[與洪君 顯普][3]

봉제(鳳題)가 아직 마르기도 전에 이서(鯉書)가 뒤미쳐 이르러오니 서운했던 심정이 반가움으로 뒤바뀌었네그려.
매실 익는 비 많은 철에 연리(蓮履)가 고이 돌아와 모든 것이 다 좋다니 흐뭇하고 개운하네. 주수(主帥)의 병환은 근자에 과연 차도를 얻어 편안한지, 비는 마음 실로 심상의 예가 아니라네.
천한 몸은 굳고 무디어 돌과 같을 뿐이며 근간에 하나의 옥자(屋子)를 삼호(三湖)에 장만하여 시골에 있는 여러 권속들이 모여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님은 아니나, 이는 다 맨바닥에 손을 내긋고 생땅에 다리를 세운 것으로서 곧장 수미산을 풀씨 속에 들여 보내려는 격이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절로 웃음이 나오네.
절첩(節箑 제철의 부채)은 특별히 마음을 써주어 강 언덕 산 사이에 두루 인정을 쓰게 되었으니, 감사 감사하네.
나에게 남겨둔 서본(書本)은 어찌 혹시인들 잊었겠나마는 현재로는 집 옮기는 수선으로 눈코를 차릴 수 없으니 조금 안정할 때를 기다리면 바로 써서 보내줄 생각일세.
《예서(禮書)》·《강목(綱目)》 네 상자와 사율(詞律) 두 상자는 아울러 이 편에 돌려보내니 거둬들이기 바라며 사율은 이것이 평측(平仄)을 위해 각체를 고정(考正)한 것이며 사격(詞格)의 정종(正宗)과 방문(旁門)에 이르러는 또 이것으로써 기준을 삼아서는 아니 되니 요량해서 보는 것이 묘법일 거네.

[주D-001]봉제(鳳題) : 《세설(世說)》간오(簡傲)에 "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더불어 좋게 지내는 사이여서 서로 생각이 날 때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방문하였다. 뒤에 여안이 찾아오자 혜강은 때마침 집안에 없고 그의 형 희(喜)가 문을 열고 나가 맞았는데 여안은 들어오지 아니하고 문 위에 봉(鳳)자를 써놓고 가니 희는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기쁘게 여겼다. 일부러 봉자를 쓴것은 봉이 범조(凡鳥)인 때문이다."라 하였음. 당인(唐人) 시에 "入門不敢題鳳字 看竹何須問主人"의 구가 보임.
[주D-002]이서(鯉書) : 서찰을 이름. 고시(古詩) 십구수(十九首)에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中有尺素書"라 하였음. 그래서 당 나라 사람은 편지를 부칠 때는 항상 척소(尺素)를 쌍리(雙鯉)의 형(形)을 결성하였다. 그러므로 서찰을 연칭(沿稱)하여 이(鯉)라 한다. 이상은(李商隱) 시주(詩注)에 보임.
[주D-003]연리(蓮履) : 제(齊) 유고지(庾杲之)의 자는 경행(景行)인데 왕검(王儉)의 장사(長史)가 되었다. 소면(蕭緬)은 왕검에게 서찰을 보내 말하기를 "성부(盛府)의 원료(元僚)는 실로 그 선발이 어려운데 유경행은 녹수(綠水)에 떠서 부용(芙蓉)에 의지하니 어찌 그리 화려한가."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왕검의 부(府)에 들어가는 것을 연화지(蓮花池)로 삼기 때문에 소면이 서찰로써 찬미한 것이다. 《남사(南史)》유고지전(庾杲之傳)에 보임. 그러므로 이 때문에 뒷사람이 막빈(幕賓)을 일컬어 연막(蓮幕) 또는 연리(蓮履)라 칭함.
[주D-004]수미산(須彌山)을…격이니 : 불가의 용어로서 《유마경(維摩經)》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에 보이는데, 수미산은 지극히 크고 높으며 개자는 지극히 가늘고 작은데 말하자면 지극히 작은 수에 지극히 큰 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