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 석준 에게 주다[與金君 奭準][1] |
그대가 오니 꽉 찬 것 같았는데 그대가 가니 텅 빈 것 같네. 그 가고 옴이 과연 차고 비는 묘리와 서로 통함이 있단 말인가. 그대는 매양 역(易)을 읽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삼는데 그 행리(行履)와 동정은 저절로 대역(大易)의 소식(消息)하는 속에 들어 있으니 이러기에 백성은 날마다 쓰면서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라네.
떠난 뒤 근황은 과연 어떠한가. 어떤 책을 보며 어떤 법서(法書)를 임모(臨摹)하며 어떤 사람과 더불어 서로 만나며 어떤 차를 마시며 어떤 향을 피우며 어떤 그림을 평론하며 또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하는가.
비바람이 으시으시하고 산천은 아득히 멀고 한 모개 파란 등불은 사람을 비추어 잠 못 들게 하는데 이 사이에 있어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꿈을 꾸고 깨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역시 청계(靑溪)·관악(冠岳) 산 속에서 자리를 마주하고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 닭 울음을 세던 그때에 미쳐가기도 하는가.
이는 다 소식하는 속에서 기미를 구경하고 신비를 탐색하는 곳이어서 범속(凡俗)의 정과 인연으로는 다 심상히 지나고 속절없이 넘기며 팔각의 소반 위와 도륜(陶輪)의 경개 안에서 차갑게 문지르고 말갛게 바르는 데 그칠 따름이라네.
천한 몸은 그대 있을 때와 같아서 모든 것이 한 치의 자람도 없으며 초목의 낡은 나이 갈수록 더욱 뻔뻔스럽기만 해지니 온갖 추태는 남이 보면 당연히 침을 뱉을 것이며 아무리 그대 같은 기가(嗜痂)로도 아마 더불어 수식하기는 어려울 걸세. 그림자를 돌아보고 스스로 웃는다네.
열흘 사이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부디 단단히 기억해 두게. 모두 뒤로 미루고, 불비.
[주D-001]도륜(陶輪) : 《잡마힐경(雜摩吉經)》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단취(斷取)하기를 마치 도기(陶器)를 만드는 집에서 윤(輪)을 돌리듯이 한다."고 하였음.
[주D-002]기가(嗜痂) : 기호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을 이름. 《남사(南史)》유옹전(劉邕傳)에 "옹(邕)이 창가(瘡痂)를 먹기를 좋아하여 그 맛이 복어와 같다고 여겼다. 일찍이 맹영휴(孟靈休)를 찾아가니 그가 얼마 전에 부스럼을 앓아 그 부스럼딱지가 떨어져 침상에 있으므로 옹이 주워 먹었다."고 하였음.
[주D-002]기가(嗜痂) : 기호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을 이름. 《남사(南史)》유옹전(劉邕傳)에 "옹(邕)이 창가(瘡痂)를 먹기를 좋아하여 그 맛이 복어와 같다고 여겼다. 일찍이 맹영휴(孟靈休)를 찾아가니 그가 얼마 전에 부스럼을 앓아 그 부스럼딱지가 떨어져 침상에 있으므로 옹이 주워 먹었다."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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