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2]

천하한량 2007. 3. 9. 04:47
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2]

베개와 삽자리가 서늘 기운을 맞아들임에 따라 기거(起居) 동작(動作)이 경쾌하고 편안한가. 촌과 들녘에도 이 맛을 느끼는데 더구나 서울이겠는가.
진정 그대들과 더불어 이 물이 빠지고 돌이 솟아나는 때를 타고서 홀가분하게 떠나 멀리 노닐어 산천의 맑고 상쾌한 기운을 들이마시고 뱉곤 하고 싶은데, 세속 일에 끌리고 감기어 있으니 단지 신(神)만 날아갈 뿐이로세.
바로 곧 편지를 받으니 마음에 흐뭇하며 양권(梁卷)과 구연(瞿硯)도 잘 왔고 종이 뭉치와 아울러 오(吳)의 촉탁도 거두어들였네.
제시한 금석(金石)은 어떤 금석인가. 아득하여 기억을 못하겠으며, 심지어 기이한 구경거리라는 것도 어떤 기이한 구경거리를 두고 한 말인가. 밑도 끝도 없어 어떻게 파악할 수가 없네.
그대들이 나의 도장 속에는 반드시 기이한 구경거리가 있으리라 생각하여 깊숙이 더듬고 비밀을 긁어 내어 사나운 용의 턱 밑에서 여의주(如意珠)를 따고, 날뛰는 코끼리 입 속에서 어금니를 뽑아 내려 드는데, 이는 또 구슬이요, 어금니라 각기 그 이름과 물체가 있지만, 지금은 일컬을 만한 이름도 없고 형상할 만한 물체도 없으니, 혼돈제강(混頓帝江)보다 다시 한 격이 더한 것이라 어떻게 뽑아 온단 말인가.
이는 바로 하늘에 달려 가도 주로 삼아 관섭(管攝)할 것이 없고, 바다에 들어가도 호호망망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은데, 하늘에 대고 물어서 한 물건을 요구하고 또 바다에 대고 물어서 한 물건을 요구한다면, 하늘은 장차 별을 뽑아 들어서 대응하란 말인가, 해와 달을 뽑아 들어서 대응하란 말인가.
바다는 또 경곤(鯨鯤)을 가지고서 대응하란 말인가. 또 산호와 목란(木難)을 가지고서 대응하란 말인가. 천옹(天翁)과 해약(海若)도 아마 포착할 길이 없을 것이니 우습고 우스운 일이로세.
비비비연호(鼻煙壺)는 망우(亡友)의 구물(舊物)이라 혹시 빌려주어 유실(流失)하게 된다면, 이는 망우의 부촉(付囑)한 뜻을 저버리는 것이니 부디 헤아려 주게. 작은 벼루는 근일에 나도 몹시 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재 쓰고 있는 것도 남에게 빌려온 것뿐이니 역시 양해하기 바라네.
별지에 장황히 적은 것은 그 뜻이 몹시 가상할 만하네. 이렇게 정진할 마음을 지닌다면, 어찌 태산의 정상인들 근심하리오.
《소학》은 평생을 두고도 다 못 읽는 것이며, 당 나라 사람의 글씨는 문경(門徑)이 빗나가지 않았으니, 이로써 준적(準的)을 삼는다면 더 이상 좋은 게 없네.
다만 적어 온 뜻을 보면, 매양 격한 바 있어 능히 스스로 자기 공부에 차분하지 못한 것 같이 여겨지네. 남이야 동으로 가건 서로 가건 교계(較計)할 것이 없고, 다만 자기 본분상에 세밀히 눈을 붙이고 맹렬히 힘을 쓰는 것이 옳을 것이네.
왕어양(王漁洋)이나, 원수원(袁隋園)이나 동현재(董玄宰)나 유석암(劉石庵)에 이르러서도 반드시 따로 계한(界限)을 세울 것이 없으니, 만일 잘 배워서 이 네 사람을 통하기만 한다면 그 역시 대단한 걸세. 지금 사람들이 잘 배우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본바탕의 풍랑을 허물한다면 너무도 그렇지 아니하니, 다만 자기 몸에 돌이켜 빛을 돌려야 하며, 다른 집에다 대고 금을 헤아리며 모래를 헤아리는 식을 말아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섯 손가락이 힘을 가지런히 한 연후라야 비로소 현비(懸臂)·현완(懸脘)으로 나아가서, 서로서로 기대고 힘입으며 쌍으로 거두고 나란히 일으켜, 어느 한쪽도 폐할 수는 없는 걸세. 세상 사람들이 지·완(指脘)의 사이를 세밀히 징험하지 못하고, 단지 허공에 매달아 말을 만들어내는데 만약 그 묘한 곳을 뚫기로 한다면 힘써 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냐에 달렸으며, 의의(擬議)나 상량(商量)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거라네.
내가 이십사 세 이후에 비로소 지완의 법을 터득하여 자못 여러 해 동안 고행(苦行)과 공부를 들이고서야 차츰 십에 오륙 정도는 얻었는데, 모두 다섯 손가락 속으로부터 온갖 묘리가 깨우쳐지곤 하였네.
이는 절대로 처음 익히고 공부하는 자로서는 건너 뛰거나 무작정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네.
지금 혹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어 나의 손가락 놀리고 팔 놀리는 것을 보고 말과 행동이 서로 들어맞지 않음을 캐려고 드는데, 나는 다만 웃고서 그 구경하는 사람더러 잘못 보지 않았다고 대답을 하네. 실상은 그들의 맞지 않다는 것이 실로 진경(眞境)에 맞은 것이니 산 법은 모르고 죽은 법만 가지고 따져 보는 까닭이라네.
먹 쓰는 법은 바로 딴 것이 아니니 시험 삼아 종이 위의 글자를 보소. 오직 먹일 따름일세. 그러니 먹 쓰는 법에 어찌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야 되는가.
옛사람이 먹 만들기가 붓 만들기보다 더욱 어렵다 했네. 붓은 오히려 요령으로 만들 수 있지만 먹은 요령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라네. 이 까닭에 이정규(李庭珪)와 그 아들이 천고(千古)를 통하여 독차지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D-001]구연(瞿硯) : 구(瞿)는 구(鴝)와 같음. 단계연(端溪硯)의 석안(石眼)이 구격안(鴝鶪眼)과 같이 된 것을 말함.
[주D-002]혼돈제강(混頓帝江) : 혼돈(混頓)은 혼돈(渾敦)과 같음. 《산해경(山海經)》서산경(西山經)에 "天山…有神鳥 其狀如黃囊 赤如丹火 六足四翼 渾敦無面目 是識歌舞 實惟帝江也"라 하였음.
[주D-003]이정규(李庭珪) : 당말(唐末)의 묵공(墨工)으로 본성은 해(奚)인데 남당(南唐)에서 성을 이(李)로 주었으므로 혹은 해정규라고도 칭한다. 그 제묵(制墨)이 송(宋) 나라 이후로 추장(推獎)하여 제일로 삼아 매우 진귀하다. 그 묵 인문(印文)에 규(邽)자를 쓴 것이 상품이고 규(圭)자가 그 다음이고 규(珪)가 그 다음이고 해정규(奚廷珪)라고 쓴 것이 그 다음이다. 《格古要論》에 "이정규의 묵은 두 종류가 있는데 용문(龍紋)으로 쌍척(雙脊)이 된 것이 상품이고 일척(一脊)이 된 것은 그 다음이다."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