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당김정희 ▒

황생 상 에게 주다[與黃生 裳]

천하한량 2007. 3. 9. 04:38
황생 에게 주다[與黃生 ]

온갖 나무가 파릇파릇하여 모두 봄의 뜻을 자랑하고 예전의 제비도 새로워 둥지를 치는데 바로 곧 먼 서한을 받으니 어찌 신이 날고 안색이 기쁘지 않으리오.
더구나 그 가슴속의 발울(勃鬱)한 기운은 누각의 구름과도 같고 거마의 일산과도 같아서 천리의 밖에서도 한 오라기가 서로 접속되어 나같이 삭고 낡아빠진 물건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네. 편지 전한 이후에도 동정이 과연 편지 부칠 때와 한결같은가?
이 몸은 칠십의 나이가 어느덧 닥쳤으니 무엇을 했다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네. 사중(舍中)도 역시 일년 사이에 더욱 늙었고 계군(季君)도 많은 고초를 겪은 탓으로 늘 병을 떠나보내지 못하니 한탄스러울 따름일세.
시권(詩卷)과 독초(牘草)는 그 공중에 가로지른 노련한 기운을 뉘 능히 당해낸단 말인가. 서문을 써 달라는 청은 진실로 이상히 여길 게 없으나 이는 어찌 나를 기다려서 값이 정해진다 하리오. 문장 촌심(文章寸心)은 스스로 천고를 지닌 것이니 실로 내가 들어서 사사로이 할 바도 아니지 않은가.
운포(耘逋)는 지병으로 지난 설 전부터 극심해지더니 마침내 금월 초하룻날 작고하여 이물(異物)이 되었다네. 이와 같은 말세에 이와 같은 인물을 어디에서 다시 본단 말인가.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 노인은 그와 정지(情地)가 특별하여 무척이나 슬퍼하고 있다네. 좌우(左右)도 이 소식을 들으면 또한 반드시 마음 놀래어 죽음을 애도함이 남과는 같지 않으리라 생각되네. 불선.

[주D-001]문장 촌심(文章寸心) : 두보 시에 "文章千古事 得失寸心知"라는 구가 있으므로 그 뜻을 인용한 것임.